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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바보가 되었습니다-420화 (421/850)

420화. 벽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켠 연두튜브.

구독자 : 800만

구독자 수가 800만이 넘어가 있었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안 되지.

우리 연두부. 연두부의 수가 자그마치 800만을 넘긴 상태였다.

‘800만이라는 수치보다도.’

그걸 그리 큰 위화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나 자신이 놀라웠다.

초창기 때만 해도 백명, 천명이 올라감에 따라 심장이 롤러코스터를 타곤 했는데.

이제는 그 단위가 자그마치 백만이라니.

심지어 칠백만을 찍은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수찬쌤의 결혼식 전에 700만이 넘어간 걸 확인했으니까.

백만이라는 숫자가 눈 깜빡할 사이에 늘어난다.

700만이 엊그제인 거 같은데 눈을 뜨고 보니 800만이 되어있다.

놀라지 않는 게 불가능했다.

달칵.

자연스레 손이 움직였다.

[크리에이터 스튜디오]

채널의 전반적인 부면을 모두 확인하고 컨트롤할 수 있는 크리에이터 스튜디오였다.

컨트롤 타워같은 역할이라 볼 수 있지.

800만이 넘어간 만큼, 동향을 파악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그래프.’

굳이 볼 거도 없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래프의 형태가 변한 건 한 번도 본 적 없으니까.

뚜렷한 상향 곡선.

특히나 중간중간에 눈에 띄게 올라가는 부분이 있었다.

‘대체로 영상을 올린 날이고.’

수찬쌤의 결혼식 영상에서 크게 치솟은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럴 만도 하지.

워낙 아름다운 결혼식이기도 했고, 연두튜브 공식 밴드인 단비음악대가 출격한 날이기도 했으니까.

축가 영상.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한 영상이었다.

700만에서 800만으로 도약하게 만든 1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밖에도 선동이와 함께한 초등학교 탐방과 연두의 피아노 연주 영상을 올린 것도 한 몫 했고.

그래프가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수익은..’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다.

올라가는 구독자 수의 단위가 커진 만큼, 그에 비례하여 수익도 상승한 상태였다.

또다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 막대한 수익을 어떻게 사용하는 게 가장 합리적일지.

사실 어렸을 때에는 생각한 적이 있다.

미친 듯이 써도 줄어든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정도로 많은 돈을 번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하고.

뭐, 그럴 수도 있다.

행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른 법이니까.

허나 내 생각은 확실히 변했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처럼 생계에 위협을 받을 정도의 재정 상황에서 연두를 부양해야 한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돈은 내 행복에 있어서 크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함께 살 보금자리가 있고, 함께 따뜻한 밥을 차려먹을 수 있고, 함께 소소한 일상을 즐길 수 있는.

그 정도의 돈이 있다면 충분했다.

내 행복의 가장 큰 요소는 돈도 그 무엇도 아닌 연두이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전에 나눈 대화를 통해 확인했다. 연두의 마음도 같다는 걸.

그렇다면 고민해야 할 건 그 방식뿐이었다.

***

오후에 걸려온 전화.

“또 생각해 봐야겠네요. 구독자 이벤트.”

풀잎컴퍼니 대표 윤수아의 말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러네요.”

“벌써 천만이 코앞이라니.. 진짜 빠르네요.”

조금 의아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아직 이백만이나 남았는데 무슨 코앞이냐고.

그게 정론이긴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충분히 그렇게 얘기할 만 했다.

체감상으로 백만이 휙휙 올라가니까.

‘그렇게 두 번만 올라가면 천만이야.’

코앞이라 표현하는 것도 그리 큰 과장은 아니었다.

윤수아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미리 생각할 수 있으면 생각해 둬야겠어요. 600만, 700만은 그냥 넘겼지만 천만은 그럴 수 있는 숫자가 아니잖아요.”

“하하, 그렇죠.”

영화만 생각해 봐도 천만 관객 동원은 영예로운 기록 중 하나였다.

유투브도 마찬가지였다.

천만 연두부가 된다면 유투브 본사에서 다이아몬드 버튼을 보내온다.

내가 알기로 다이아몬드 버튼을 받은 국내 유투버는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벤트를 생략한다?

말이 되지 않았다.

“이벤트는 항상 쉽지 않네요.”

영상 콘텐츠를 고민해 본 적은 거의 없지만 구독자 이벤트를 구상하는 건 늘 어려웠다.

이벤트인 만큼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일까.

그런데 우스운 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해답이 나오곤 했다.

‘팬미팅, 스트리밍, 단비음악대 콘서트 등.’

큼지막한 이벤트는 전부 그랬다.

그러니 이번에는 부담을 내려놓을 생각이었다.

윤수아가 말했다.

“걱정 마세요. 저도 열심히 생각해 볼게요!”

“감사합니다.”

“천만 구독자. 아니, 천만 연두부 미리 축하드려요, 초록님. 흐흥.”

다소 이른 축하인사였다.

***

집 근처의 놀이터.

꺄르르 웃으며 뛰어노는 두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연두와 지우였다.

어쩌다 보니 상당히 오랜만에 다시 만난 둘이었다.

노력은 했지만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게 아니다 보니 일정을 맞추는 게 쉽지 않았다.

특히나 지우 어머니가 시간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고.

옆에 앉은 그녀를 향해 나는 말했다.

“보기 좋네요. 저렇게 즐거워하는 거 보니까.”

“.. 그러네요.”

없는 말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만나서인지 만났을 때부터 둘의 눈빛에는 애틋함이 가득했다.

연두는 틈만 나면 지우 얘기를 꺼내는 걸 봐서 알았지만, 지우도 어지간히 연두가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착각인가.’

옆에 앉은 지우 어머니 이희영.

딸을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이 조금 묘했다.

밝게 웃고 뛰어노는 지우를 보며 옅은 미소를 띠다가도, 때때로 어딘가 모를 씁쓸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전에도 느꼈던 부분이었다.

때때로 영문 모를 불편한 표정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었으니까.

궁금하지만 간접적으로나마 묻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알 수 있으니까.’

본능적으로 예민한 부분일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세연씨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스스로 말해준 것들을 제외하고는 조금도 자세히 물어보지 않았다.

이유는 같았다. 내가 파고들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누구나 그런 부분이 있지.’

누구나 하나쯤은 숨기고 싶은 부분이 있는 법이었다.

나도 그렇고, 어쩌면 연두도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게 있을지 모른다.

내게도 얘기하지 않은 마음속 깊숙한 이야기가.

‘실례야.’

나는 이희영과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그런 마당에 깊숙한 곳을 파고드는 건 크나큰 결례였다.

대신 나는 말했다.

“저기.. 지우 어머님.”

“네.”

“혹시 나들이같은 거 좋아하세요?”

“.. 나들이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저는 가까운 곳으로 연두랑 종종 가거든요. 저번에 봐서 아시겠지만 시은이랑 레나도 같이 갈 때도 많고요. 한강이나……”

여러 장소를 읊었다.

말을 끝맺고 나니 돌아오는 대답.

“.. 그런데요?”

“나중에 시간이 맞으면 지우랑 어머님도 같이 가면 좋을 거 같아서요. 지우는 되게 좋아할 거 같은데……”

얘기를 끝맺지 못하고 나는 말을 멈췄다.

이희영의 표정을 보고.

뭐라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확실한 건 호의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뒤이어 들려오는 목소리.

“.. 시간이 맞는다면요.”

그렇다고 적대감을 드러내는 대답 또한 아니었다.

단지 내가 그렇게 느꼈을 뿐이다.

이어지는 말에서 확신할 수 있었다.

“지우한테는 얘기하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네요.”

“.. 네?”

“나들이. 언제 가게 될지 모르니까요. 괜히 말해둬서 기다리게 만들고 싶지는 않거든요.”

돌려서 얘기하긴 했지만 알 수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우리와 나들이를 갈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딱 여기까지였다.

가끔 놀이터에서 만나서 노는 거.

그게 그녀가 정해놓은 지우와 연두 사이의 관계의 선이었다.

그 선을 넘는 건 연두보다도 내 몫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그녀 사이의 관계.

그 거리가 가까워져야 조금은 가능성이 생길 거 같으니까.

‘쉽지 않을 거 같지만.’

왠지 모르게 넘고 싶었다.

내가 판단하기에 연두와 지우는 서로 정말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연두와 시은이만큼, 그리고 연두와 레나만큼.

‘그럼 노력해야지.’

만약 그 관계 형성을 가로막는 벽이 있다면 길을 뚫어주는 게 아빠로서의 역할 아닐까.

따라서 허물어볼 생각이다.

그녀의 마음의 벽을, 아주 천천히 말이다.

나는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서두르지 않을 생각이었다.

***

열심히 뛰어놀다가 두 아이가 선 곳은 시소였다.

일어선 나는 가까이 다가갔다.

“얘들아.”

“아빠!”

“아, 아저씨..”

나를 향하는 두 아이의 시선.

빙긋 웃으며 말했다.

“시소 타려고?”

“네에.”

“연두랑 지우. 시소의 원리가 뭔지 알아?”

“월리..?”

애초에 원리라는 단어를 알 리가 없구나.

나는 재빨리 정정했다.

“시소는 둘 중에 몸무게가 누가 더 무거운지를 알 수 있어.”

“몸무게여..?”

“응.”

간단히 설명해준 뒤 나는 두 아이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둘 중에 누가 더 무거울 거 같아?”

“연두가요..”

“저, 저가요..”

둘 다 자기가 더 무거울 거 같단다.

확실히 키도 체구도 비슷해서 겉보기에는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럼 한 번 볼까? 기억하지? 더 가벼운 사람이 위로 떠오르는 거야.”

“네에.”

고개를 끄덕이는 지우.

먼저 나는 연두를 번쩍 들어 한쪽 시소 끝에 앉혀줬다.

쑥 내려가는 시소.

자연히 반대쪽은 공중으로 올라갔다.

“다음은 지우.”

마찬가지로 안아서 올려주려다가 그만뒀다.

최대한 조심하는 게 좋았다.

어머니의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받아들일 만한 말이나 행동은.

그 대신 보여주기로 했다.

“읏차!”

한쪽 팔로 시소 끝을 힘껏 누르자 연두의 몸이 붕 떠올랐다.

절로 벌어지는 입.

“우아..”

지우도 입을 헤 벌리고 있다.

나는 시소를 누르며 지우를 향해 말했다.

“자, 앉아, 지우야.”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레 지우가 시소에 앉는다.

천천히 나는 손을 뗐다.

그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는 시소.

끼익.

살짝 떠오른 시소는 수평을 이루는가 싶더니 천천히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다름아닌 연두 쪽으로.

입을 벌리고 있던 연두가 나를 보며 말했다.

“아, 아빠..”

“응.”

“시소 내려가면.. 더 무거운 거죠..?”

확인하듯 묻는 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맞아.”

“...”

그러자 발그레 달아오르는 연두의 볼.

깨달은 모양이다.

자신 쪽으로 시소가 기울었으니, 지우보다 더 무거운 거라는 걸.

‘예상 못했어.’

솔직히 나도 조금 놀랐다.

아슬아슬하게 연두가 더 가볍지 않을까 했는데.

최근 들어 살이 붙긴 했어도, 굳이 따지면 마른 편에 속하는 연두이니 말이다.

‘많이 말랐구나.’

내 생각보다 지우가 더 많이 마른 모양이다.

연두가 작게 말했다.

“연두가 지우보다 더 무겁따..”

지우는 지우대로 또 놀란 표정이다.

아까 말한 연두가 더 가벼울 거라 생각한다는 말이 진심이었던 모양.

이렇게 근소한 차이로 둘의 대결이 끝이 났다.

“자, 그럼! 또 하나의 질문!”

“으응..?”

“연두와 지우를 합한 무게가 무거울까? 아니면 아빠가 무거울까?”

이번에는 둘의 의견이 겹쳤다.

“연두랑 지우가요!”

“우, 우리가요..”

근거는 간단했다.

한 명대 두 명이니까 1 vs 2라 2인 쪽이 무겁다는 단순한 논리였다.

어디, 바로 시험해 볼까.

“그럼 지우야.”

“.. 네.”

“이번에는 연두 앞에 앉아볼래?”

“여, 연두 앞에요?”

“응. 연두랑 지우를 합해야 하니까.”

이해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우가 일어서서 연두의 앞으로 가 앉았다.

톡.

“헤헤, 지우야.”

“여, 연두야..”

지우의 어깨를 잡고 배시시 웃는 연두.

덩달아 지우도 웃음짓는다.

그런 두 아이를 보며 나는 말했다.

“자, 그럼 아빠 올라간다?”

사실 공정하지는 않았다.

지우가 앞에 앉은 만큼 원래 무게보다 아이들 쪽이 덜 나가게 될 테니.

뭐, 상관없겠지.

상상을 초월하는 아빠의 무게감을 보여줄 차례였다.

스윽.

시소에 앉는 순간.

아까와는 달리 아이들 쪽이 순식간에 공중으로 떠올랐다.

세상 놀란 두 아이의 표정.

“우아..”

“아, 아저씨. 진짜 무겁다..”

“으응! 아빠 짱 무거어... 히히.”

칭찬으로 들리지는 않지만 무게감을 보여주겠다는 목표는 달성한 듯하다.

시소는 올라갈 생각을 안 했다.

공중에 떠오른 두 아이는 꺄르르 웃으며 좋아한다.

‘다행이네.’

내 무게감으로 아이들을 웃게 만들었다면 완전히 남는 장사였다.

씩 웃으며 살짝 발돋움했다.

그에 따라 공중으로 떠오르는 시소.

우웅.

자연히 아이들 쪽은 아래로 내려갔다.

“꺄아!”

“우, 움직인다..!”

리액션 좋네.

그렇게 나와 아이들은 한참동안 시소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

신나게 놀다 보니 어느새 찾아온 집에 돌아갈 시간.

“지우야..”

“여, 연두야..”

“다음에 또 놀자.. 시으니랑 레나도 가치...”

“으, 응!”

이번에도 두 아이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가볍지 않은 약속을 했다.

끝이 아니었다.

연두는 가방을 뒤적이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여기, 지우야..”

책을 받아들며 지우는 말했다.

“이, 이게 뭐야, 연두야?”

“연두가 제일 조아하는 동화책. 소녀와 환상으 숲..!”

“소녀와 환상의 숲?”

“응. 그리고...”

연두는 지우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건 비미리긴 한데……”

지우를 제외한 이희영과 이주원에게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였다.

듣지 않아도 주원은 알 수 있었지만.

그렇게 선물을 남기고 연두와 지우는 작별인사를 나눴다.

터벅. 터벅.

집에 돌아가는 길.

연두가 준 선물을 꼭 안고서 지우는 걸어갔다.

옆에서 이희영이 말했다.

“지우야.”

“응, 엄마.”

“연두가 귓속말로 뭐라고 한 거니?”

그녀도 사람인지라 눈앞에서 한 귓속말이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딸에게 한 얘기니 파악할 필요가 있기도 했고.

지우는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궁금해, 엄마..?”

괜히 당황한 이희영은 대답했다.

“궁금하긴. 괜한 얘기를 한 거 아닌가 싶어서 그렇지.”

원래 이런 돌직구를 날리는 아이가 아닌데.

그 아이를 만나는 날이면 한 번씩 당황하게 만드는 얘기를 하곤 했다.

한편 지우는 말했다.

“여, 연두는 그런 얘기 안 해!”

“.. 그래.”

“말해 줄게. 이건 비밀이긴 한데……”

지우의 입이 가벼운 게 아니었다.

연두가 말해준 조건이었다.

누군가에게 이 사실을 말할 때면 꼭 앞에 ‘비밀이긴 한데’를 붙여야 한다고.

엄마를 보며 지우는 말했다.

“이 동화책 그림을 그린 게.. 아저씨래!”

“아저씨라면……”

“연두 아빠.”

조금 놀란 표정을 짓다가 그녀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었다.

그 남자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는 건.

‘봤으니까.’

연두튜브를 알게 된 뒤로 채널에 들어가 영상을 찾아봤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우와 함께 놀아도 괜찮을지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연출된 영상일지라도 어느 정도의 판단은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성과는 존재했다.

적어도 멀리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은 확실히 들었다.

부모도 아이도.

그림을 그리는 걸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어, 엄마..”

“응.”

“집 가서.. 같이 연두가 준 동화책 읽으면 안 돼..?”

“바로?”

“으, 응.”

보통은 아이와 함께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읽어보는 그녀였다.

부정적인 영향을 줄 만한 내용이라면 거르기 위해.

‘.. 괜찮겠지.’

허나 괜찮을 거 같았다.

표지와 제목도 그렇고, 문제의 소지가 있는 내용의 책을 선물하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었다.

더군다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동화책이니까.

“그래. 읽어보자.”

“저, 정말?”

“응.”

기뻐하는 지우의 표정.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집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지우는 동화책을 가지고 테이블에 앉았다.

“손 먼저 씻어야지.”

“아!”

후딱 손을 씻고 돌아와서 상에 나란히 앉은 모녀.

그 중앙에 놓였다. 동화책 ‘소녀와 환상의 숲’이.

이희영이 낮은 음성으로 제목을 읽었다.

“소녀와 환상의 숲.”

약속이라도 한 듯 지우가 손을 뻗었다.

그렇게 넘어갔다.

숲 속 이야기의 첫 페이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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