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5화. 이주원 경계선
“어디요? 어디 가고 시퍼써요..?”
그러게. 어디일까.
떠오르는 장소는 많지만 몇 가지로 추려지지는 않았다.
그야, 넘치도록 많았으니까.
7년 동안 시골에 살았던 아이가 서울에 올라왔을 때 가고 싶을 만한 장소는.
“학교에 가 보고 싶어.”
그런데 조금도 생각지 못했다.
많고 많은 장소 중에 학교가 선동이의 입에서 튀어나올 줄은.
왜 학교를 고른 거지?
서울의 전유물도 아닐뿐더러, 얼핏 생각하기에 그리 임팩트 넘치는 장소도 아닌데.
연두도 마찬가지인지 자그맣게 입을 뗐다.
“학교요..?”
“응.”
“왜 학교에 가고 싶은데?”
자연스레 내가 이어서 질문했다.
딱히 선동이의 선택에 개입하거나 훼방을 놓을 생각은 없었다.
단지 이유를 듣고 싶을 뿐.
곧바로 선동이의 대답이 귀에 들어왔다.
“저는 서울에서 다니고 싶거든요, 학교.”
“서울에서?”
“네.”
여전히 진지한 표정으로 선동이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학교에 가 보고 싶어요. 그래서 알고 싶어요.”
“뭐를?”
“학교가 어떤 곳인지.”
그런 이유였다니.
선동이의 말을 들으니 문득 고등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고3이 되니 그런 친구들이 있었다.
공부 의지를 불태울 겸, 각자가 원하는 대학을 보러 가겠다는 녀석들이.
‘비슷한 건가.’
선동이도 비슷한 거 같았다.
진짜 서울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지만.
어떤 관점에서는 대단하게 느껴졌다.
고3이 되어서야 할 법한 생각을 고작 일곱살 꼬맹이가 했다는 게.
‘의외의 면이 있단 말이지.’
평소에는 까불거리는 게 영락없는 꼬맹이지만, 가끔 이렇게 나이답지 않은 진취적인 면이 있었다.
이번 상경도 마찬가지였다.
듣기로는 서울에 오기 위해 엄마를 졸라 없는 수학시험까지 만들었다고 하니까.
하기야 아직 일곱살 아닌가.
학교를 입학한 것도 아닌데 볼 시험이 있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했다.
고로 선동이가 본 시험은 엄마표 수학시험.
통화 당시 어머니께서는 이렇게 말했다.
“일부러 어렵게 냈거든요. 근데……”
결과적으로 선동이의 점수는 백점이었다.
이웃 아저씨가 가져다준 수학 학습지로 그런 쾌거를 이뤄낸 거다.
서울에 가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아무리 일곱살이라지만 추진력 하나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벌써부터 터득한 거니 말이다.
노력을 하면 그에 걸맞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는 걸.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
가고 싶으면 가야지.
어차피 서울에 머무는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주먹을 불끈 쥐는 녀석을 향해 덧붙였다.
“그런데 선동아.”
“예.”
“학교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즐거운 장소가 아닐 수도 있는데. 그럼 어떡할 거야?”
“그래도 갈 거에요.”
“왜?”
“네? 그냥...”
갑자기 말을 더듬으며 연두를 힐끗 바라본다.
그걸로 대답은 된 거 같았다.
뒤이어 연두가 입을 연다.
“아빠..”
“응.”
“연두는 학교 가치 안 가요? 연두도 가고 시픈데...”
“당연히 같이 가야지.”
“진짜요?”
“응. 연두도 2년만 지나면 가게 될 테니까. 어떤 곳인지 미리 봐 둬야지.”
“헤헤..”
이렇게 결정됐다.
선동이와 연두와 함께하는 초등학교 탐방이.
***
선동이가 있는 동안에도 일은 멈추지 않을 생각이었다.
작화는 길게 쉬어서는 안 됐다.
휴식이랍시고 며칠을 내리 쉬었다가는 감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니까.
‘괜찮아.’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내일 계획은 정해진 상태.
아까 작화를 끝마친 만큼, 오늘은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다.
한편 쪼그려앉은 연두와 선동이.
“그게 뭐야?”
“추르!”
“추르?”
“네! 누렁이가 제일 조아하는 간시기에요!”
“아.”
능숙하게 조금씩 추르를 짜 주는 연두.
할짝. 할짝.
누렁이는 현란한 혀놀림으로 조금도 흘리지 않고 먹어치운다.
왜인지 선동이는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그러더니 말했다.
“서울 고양이는 간식으로 추르를 먹는구나.”
“으응?”
연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시골 고양이는 간식 다른 거 머거요..?”
“응.”
“아! 참치캔?”
고양이용 참치캔을 말하는 게 분명했다.
선동이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니.”
“그럼요..?”
“엄청 많은데..”
이어지는 선동이의 말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연두뿐 아니라 나한테도.
“쥐도 먹고, 곤충도 먹고, 또 참새도 잡아먹고...”
“잠깐만!”
내가 말을 가로막았다.
더 들었다가는 감당하기 힘든 녀석들이 계속해서 등장할 거 같았다.
아니, 이미 늦은 거 같기도.
충격에 물든 표정으로 연두는 말한다.
“차, 참새요..?”
“응.”
연두는 참새에 꽂힌 모양이다.
그럴 만도 했다.
쥐는 워낙 고양이의 먹잇감으로 유명하니 알고 있었겠지만 참새는 그렇지 않으니까.
거리에 지저귀는 작고 귀여운 새가 보통 참새의 이미지 아닌가.
‘어쩔 수 없지만.’
자연의 섭리 중 일부이니 어쩔 수 없지만 연두는 충격받을 만도 했다.
추르를 잡은 손이 떨린다.
이윽고 연두는 물기 어린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빠..”
“응.”
“누렁이는 참새 안 자바먹죠..?”
간절함이 묻어나는 눈빛.
그렇다고 말해주길 바라는 표정이다.
나는 미소를 띠며 답했다.
“응. 안 잡아먹어.”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다.
안 잡아먹는다는 말 앞에 ‘눈 앞에 없다면’이라는 수식어가 붙긴 하지만.
다행히도 초록연두구역에는 참새가 없었다.
고로 누렁이의 레이더에 참새가 잡힐 일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후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연두.
추르를 다 짜 준 뒤 둘은 칠판 앞에 나란히 앉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잠깐. 거리가 좀 가까운데?
“뭐 그릴 거야?”
“선동이오빠!”
“응? 나?”
고개를 끄덕이며 연두가 답한다.
“네! 선동이오빠 그려줄께요..!”
“...”
수줍음이 떠오르는 선동이녀석의 표정.
망설이다 입을 뗀다.
“그, 그럼 나도.”
“네?”
“나도 너 그려준다고.”
“아! 조아요!”
그렇게 서로를 그리기 시작한 둘.
내게 배워 거침없이 그려내는 연두와 달리, 선동이는 선 하나하나가 서툴다.
과정이 이러니 결과는 말할 것도 없었다.
“다 그려따!”
마카를 내려놓은 연두.
칠판에는 특징을 잘 잡아 그린 선동이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당사자인 선동이도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그림이었다.
“...”
연두가 그린 그림을 빤히 보다가 고개를 돌려 자신의 그림을 바라보는 선동이.
미간을 찡그리더니 마카를 내려놓는다.
그리고선 입을 연다.
“안 그려.”
“으응..?”
“너 안 그릴 거야.”
그것도 모자라 지우개로 형체도 없이 빡빡 지워버린다.
어떤 마음인지는 짐작이 갔다.
예쁘게 그려주고 싶은 마음과 달리 마음대로 되지 않아 속상해서 그런 거겠지.
멋지게 자기를 그려준 연두의 그림과 비교도 됐을 테고.
또르르.
허나 문제가 있었다.
그런 선동이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연두는 상처를 받은 표정이었다.
갑작스레 차가워진 선동이의 말투에.
“여, 연두 잘못 그려써요?”
“뭐?”
“연두 그림 이상해서 선동이오빠 화 나써요..?”
심지어 오해까지 해 버린 모양.
이런 상황은 생각지 못했는지 선동이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든다.
“아, 아니야! 그런 거!”
“그럼요..?”
“...”
이걸 어쩐다.
두 아이 사이에 귀여운 오해가 생겨버린 상황.
조금 생각하던 나는 앞으로 다가갔다.
“자, 선동아.”
그리고 마카를 다시 손에 쥐어줬다.
얼떨결에 마카를 받아든 선동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요?”
“도와줄게. 연두 그리는 거.”
“아니……”
“그릴 수 있어. 선동이 네가 그리고 싶었던 대로.”
빙긋 웃으며 연두에게도 말했다.
“연두도 잘 봐. 선동이오빠가 그리는 연두.”
“네에..”
손을 겹쳐잡은 나는 그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눈을 감고도 그릴 자신이 있는 연두의 그림을.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정해져 있으니까.’
선동이가 그리고 싶었을 연두의 모습은 정해져 있으니 말이다.
연두가 보고 환하게 웃을 수 있도록 가장 예쁘게 그려주고 싶었겠지.
한마디로 있는 그대로 그리면 된다는 뜻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림이 완성되고, 마카를 조심스레 내려놨다.
툭.
입이 벌어져 있는 선동이.
그런 녀석을 향해 나는 나지막이 말했다.
“선동아.”
“.. 네, 네?”
“어때? 선동이 네가 그리고 싶었던 연두 모습이 맞아?”
다시 그림을 바라보는 선동이.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 맞아요.”
“다행이네.”
나는 웃으며 연두를 향해 물었다.
“그렇다고 하는데, 연두는 어때? 선동이오빠 그림.”
“.. 예뻐요.”
한마디로는 모자란지 연두는 덧붙였다.
“진짜진짜 예뻐요..”
그리고선 생긋 웃으며 말했다.
“고마어요, 선동이오빠!”
“어? 아, 아니! 아저씨가 다 그려준 건데……”
횡설수설하며 어쩔 줄 몰라하는 녀석.
오늘 정신을 붙드는 데 여러번 고비를 겪는 선동이였다.
***
“이건.. 피아노죠?”
“맞아.”
“아저씨가 치는 거예요?”
“아니.”
내가 아니면 한 사람밖에 없지.
자연히 선동이의 시선은 연두를 향했다.
“너.. 피아노도 쳐?”
“.. 네.”
피아노도 치냐는 물음을 보니 선동이의 눈에는 연두가 다재다능한 아이로 보이는 모양이다.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
그림실력도 수준급이고 피아노도 잘 치니까.
‘뭔가 뿌듯하네.’
처음에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연두인데.
이제는 좋아하는 게 잔뜩 생기고, 특기분야도 생겼다는 게 괜히 뿌듯한 마음이었다.
그나저나 선동이 이 녀석.
피아노랑 연두를 번갈아 바라보는 게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듣고 싶어?”
“.. 예?”
“연두 피아노 연주 듣고 싶냐고.”
“아뇨. 그렇게 듣고 싶은 건 아니고……”
“그럼 됐고.”
칼같은 내 반응에 벙찐 녀석이 입을 뗀다.
“안 듣고 싶다고는 안 했는데요..”
“하하.”
나는 웃으며 연두에게 말했다.
“연두는 어때? 연두는 들려줄 생각 있어?”
“네에.”
“그렇구나.”
환해지는 선동이의 표정.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짓궂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걸 어쩐다? 내가 싫은데.”
“예??”
“아무나 들을 수 있는 게 아니거든. 연두의 피아노연주는.”
일단 기본 조건이 연두부이다.
더군다나 바로 앞에서 직관하는 건 연두부라고 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막상 연두는 아무 생각 없긴 하지만.
‘안 되지, 안 돼.’
요 녀석은 그걸 모르고 있었다.
바로 앞에서 연두의 연주를 단독으로 감상하는 게 얼마나 엄청난 건지를.
그 티켓을 쉽게 줄 수는 없지.
한편 선동이는 발끈한 표정으로 말한다.
“아저씨가 왜요! 연두는 괜찮다는데!”
“전에 통화할 때 말하지 않았나? 연두는 내가 싫다는 건 안 하거든. 나도 마찬가지고. 혹쉬.. 우리 밤톨이는 운명공동체라고 아나?”
“우, 운명공동체? 아니, 근데 나 밤톨 아니거든요!!”
녀석은 씩씩거리며 말을 이었다.
“왜 할머니 따라하는데요!”
답은 너무나도 간단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왜 따라하긴. 우리 할머니니까 따라하지.”
“...”
할 말이 없는지 녀석은 혼자 부르르 떨다가 말했다.
“진짜.. 치사하네요, 아저씨.”
“치사?”
나랑은 거리가 먼 단어인데.
문득 우영이를 향해 치사 빤스라고 하던 민우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이건 못 참는다.
나는 손가락 하나를 펴며 선동이를 향해 말했다.
“오선동. 마이너스 일점.”
“뭐, 뭐예요, 그게. 마이너스가 뭔데요.”
“감점이라는 거지. 마이너스를 많이 받으면 못 보는 거고.”
“뭘 못 봐요?”
“연두 피아노 연주.”
“그런 게 어딨어요!”
“어딨긴, 여기 있지.”
“와!!”
잠깐만. 어쩌지.
장난이 아니라 지금 이 상황이 재밌어서 죽을 거 같다.
조금 골려주려 했는데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찰져.’
그도 그럴 게 선동이의 반응이 너무 찰졌다.
비슷한 유형의 지혜씨와는 다른 느낌의 타격감이라고 해야 하나.
순수 재미 느낌이다.
가까스로 웃음을 참다가 연두와 시선이 마주쳤다.
“...”
동시에 아차 싶었다.
내 모습이 연두의 눈에 어떻게 비쳤을까 생각하니.
언제나 그렇듯 웃고는 있지만 알 거 같았다.
치사 빤스.
방금의 나는 정말이지 치사 빤스 그 자체였으니까.
***
결국 피아노는 그대로 두고, 나는 아이들과 함께 내 방으로 향했다.
내가 치사한 것과 별개로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이 늦은 만큼 피아노를 치는 건 이웃에 민폐가 될 수 있었으니까.
헤드폰이 있긴 하지만, 한 명밖에 착용할 수 없는 만큼 애매했다.
차라리 다음에 제대로 들려주는 편이 좋겠지.
슬슬 내일을 위해 취침할 시간.
‘고민이네.’
자연히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바로 잠자리 문제였다.
평소에는 침대에서 연두와 둘이 잠들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선동이가 취침할 장소도 필요하니까.
‘혼자 재울 수는 없어.’
이제 겨우 일곱살 된 아이였다.
더군다나 부모님을 떠나서 온 타지인데 혼자 재울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빠질 수도 없고.
결국 선택지는 하나였다.
‘다같이 자야지.’
저번에 시은이가 집에 왔을 때처럼 함께 취침하는 수밖에.
다만 그때와는 다른 점이 있었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될, 신경써야 할 게 하나 있었으니까.
위치.
위치 선정이 중요했다.
시은이는 몰라도 연두가 선동이와 붙어서 자는 건 용납할 수 없거든.
따라서 필요했다.
둘 사이를 가로막을 벽, 달리 말하면 경계선이.
그리고 그 경계선은 나다.
어떻게 사람이 경계선이 되냐고?
바로 이렇게.
“선동이 너는 여기 누워.”
퀸사이즈 침대.
왼쪽에 선동이를 배치했다.
“연두는 여기 반대쪽.”
“네에.”
오른쪽에 연두를 눕힌 뒤.
“읏차.”
그 가운데 몸을 한껏 펴고 누웠다.
이게 바로 인간 경계선이다.
아직 부족하다. 분명히 말해둘 필요가 있었다.
“오선동.”
“네?”
“아저씨 넘어가면 마이너스 오만점이다?”
“.. 오만점이요?”
“그래.”
이른바 치사빤스 화법이었다.
선동이는 툴툴거리며 말했다.
“어차피 안 넘어가거든요?”
“아저씨는 자면서도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어. 넘어가는지 안 넘어가는지.”
“안 넘어간다니까요!”
“응? 지금 아저씨한테 화낸 거야? 마이너스……”
“악! 화낸 거 아니에요!”
그러자 반대편에서 연두가 쿡쿡 웃으며 말한다.
“아빠.. 연두 선동이오빠 안 보여요.. 목소리만 들려요, 흐흣.”
“하하, 그래서 재밌어?”
“네.”
재밌어해서 다행이네.
자는 동안 한 순간도 서로를 볼 수 없을 테니.
마치 7월 7일을 제외한 견우와 직녀처럼 말이다.
이게 바로 삼팔선보다 넘기 힘든 이주원 경계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