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화. 2회차
쾅!
탁! 탁! 탁!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둔탁한 소리들.
그럴 수밖에 없었다.
‘15분.’
요리를 완성해야 하는 시간이 단 15분이었다.
TV로 보면서도 늘 감탄하는 부분이었다.
라면 하나 끓이는데도 물 끓는 시간을 합하면 5분에서 10분은 걸리는데.
단 15분 만에 근사한 요리가 만들어지는 걸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지금도 마찬가지고.’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먼저 생닭을 순식간에 발골하는 유성준셰프.
스윽. 슥.
부위별로 발골하는 데 채 30초도 걸리지 않는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오일을 두른 팬 위에 올려놓는 모습.
치지직.
고기를 익히는 동안 가만히 있는 게 아니다.
애호박을 슬라이스로 자르고, 가래떡을 볶고, 소스를 만들고.
그 모든 과정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다.
“와..”
저절로 감탄이 나오는 장면이었다.
반대쪽 주방도 다르지 않았다.
‘재료가 비슷하면서도 달라.’
비슷한 이유는 간단했다.
앞선 유성준 셰프의 메인 재료가 닭이라면, 서도형 셰프의 메인 재료는 달걀이었으니까.
닭과 달걀. 얼핏 보기에도 밀접한 관련이 있지 않은가.
‘서브 재료로 소고기를 사용했고.’
적당한 크기로 썬 소고기를 갈고 간 마늘과 대파를 섞는다.
그다음에 반숙으로 삶은 달걀이 등장한다.
“오.. 뭔가요? 달걀을 감싸는 건가요?”
“네. 소고기 완자로 달걀을 감싸서 기름을 끼얹어 가며 익힐 겁니다.”
“이야, 신선합니다! 신선해요!”
신선함이 모토라는 건 괜한 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저런 식의 요리는 상상도 못 했으니까.
연두도 입을 벌린 채 요리를 지켜봤다.
‘저걸 또 채소 소스에 버무리고.’
이러니 어떻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단 15분 만에 저런 요리를 만들어내는데.
정확히 시간에 맞춰 버저를 누르는 두 셰프.
“네, 둘 다 완성했습니다!”
접시 위 근사하게 세팅까지 마무리된 두 요리.
간단한 소개가 이어졌다.
“제 요리 이름은 닭살 돋자나!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귀여운 이름이네요. 닭살 돋을 정도로 맛있다는 뜻인가요?”
“네. 그리고 호불호 없는 음식을 원한다고 하셨죠. 살면서 나 닭 싫어! 하시는 분 못 봤습니다. 그리고 달걀은 결코 닭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상입니다.”
달걀을 메인으로 한 상대를 향한 가벼운 디스까지.
훌륭한 요리 소개였다.
절레. 절레.
뭘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여는 서도형.
“제 요리의 이름은 ‘달걀이 먼저다!’입니다.”
“달걀이 먼저다?”
“네. 달걀이 닭을 결코 이길 수 없다? 모르는 소리죠. 애초에 달걀이 없었다면 닭이 있었겠습니까? 달걀이야말로 대국민이 애용하는 호불호 없는 식품이죠. 더군다나 저는 소고기를 활용해……”
역시 거침없는 언변이다.
결국 못 참고 끼어드는 유성준.
“잠깐만요. 다른 건 몰라도 달걀이 먼저라뇨. 달걀이 먼저면 그 달걀은 누가 낳았습니까? 닭 아닙니까?”
“그럼 그 닭은 어디서 나왔는데요.”
“...”
결국 나는 못 참고 웃음을 터트렸다.
멋지게 요리 만들어놓고는 저런 걸로 투닥이는 모습을 보니.
더 우스운 건 연두도 혼란에 빠진 표정이라는 것.
‘닭이 먼저지, 달걀이 먼저지..?’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 같다.
치열한 둘의 다툼을 제지한 건 MC 이성주였다.
“하하, 자, 그만하시고요. 음식 식겠습니다.”
원칙상 먼저 음식을 먹는 건 메인 게스트인 워너비였다.
둘의 앞에 놓인 첫 번째 음식은 ‘닭살 돋자나!’였다.
걸쭉한 느낌의 소스에 닭고기를 버무린 요리.
‘비주얼만 봐도 맛있네.’
저절로 군침이 돈다.
연두의 시선도 반대편 접시에 꽂힌 상태.
유진이 미안한 듯 입을 연다.
“어떡해. 연두 너무 먹고 싶어 하는 표정인데..”
내가 대신 대답했다.
“아니에요. 눈치 보지 말고 편하게 드세요.”
우리 차례가 없는 게 아니었다.
연두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였다.
“마자요! 연두는 갠차나요..!”
“그, 그래. 그럼……”
모두의 시선이 워너비의 숟가락을 향했다.
***
조심스레 닭고기에 소스를 듬뿍 버무려 한 입을 뜨는 두 멤버.
아암.
동시에 흠칫 몸을 들썩인다.
“아, 이건 어떤 반응이죠?”
“.. 한 입 더 먹어봐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근데 한 입으로는 감이 안 오는 맛이란 뜻일까요?”
아랑곳하지 않고 재차 음식을 입에 넣는 두 멤버.
이번에는 동시에 입꼬리가 올라간다.
마침내 입을 뗀 건 유진이었다.
“진짜.. 진짜 맛있어요.”
긴장을 머금고 있던 유성준 셰프의 얼굴에 번지는 화색.
뒤이어 재은도 감탄을 내뱉으며 덧붙인다.
“와.. 너무 맛있다...”
뒤이어 이어지는 식사.
미안해하며 첫입을 떼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완전히 식사 모드로 돌입한 상태다.
‘보기 좋네.’
아까 토크를 하며 들은 이야기.
평소에도 그렇지만 특히나 활동 중인 요즘은 마음 놓고 먹어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지.
그런 짠한 얘기를 들었기에 둘의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다.
“저기.. 재은 씨, 유진 씨?”
“네!”
“잘 먹어서 좋긴 한데 맛이 어떤지 얘기해 줘야 하거든요.”
아차 하고 입을 여는 재은.
“이 소스가 진짜 대박인 거 같아요. 매콤하면서도 닭고기랑 너무 잘 어울려서. 그리고 애호박이랑 목이버섯도 식감이 너무 잘 어울려요. 안 어울릴 거라 생각했는데..”
“워너비 멤버들이 전부 좋아할 거 같나요?”
“.. 완전요.”
한동안 둘은 숟가락질을 멈추지 못했다.
반면에 나는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연두는 못 먹겠네.’
매콤한 소스를 베이스로 하는 음식이라 연두가 먹기에는 무리가 있을 듯했다.
다음은 서도형 셰프의 ‘달걀이 먼저다!’를 맛볼 차례.
셰프가 간단히 먹는 방법을 설명해줬다.
“먹기 편하게 반으로 갈라서 드시면 됩니다.”
소고기 완자가 반숙 달걀을 꽁꽁 둘러싼 형태.
그에 더해 적셔서 먹을 채소 소스까지.
비주얼로는 전혀 밀리지 않았다.
스윽.
셰프의 말대로 젓가락으로 반을 가르자 드러나는 속살.
영롱한 반숙 노른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와..”
“대박이다, 진짜...”
먹기에 앞서 감탄부터 내뱉는 재은과 유진.
이번에는 매콤한 양념이 전혀 첨가되지 않은 요리였다.
연두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인 만큼 맛이 궁금했다.
아암.
곧바로 이어지는 시식.
이번에는 유진이 먼저 입을 연다.
“.. 진짜 어떡하지?”
“뭐가 말이죠?”
“이것도 너무 맛있어요. 소고기랑 부드러운 계란이 입안에서 맞물리면서……”
역시 반전은 없었다.
비주얼만큼의 맛을 보여준 두 요리.
“저 진짜 보면서 고민 안 될 줄 알았거든요.”
“뭐가요?”
“선택하는 거요. 그냥 더 맛있는 요리 고르면 되지 하고 생각했는데 둘 다 다른 느낌으로 너무 맛있어서..”
더이상 못 참겠다 싶을 즈음.
작은 양의 여분의 음식이 모두에게 제공됐다.
“빨리 드셔 보세요, 초록 님!”
“연두도!!”
나와 연두를 바라보며 음식을 권하는 워너비 멤버들.
그러다 무언가 떠오른 듯 말한다.
“헐.. 맞다.”
“왜?”
“연두는 유성준 셰프님 음식 못 먹겠다...”
“아, 맞아!!”
막상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유성준 셰프.
“.. 왜요?”
내가 대답할 필요도 없었다.
마치 변호인이라도 된 듯 워너비 멤버들이 이야기했으니까.
“연두가 매운 걸 전혀 못 먹거든요..”
몰랐던 셰프들이 몇 있는 모양이다.
이성주가 말했다.
“이따가 참고해 주셔야겠네요. 연두는 매운 걸 못 먹는다는 점.”
고개를 끄덕이는 셰프들.
음식을 먹었을 때의 연두의 반응을 보고 싶었던 걸까.
유성준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였다.
“…… 볼래요!”
연두가 불쑥 입을 열었다.
“뭐라고, 연두야?”
“연두 먹어볼래요!”
“.. 괜찮겠어?”
“네..!”
강하게 마음먹은 표정이다.
걱정이 된 나는 유성준을 향해 물었다.
“혹시 음식이 많이 매운가요?”
“아뇨! 그렇게 안 맵습니다!”
시험 삼아 먼저 맛을 보기로 하자.
나는 숟가락을 떠서 ‘닭살 돋자나!’를 입에 넣었다.
동시에 드는 두 가지 생각.
‘진짜 맛있다.’
이름을 잘 지은 거 같았다.
진짜 닭살 돋을 정도로 맛있었으니까.
그리고 별로 안 매웠다.
‘어쩌면..’
연두도 그렇게 안 매워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슥. 슥.
최대한 소스를 덜어낸 뒤 고기와 호박, 버섯을 곁들였다.
그리고 연두의 입에 가져다댔다.
“자, 연두야.”
“네에.”
오물. 오물.
“마싰.. 흡!”
순식간에 새빨개지는 연두의 얼굴.
분명히 맛있다고 하려 한 거 같은데, 매운 게 늦게 온 모양이다.
나한테는 전혀 맵지 않았는데.
역시 내 기준과 연두의 기준은 달랐다.
붉어진 얼굴로 발을 동동 구르는 연두.
“물 주세여! 흐읍. 물..!”
유진이 재빨리 앞에 있는 물을 건넸다.
벌컥. 벌컥.
한껏 물을 들이켜고도 얼얼한지 숨을 내뱉는다.
“후.. 하.. 후.. 하...”
“흐흡.”
안 웃으려 했는데 귀여워서 웃음이 나와버렸다.
나뿐만은 아닌 거 같았다.
주위는 물론이고 촬영하는 PD들까지도 웃음을 참고 있는 게 보이니까.
안정되고 나서야 연두는 소감을 내뱉었다.
“진짜 맵따……”
다시 모두를 터지게 만드는 한 마디였다.
***
박빙의 대결.
승자는 아슬아슬하게 유성준 셰프로 정해졌다.
척.
직접 셰프의 옷에 별을 달아주는 워너비 멤버들.
아쉽게 패한 서도형이 소감을 말했다.
“그래도 만족합니다. 연두가 맛있게 먹어줬으니.”
두 셰프가 악수를 나누고 다음 차례가 이어졌다.
주제는 ‘초록 님을 이기는 면 요리!’였다.
척. 척.
현란한 요리 끝에 나온 두 개의 면 요리.
옹심이를 곁들인 까르보나라와 즉석으로 반죽을 내 만든 면을 고기육수로 끓여낸 파스타.
호록. 호로록.
연두 튜브 구독자답게 시원한 면치기를 보여주는 두 멤버.
뒤이어 나와 연두도 면치기에 동참했다.
후루룩.
호로로로록.
결과는 이호연 셰프가 만든 파스타의 승리.
스승님으로서의 자존심을 지켜낸 이호연이었다.
“잠깐 쉬었다 가겠습니다!”
‘초록 님을 이기는 면 요리!’까지 촬영이 끝난 뒤 브레이크 타임.
쉬는 시간에도 토크는 끊기지 않았다.
심지어 옆자리로 다가온 워너비 멤버들.
“와, 진짜 귀엽다..”
“연두야. 셰프님들 요리 맛있었어?”
“네에..”
평범한 대답에도 눈을 반짝이며 말을 거는 둘.
그러다 유진이 말했다.
“볼 한 번만 만져봐도 돼요?”
언제나 그렇듯 선택권은 연두에게 있었다.
나는 빙긋 웃으며 물었다.
“괜찮아, 연두야? 언니들이 볼 만져도.”
“네. 갠차나요..!”
허락이 떨어지자 조심스레 손을 가져다 대는 재은과 유진.
동시에 양쪽 볼을 살짝 건드린다.
“와..”
“진짜 말랑말랑해...”
“나 진짜 성덕이다. 감격스럽다……”
지켜보던 내 입가에 피식 웃음이 번졌다.
무대 위 카리스마 넘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둘을 보니.
“저기, 초록 님.”
“네.”
“혹시 사진 하나 찍을 수 있을까요? 멤버들이 꼭 같이 찍어오라고 해서……”
“아, 물론이죠.”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찰칵.
사진을 찍은 이후에도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휴식을 취했다.
그런 와중 쿡쿡 웃으며 유진을 향해 말하는 재은.
“이상하다..”
“뭐가?”
“나 아까 우리 촬영 시작할 때보다 지금이 더 기대돼.”
“흐흐, 나도 그런데.”
“연두 맞춤 음식인 만큼 그것도 직접 볼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아, 그거?”
텔레파시라도 통한 듯한 둘의 대화.
둘이 동시에 하는 말을 듣고서야 뭔지 알 수 있었다.
“리얼 꿀마시!”
그러고 보니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구나.
궁금해졌다. 남은 네 개의 요리 중에 연두가 ‘리얼 꿀마시’를 내뱉게 하는 요리가 나올지.
막상 당사자인 연두는 평온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한다.
“아빠. 이제 몇 개 더 머거요..?”
“요리 말하는 거야?”
“네.”
“네 개.”
“우아.. 마니 남아따..”
무언가 떠오른 듯 말을 잇는 연두.
“아빠.. 이제 안 매어요..?”
이렇게 묻는 걸 보면 아까의 임팩트가 크긴 한 모양이다.
나는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응, 걱정 마. 연두랑 아빠가 같이 생각한 주제 있잖아.”
“네에.”
“그 주제에 맞춰서 하나도 안 매우면서도 엄청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주실 거야. 셰프님들이.”
그제야 연두의 입가에 번지는 안도의 미소.
일부러 ‘리얼 꿀마시’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마음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리얼 꿀마시’를 듣고 싶으니까.
이윽고 귓가에 들려오는 PD의 목소리.
“촬영 재개하겠습니다!”
그 말에 자리에 착석하는 출연진들.
워너비의 멤버들도 원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렇게 시작됐다.
연두와 나를 메인 게스트로 하는 ‘최고의 한 끼’ 2회차 촬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