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9화. 뭘 해도 되는 날
편집 끝에 연두튜브에 올린 건축콘테스트 풀버전과 편집본.
[연두튜브 마이크래프트 제 1회 건축 콘테스트(Full Version)]
[연두튜브 마이크래프트 제 1회 건축 콘테스트(편집 Version)]
썸네일이 눈에 들어온다.
저절로 입 밖으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캬.”
내가 봐도 잘 만들었다.
레전드를 찍은 조커 건축물을 배경으로 하고 놀란 연두의 얼굴을 교차편집한 썸네일.
일차로 조커가 시선을 강탈하고, 이차로 연두가 시선을 강탈한다.
이전 진짜 안 누르고는 못 배기겠네.
‘재미있단 말이지.’
요즘 새로이 찾은 재미 중 하나였다.
썸네일에 공을 들이는 건.
그런 탓일까.
“하하.”
적응이 될 대로 돼서 웬만하면 동요하지 않는 내가 봐도 놀랄 만한 조회수가 찍혀있다.
물론 순전히 썸네일 덕은 아닐 터였다.
오히려 업로드 이전에 영상 클립이 SNS를 통해 퍼진 영향이 훨씬 크겠지.
뭐,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잖아.
달칵.
썸네일을 클릭해 커서를 내리니 댓글창이 떠오른다.
-드디어 떴다... 이 레전드 방송.
-썸넬 미쳤네 ㅋㅋㅋㅋㅋㅋㅋ
-이걸 보고 어케 안 눌러 ㄷㄷ
-마이크래프트 썸넬 중에 ㄹㅇ 역대급이다. 그런데 거기에 연두랑 초록님까지? 오우 쉣!
-생방 봤는데 또 봐야겠다.
-나도 ㅋㅋ 이 방송은 몇 번이고 재탕할 가치가 있음.
생각보다 썸네일에 대한 반응이 많았다.
이거 뿌듯하구만.
괜히 머쓱하게 웃으며 스크롤을 내렸다.
-고인물 다 모였네 ㅋㅋ
-진짜 칼 갈고 온 듯. 이게 연두의 힘인가.
-다른 건콘이었으면 우승했을 작품이 대체 몇 개야.
-그 와중에 거대 연두부 만든 중딩 왤케 귀엽냐. 못 나는 거 진짜 ㅋㅋㅋㅋㅋ
-뒤로 돌아가니까 연두색인 거 아이디어 좋았다.
-못 보고 넘어갈까 봐 채팅으로 뒷면도 봐 달라 하는 게 킬링포인트 ㅋㅋ
귀엽긴 했지.
방송 중에도 시청자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었으니까.
마무리할 때 따로 상을 챙겨주기도 했고.
-킹콩도 미쳤는데 조커는 진짜 말이 안 나오네.
-진짜 조커 그 자체다.
-연출이 진짜 정신나감. 초록님이랑 고래 찐으로 감탄한 표정 웃기네 ㅋㅋ
-하지만 우승은 연두 ㅋㅋㅋ
-코리안 초커 그 장면이 저렇게 탄생한 거였구나 ㅋㅋ 다시 봐도 터지네.
-연두가.. 아직도 아빠 딸로 보여요?
-미치겠다 ㅋㅋㅋㅋㅋ
첫 시도인 만큼 우려한 점도 있었으나 역시 시도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반응이 좋은 걸 보니.
자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반응도 보였다.
-2차! 2차! 2차!
-이 참에 마이크래프트 bj도 겸직하는 게 어떠신가요, 초록님?
-ㄹㅇ 잘 어울림 ㅋㅋㅋ
-고래랑도 그렇고 다른 마크 비제이랑 합방해도 꿀잼일 듯.
-ㅇㅈ. 왕굿이라던가, 왕굿이라던가……
-왕청자가 또...
-오 근데 진짜 좋다 ㅋㅋ 왕굿이랑 고래랑도 친분 있잖음.
-계속 고래랑 하는 것도 좋지만.. 고래는.. 고래는...
-앗. 아앗...
-아 몰라! 초록님이랑 연두만 있으면 돼! 초연 포에버!!
여기서 나오는 왕굿은 우왕굿이라는 크리에이터였다.
마이크래프트의 권위자 중 하나라 볼 수 있다.
고래랑도 친분이 있나 보구나.
방송이 끝나고 그의 영상을 몇 개 찾아봤다.
무척 재미있었지.
마크를 좋아해서인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다가 아차 하고 유투브를 끈 게 바로 어제였다.
기회가 된다면 함께 방송하는 것도 즐거울 거 같았다.
그 밖에도 건축 콘테스트 2회의 주제를 추천하는 댓글이 많았다.
‘진짜 넘쳐나는구나.’
하나같이 끌리는 주제들이었다.
어느 하나를 고르기 어려울 정도로.
연두부의 바람처럼 당장 2회를 개최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진행해 볼 계획이다.
정확히는 연두의 콩쿠르가 끝나고.
콩쿠르는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연두는 첫 연습을 마친 상태.
레나의 아버지인 바이올리니스트 하파엘의 주도 하에 첫 연습을 잘 끝마쳤다고 했지.
다음 연습의 교수님은 이은경이었다.
‘많은 걸 알려줄 수 있겠지.’
최고의 피아니스트인 만큼 연두에게 실전적인 조언을 아낌없이 줄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할 게 분명하다.
내 분야가 아니라 자세히는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녀가 연두를 진심으로 제자로 생각한다는 것.
마찬가지로 연두도 그녀를 선생님으로 생각한다.
사제의 연이었다.
어쨌든 그녀의 주도 하에 연습을 거듭하고 나면 콩쿠르가 찾아온다.
연두의 첫 콩쿠르가 말이다.
‘드디어 보여줄 수 있겠군.’
연두부에게도 보여줄 수 있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피아니스트로서 연두의 성장을.
그동안 모르는 척 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참아 왔지.’
가장 최적의 타이밍에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꾹꾹 참아왔다.
이제 곧이었다.
나 역시 무척 기다려졌다.
그 어느 때보다 반짝반짝 빛나는, 콩쿠르 무대 위의 연두를 보게 될 날이.
***
쉬는 시간, 선화초등학교 음악실.
스르륵.
문이 열린다.
그 틈으로 빼꼼 고개를 내민 건 연두와 레나였다.
음악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연두야.”
“으응.”
“우리가 제일 일찍 왔나 봐.”
연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서만 음악실을 찾은 이유는 간단했다.
부회장인 시은이는 선생님 심부름을 하고 오기로 했고, 하연이는 친구 숙제를 도와주고 온다고 했으니까.
같이 도와주려 했는데 먼저 가 있으란 말에 결국 둘만 오게 된 상황이었다.
“앉아서 기다릴까?
“응!”
의자에 앉는 건 재미없다.
둘은 교탁 앞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그런 와중에 레나가 재밌는 생각이 떠오른 듯이 웃으며 말했다.
“연두야. 우리 내기할래?”
“내기?”
“응. 시은이가 먼저 오는지, 하연이가 먼저 오는지.”
어떤 얘기를 해도 즐거운 둘이었다.
연두는 맑게 웃으며 답했다.
“응! 하자, 내기..!”
“내기를 하려면 뭘 걸어야 하는데.. 뭐 걸까?”
“으음...”
고민에 빠진 연두.
이윽고 레나를 깜짝 놀라게 하는 한 단어가 새어나왔다.
“뽀뽀.”
“...!”
잘못 들었나?
그렇다기에는 너무 어감이 강렬한 단어인데.
레나는 눈을 끔뻑이며 말했다.
“뭐, 뭐라고 했서, 연두야?”
“뽀뽀.”
역시 잘못 들은 게 아니다.
어느 국가에서는 양쪽 볼에 입맞추는 게 인사법이라고는 하지만 레나가 태어난 독일은 아니었다.
독일의 인사는 상당히 단백하고 신사적인 편이었다.
‘악수.’
남녀를 불문하고 간결한 인삿말과 악수 정도가 독일의 인사법이다.
한국처럼 고개를 숙이지도 않는다.
물론 지금은 인사를 나눌 타이밍도 아니었다.
‘연두랑.. 뽀뽀.’
자연히 머릿속에 그려졌다.
내기에서 이기면 뽀뽀를 받게 될 테고, 지면 연두의 볼에 뽀뽀하게 되겠지.
…… 어느 쪽이든 좋아.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어서 부끄럽긴 하지만 무척 기분 좋을 거 같았다.
그래도 굳이 고르라면 뽀뽀를 받는 쪽이다.
그렇게 레나가 행복한 상상에 빠져있는 사이에 연두의 말이 이어졌다.
“아빠랑 연두 내기하면.. 맨날 뽀뽀하기 했어!”
“아.”
“연두가 맨날 져서 맨날 뽀뽀했어...”
풀이 죽은 표정이다.
말에서 느껴지듯 연두는 깊게 생각해서 꺼낸 얘기가 아니었다.
아빠와 항상 뽀뽀 내기를 했기에 꺼낸 말일 뿐.
그러나 레나는 아니었다.
의지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하자, 뽀뽀 내기!”
살짝 달아오른 얼굴로 레나는 소리쳤다.
그때였다.
“.. 킁!”
어디선가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다.
많이 들어본 소리인데.
깜짝 놀란 레나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 연두야.”
“응?”
“방금 연두가 낸 소리야?”
고개를 저으며 연두는 대답했다.
“아무 소리도 안 냈는데.”
“그래? 연두는 이상한 소리 못 들었서?”
“으응.”
“잘못 들었나 보다!”
레나는 해맑게 그렇게 결론지었다.
허나 아니었다.
교탁 아래에 두 남자아이가 쪼그려 앉아있었으니까.
“Yo! 소리내면 안 돼~ Yo!”
“.. 코 막히는 거야.”
3학년 유준이와 선재였다.
사실 둘은 숨어있으면서도 왜 숨어있는지도 몰랐다.
조금 전, 교탁 아래 앉아서 떠들고 있었는데 문이 열리고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연두야.’
‘으응.’
‘우리가 제일 일찍 왔나 봐.’
연두와 레나의 목소리였다.
중요한 건 나서서 인사할 타이밍을 놓쳤다는 거다.
마치 숨어야만 할 거 같은 상황이 연출됐다.
그리고 지금.
더더욱 나갈 수 없게 돼 버렸다.
이 타이밍에 나가면 정말 상황이 이상해질 거 같아서.
비염 때문에 코가 막히는 유준이는 답답해 죽을 노릇이었다.
“Yo~ 조금만 참아~ 참으면 오지, 복~”
“.. 끙.”
계획은 간단했다.
숨어있다가 동아리원들이 들어오면 적당한 타이밍에 슬쩍 합류하는 거다.
아무도 눈치 못 채도록.
한편 아무것도 모르는 연두와 레나는 내기를 지속했다.
“연두 먼저 골라!”
“응?”
“시은이가 먼저 올지, 하연이가 먼저 올지.”
곰곰이 생각하는 연두.
아빠한테 맨날 지는 터라 내기에는 진심인 편이었다.
심부름과 친구의 도움 중에 뭐가 빠를까.
답은 금방 나왔다.
“.. 시은이!”
연두가 내기에 진심이듯 하연이는 친구를 도와주는 데 진심인 편이었다.
심부름은 교무실에 다녀오기만 하면 될 테니까.
시은이가 빠를 확률이 높다.
그게 연두의 논리였다.
“알겠서, 그럼 나는 하연이!”
쿨한 레나의 선택.
그렇게 내기가 성립되고 둘은 앉아서 잡담을 시작했다.
친구들을 기다리며.
“연두야..”
“응, 레나야.”
“연두랑 같이 콩쿠르에 나갈 수 있서서 너무 좋아.”
콩쿠르 출전.
아직 시은이 말고는 모르는 사실이었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돼서인지 깜짝 놀란 유준이가 코를 벌렁거리는 순간.
선재가 손으로 코를 쥐었다.
“...!”
빨개진 코.
그래도 소리는 막을 수 있었다.
레나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빠가 그랬서. 환상의 짝꿍은 연주하면서 눈을 보지 않아도 서로를 믿을 수 있다고. 아빠는 엄마가 그렇대.”
“...”
“나는 연두를 믿을 수 있서.”
조금은 수줍은 이야기였다.
그 말에 연두는 맑은 미소로 대답했다.
“연두도..”
“응?”
“연두도 레나를 믿을 수 있어. 그리고 너무 좋아. 레나랑 같이 콩쿠르에 나갈 수 있어서.”
그렇게 서로를 향한 믿음을 확인한 둘은 쿡쿡 웃음지었다.
그게 너무 달달해서일까.
이번에는 유준이는 참지 못했다.
“크응!”
참은 걸 한 번에 터트리듯 유준이는 코를 들이마셨다.
깜짝 놀라 일어나는 연두와 레나.
선재와 유준이는 눈을 맞췄다.
슉.
먼저 행동을 개시한 건 선재였다.
“Yo~”
“.. 서, 선재오빠?”
“숨으려던 건 아니었어~ Yo!”
유준이도 엉금엉금 기어나오며 말했다.
“선재가 숨자고 한 거야...”
“왓 더! No! No! It is lie!”
세상 흥분한 선재.
방금 연두와 레나가 보여준 믿음과는 상반되는 의리를 보여주는 둘이었다.
레나가 앙칼지게 눈을 뜨고 말했다.
“너무해.. 다 들었지!”
그 말에 유준이는 고개를 휙휙 저으며 대답했다.
“콩쿠르 나간다는 것밖에 못 들은 거야!”
“다 들은 거 맞네!”
“히익.”
수줍은 얘기도 잔뜩 했는데.
선재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옆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때 음악실 문이 열렸다.
스륵.
둘에게는 구세주인 셈이었다.
“하연아!”
순식간에 레나의 표정이 밝아졌다.
세상 반가운 표정을 짓다가 연두는 곧이어 내기에 졌다는 걸 깨달았다.
“또 졌다...”
내기에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달은 연두.
거의 곧바로 시은이가 도착했다.
“.. 무슨 일 있어, 연두야?”
“아니...”
“...?”
속속들이 도착하는 동아리원들.
그 속에서 레나가 불쑥 고개를 내밀고선 볼을 톡 건드리며 말했다.
“자, 연두야!”
“아, 응!”
약속은 지켜야 했다.
천천히 연두의 입술이 레나의 볼을 향해 다가갔다.
쪽.
마침내 이루어진 볼 뽀뽀.
레나가 배시시 웃음짓는다.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에 모두가 놀랐으나 가장 놀란 건 시은이였다.
“무, 뭐야..?”
어지간해서는 동요하지 않는 시은이가 말까지 더듬었을 정도였다.
레나가 웃으며 말했다.
“내기에서 이겼거든.”
“.. 내기?”
“응. 시은이가 먼저 올지, 하연이가 먼저 올지.”
그 순간 든 생각은 하나였다.
최대한 빨리 연두랑 내기를 해야겠다고.
그런데 그 생각을 한 건 시은이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한 아이가 슬쩍 입을 열었다.
“나, 나도 연두랑 내기하고 싶은 거야...”
“...”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준이였다.
결국 시은이에 의해 연두는 내기를 금지당했다.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하고.
***
연두부콘 출시 일정이 정해졌다.
나는 한 발 앞서서 ‘연두부콘 시즌 2’를 준비하고 있었다.
전부 완성했다고는 해도 틀에 맞추는 작업은 필요하니까.
시간을 확인했다.
조금 지나면 연두를 데리러 갈 시간이다.
차를 가져갈 계획이었다.
그야, 오늘은 콩쿠르 두 번째 연습이 예정된 날이거든.
차로 데려다줘야지.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며 의자에 목을 젖히고 숨을 돌리는데,
드르륵.
핸드폰이 진동했다.
몸을 일으켜 발신인을 확인했다.
-연두 선생님
연두 담임교사 김수희였다.
뭐지.
학부모 상담 기간이라 그 문제로 전화한 건가?
‘아직 수업시간일 텐데.’
잘 모르겠네.
의아함을 느끼며 나는 수신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연두 아버님이시죠?”
담임교사의 목소리다.
평소처럼 작은 목소리인데 왜인지 느낌이 별로 좋지 않다.
잠깐만.
또 무슨 소리가 들리는데?
‘.. 울음소리?’
미세한 울음소리가 섞여드는 거 같았다.
불안감을 느끼며 나는 물었다.
“네, 맞습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그게……”
그녀는 난처한 듯 말을 이었다.
“지금 와 보셔야 할 거 같아서요. 연두가 울고 있어서.”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누가 울고 있다고?
역시 귓가에 들려온 울음소리는 착각이 아니었다.
저절로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 연두가 왜 울고 있나요? 어디 다쳤나요? 무슨 일이길래……”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갔다.
속사포처럼.
이윽고 들려온 말은 나를 더욱 동요하게 만들었다.
다친 건 연두가 아니었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내가 멍하니 되물었다.
“레나가.. 손가락을 다쳤다고요...?”
그와 동시에 머릿속을 스치는 건, 얼마 남지 않은 연두와 레나의 콩쿠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