237화. 적중
영상을 업로드하고 곧바로 데스크톱을 껐다.
툭.
핸드폰도 유투브를 포함한 알림을 전부 끈 채로 책상 가장자리에 뒤집어 두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신경을 끈 채로 마음을 비우고 싶기 때문이었다.
‘못 잘 거야.’
한 번 보면 새벽 내내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았다.
댓글은 실시간으로 올라올 테고 나는 밤을 지새우게 될 테니.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는 내 모습을 원치 않았다.
‘할머니도 오신 상황이고.’
무엇보다 까놓고 말해서 내 얼굴이 드러나는 건 전혀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연두튜브의 주인공은 말할 필요도 없이 연두니까.
아빠로서의 내 모습을 소개하는 것 외에 특별한 의미는 존재하지 않았다.
허나 그럼에도 어쩔 수 없었다. 떨리는 건.
‘나니까.’
큰 의미가 없다고 해도 많은 사람들 앞에 내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거의 이백만에 달하는 구독자 앞에서.
과연 이런 상황에 떨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솔직히 말해서 걱정도 됐다.
구독자들의 눈에 비치는 나는 어떤 모습일지.
연두의 아빠로서 너무 어리숙하고 부족해 보이지는 않을지.
그러니 잠시 반응 확인은 묻어둘 생각이었다.
아까 말했듯 한 번 보면 주체할 수 없겠지만, 아예 참는 건 궁금할지언정 가능은 하니까.
‘그리고.’
내일 잠에서 깨면 한 번에 확인할 생각이다.
그즈음이면 넘칠 만큼 많은 댓글들이 쏟아져 있을 테니.
“.. 아빠.”
자그마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직 잠이 들지 않은 연두가 말똥말똥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먼저 자도 된다는데도 꿋꿋이 버티고 있는 연두이다.
아니, 그렇게 말하기엔 졸려 보이지도 않는구나.
나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응, 연두야.”
“시게 열두시 너멌는데.. 영상 안 올려여...?
“올렸는데?”
“어, 언제여..?”
“방금.”
깜짝 놀라 입을 벌리는 걸 보니 너무 예고 없이 업로드해 버린 모양이다.
사실 예고할 정신이 없었다.
그냥 조금이라도 빨리 긴장을 털어내 버리고 싶은 마음이었으니까.
‘업로드한 지금도 떨리는 게 함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바로 업로드 버튼을 클릭한 건 잘한 일 같았다.
망설였다가는 괜한 고민만 길어졌을 게 뻔하니.
벌떡.
난데없이 앉아 있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는 연두.
동그랗게 부푼 눈으로 나를 보며 말한다.
“바야 해요!”
“뭘?”
“연두튜브 댓글..!”
“하하, 댓글이 보고 싶었어?”
“네에.”
“혹시 그래서 잠 안 자고 깨어있는 거야, 연두야?”
이번에는 대답 대신 고개를 격하게 끄덕인다.
이런 줄 알았으면 미리 얘기해 줄 걸 그랬네.
“이걸 어쩌지..”
“.. 왜여?”
“아빠는 지금 안 보려고 했거든.”
“왜 안 바요..?”
있는 그대로 대답해 줬다.
“지금 보면 잠도 못 자고 밤새워서 댓글만 보게 될 거 같아서.”
“아..!”
“봐. 연두도 이렇게 늦게까지 안 자고 있잖아.”
나는 가볍게 연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미안해, 아빠가 못 자게 만들었네.”
내 말에 연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아, 아니에여! 연두는 그냥 보고 시퍼서...”
“뭐가?”
“구독자분드리 아빠 보고 머찌다고 하는 거요..”
“하하, 그래?”
“네.”
“아빠 보고 멋지다고 할 거 같아?”
“할 꺼에요! 아빠는 엄청 머찌니까...!”
자연스레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댓글 반응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연두가 말하는 모습이 너무 예뻤으니까.
“고마워. 그리고..”
“그리고...?”
“아빠도 궁금해. 구독자분들이 뭐라고 할지.”
나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세상 예쁘게 한복을 차려입은 연두를 보고 뭐라고 할지, 할머니한테 세배드리는 모습을 보고 뭐라 할지, 그리고 아빠를 보고 어떻게 생각할지도. 아빠도 연두만큼 궁금하다?”
“연두는 진짜 마니 궁금한데.. 그러면 아빠도 진짜 마니 궁그매요...?”
“그럼. 진짜진짜 많이 궁금하지.”
씩 웃으며 나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니까 내일 일어나서 같이 보자.”
“.. 내일 아침에?”
“응.”
살짝 아쉬운 듯하지만 연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침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이것들은 아주 시도 때도 없이 염병을 하네.”
이상하게 할머니도 아직까지 잠이 들지 못하고 계셨다.
나는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할머니는 왜 안 주무세요? 혹시 저랑 연두처럼 댓글 반응이 궁금하셔서..?”
“헛소리는! 내 채널도 아닌데 궁금하긴 왜 궁금해?”
“하하, 할머니도 나오셨으니까요.”
몇 마디 덧붙일까 하다가 그만뒀다.
오늘은 서로 충분히 장난을 주고받은 거 같으니까.
그런 와중 새삼스레 보이는 게 있었다.
“할머니.”
“뭐.”
“그러고 보니 아직 화장 안 지우셨네요?”
생각한 지 얼마나 됐다고 자연스레 장난기 섞인 말이 나갔다.
“아름이가 해 준 화장이 마음에 많이 드셨나 봐요.”
당황한 듯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음에 들긴! 귀찮아서 그래, 귀찮아서! 그 가시나는.. 괜히 분칠을 해 놔서 노인네를 귀찮게 만들어!”
말이 기신 걸 보니 정곡을 찌른 모양이다.
몸을 일으키려는 할머니를 향해 말했다.
“잠깐만요.”
“또 왜.”
“그냥 지우긴 아까우니까 사진 하나 찍어요, 우리.”
침대의 노란 조명이 예뻤다.
아까 찍긴 했지만 또 찍지 말란 법은 없었다.
사진은 찍는 만큼 추억으로 남게 되어 있으니까.
“자, 연두야.”
할머니는 투덜거리면서도 자리를 지키셨다.
먼저 연두와 할머니의 투샷이었다.
찰칵.
그리고,
“아빠!”
“그래, 잠깐만.”
유용한 카메라 기능 ‘10초 후 촬영 모드.’
버튼을 누르고 재빨리 연두와 할머니 사이로 들어갔다.
이번 사진만큼은 센터는 내 차지였다.
“헤헤..”
“연두야, 앞에 봐야 해. 10초 후 찍히거든.”
“아! 네에..!”
찰칵.
이렇게 즉석 사진 촬영이 끝났다. 결과물은 의외로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할머니는 무심하게 사진을 한 번 보더니 화장실로 향했다.
***
금세 화장을 지우고 돌아오신 할머니.
“침대에서 주무세요. 저는 바닥에서 잘게요.”
“당연하지. 그럼 할미를 바닥에서 재우려 그랬어?”
“설마요.”
나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연두야.”
“네, 아빠.”
“오늘만 침대에서 할머니랑 같이 잘래?”
“하, 할머니랑요..?”
싫은 느낌보다도 조금 무서워하는 느낌이다.
어김없이 침대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허, 누구 맘대로?”
가볍게 흘려듣고는 연두의 귀에 속삭였다.
“아빠 부탁이야, 연두야. 오늘 한 번만. 할머니 외로우시니까.”
“.. 아빠는요?”
“아빠는 괜찮아. 내일부터는 또 연두랑 같이 잘 거니까.”
그러자 연두가 내 귀에 속삭였다.
“알게써요, 아빠..!”
그리고선 조심스레 침대 위로 올라가는 연두.
처음에는 끝에 살며시 눕는다.
데굴.
눈치를 한 번 보더니,
데굴. 데굴.
데구르르 굴러서 할머니의 옆으로 향한다.
결국 살결이 맞닿은 연두와 할머니.
“뭐, 뭐야, 요년아. 언제 올라왔어! 저리 안 떨어져?”
“추어요, 할머니..”
“이불 덮어, 추우면!”
“이러케 부트면 이불보다 따뜨태요..”
호통에도 굴하지 않고 붙어있는 연두.
어둡기는 했지만 보이는 느낌이었다. 할머니의 표정이.
“이게 아빠한테 이상한 것만 배워가지고……”
“여, 연두 아빠 안 이상해여!”
“시끄러! 부대끼니까 얼른 떨어지기나 해!”
“이이잉...”
이번에는 바닥에서 듣고 있는 나도 깜짝 놀랐다.
방금.. 애교 아닌가?
할머니도 당황한 듯 입을 열었다.
“뭐, 뭐시? 이이잉?”
“이잉.. 할머니.. 연두 안 떠러질래여...”
“요, 요것이 미쳤나.”
나도 처음 들었다. 연두가 저렇게 작정하고 하는 애교는.
치솟은 입꼬리가 주체가 되지 않는다.
‘아까 배운 거구나.’
생각해 보니 아름이에게 배운 거 같았다.
아름이도 비슷한 애교를 부려서 할머니에게 화장권을 얻어냈으니까.
그 과정에서 알았지. 할머니가 의외로 조르기에 약하다는 걸.
“.. 됐으니까 조용히 잠이나 자!”
“히히, 네!”
결국 이어지는 애교에 체념하신 할머니.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연두에게 정말 좋은 걸 가르쳐주고 한 아름이였다.
***
부시시.
낯선 천장이었다.
정신이 든 후에야 왜 낯선지 알 수 있었다.
‘침대가 아니구나.’
평소에 자던 침대가 아니기 때문.
맞아. 방에서 자다가 바닥이 좁아서 거실로 나와서 잤었지.
고로 현재 내가 보는 건 거실 천장이었다.
스윽.
몸을 일으키고 나니 더 정신이 들었다.
아침에 확인해야 할 게 존재한다는 사실도.
꿀꺽.
냉수 한 잔을 원샷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슥.
침대 위를 보는 동시에 번지는 웃음.
정말 보기 힘든 장면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할머니 품속에 파고든 채로 자고 있는 연두, 그리고 그런 연두를 감싸고 주무시고 계신 할머니.
‘뭐가 이렇게 오붓해.’
미소 없이는 볼 수 없는 흐뭇한 장면이었다.
한동안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눈으로만 보기에는 아쉬웠으니까.
찰칵.
무음 모드로 촬영을 마친 뒤, 나도 침대에 몸을 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느껴지는 인기척.
그와 동시에 나는 눈을 감았다. 왜인지 모르지만 자는 척을 해야 할 거 같았다.
실눈으로 앞을 보는데 눈을 뜬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깜짝 놀란 표정.’
정확히는 자신의 손을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이다.
연두를 감싸 안고 있는 자신의 손을 보고.
바로 팔을 뗄 거라 예상했으나, 이어지는 장면은 예상 밖이었다.
폭.
오히려 더 깊게 팔을 뻗어 연두를 감싼다.
이후에는 내 눈을 의심케 하는 장면이 실눈 사이로 펼쳐졌다.
그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연두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표정이.
이런 표정도 지으실 줄 알았구나.
뒤이어 자그맣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정말 닮았구나...”
주어는 없지만 알 거 같았다. 누굴 닮았다는 건지.
나는 마음속으로 웃으며 실눈을 뜬 눈을 마저 감았다.
그대로 나는 조금 긴 시간을 보냈다. 자는 연기를 하며.
***
“.. 아빠!”
“잘 잤어, 연두야?”
“네! 할머니랑 가치 자써요..!”
“하하, 잘했어.”
“아빠는요..?”
“아빠는 잘 잤지.”
연두는 할머니를 향해서도 공손히 아침인사를 건넸다.
“안녕히 주무셔써요, 할머니..!”
“안녕히 못 잤다. 웬 조그마한 게 거추장스럽게 딱 붙어있어서.”
거짓말. 또 마음에 없는 소리 하시네.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한편 연두는 토끼눈을 뜬 채로 입까지 틀어막고는 말한다.
“.. 조그마한 거? 버, 벌레 이써써요, 할머니?”
아니, 연두야. 조그마한 게 너를 말하는 거란다.
“한겨울에 벌레가 어디 있어, 이년아.”
“그, 그럼요..?”
“됐어. 쫑알거리지 말고 조용히 해.”
그 말에 연두가 서운하다는 듯 삐죽 입술을 내민다.
허나 그 표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
“하하, 기억났구나?"
“연두튜브!!”
연두가 제자리에서 총총 뛰었다.
어제 자기 전에 한 약속이 떠오른 모양이다.
원래는 일어나자마자 볼 생각이었는데 다소 늦춰진 반응 확인이었다.
그 덕에 연두를 향한 할머니의 애틋함을 확인할 수 있긴 했지만.
‘뭐, 남는 장사지.’
어차피 댓글은 언제 보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하지만 더 이상은 미루지 않을 생각이다.
틱.
엎어진 핸드폰은 그대로 두고 데스크톱을 켰다.
어느새 연두는 내 옆에 와서 자리를 잡았다.
달칵.
클릭과 동시에 떠오르는 연두튜브의 배경.
썸네일과 프로필 사진, 그리고 그 아래 칸의 최신 동영상.
어제 올린 영상이 최상단에 떠올라 있었다.
[연두의 새해 인사(feat. 초록)]
클릭하기도 전에 떡 벌어지는 입.
나를 놀라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조회수였다.
조회수 : 1, 797, 632회(9시간 전)
몇 번을 봐도 쉽사리 믿기지 않는 조회수였다.
하루도 아니고 단 아홉 시간 만에 거의 이백만에 달하는 조회수라니.
‘조회수가 폭발한 영상은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역대급이라 할 만한 조회수로 느껴졌다.
벙쪄 있던 나는 옆을 보고 나서야 영상을 클릭했다.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아무것도 모르고 나를 바라보는 연두를 보고.
‘잘은 모르겠지만.’
엄청난 화제성을 기록한 건 부정의 여지가 없을 듯했다.
곧바로 마우스 휠은 댓글창을 향했다.
어차피 보기로 한 거, 이제 와서 망설일 생각은 없었다.
조회수에 비례하는 엄청난 수의 댓글이 달려있었다.
숨 막히는 긴장 속에 보이는 최상단의 댓글.
-미쳤다.. 지금 내가 뭘 본 거냐..?
┖진짜 레전드 ㅋㅋㅋ 그 목격담들이 사실이었다고??
┖아니, 이 정도면 사실을 넘어 축소된 듯. 한복 입은 연두 보고 입틀막하는 중에 옆에 웬 존잘남 나오길래 연예인 섭외한 건가 했는데.. 목소리 듣고 일시정지 누르고 얼어붙음..
┖정확히 18362번 돌려봄. ‘안녕하세요, 초록입니다.’ 진짜 닭살돋아서.. 흐아아...
-제목 볼 때 뭔가했다 ㅋㅋ 왜 ‘feat’에 초록님이 있나 하고.
┖진짜 머릿속으로 초록님 모습 엄청 상상했는데 그 이상이 펼쳐졌다..
┖언제나 현실은 상상을 초월하는 법 ㅎㅎ
┖예상 못해서 더 충격이네 ㅋㅋㅋ 진짜 괜히 연두 아빠가 아니구나..
┖연두랑 초록님 같이 세배할 때 비주얼 진짜.. 이건 전세계 통틀어 진짜 역대급 부녀다... ㅠㅠ
┖이 와중에 외국인들 ㅋㅋㅋㅋ 다 우리랑 같이 충격받았음. 느낌표 물음표 천지네 ㅋㅋㅋㅋㅋㅋㅋ
걱정한 게 무색해지는 무수한 댓글이 펼쳐져 있었다.
그와 동시에 행복을 가득 머금은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연두가 또 마자써요..!!”
그래.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번에 이어 이번에도 연두의 예상이 완벽히 적중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