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3화. 가족
맞닿은 두 입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나는 놓치지 않고 카메라 속에 그 모습을 담았다.
찰칵.
한편 신랑 신부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연시레.
특히 연두는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한다.
키스라는 게 뭔지 알게 된 걸까.
‘큰일이네.’
여섯 살. 아직 뽀뽀와 키스의 차이에 대해 알기에는 많이 이른 나이였다.
가서 눈이라도 가려줘야 하나.
허나 그러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장면이다.
‘예외로 하자.’
결국 이번만큼은 예외로 두기로 했다.
옆에 있는 친구녀석들도 이야기를 그칠 줄을 몰랐다.
“아니, 수찬쌤 박력 뭔데!”
“근데 진짜 그림 예쁘긴 하다. 주원이 아이디어가 진짜 신의 한 수였네.”
“축가가 완전 하이라이트인데?”
“이게 단비음악대의 힘인가..”
“진짜 완벽했다, 그냥.”
또 이러네, 이 녀석들.
한 번씩 이렇게 녀석들의 대화에서 연두튜브 댓글을 보는 기분을 느낄 때가 있었다.
여자애들 테이블의 반응도 재미있었다.
“진짜 설렌다..”
“그니까. 수찬쌤을 보면서 설렌다는 기분을 느끼는 날이 올 줄이야.. 나도 이런 결혼식 하고 싶다.”
“인졍~ 서아 너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던 최서아가 깜짝 놀라 답한다.
“.. 응? 나?”
“그래, 너. 보니까 막 결혼하고 싶고 그러지 않아?”
“나는……”
왜인지 힐끗 이쪽을 보더니 혼자 휙 돌아보고선 대답한다.
“아직 잘 모르겠어. 일단 연애부터 해야지.”
그 말에 조나예가 쿡쿡 웃으며 대답한다.
“할 생각도 없으면서.”
“.. 어?”
“소개해준다고 해도 받지도 않잖아. 너 좋다는 애도 넘쳐나는데…… 읍.”
최서아가 다급히 조나예의 입을 틀어막는다.
“알아서 할 거예요, 알아서.”
“우읍. 알아서 못 하니까 이러지.”
“죽는다, 진짜..”
저런 면도 있구나.
조나예는 고개를 끄덕여 죽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툭.
그제야 최서아는 손을 내려놨다.
입이 자유로워진 조나예는 난데없이 내 이름을 불렀다.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이주원!”
“응?”
“혹시 우리도 결혼하게 되면.. 가능한 부분인가? 후후.”
“뭐가?”
“단비음악대 축가! 동창 찬스로.”
피식 웃음이 번졌다.
“글쎄.”
“뭐야. 스승님이랑 동창은 다른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나 역시 장난스레 말을 이었다.
“내가 축가를 부르는 게 아니니까.”
“아, 그치.”
“그래도 만약에 너희 중에 한 명이 결혼한다면 내가 최대한 힘 내 볼게. 축가.”
“진짜지? 약속한 거다?”
“그래.”
당분간은 그럴 일 없을 거 같은 예감이 들긴 하지만.
굳이 덧붙이지는 않았다.
***
얼마 뒤에 맞닿은 신랑 신부의 입술이 떨어졌다.
다시 한번 쏟아지는 박수와 환호.
침묵하던 사회자가 입을 뗐다.
“많은 결혼식 사회를 봤지만 제가 본 신랑 신부의 입맞춤 중에 가장 아름다운 입맞춤이었던 거 같네요. 다들 동의하시나요?”
“네!”
“네에!”
하객들의 우렁찬 대답.
무대 위의 연시레도 질세라 커다란 목소리로 대답했다.
막상 신랑 신부는 무척 쑥스러운 표정이다.
‘그럴 만도 하지.’
도저히 안 할 수가 없는 애틋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거라고는 하지만, 많은 하객들 앞에서 한 입맞춤이니 뒤늦게 쑥스러움이 찾아올 만도 했다.
더군다나 제자들 앞에서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것도 사실이고.
덕분에 우리는 세상 즐겁긴 했지만.
‘뭐, 그래도.’
그걸 감안하더라도 신랑신부에게 둘도 없는 추억이 될 거라는 건 분명해보였다.
아마 다시 조금 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지 않을까.
뒤이어 사회자는 무대 위 아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렇게 예쁜 축가로 신랑신부에게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준, 우리 단비음악대에게도 박수와 환호 부탁드립니다.”
“우와아!!”
“연두! 연두!”
연두뿐 아니라 시은이와 레나를 연호하는 하객들도 많았다.
마치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함성소리.
나는 재빨리 무대 위로 올라가 아이들을 데리고 내려왔다.
“아빠..”
자리에 앉아 나를 부르는 연두.
옆에서는 시은이와 레나도 빤히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이어지는 연두의 말.
“단비으막대.. 잘 해써요...?”
평소와 달리 연두가 주어가 아니다.
이것만 봐도 얼마나 팀 의식이 강한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와 별개로 질문에 대한 답은 생각할 것도 없다.
나는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최고의 축가였어. 아빠는 너무 자랑스러워. 연두가, 그리고 시은이랑 레나도. 진심으로.”
세 아이의 입가에 번지는 미소.
어떤 찬사를 덧붙여도 부족할 만한 무대를 보여준 연시레였기에 나로서는 아쉬울 따름이었다.
더 뭐라 표현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아서였다.
말로 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해야 하나.
‘다행히.’
옆에 있는 녀석들이 거들어줬다.
온갖 주접을 뱉는데 일일이 나열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런 삼촌들의 모습에 쿡쿡 웃음짓는 연시레.
“와..”
“진짜 와 그 자체다.”
“다른 애들은 몰라도 박준수까지 저럴 줄이야..”
“연두는 쟤까지 저렇게 만드는구나. 감자삼촌은 대체 뭔데, 흐흣.”
여자애들은 삼촌팬이 된 동창의 모습이 적응이 안 되는 모양이다.
특히나 준수.
학창시절 워낙 과묵한 이미지였기에 적응이 안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딱 이름 그대로의 이미지라 생각하면 편하다.
성격 준수. 성적 준수. 외모 준수.
‘어디까지나 대외적인 이미지긴 하지만.’
우리끼리 있을 때는 딱 반대라고 보면 되니 딱히 내 눈에는 딱히 특별한 장면이 아니다.
저렇게 주접을 떠는 모습은 특별하다면 특별하긴 하지만.
연두를 처음 본 순간부터 이 녀석은 이랬으니까.
“됐어. 충분해. 그만해.”
결국 내가 나서야 할 정도였다.
“네! 그럼 즐거웠던 결혼식은 아쉽지만 여기서……”
일반적으로 축가가 마무리 단계에 위치하는 만큼, 사회자의 마무리 멘트가 귀에 들어왔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처럼, 딱 최고의 분위기에 끝이 나는 거 같았다.
그 사이 나는 아이들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오늘 본 결혼식은 어땠어, 얘들아?”
“진짜진짜 예뻐써요..”
가장 먼저 연두가 대답했다.
지나간 장면들이 떠오르는 걸까.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연두는 말을 이었다.
“아빠 말이 마자써요.”
“응? 어떤 말?”
“결혼식은.. 세상에서 제일로 아름다은 날이라는 거!”
“하하, 그래? 그걸 느꼈어?”
“네!”
감상을 듣고 나니 자연히 뒤따라오는 걱정.
나는 넌지시 입을 열었다.
“.. 그럼 연두야.”
“네에.”
“혹시 수찬쌤의 결혼식을 보고 말이야. 연두도 하고 싶어졌어?”
“머를요..?”
“결혼.”
커다래지는 연두의 눈망울.
옆에 있는 삼촌들과 언니들도 귀를 쫑긋 기울인다.
이윽고 단호한 대답이 들려왔다.
“아니요! 하고 싶지 아나요!”
솔직히 걱정했는데.
워낙 아름다운 결혼식이었던 터라 연두도 결혼을 꿈꾸게 되지는 않았을까 하고.
그랬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다행인 대답이긴 하지만.
그야, 아직은 너무 이르지 않은가. 연두의 결혼을 생각하는 건.
가능한 한 앞으로도 생각하고 싶지 않고.
연두가 뭐라 이유를 설명하기도 전에 극성인 삼촌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입을 열었다.
“맞지. 그게 맞지.”
“우리 연두를 누구한테 보내!”
“연두야. 감자삼촌이 전에 한 말 기억하지?”
연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어떤 마리요..?”
“나중에 혹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조용히 삼촌한테 데려오라고.”
“아! 기어캐요! 조은 말 마니 해 준다고...”
“푸흣.”
나를 포함해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좋은 말은 무슨.
말로만 끝나면 다행이겠다, 이 녀석아.
‘불쌍하네.’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넘어야 할 관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 말이다.
어떻게 이 삼촌팬 관문을 벗어난다고 해도, 700만 연두부가 눈을 부릅뜨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걸 뚫을 수 있는 녀석이 있으려나.
아무튼 중요한 건 하나였다.
지금의 연두는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다는 거.
자연스레 바통은 레나에게 넘어갔다.
레나의 감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실 다른 게 이상했다.
누가 봐도 아름다운 장면의 연속이었으니까.
“시은이는?”
그런데 시은이의 입에서는 생각지 못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저는.. 몰랐어요.”
“뭘?”
“결혼이 아름다운 건지요.”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시은이.
그 표정을 보니 떠올랐다.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시은이의 가정사가.
‘실수했어.’
지극히 평범하다 생각했던 질문이지만 시은이에게는 다소 민감한 주제일 수 있었다.
좀 더 깊게 생각하고 물어봤어야 하는데.
어떤 말을 해 줘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랬구나.”
결국 이 정도로 답하는 게 최선이었다.
적당히 화제를 전환하려는 순간.
스윽.
시은이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더니 웃음지었다.
깜짝 놀랄 정도로 환하게.
“그런데 아니었어요.”
“응?”
“결혼식. 엄청 예쁜 날이었어요.”
“...”
보기 드문 시은이의 환한 웃음을 보고도 이상하게 따라 웃을 수가 없었다.
올라오는 뭉클한 감정에.
스윽.
손을 들어 시은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는 한 마디를 뱉었다.
“다행이다.”
여전히 환한 시은이의 웃음.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
마침내 끝이 난 결혼식.
남은 건 신랑신부와 함께하는 기념촬영 시간이었다.
우르르.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나가 신랑신부 옆에 섰다.
연두가 그 모습을 보고 묻는다.
“아빠.. 우리는 안 가요..?”
“아직은. 지금은 신랑신부랑 가족들이 같이 사진을 찍는 시간이거든.”
“가족이요?”
“응, 가족.”
강당 위를 바라보더니 왜인지 땡그래지는 연두의 눈망울.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묻는다.
“가족이 저러케 마나요? 연두는 아빠랑 연두 두 명인데...”
“흐흡.”
확실히 놀랄 만도 했다.
내가 말한 가족이랑 연두가 생각하는 가족의 범위는 많이 다르니까.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차근차근 설명해줬다.
“아빠가 말한 가족은 친척들까지 전부 다 합한 거야.”
“친척드리요?”
“응.”
“그럼.. 연두도 가족 마나져요..?”
“...”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연두는 다소 특수한 경우에 속했으니까.
생각 끝에 나는 대답했다.
“그렇지. 일단 할머니도 우리 가족이니까.”
“아! 할머니..!”
“응.”
“그럼 선동이오빠는요..?”
“하하, 선동이는 아니지. 선동이는 할머니랑 동네 주민이긴 하지만 손주이거나 하지는 않으니까.”
끙.
끙끙거리는 연두.
아직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기 그럴 만도 했다.
연두는 또 물었다.
“그럼 또 누구 이써요?“
“응?”
“연두 가족..”
난감하네.
마땅히 얘기해줄 만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 와중 떠오르는 한 사람.
말할까 말까. 잠깐의 고민 끝에 나는 입을 열었다.
“기억해? 연두가 착한 아저씨라고 했던 아빠 삼촌 김윤호.”
굳이 꺼내야 하는 이름은 아니었지만.
여행에 갔을 때 연두가 의외로 삼촌을 좋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손이 따뜻했다는 이야기도 했고.
그렇기에 고민 끝에 꺼낸 이름이었다.
‘다른 가족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나마 가족이라 할 수 있는 사람으로는 김윤호밖에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연두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기어캐요! 김유노 아저씨도 연두 가족이에요..?”
“응, 맞아.”
“우아...”
신기해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얘기하다 보니 끝이 난 가족 촬영.
다음은 지인들과 함께하는 기념촬영 시간이었다.
“됐다. 우리 차례다, 연두야.”
“아!”
“시은이랑 레나도 아저씨 따라와. 같이 찍자!”
“네.”
언제나 연시레는 함께였다.
시은이와 레나도 연두의 손을 잡고 쫄래쫄래 따라왔다.
우영이도 빼놓을 수는 없었다.
“우영아. 빨리 따라와.”
“저요? 딱히 안 찍어도 되는데.”
“에이. 수찬쌤 현 최애 제자인데 당연히 찍어야지. 나중에 수찬쌤 섭섭해하신다?”
못 이기듯 발을 옮기는 우영이.
평화고 동창들도 강당 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우리도 뒤따라 올라갔다.
“얘들아!”
반갑게 아이들을 맞이하는 신부 최정윤.
환히 웃으며 말한다.
“아까 인사도 제대로 못했네. 축가 너무 고마웠어.”
“헤헤..”
“주원씨도 감사했어요.”
“아닙니다. 다시 한번 결혼 축하드려요.”
이후 그녀는 손짓하며 이야기했다.
“이쪽으로 와, 얘들아. 사진 같이 찍자.”
먼저 명당자리로 아이들을 초대하는 그녀였다.
나는 미소를 띠며 연시레를 데리고 신부의 옆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슈욱.
커다란 무언가가 나타나 내 뒷덜미를 붙잡았다.
“넌 이쪽으로 와, 이 녀석아.”
다름아닌 수찬쌤의 손이었다.
반쯤 강제로 신랑의 옆에 서게 된 나는 입을 열었다.
“왜요?”
“왜긴. 내 제자인데 당연히 내 옆에 서야지.”
“...”
“그 표정 뭐야. 되게 싫어 보인다?”
“설마요.”
그렇게 나는 잠시 연두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사진 예쁘게 찍어, 연두야..”
“네에. 아빠도요..”
그래도 억울하지는 않았다.
뒤이어 우영이도 수찬쌤의 손에 의해 옆으로 끌려왔으니까.
꿍한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말로 해도 오는데 꼭 손을 쓰시네.”
“자꾸 뭐라고 궁시렁거려, 이 녀석아!”
결혼식 날에도 보기 좋은 사제간의 대화였다.
촬영은 바로 진행됐다.
“맨 뒷줄 반 보만 뒤로 가 주시고요. 좀 더 좁혀서 서 주시고! 그렇죠!”
사진사의 말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
신부의 앞에 선 연시레도 능숙하게 자리를 잡았다.
괜히 이든 모델이 아니지.
뿌듯함을 느끼는 사이 사진사의 말이 들려왔다.
“자, 찍습니다!”
그에 따라 정면을 바라봤다.
찰칵!
결혼식의 끝을 알리는 기념촬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