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화. 캐릭터 샘플
[소녀와 환상의 숲]
동화 속 소녀는 신기할 정도로 닮아있었다.
내 옆에 앉아있는 연두와.
‘물론.’
머리부터 발끝까지 연두를 빼다 박았다는 뜻은 아니다.
애초에 캐릭터의 기본 설정부터 달랐다.
같은 소녀이긴 하나 나이부터 차이가 있었으니까.
‘스토리를 담은 원고인 만큼.’
그림이 없으니 외관을 비교하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연두에게는 없으나 동화 속 소녀는 가지고 있는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 하나 존재했다.
장애. 동화 속 소녀는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내가 연두와 닮았다고 생각한 부분은 이런 부분이 아니었다.
그럼 대체 뭐가 닮았다고 생각하는 거냐고?
뭐라 답해야 할까.
‘.. 겹쳐 보였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수록 몰입하게 된 동화의 스토리.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내 눈에는 겹쳐 보였다.
동화 속의 소녀와 연두의 모습이.
‘더 정확히 표현하면.’
지금보다는 처음 연두를 봤을 때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고 해야겠다.
상처를 받은 아이의 트라우마.
동화 속의 소녀는 그 트라우마를 가진 캐릭터였으니까.
청각장애를 가진 소녀의 입장에서 받을 수밖에 없는 상처.
꼭 누군가의 악의에 의한 게 아니더라도 그랬다.
청각장애를 가진 이상 어떤 방식으로든 일상 속에서 상처를 받게 된다.
수많은 오해에 직면할 수밖에 없으니까.
소녀는 그로 인한 상처에 아파하는 캐릭터였다.
‘동화 내용은 간단해.’
중심 내용은 소녀가 상처를 치유하는 걸 담고 있었다.
제목에도 언급되어 있든 현실세계와는 동떨어진 ‘환상의 숲’이라는 공간 속에서.
처음에는 한없이 어둡고 경계심이 강했던 소녀가, 숲 속 생명체를 하나둘 만나며 치유받고 밝아지는 과정.
‘.. 그래.’
내가 연두와 닮았다고 생각한 건 바로 그 부분이었다.
처음 원고를 읽을 때는 솔직히 말해 별 생각이 없었다.
기대감이 있긴 했으나 딱 그 정도였다.
‘일반적인 동화일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읽어내려갈수록 생각이 바뀌었다.
‘소녀와 환상의 숲’은 마냥 가벼운 내용이 아닐뿐더러 뚜렷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었다.
놀라운 건 그 와중에도 동화적 요소를 충족한다는 점이었다.
동화책의 주 수요층은 결국 아이들이었다.
아무리 교훈적이고 유익한 내용이라도 재미가 없으면 아무 소용없다는 뜻.
만약 그랬다면 생각의 여지가 없었을 테지만.
‘.. 재밌어.’
그것도 너무 재미있었다.
오해할까 봐 덧붙이자면 어른의 시선에서 봤을 때 재밌는 게 아니다.
최근 연두에게 많은 동화책을 읽어주며 깨달았다.
‘어떤 동화가 아이들에게 좋은 동화인지.’
여러 요소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캐릭터였다.
동화의 재미를 살리는 건 이야기를 끌어가는 등장인물이니까.
이 동화는 그 요소를 완벽히 충족하고 있었다.
환상의 숲 속에서 차례차례 등장하는 개성 넘치고 매력 있는 캐릭터들을 통해.
‘그 과정에서.’
소녀의 아픔이 서서히 치유되는 모습을 보는 건 또 다른 재미이자 힐링 포인트였다.
반쯤 원고를 읽은 지금 시점에서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더 보고 싶다. 어서 다음 내용을 보고 싶었다.
스륵. 스르륵.
금세 다시 몰입한 나는 커서를 내렸다.
이야기는 갈수록 재미있어졌다.
용기를 얻고 앞으로 나아가는 소녀와, 고비를 겪을 때마다 소녀를 도와주는 숲 속 친구들.
조심스러우면서도 따뜻한 소녀의 모습은 역시 연두를 연상케 했다.
‘어떻게 그릴까.’
나라면 이 장면들을 어떻게 그리고 표현할까.
놀랍게도 그 물음이 머릿속을 스치는 순간 손가락이 신기할 정도로 간질거렸다.
틀림없었다. 그 정도로 나는 이 원고에 강한 매력을 느낀 거다.
순식간에 원고의 마지막에 도달한 나.
전부 읽었을 때는 끝내 입 밖으로 감탄사를 터트렸다.
‘.. 엔딩마저 완벽할 줄이야.’
‘환상의 숲’이 현실과 동떨어진 공간인 만큼, 어떻게 엔딩을 낼지 무척 궁금했는데.
깔끔하면서도 여운이 강하게 남는 가장 이상적인 엔딩이었다.
다른 의미로 생각의 여지가 없어졌다.
‘그려야겠어.’
반드시 그려야겠다. 불과 조금 전과 달리 욕심이 생겼다.
이 동화의 작화가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간다면 참을 수 없을 거 같았다.
원고를 읽은 것만으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내 그림을 통해 비로소 완성될 ‘소녀와 환상의 숲’의 모습이.
그때였다.
“아빠..”
옆에서 들려오는 가느다란 목소리.
우습지만 아직 원고에서 헤어나오지 못해서인지 순간 소녀의 목소리가 들린 줄 알았다.
뭐, 계속 연두를 겹쳐봤으니 아예 틀린 말은 아닌가.
고개를 돌리니 연두가 살짝 토라진 듯 말했다.
“너무 빨라여, 아빠...”
“응?”
“연두도 보고 시픈데……”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옆에 연두를 앉혀둔 채로 혼자 말없이 원고만 한참을 봤다는 걸.
급 미안해진 나는 물었다.
“왜 아무 말도 안 했어, 연두야?”
동화 원고라고는 하지만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동안 연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운했을 텐데도.
“…… 보여서.”
“응?”
“아빠.. 너무 재미써 보여서……”
“하하...”
이거 너무 정곡을 찔렸는데.
한껏 몰입한 내 모습에 차마 말을 걸 수 없었던 모양이다.
조심스레 연두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이제 연두도 일그면 안 대여, 아빠..?”
미안한 것과 별개로 이 물음에는 단호하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안 돼.”
“...”
이런. 세상 서러운 표정이 떠오른다.
가만히 뒀다가는 곧 연두티콘 속 ‘우는 연두’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어서 부연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있었다.
“아직 미완성이니까!”
“미안성..?”
“응. 아직 이 이야기는 완성되지 않았거든.”
“.. 그럼요?”
언제 완성되는 건지 묻는 거라 이해하는 게 좋겠지.
나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아빠가 완성시킬 거야.”
눈이 동그래진 연두가 묻는다.
“.. 아빠가요?”
“응, 아빠가. 아빠 그림으로.”
잊었을까 봐 말하자면 이 원고는 연두가 선택한 동화였다.
쪽지 제목만 보고 망설임 없이 고른.
공교롭게도 그 동화 속의 주인공은 연두와 무척 닮아있었다.
‘알 리가 없는데.’
작가가 과거 연두의 모습을 알 리가 없는데 말이다.
그래서일까. 묘한 기분과 함께 드는 생각.
반드시 이 동화를 내 손으로 완성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완성된 그 동화를 연두에게 읽어주고 싶었다.
따라서 아직은 일렀다.
다만, 이렇게 나만 읽고 넘어가기에는 미안한 것도 사실이니.
“아빠 그림...”
설레는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연두를 향해 말했다.
“잠깐 아빠랑 갈 데가 있어, 연두야.”
“.. 어디요?”
“연두가 엄청 좋아하는 곳.”
“으응..?”
연락을 취하기 전에 보고 싶은 게 있었다.
방금 원고를 읽고 개인적으로 관심이 생겼거든.
동화작가 ‘조은서’에 관해.
***
“헤헤..”
잔뜩 신난 표정의 연두.
그럴 만도 했다.
엄청 좋아하는 곳에서 엄청 좋아하는 걸 몇 개나 가지고 돌아가고 있으니까.
‘서점.’
바로 서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봉투 속에 든 건 다름아닌 몇 권의 동화책.
평소와 달리 오늘 산 책은 연두가 아니라 내가 골랐다.
조은서.
‘소녀와 환상의 숲’의 작가인 조은서가 낸 동화책을 구매했다.
알아본 결과 그녀가 동화책을 내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미 몇 권을 출간한 경험이 있는 작가였지.
‘보고 싶었어.’
자연히 나는 보고 싶어졌다.
이런 원고를 쓰는 그녀가 낸 다른 동화책은 어떨지.
딱히 제안에 응할지 말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이미 마음은 정한 상태니까.
‘단순한 호기심.’
그에 더해 참고하려는 의도도 존재했다.
원고로는 100% 드러나지 않는 작가의 스토리 전개 방식과 느낌을 파악할 수도 있으니까.
혹시나 하고 걱정했지만 동화책은 어렵지 않게 구매할 수 있었다.
“조은서 작가님 동화책을 구매하고 싶은데요.”
그렇게 말하자 직원이 바로 찾아줬지.
따라가 보니 다소 구석탱이에 위치해 있는 걸 보긴 했지만.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덜컥.
집에 도착하자마자 테이블 위에 책이 든 봉투를 내려놨다.
그리고선 책을 하나씩 꺼냈다.
“여기서 뭐 읽고 싶어, 연두야?”
행복한 고민에 빠진 연두의 모습.
하나하나 제목을 보다가 생긋 웃으며 대답한다.
“.. 이거요!”
연두가 가리킨 동화책의 제목은 ‘꿈나라를 지켜라!’였다.
피식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피아니스투를 꿈꾸는 연두에게 잘 어울리는 책이라는 생각에.
“그래. 읽어보자. 제목. 꿈나라를 지켜라!”
이제 동화를 읽는 건 완전히 마스터한 나였다.
듣기 편한 목소리로 적절한 강세를 섞어서 생동감 넘치게.
집중해서 읽다 보면 쿡쿡 웃음짓거나 잔뜩 몰입한 연두를 보게 될 때가 있다.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지.’
사실 그 모습을 보려고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연두를 무릎에 앉히고 본격적으로 동화를 읽기 시작했다.
“으아악! 나를 구해줘, 다로야!!”
‘소녀와 환상의 숲’과 달리 이 동화의 주인공은 ‘다로’라는 귀여운 소년이었다.
특히 돋보이는 포인트는 ‘꿈’이 의인화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어둠의 악당들에게 잡혀가며 도움을 요청하는 꿈.
“아, 안 대...”
역시 연두는 잔뜩 걱정하는 표정을 지으며 어쩔 줄 몰라한다.
문득 그 모습과 겹쳐보여 웃음이 번졌다.
호랑이와 곶감을 읽을 때 할머니와 손주를 걱정하던 모습과.
“무, 무서워..”
처음에는 두려워하다가 다로는 결심한다.
“이대로 악당들에게 꿈을 잃어버릴 수는 없어! 구하러 가야겠어!!”
의지를 불태우는 다로의 모습에 연두는 주먹을 불끈 쥔다.
응원하는 마음이 잔뜩 엿보이는 앙증맞은 주먹.
그리고선 말한다.
“힘 내, 다로야..!”
“푸흣.”
결국 터져버린 웃음.
허나 나는 금방 웃음을 지울 수밖에 없었다.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명확해지는 문제점.
‘.. 뭐지?’
착각이 아니었다.
분명히 동화 내용은 짜임새 있고 무척 재밌는데.
작화가 그 내용을 전혀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서 이 표정을 지을 게 아니잖아.’
퀄리티도 좋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보다 더 문제인 건 사소한 디테일이었다.
동화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린 그림같다고 해야 할까.
왜지? 대체 왜 이걸 그대로 낸 거지?
‘마음에 들었을 리는 없는데.’
원고의 세심함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사소한 디테일 하나도 빠지지 않고 원고 속에 들어가 있었으니까.
스스로의 이야기에 얼마나 애착을 갖고 있는지가 느껴지는 원고였지.
‘그에 비해.’
작화는 그런 디테일을 전부 놓치고 있었다.
남의 그림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얘기할 수 있었다.
나라면 절대 이렇게 그리지 않았을 거라고.
‘아쉽네.’
읽으면서 내가 다 아쉬웠다.
작화만 뒷받침됐다면 훨씬 더 좋은 동화가 될 수 있었을 텐데.
동시에 생각했다.
‘다를 거야.’
‘소녀와 환상의 숲’은 반드시 다를 터였다.
이미 좋은 원고인 건 확인한 상태.
다른 건 몰라도 절대로 작화 때문에 퀄리티가 떨어지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 제대로 해 보자.’
단순히 나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작화를 넘어 마음속에 생긴 목표 하나.
‘소녀와 환상의 숲’을 연두의 최애 동화책으로 만들고 싶었다.
사락.
그렇게 다짐하며 나는 동화책을 읽어줬다.
***
스윽.
메일을 보내기 전 의자에 앉은 나는 펜을 꺼내들었다.
쪽지 답장은 잠깐 미뤄뒀다.
저녁시간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다른 이유가 존재했다.
‘상대측에서는 원고를 보내왔지만.’
반대로 아직 나는 보낸 게 없었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지.
마음을 정한 이상 의사 전달만 툭 하고 싶지는 않았다.
성의 표시와 더불어 함께 일하고 싶은 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전달하고 싶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생각한 게 캐릭터 그림이었다.
‘주인공인 소녀와, 그 밖의 숲 속 캐릭터들.’
원고를 보는 순간 머릿속에 그려진 이미지가 있었다.
그 이미지를 그림으로 구현할 생각이었다.
답장은 내일 보내줘도 되겠지.
‘충분해.’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했다.
완성해야 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캐릭터의 모습은 이미 머릿속에 구체화되어 있는 상태니까.
그 모습을 구현해내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밤은 길었다. 새벽은 더더욱 긴 시간이고.
핑그르르.
손 위에서 경쾌하게 펜을 회전시켰다.
휴식기를 가진 터라 오랜만이긴 하지만 어색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체할 이유는 없다.
사각. 사각.
그렇게 나만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
다음날 점심시간.
편집자 서하늘과 조은서가 마주 앉아 식사하고 있었다.
메뉴는 햄버거.
우적. 우적.
가장 좋아하는 메뉴임에도 오늘따라 맛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결국 콜라와 함께 간신히 목구멍 안으로 넘겼다.
그런 조은서를 보며 편집자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저기, 작가님.”
“네, 편집자님.”
“너무 초조해하지 마세요. 곧 답장 주시겠죠. 이제껏 항상 답장은 왔으니까.”
생략된 주어는 물론 초록님이었다.
이틀째 기다리고 있으나 답장이 오지 않는 상황.
아니, 사실 답장은 왔다.
‘꼭 작가님과 함께 협업하고 싶습니다.’
그게 꿈속에서 받은 답장이었다는 게 문제지만.
얼마나 간절히 바랐으면 꿈까지 꾸냐고, 정말.
스스로의 처지가 처량해지는 기분에 조은서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쵸..”
너무 깊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겠으나.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사고는 점점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렀다.
원고가 마음에 들었다면 금방 답이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휴우..”
편집자 입장에서는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좋은 답장이 올 거라는 얘기가 아닌, 답장은 올 거란 위로밖에 못하는 상황도 그렇고.
어쩔 수 없었다.
둘 다 꿈에도 몰랐으니까.
상대가 원고가 너무 마음에 들어 새벽 내내 그림에 몰두했을 거라고는.
띠링.
그때였다.
편집자의 노트북에서 울리는 알람 소리.
알람이 울리는 건 흔한 일이기에 서하늘은 아무렇지 않게 화면을 바라봤다.
“.. 어?”
동시에 내뱉는 의문사.
그 소리에 햄버거를 베어 문 조은서가 반응했다.
“왜 그러세요?”
“.. 왔어요.”
“네?”
“답장 왔어요. 초록님한테.”
“...!”
순식간에 상기되는 표정.
허나 둘 다 기뻐할 수는 없었다.
어떤 내용일지는 아직 모르는 상태였으니까.
꼬옥.
절로 두 손을 모은 채로 조은서는 편집자의 옆자리로 이동했다.
이윽고 눈앞에 떠오르는 쪽지.
[안녕하세요, 답장이 늦어 죄송합니다.]
제목만으로는 전혀 상대의 의사를 파악할 수 없었다.
두근. 두근.
숨 죽인 채로 편집자는 쪽지를 클릭했다.
옆에서 조은서는 더 떨리는 표정으로 화면을 응시했고.
바로 내용이 떠올랐다.
“보내주신 원고 잘 봤습니다.”
쪽지 내용은 짧았다.
그러나 중요한 건 길이가 아니다.
이어지는 문장에 조은서는 입을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원고가 무척 마음에 들어 꼭 함께 작업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꿈에 그리던 문장이 눈앞에 떠올라 있었으니까.
이번에는 꿈이 아니었다.
눈을 비비고 봐도 문장은 한 글자도 달라지지 않았다.
‘.. 그냥도 아니야.’
그냥도 아니고 무척 마음에 들었다니!
과장이 아니라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간신히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쪽지를 마저 읽으려는데.
“작가님. 이거 보세요.”
편집자가 쪽지 상단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전혀 생각지 못한 제목이 떠올라 있었다.
[소녀와 환상의 숲 캐릭터 샘플]
생각할 틈도 없이 편집자의 손이 움직였다.
달칵.
그렇게 쪽지를 다 읽기도 전에 보게 된 첨부파일.
파일이 열리는 순간.
조은서는 다시 입을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흐어어..”
정확히 머릿속에 그리던 모습 그대로의.
‘소녀와 환상의 숲’의 캐릭터들이 그녀에게 인사하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