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3화. 친구 신청
자세히 보니 한두 뼘 수준이 아니다.
어린아이들이긴 했지만 적어도 연두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였다.
신입생으로는 절대 보이지 않는다.
굳이 따지면 이제 6학년 정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잠깐만.. 6학년..?’
불현듯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졸업.
오래전 아빠 손을 잡고 초등학교 입학식에 갔던 게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때도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나보다 한참이나 커 보이는 형과 누나들이 운동장에 서 있던 장면.
‘.. 완전 겁먹었지.’
막연히 나보다 커서 무섭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알고 보니 그들은 졸업생들이었다.
입학하는 후배들을 축하해주기 위해 마지막으로 학교에 모인 거고.
그래. 모두 떠올랐다.
‘신입생 환영회 느낌이야.’
대학을 안 가서 모르지만 이건 그런 느낌이었다.
우리 초등학교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한편 움츠러든 연두. 과거의 나와 마찬가지로 막연히 기가 죽은 모양이다.
나는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괜찮아, 연두야.”
“.. 네?”
“언니오빠들은 연두를 축하해주기 위해서 모인 거야.”
“연두를요..?”
“응. 지금 보이는 언니오빠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거거든. 연두가 어린이집을 졸업한 것처럼. 그래서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연두랑 친구들을 축하해주러 온 거지.”
“아!”
그제야 연두의 표정이 한층 풀어진다.
한편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4반 친구들 이쪽으로 와 주세요!”
“6반 학생과 학부모님들은 이쪽으로 와서 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반은……”
맨 앞에서 한 명씩 마이크를 잡고서 학생과 학부모를 통제하고 있었다.
아마 각 반의 담임선생님이 아닐까.
그런 와중 귓가에 들려오는 가느다란 목소리.
“저, 저기.. 5반은 이 쪽으로 와 주시면……”
들은 게 신기할 정도로 가늘다 못해 희미한 목소리였다.
역시 나는 귀가 밝구나.
그나저나 방금 목소리를 낸 분이 5반 담임선생님인가?
‘뭔가.. 선생님답지 않네.’
잠깐이지만 그런 실례되는 생각을 해 버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힘주어 말하는 다른 선생님과 달리 무척 조용하고 여리여리한 목소리였으니까.
마이크에 대고 말했을 텐데도.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사람을 판단하기에 목소리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작은 게 잘못도 아니고.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할머니를 향해 말했다.
“그럼 가서 연두랑 줄 설까요, 할머니?”
“그러던지.”
“그.. 연락은 없어요?”
연두의 입학을 축하하기 위해 오기로 한 또 한 사람.
다름아닌 외삼촌 김윤호였다.
와 달라는 부탁을 한 것도 아닌데 먼저 오겠다는 의사를 표한 삼촌이었다.
‘시간 내기 괜찮으세요?’
‘괜찮아. 바쁜 시즌도 아니고 바쁘더라도 가야지.’
‘.. 네?’
김윤호답지 않은 말이라는 생각에 돌아온 대답은 더 뜻밖이었다.
‘가족이잖아.’
생각하니 다시금 미소가 번진다.
연두에게 할머니와 나 말고도 가족이라 할 만한 사람이 생겼다는 생각에.
그것도 꽤나 의지가 되는 사람이 말이다.
“없어. 뭐, 어련히 알아서 오겠지.”
“그렇겠죠.”
안 오지는 않을 거 같았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아니니까.
나는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
“그래도 문자 하나 정도는 남겨두는 게 좋겠어요.”
5반 줄로 오라는 메시지만 보내고 이동할 생각이었다.
허나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문자를 작성하는 도중 연두의 목소리가 들려왔으니까.
“.. 유노아저씨다!”
고개를 돌리니 김윤호가 서 있었다.
숨을 다소 거칠게 몰아쉬는 걸 보니 차를 세우고 달려온 모양이다.
손에는 무언가가 들려있다.
‘아, 이런..’
그걸 보고 나는 탄식을 내뱉었다.
꽃다발이다.
그것도 내가 매고 있는 가방 속에 들어있는 꽃다발과 굉장히 비슷하다.
아니, 좀 더 예쁜 거 같기도.
‘왜 이런 거까지 비슷한 거냐고.’
그런 생각에 실소가 흘러나왔다.
어쨌거나 연두에게 첫 꽃다발을 선사하려는 계획은 실패로 돌아간 듯하다.
뭐, 어쩔 수 없지.
그 사이 가까이 걸어온 김윤호가 말했다.
“오랜만이다, 주원아.”
“네, 삼촌.”
“내가 많이 늦거나 한 건 아니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니에요. 저희랑 할머니도 방금 왔거든요.”
“다행이네.”
그러자 할머니가 삼촌을 보며 말한다.
“퍽이나 다행이다.”
“.. 응?”
“왔으면 애미한테 먼저 인사를 해야지, 이 놈의 새끼야!”
“엄마랑은 아까 계속 통화했잖아.”
“통화랑 같아!”
할머니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누구를 대하든간에 일관성이 있다는 것.
마지막은 연두 차례였다.
“잘 지냈니?”
“네. 유노아저씨는요..?”
“나야 뭐 잘 지냈지.”
짤막하게 안부를 주고받은 뒤.
딱히 요령은 없었다.
김윤호는 꽃다발을 연두에게 내밀며 조금은 어색하게 말했다.
“입학 축하한다.”
꽃다발과 축하 멘트까지 선수를 빼앗겼지만 왜인지 흐뭇한 기분이다.
얼떨결에 꽃다발을 받아든 연두.
얼마간 손에 든 꽃다발을 지그시 바라본다.
입가에 번지는 미소.
“헤헤..”
서투르기에 더 와닿는 김윤호의 입학 선물이었다.
***
이후 우리는 5반 줄로 이동했다.
‘맨 뒤에 서면 되겠지.’
딱히 지정해준 순서나 번호는 없었다.
그러니 조용히 뒤에 서려 했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채 발을 멈추기도 전에 들려왔으니까.
“뭐, 뭐야!”
한 남자아이의 목소리였다.
반마다 총 두 개의 줄이 있는데 왼쪽에 서 있는 걸 보니 졸업생이 틀림없다.
키도 신입생이라기에는 너무 크고.
아무튼 녀석의 한 마디는 주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충분했다.
“여, 연두다!”
“뭐지? 연두가 여기 왜 왔지?”
“잠깐만. 설마 우리 학교 입학하는 거 아니야, 연두? 이제 여덟살이잖아!”
“오우 쉣!!”
순식간에 난리가 났다.
아직 신입생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상황 파악을 못해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그럴 만도 했다.
일렬도 서 있던 졸업생 아이들과 달리 신입생과 학부모들은 아직 전부 도착하지도 않은 상태였으니까.
‘시은이랑 레나도 그렇고.’
그래서인지 상황을 더 빠르게 파악한 건 졸업생 애들 쪽이었다.
“저기.. 얘들아.”
“우와! 진짜 초록님이다!”
“대박! 영상이랑 목소리 똑같아!”
차분하게 진정시키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순식간에 일렬로 선 대열은 붕괴되고 앞쪽에 선 아이들까지 몰려와 우리를 둘러쌌다.
정확히는 연두를.
“흐어.. 너무 예뻐...”
“연두야. 진짜 우리 학교 입학하는 거야?”
자그마한 목소리로 연두가 대답했다.
“네에..”
그러자 쏟아지는 반응.
“안 돼! 왜 나 졸업할 때.. 흐아앙!”
“선생님! 저 일년 꿇겠습니다! 나랑 같이 일년 꿇을 사람!”
“바로 연두 호위대 만들자!”
아이들이라 그런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소동이 일어서일까.
앞쪽에서 아이들 틈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저, 저기.. 잠깐만.. 얘들아, 조금만 비켜줄래..?”
아까 들은 목소리였다.
어떡하지.
민폐도 민폐지만 선생님한테 너무 죄송한데.
마침내 아이들을 뚫고 모습을 드러낸 건 앳된 외모의 여자였다.
‘되게 젊네.’
생각한 것보다 훨씬 젊어서 깜짝 놀랐다.
그녀가 목소리를 냈다.
“얘들아, 무슨 일…… 헉!”
말하는 도중 연두를 향한 그녀의 시선.
초점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이윽고 입에서는 알 수 없는 의성어가 흘러나왔다.
“흐에...”
뭐지, 이 반응은.
다행히 이상증세가 오래 가지는 않았다.
고개를 휙휙 저어 스스로 정신을 차리고서 그녀가 말한다.
“얘들아.. 놀란 건 알겠지만 자리로 돌아갈까?”
“수희쌤! 연두예요, 연두!”
“쌤은 알고 계셨어요? 연두 우리 학교 입학하는 거?”
“쌤. 저 졸업 포기할래요..”
확실히 알겠다.
목소리에서도 느꼈지만 이 분은 카리스마가 뛰어난 타입의 선생님은 아니었다.
실제로 지금도 어쩔 줄 몰라하고 있고.
그녀를 향해 나는 말했다.
“죄송합니다.”
“.. 네?”
“본의 아니게 폐를 끼치고 있는 거 같아서요.”
“아니에요! 초록.. 아니 연두 아버님! 잠깐만, 얘들아..”
그녀의 말에도 아이들의 열기는 쉽게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 진지하게 1년 꿇을까.”
“엄마한테 전화해?”
“진짜 눈물 날 거 같아, 흑흑. 연두가 우리 학교 입학하는데 나는 졸업해야 한다니...”
이러다 집단 졸업 거부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때.
좌중을 휘어잡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조용히 안 해, 이 놈의 새끼들!”
띠용 커지는 아이들의 눈.
화들짝 놀란 선생님도 흠칫 몸을 들썩인다.
말투를 보면 알겠지만 목소리를 낸 건 다름아닌 할머니였다.
“꿇긴 뭘 꿇어, 요 년이 뭐라고! 빨리 자리로 가! 확 쥐어박기 전에.”
“.. 저, 저기 할머니.”
“뭐?”
“할머니는 누구세요?”
“요 쥐방울 할머니다, 왜?”
수희쌤과 달리 할머니는 카리스마가 넘쳤다.
다소 거칠긴 했지만.
그렇게 상황이 겨우 진정되는가 싶었는데,
“어, 먼저 와 계셨네요?”
늘 반가운 목소리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얼굴.
천진난만한 표정의 세연씨, 그 옆에는 시은이가 새침한 표정으로 서 있다.
“근데.. 무슨 일 있어요?”
대답할 새도 없었다.
귀가 깨질 듯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으니까.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
시은이에 이어 레나까지 도착해서 엄청나게 큰 소동이 일었다.
한 반이 돼서 좋아할 때는 생각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질 거라고는.
‘안쓰러웠지.’
이리저리 치이는 수희쌤이 안쓰러울 따름이었다.
간신히 상황이 진정되고 난 후에야 아이들은 원래의 대형으로 돌아갔다.
속속들이 도착하는 신입생 아이들과 학부모.
“후후, 연두야.”
“네.”
“학교에 대해 궁금한 거 있으면 언니한테 뭐든지 물어봐.”
일렬로 선 신입생과 졸업생이 1대 1로 매치되는 구조였다.
연두 옆에 선 건 한 여자아이였다.
출석번호순인 거 같은데 모두의 부러운 눈빛을 한눈에 받고 있다.
조금 생각하는가 싶더니 연두가 말했다.
“친구..”
“응?”
“학교에서 친구랑 친해지는 법이 궁그매요..”
한 마디로 친구 사귀는 법이 궁금하다는 뜻이네.
나한테도 했던 얘기다.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자연스레 생길 거 같아 방법을 얘기해주지는 않았지만.
어디 선배의 조언을 한 번 들어보기로 할까.
“흐응.. 친구 만드는 법 말이지?”
“네!”
“완전 쉬워.”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여자애는 말했다.
“친해지고 싶은 애한테 가서 이렇게 말하면 돼.”
“어떻게요?”
“나랑 같이 놀래?”
진짜 쉬운 방법이네.
사실 정답이었다.
멘트가 중요한 게 아니라 먼저 다가가는 용기가 중요한 거니까.
“나랑 같이.. 놀래..?”
“응, 그렇게.”
여자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연두가 그렇게 말하면 거절하는 애는 하나도 없을걸?”
“우아..”
대단한 방법이라도 터득한 것처럼 감탄사를 내뱉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그런 와중 들려왔다.
낮으면서도 묵직한 한 남성의 목소리가.
“안녕하십니까.”
소리가 난 앞을 돌아보니 나이가 지긋한 남성이 마이크를 들고 중앙에 서 있었다.
누군지 알 거 같았다.
이 상황에 저기 서서 말할 사람은 하나뿐이니까.
“선화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우리 1학년 신입생과 학부모 여러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저는 선화초등학교 교장 강덕호라고 합니다.”
그럼 그렇지.
아니나 다를까 교장이었다.
인자한 웃음을 띠며 그는 말을 이었다.
“한눈에 봐도 너무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우리 선화초에 와 줘서 교장으로서 너무 기쁜데요. 입학식에 앞서 졸업생과 신입생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를 축하하는 뜻깊은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딱히 긴 서론은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각 반 선생님의 자기소개와 인사가 이어졌다.
그에 따라 쏟아지는 박수소리.
차례가 다가오자 나는 연두와 눈을 맞췄다.
“알지, 연두야?”
“네에!”
박수 일발장전이다.
이런 기세싸움에서 질 수는 없으니까.
“안녕하세요.. 5반 담임을 맡게 된 김수희입니다. 1년 동안 잘 부탁드려요..”
짝. 짝. 짝.
선생님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박수소리는 어느 반보다도 컸다.
꼭 우리 때문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사기가 오른 모습이다.
이유는 굳이 말할 것도 없겠지.
“오우, 5반. 엄청난데요?”
6반 선생님의 인사까지 끝나고 이어지는 건 선물 전달이었다.
신입생을 위해 졸업생이 따로 준비한 선물이 있다는 모양이었다.
눈앞의 여자아이도 무언가를 꺼냈다.
“연두한테 주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 말과 함께 내민 건 분홍색 토끼 모양의 연필깎이였다.
작게 열리는 연두의 입.
“토끼다..”
“.. 마음에 들어?”
“네에. 연두 토끼 진짜 좋아해요...”
“다행이다. 앞으로 학교에서 쓸 일 많을 거야.”
귀여우면서도 실용적인 선물을 준비한 고마운 선배님이었다.
다른 곳도 전달이 이루어지고 있다.
연필깎이를 손에 들고서 연두는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연두는 언니한테 줄 게 없는데..”
“응? 괜찮아! 연두가 마음에 들면 언니는 그걸로 충분해!”
그런 말에도 연두의 표정에는 쉽사리 미안함이 가시지 않는다.
원래 받으면 꼭 돌려주는 연두니까.
그때 연두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
주머니를 뒤적여서 꺼낸 걸 보고 웃음이 터졌다.
“이거 줄께요..!”
다름아닌 소시지였다.
초등학생이 된 지금도 연두의 소시지 사랑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걸 알고 있는 걸까.
감동받은 표정으로 여자애가 답한다.
“고마워, 연두야..”
옆에서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와.. 개부럽다, 유진희.”
“연두가 준 소시지라니.. 레어템이다.”
“나는 못 먹어.”
그런 친구들을 향해 진희는 말했다.
“헤헹, 부럽지?”
다들 귀엽네.
졸업한다고는 해도 이제 중학생이 되는 녀석들이었다.
그렇게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선후배 간의 교류가.
***
입학식은 강당에서 진행됐다.
그 뒤에 담임교사를 따라 이동한 곳은 교실이었다.
수업은 없었다.
교실에 가는 건 시간표와 준비물, 교과서 등을 전달받기 위해서였다.
“이 쪽으로……”
이름이 김수희라고 했지.
그녀를 따라 나는 연두와 함께 복도를 걸어갔다.
옆에서 들려오는 세연씨의 말.
“이제야 실감이 가네요.”
“뭐가요?”
“시은이가 초등학생이 됐다는 거요.”
“하하, 그러게요.”
교실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은 연두를 보고 나면 더더욱 실감이 갈 거 같았다.
얼마간 더 걸어간 끝에 멈춘 발걸음.
드디어 도착했다.
[1-5]
1학년 5반 교실이었다.
스르륵.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이들도 부모님도 다소 상기된 듯한 표정이다.
교단에 선 김수희가 입을 열었다.
“칠판에 자리에 따라 이름이 적혀있는데요.. 아이들이 그대로 앉을 수 있도록 학부모님께서 좀 도와주시겠어요..?”
“네!”
“감사합니다. 죄송하게도 학부모님들이 앉을 자리는 없는데.. 금방 끝날 테니 양해 부탁드릴게요.”
할머니와 삼촌은 밖에 있었다.
혼잡한 만큼 교실은 부모님만 동행해 주셨으면 한다는 말에 의해서였다.
그러기를 잘한 거 같다.
나이가 있으신 만큼 오래 서 계시기는 힘들었을 테니.
‘그건 그렇고..’
칠판을 바라봤다.
연두 자리는 창가 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저쪽이다, 연두야.”
“저기요..?”
“응. 연두는 하연이라는 친구랑 짝꿍인 거 같은데?”
짝꿍이라는 단어.
얼마만에 입에 담아보는지 모르겠다.
뒤따라 연두가 중얼거렸다.
“짝꿍.. 하연이..”
어쩌면 시은이와 레나를 제외한 연두의 첫 친구가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연두의 손을 잡고 창가 쪽으로 향했다.
“아빠는 뒤쪽에 서 있을 테니까 여기 앉아있으면 돼.”
“네에.”
“어디 안 가고 보고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고개를 끄덕이는 연두를 두고 학부모가 서 있는 뒤로 물러났다.
시선은 쭉 연두를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두의 옆자리로 다가가는 한 아이.
‘.. 하연이?’
왠지 모르지만 굉장히 움직임이 조심스럽다.
표정도 그렇고.
소리없이 비스듬히 의자에 앉는 탓에 연두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조금 지나서 뒤를 돌아보는 연두.
휙. 휙.
손을 흔드는 나를 보고 연두가 배시시 미소짓는다.
안심한 표정이다.
그런 연두를 향해 나는 눈짓으로 옆을 가리켰다.
스윽.
“..!”
그제야 짝꿍을 확인한 연두.
눈치는 빠른데 가끔 이렇게 둔할 때가 있단 말이지.
조심스러운 건 연두도 마찬가지였다.
“흐흐.”
뒤에서도 책상 아래로 동동 구르는 발이 보인다.
먼저 말을 걸지 말지 망설이는 걸까.
망설임으로 꽤나 긴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연두가 움직였다.
‘.. 미치겠네.’
왜 이렇게 재밌지.
어떻게 보면 연두의 첫 학교생활 아닌가.
부모 입장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 막 재밌고 흥미진진해서 죽을 거 같다.
“저기..”
용기를 낸 연두.
“하연아.”
몸을 들썩이는 하연이.
줄곧 뻣뻣하게 앞만 향하고 있던 고개가 살짝 연두를 향해 돌아간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연두는 말했다.
“나는 연두야. 나랑 같이 놀래...?”
역시 우리 연두다.
배운 건 잊지 않고 바로바로 적용한단 말이지.
선배님이 가르쳐준 멘트 그대로였다.
‘좋아.’
타이밍과 멘트 모두 완벽했다.
이제 남은 건 대답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세상 흐뭇한 표정으로 뒤에서 두 아이를 바라보는데,
휙! 휙!
뭐지. 착시현상인가?
위아래로 흔들렸어야 할 고개가 좌우로 흔들린 거 같은데.
잘못 본 게 아니라는 건 이어지는 하연이의 말에서 알 수 있었다.
“시, 싫어..!”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
첫 친구 신청을 단칼에, 그것도 매몰차게 거절당한 연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