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딸 바보가 되었습니다-267화 (268/850)

267화. 일등상

즐거웠던 ‘최고의 한 끼’ 촬영이 끝난 뒤.

딱히 이전과 달라진 건 없었다.

‘아직 출연 소식을 공개하지도 않았고.’

물론 방영되는 날짜는 알고 있었다.

그걸 공개하는 건 내가 아닌 방송사의 역할이었다.

며칠 내로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될 거라 했지.

‘어떻게 나왔을까.’

워너비 멤버들, 두 명의 MC, 여덟명의 셰프, 그리고 연두와 함께한 긴 시간의 촬영.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여럿 존재했다.

나름 연두튜브의 편집자(?)로서 기대가 됐다. 그 장면들이 어떻게 편집되어 나올지.

‘뭐, 기다리는 수밖에.’

생방 날짜에 연두와 함께 본방사수할 예정이었다.

TV 속에 들어가 있는 우리의 모습을.

그와 별개로 현재의 나는 내 역할에 충실하고 있었다.

사각. 사각.

이제 정말 완성을 코앞에 둔 ‘쑥쑥 한글완성 4단계!’의 작화.

4단계가 끝인 걸 고려하면 막바지 중에 막바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뿌듯함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정확한 기간은 잘 모르겠지만.’

수 달 간의 긴 시간 동안 작화에 참여하며 느꼈다.

작화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웰메이드 학습지라는 걸.

단 네 권으로 한글공부를 끝마칠 수 있을뿐더러 내용이 부실하지도 않았다.

‘판매량이 그 증거지.’

소비자, 특히 학부모의 눈은 굉장히 냉정하다.

아이와 관련된 거라면 재고 또 재게 되는 게 부모의 심리니까.

1권의 판매량은 홍보 효과라 할 수 있어도 그 이후는 아니었다.

‘1권을 건너뛰고 2권을 사는 경우는 거의 없을 테니.’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쑥쑥 한글완성’의 흥행은 단지 홍보로 인한 결과물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가장 최근에 출간된 3권 역시 1권에 못지않은 판매량을 기록했으니까.

아니, 판매량을 떠나 나 역시 부모로서 체감한 사실이다.

‘진짜 많이 늘었지.’

문득 떠오르는 처음으로 연두를 만났던 때.

평범한 환경이 아니었던 연두는 스스로의 이름 석 자도 쓰지 못했다.

자음 모음에 대한 개념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고.

‘단어 단위로 어찌저찌 말하는 게 전부였지.’

환경의 변화도 유효하게 작용했겠지만, 그런 연두의 한글실력을 단시간에 향상시켜 준 건 학습지였다.

과외 선생님은 무려 학습지의 제작자인 지혜씨였고.

이제는 또래에 비해 뒤쳐져 있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아직 발음은 조금 부정확한 부분이 있지만.’

글씨는 수준급으로 쓰는 연두였으니까.

4권까지 배우고 나면 언어 능력은 더 상승하겠지.

이거 갑자기 걱정이네. 너무 어린 나이부터 공부를 시키는 게 아닐지.

‘아냐, 괜찮아.’

강압적이 아니라는 게 중요했다.

내가 보는 연두는 한글을 공부하는 게 아니라 즐기고 있었다.

그렇다면 괜히 말릴 이유는 없었다.

‘빨리 완성하자, 4권.’

최대한 빨리 작화를 마무리하는 게 좋을 듯했다.

똑똑한 우리 연두의 학습 속도를 감당하려면.

***

한국교대 내부의 동아리실.

교육봉사 동아리원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다들 시끌벅적하게 수다를 떠는 와중 울리는 알람.

띵.

다름아닌 서지혜의 핸드폰에서 울린 알람이었다.

그녀는 곧바로 핸드폰을 열어 확인했다.

자연스레 입가에 번지는 미소.

“.. 왔다!”

난데없는 외침에 동아리원들이 서지혜를 바라봤다.

한주영이 입을 열었다.

“뭐가?”

“주원오빠!”

커다래지는 동아리원들의 눈.

또 누군가 물었다.

“.. 작화가님?”

동아리에서는 작화가로 통하고 있는 이주원이었다.

서지혜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응.”

“갑자기 여길 오셨다구? 지혜 네가 불렀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다소 오해를 빚은 모양이다.

진짜 온 거라면 좋긴 했겠지만 안타깝게도 아니었다.

갑자기 학교로 오는 것도 그림이 이상하고.

[쑥쑥 한글완성 4단계!(작화 마침)]

온 건 다름아닌 작화 완성본이었다.

그 사실을 말해주자 다시 떠들썩해진 동아리실.

“뭐야. 드디어 우리 작화가님 얼굴 좀 보나 했더니..”

“와, 근데 점점 빨라지시네.”

“진짜.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빨리 보자, 지혜야! 나 완전 기대돼...”

앞선 세 권의 작화를 본 동아리원들이었다.

그런 탓에 작화에 대한 믿음은 99%도 아닌 100%였다.

좋을지 별로일지가 아닌 얼마나 좋을지가 기대감일 정도로.

“그래! 잠깐만……”

서지혜가 노트북을 열었다.

달칵.

지체없이 방금 이주원의 이름으로 온 학습지 파일을 눌렀다.

그러자 화면에 떠오르는 학습지의 첫 페이지.

“와...”

“대박……”

동시에 감탄을 터트리는 동아리원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러지..?’

서지혜와 동아리원들이 맡는 건 학습지의 콘텐츠뿐이었다.

한글과 숫자 등으로 이루어진 활자.

그런 칙칙한 페이지들이 완전히 탈바꿈돼서 돌아오는 거다.

“입 아프긴 한데, 우리 진짜 작화가 잘 만났다.”

“그냥 일반적으로 계약해서 했으면 어떻게 이 퀄리티가 나와..”

“신의 한 수였지. 지혜가 초록님한테 연락한 게.”

“솔직히 우리가 열심히 한 것도 작화 영향이 커. 이렇게 그려 주시는데 어떻게 열심히 안 하냐고.”

페이지를 넘길수록 점점 더 감탄이 떠오르는 동아리원들의 입.

서지혜도 다르지 않았다.

‘진짜 예쁘다..’

매번 보는데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었다.

보기 편한 배경색과 페이지마다 적절한 위치에 등장하는 센스 넘치는 그림.

특히나 제작자로서 와 닿는 부분이 존재했다.

‘느껴져.’

제작자의 의도를 완벽히 이해한 게 느껴진다는 것.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콘텐츠와 맞물리는 작화가 나올 수 없었다.

단순 퀄리티뿐 아니라 조화까지 완벽했다.

“지혜야!”

“아, 응!”

이소윤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전화해 보자!”

“무슨 전화?”

“작화가님한테. 감사 인사도 드릴 겸.”

“지금?”

“응, 지금!”

당황한 표정의 서지혜.

그럴 만도 했다. 지금껏 한 번도 친구들 앞에서 통화를 나눈 적은 없으니.

이어지는 친구들의 재촉.

“아, 알겠어! 잠깐만……”

생각해 보니 딱히 피해를 주는 건 아니었다.

친구들도 전부 동업자 관계인 데다가 감사인사라는 명분도 있으니까.

조심스레 발신 버튼을 눌렀다.

툭.

뚜. 뚜. 뚜.

반복되는 통화 대기음.

왜인지 오늘따라 유독 떨리는 느낌이다.

“안 받나……”

계속해서 울리는 대기음에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는 찰나.

“여보세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지혜가 다급히 다시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 스피커폰! 스피커폰!”

친구들의 독촉에 스피커폰을 눌렀다.

그 사이 다시 이주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아, 오빠! 저 지혜인데요.”

“네, 지혜씨.”

서지혜가 어색하게 말을 꺼냈다.

“그게.. 방금 봤거든요. 보내 주신 학습지 파일.”

“아, 그랬구나.”

“네.”

“어땠어요? 혹시 수정할 부분이라거나 개선할 부분이 있으면 편하게 얘기해요.”

“아니에요! 사실 아직 유심히 본 건 아닌데, 얼핏 봐도 엄청 좋더라구요.”

“하하, 다행이네요.”

어쩌다 보니 끊긴 대화.

침묵을 깬 건 이주원이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네?”

“4권으로 끝이잖아요. 작화하면서 느껴지더라고요. 점점 퀄리티가 좋아지는 게.”

“오, 오빠 작화 덕분이죠. 작화가 좋으니까 열정도 생기고.. 아무튼……”

친구들이 옆에 있어서일까.

평소와 달리 말이 두서있게 나오지 않았다.

통화 상대는 평소 그대로인데.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작화는 동떨어진 게 아니니까. 콘텐츠가 훌륭해서 작화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거든요. 동아리 친구분들한테도 고생 많았다고 전해주세요. 아, 고맙다는 말도요.”

일부러 조용히 있는데 언급된 동아리원들.

감동받은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인성 뭐냐고..”

“리얼 작화갓이다.”

“연두가 괜히 그렇게 천사겠냐.”

그걸 들은 서지혜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꼭 연두튜브의 댓글을 음성으로 듣는 거 같았으니까.

그러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오빠. 저희야말로 감사하죠. 우영이한테도 엄청 고맙구요.”

“아, 참. 우영이를 깜빡하고 있었네요. 진짜 큰 도움이 됐는데.”

“흐흐,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뒤이어 동아리원들은 못 참고 통화에 끼어들었다.

“팬입니다!”

“형, 진짜 천재인 거 같아요!!”

“감사해요오.. 저희 작화가로 참여해 주셔서..”

“...”

한순간에 말수가 적어진 이주원.

그걸 눈치챈 서지혜가 친구들을 제지했다.

“그만해, 바보들아. 오빠 당황하잖아.”

핸드폰으로 들려오는 목소리.

“.. 하하, 괜찮아요. 그동안 인사도 제대로 못 나눴는데 잘 됐네.”

이후 꽤 긴 시간 이어지는 통화.

그런 와중 나온 이야기.

“맞다! 우리 뒤풀이해야지!”

“뒤풀이?”

“응. 1권 때도 하기로 하고 못 했잖아. 이번에는 진짜 끝인데 안 하고 넘어갈 거야? 그럴 꼬얌? 힝...”

“알겠으니까 귀척하지 마라. 바로 서초동 메이웨더 빙의한다.”

“어떠세요, 초록님?”

한순간에 뒤풀이 얘기로 전환된 주제.

“우영이란 친구도 부르구요. 가능하시다면.. 연두도 함께하는 초건전 뒤풀이. 어떤가요?”

“크크, 초건전 뒤풀이. 좋다, 좋다.”

“교수님도 데려가!!”

“아, 그건 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친구들을 바라보는 서지혜.

이 정도면 말리는 것도 불가능했다.

‘하긴.’

확실히 뒤풀이는 전에도 나온 이야기였다. 흐지부지되어버리긴 했지만.

할 거라면 지금이 타이밍인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중요한 건 주원오빠의 의사인데.

“.. 좋네요.”

“네?”

“좋은 거 같아요. 초건전 뒤풀이.”

“진심으로요?”

“네. 전에 우영이한테 물어봤을 때도 좋다고 했거든요. 연두도 마찬가지고요.”

흔쾌한 반응에 축제 분위기가 된 동아리실.

서지혜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이렇게 예정됐다. 학습지 제작 멤버들이 전원 참석하는 초건전 뒤풀이가.

***

‘엄청나군.’

놀란 이유는 다름아닌 원스타그램 때문이었다.

새로운 게시물을 올린 것도 아닌데 댓글 수가 갑자기 치솟았으니까.

이유는 간단했다.

팔로우.

누군가 연두의 원스타 채널을 팔로우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구독한 채널이 비공개되는 유투브와 다른 점이었다.

원스타그램은 팔로우 목록이 투명하게 공개되니까.

그 결과가 눈앞에 떠올라 있었다.

-뭐냐? 내가 잘못 본 거냐?

┖찐 계정임???

┖ㅇㅇ 찐임 ㅋㅋㅋ 눌러보니까 팔로워 천만 넘음.

┖와 ㅋㅋ 미쳤네. 팔로우 수는 20명도 안 되는데.

┖그 20명도 같은 소속사 선배 아니면 세계 최정상 팝스타임. ex) 유리아나 그란데, 밀리 아일리시...

┖오늘 하나 추가됐자너 ㅋㅋ ex) yeondoo0306

‘yeondoo0306’

연두의 이름과 생일을 나열해서 만든 계정명.

그리고 우리 계정을 팔로우한 건 바로 걸그룹 ‘워너비’의 공식 계정이었다.

단순히 팔로우했을 뿐인데, 그 여파는 엄청났다.

‘요즘 가장 핫한 걸그룹이니 그럴 만도 한가.’

아직 나와 연두, 그리고 워너비의 게스트 출연 소식이 공식화되지 않은 상태.

그런 만큼 팔로우 사실을 둘러싸고 수많은 추측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떤 인연인 거지?

┖그니까 ㅋㅋ 초록님이 워너비 팬인가?

┖아닐 거 같은데. 초록님 아이돌 별로 안 좋아할 듯 ㅋㅋㅋ

┖내 최애 아이돌 워너비. 내 최애 유투버 연두랑 초록님. 이 조합 뭔데.... 위시는 웁니다 ㅠㅠ

┖눈 부신다... 멀어버릴 거 같아!!!

놀라게 만드는 사실과 근접한 추측도 있었다.

-뭔가 방송에서 만났을 듯.

┖ㅇㅇ 만나지도 않고 팔로우하는 건 이상하잖아.

┖맞아. 공식 계정이니까 팔로우도 회사 허락 있어야 할 텐데.

┖그럼 곧 어디서든간에 오피셜 뜨는 건가.. ㄷㄱㄷㄱㄷㄱㄷㄱ...

┖워너비 성공했네 ㅋㅋㅋ 연두랑 초록님도 만나고.

┖ㅋㅋㅋㅋㅋㅋㅋㅋ 위시지만 인졍....

벌써부터 댓글창이 들끓고 있었다.

인기가 엄청난 걸그룹인지라 화력 또한 대단했다.

‘얼마나 늘어나는 거야.’

실시간으로 계정의 구독자가 치솟고 있었다.

댓글창을 볼 때 대부분 워너비의 팬덤 ‘위시’일 게 틀림없어 보였다.

내 손이 자연스레 움직였다. 맞팔(같이 팔로우) 버튼을 향해.

‘안 하면 혼날 거 같아.’

실수로라도 안 했다가는 위시 분들한테 혼날 거 같았다.

그와 별개로 맞팔은 할 생각이었지만.

워너비와 마찬가지로 나도 팔로우한 계정은 얼마 되지 않았다.

‘멤버 역시 상당하지.’

팬미팅에서 만난 근육맨 인덕이, 뷰티 꿈나무 아름이, 미래에 멋진 가수가 될 주연이까지.

잠재력이 엄청난 친구들이 있는 팔로우 란이었다.

뭐, 특별히 워너비도 넣어주기로 할까.

달칵.

마음속으로만 할 수 있는 우스운 거만을 떨며 나는 팔로우 버튼을 눌렀다.

이렇게 워너비가 팔로우 목록에 추가됐다.

‘그나저나.. 벌써 이 정도라면.’

단순히 추측만으로 이 정도로 기대감을 갖고 있다면.

내 상상을 훨씬 초월할 거 같았다.

나와 연두, 그리고 워너비와 함께하는 ‘최고의 한 끼’를 향한 사람들의 기대는.

“연두야.”

“네, 아빠!”

뭐, 그건 기다리면 되는 문제였다.

지금은 지금대로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었으니까.

그게 뭐냐고? 이제 연두가 알려줄 거다.

“우리가 지금 어디 가는 거지?”

한껏 설레는 표정으로 연두가 외쳤다.

“아빠 상 받으러!”

“.. 어, 어떤 상이었더라? 갑자기 기억이 안 나네……”

어설픈 연기에도 연두는 힘차게 대답했다.

“일등! 일등상 받으러 가여..!”

“하하, 맞다. 그랬지?”

“네에.”

그래. 오늘은 시상식 날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청년작가 미술공모전’의 시상식 날.

나는 씩 웃으며 연두를 향해 말했다.

“그럼 출발할까?”

“네, 아빠..!”

일등상을 받으러 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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