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5화. 결석
“.. 우리 포기하자! 콩쿠르.”
하파엘은 그 말을 듣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야, 저 말은 원래라면 하파엘, 그가 했어야 할 말이었으니까.
사실 진작에 했어야 할 말이었다.
레나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건 처음부터 느꼈다.
첫 실수.
그건 레나가 실수를 할 만한 파트가 아니었다.
검지를 활용해 들뜨지 않은 소리를 내는 건 오히려 레나의 강점인 파트였다.
그걸 알면서도 멈추게 하지 않았다.
‘.. 오랜만이잖아.’
애써 자신을 속이며 그렇게 넘겼다.
두 번째의 연주.
해당 부분만이 아니라 전체 음정이 들쭉날쭉 흔들렸다.
검지의 영향 때문인지 다른 손가락의 컨트롤도 전혀 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세 번째의 연주.
비교적 괜찮아진 연주였다.
그러나 하파엘은 더 두고 볼 수 없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미움받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며칠, 아니 훨씬 더 오래 레나의 미움을 사게 될지도 모른다.
원래 그 역할은 아내의 몫이었는데.
이번엔 아니었다.
악역은 그의 몫이었다.
포기했어야 할 이 장소에 오게 된 데에는 그의 비중이 엄청나게 컸으니까.
그 책임을 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스윽.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선 시점이었다.
지금의 장면이 펼쳐진 건.
“.. 우리 포기하자! 콩쿠르.”
본디 그가 뱉었어야 할 ‘포기’라는 단어가 연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선 채로 하파엘은 얼어붙었다.
언제부터일까. 연두가 레나의 상태를 눈치챈 건.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함께 연주하는 연주자의 상태를 눈치채지 못하는 게 이상한 일이다.
처음부터겠지.
아마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처음부터 이상함을 느꼈을 게 분명하다.
연두가 먼저 용기를 내서 악역을 자처했다.
그뿐이었다.
‘.. 안 되는데.’
하파엘은 미간을 찡그렸다.
망설인 탓에 연두가 대신 짐을 짊어지게 만들어 버렸다는 생각에.
결코 쉽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 증거로 지금 연두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떨리고 있었으니까.
“.. 여, 연두야, 왜 그래.”
연두의 품 속에서 레나가 목소리를 냈다.
“포기라니.”
“레나야..”
“나 진짜 괜찮아. 이번에는 실수 안 했잖아. 정말.. 정말정말 괜찮은데.”
부정하는 레나.
말없이 연두는 더욱더 힘을 줘서 레나를 끌어안았다.
금빛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우리.. 우리 진짜 열심히 했잖아.”
목소리의 떨림은 점점 커졌다.
“약속했잖아..? 꼭, 꼭 대상 타기로.”
“다시 음악동아리 친구들도 불렀는데. 선생님도.. 같이 오기로 했는데.. 유준이오빠도 꼭 데려오라고 했는데.. 내가.. 내가 무대 안 하면 안 되는 거잖아... 응?”
“맞아! 미뉴리! 미뉴리도 보러 오기로 했는데.. 우리 그 바보한테도 보여줘야 하잖아! 그치!”
그치!
항상 이 말 뒤에는 연두의 ‘응!’이라는 답이 뒤따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 왜, 왜 대답이 업서, 연두야..”
이주원과 하파엘이 동시에 움직였다.
둘은 손을 뻗어 레나가 양손에 들고 있는 바이올린과 활을 들었다.
레나는 놓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바이올린은 주원의 손으로 넘어갔다.
바이올린을 건네받으며 주원은 레나의 손을 응시했다.
검지가 부어있다.
이주원은 바보가 아니었다.
음악에 무지해 눈치채는 건 가장 늦었지만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는 잘 알았다.
레나가 고통을 참으며 연주했다는 것도.
바이올린이 손에서 떨어지며 모든 게 끝이 났다고 생각해서일까.
끅.
레나는 연두의 어깨에 눈을 파묻었다.
“흑, 미안해.. 미안해, 연두야...”
레나의 울음 속에서 연두는 고요하게 흐느끼고 있었다.
울음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처음으로 두 아이가 진짜 ‘포기’를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
지이잉.
울리는 진동.
발신인을 확인한 교사 유신애는 예나를 향해 말했다.
“예나야. 선생님 잠깐만 통화하게 아이들 좀 보고 있어줄래?”
“네.”
뭐, 이 정도면 되겠지.
어차피 뒤에서 보고 있을 거라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핸드폰을 들고 그녀는 뒤쪽으로 걸어갔다.
“여보세요.”
발신인은 연두 아버님이었다.
대충 예상은 갔다.
곧 콩쿠르가 시작하니 잘 도착했냐고 안부를 물으려는 거겠지.
“안녕하세요. 연두 동아리 선생님 되시죠?”
“네, 맞습니다.”
“콩쿨장에는 도착하셨나요?”
예상대로였다.
이어지는 말에는 그대로 잠시 몸이 굳어버리고 말았지만.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되물었다.
“.. 네? 방금 뭐라고……”
“오늘 연두랑 레나가 콩쿠르에 나가지 못할 거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납득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리허설을 할 때의 일부터, 끝내 콩쿠르에 나가지 못하겠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것까지.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부상이 발목을 잡은 거구나.
슥.
귀에 핸드폰을 댄 채로 유신애가 고개를 들었다.
저편에 해맑은 아이들의 뒷모습이 보인다.
곧 이야기를 전해듣고 보일 반응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오늘을 위해서 선생님께서 많이 애써 주신 거 아는데 상황이 이렇게 돼 버려서.”
“아닙니다.”
유신애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연두랑 레나가 충격이 크겠네요.”
과정을 봐 온 건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상을 당해 괴로워하는 레나도, 쉬는 시간마다 음악실에서 피아노를 치는 연두도 봤다.
그런 만큼 달콤한 결실을 맺길 바랐는데.
역시 현실이라는 놈은 만만치 않은 녀석이었다.
‘끝은 아니겠지만.’
아직 시간과 기회는 넘쳐나고 이게 두 아이의 끝은 아닐 터였다.
하지만 회복에는 시간이 꽤나 걸릴지도 모르지.
부디 그게 ‘추락’이 아닌 ‘성장’의 과정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아버님께서 잘 위로해 주세요. 아이들한테는 제가 잘 전달하겠습니다.”
“네. 얼굴이라도 뵙고 말씀드렸어야 하는데……”
“아닙니다.”
상황이 짐작이 가는 만큼 얼굴을 보고 얘기하기에도 무리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종료된 전화.
유신애는 자리로 되돌아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
“쌤! 왜 다시 나가요..?”
“이제 콩쿠르 시작하는데……”
“아! 콩쿠르 하기 전에 연두랑 레나 만나러 가는 거죠! 맞죠, 쌤?”
해맑은 물음.
쉽게 꺼낼 얘기는 아니지만, 유신애는 망설임이 긴 타입은 아니었다.
어차피 말해야 하는 문제라면 말이다.
“연두랑 레나가 콩쿠르에 나가지 못하게 됐단다.”
“...!”
아이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변한다.
특히나 시은이는 더더욱 그랬다.
“.. 왜요?”
“레나 손가락이 아직 다 낫지 않은 모양이야.”
“...”
그 말에는 유준이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누구도 예상 못한 상황이었다.
최고의 무대를 못할 수도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무대 자체를 못할 거라 생각한 사람은 없으니까.
그 사실은 아이들에게는 꽤나 큰 무게로 다가왔다.
훌쩍.
흐느낌이 일었다.
그 울음은 마치 도미노처럼 옆에서 옆으로 옮겨갔다.
심지어 계속 장난기가 가득하던 민우도 눈물을 보였다.
“이레나.. 진짜 나가고 싶어했는데……”
“연두도..”
“괜찮을까, 연두랑 레나? 흑.”
무대를 못 보게 된 아쉬움이 아니었다.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연두와 레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향해 유신애는 말했다.
“너무 슬퍼하지 말렴.”
“선생님..”
“콩쿠르는 이번만 나갈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학교에서 만나면 따뜻하게 위로해 주자. 그리고.. 다음 콩쿠르도 꼭 다같이 보러 오기로. 알겠지?”
아이들은 애써 울음을 삼키며 입을 모아 대답했다.
“네, 선생님!”
한편 소식을 전해들은 건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콩쿨장을 나서는 한 모녀.
“정말? 어쩜 좋아...”
“미안해.”
“아냐. 빨리 끊고 레나 위로해 줘. 우리는 다음에 보자.”
“그래. 고마워.”
은주아도 이은경으로부터 소식을 전해들었다.
유리도 마찬가지였다.
“이레나가.. 손가락을 다쳤다고?”
“응.”
은주아는 설명해줬다.
“다친 게 꽤 돼서 연습도 거의 못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포기하고 싶지 않았나 봐. 거의 나았다고 생각해서 나가기로 했다는데 아직이었나 보네. 걱정된다, 얘. 많이 속상할 텐데. 연두도 레나도.”
유리는 꾹 입술을 깨물고서 말했다.
“.. 뭐야, 그게. 바보같아.”
기분이 이상했다.
얄미운 두 명이 무대조차 하지 못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통쾌하기는커녕 불쾌했다.
자꾸만 그 애의 모습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레나랑 연두 콩쿠르를 보러 와 줘..!’
그 바보같은 부탁이 자꾸 떠올랐다.
‘내, 내가 왜? 어차피 상도 못 탈 텐데.’
‘보여줄께.’
‘.. 어?’
‘유리가 듣고 놀랄 수 있는.. 유리 연주처럼 예쁜 연주.. 보여줄께..!’
알 수 없었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건지.
그런 마음으로 콩쿨장을 나갔을 때, 유리는 한 아이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너……”
한 무리의 아이들.
그중에서도 눈에 들어오는 애는 하나뿐이었다.
그 애의 친구.
“어머, 시은이 아니니?”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건넨 건 은주아였다.
“.. 안녕하세요.”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시은이는 인사했다.
뒤늦게 그 표정과 분위기를 확인한 은주아는 조심스레 얘기했다.
“연두랑 레나 무대 보러 온 거지?”
“네.”
“시은이도 속상하겠네. 아줌마도 얘기 들었거든.”
그때였다.
뒤에서 유리가 불쑥 입을 열었다.
“하아.. 아깝다.”
대놓고 들으라는 식의 혼잣말이었다.
시은이와 아이들, 그리고 유신애까지 모두의 시선이 유리를 향했다.
딸의 말을 멋대로 이해한 은주아는 말을 받았다.
“그치. 정말 무대에 서고 싶었을 텐데.”
허나 잘못 짚었다.
유리는 시은이의 눈을 응시하며 덧붙였다.
“아니? 엉망으로 연주해서 상 하나도 못 타면, 그때 마음놓고 비웃어줄 생각이었는데. 흥!”
모두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든다.
은주아는 물론이고 아이들과 차분한 성격의 소유자인 담당교사 유신애까지도.
이 아이, 연두랑 레나 친구 아니었나?
“너.. 너..”
가장 크게 반응한 건 시은이였다.
“다시 말해 봐.”
싸늘하게 굳은 목소리.
지금만큼은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았다.
그건 은주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리, 너..!”
완전히 선을 넘었다는 생각에 언성을 높이려는 순간, 유리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니까.. 너 친구들한테 전해.”
“.. 뭐?”
“겨우 이런 걸로 다~ 포기한다 어쩐다 하면서 바보같이 굴면.. 그때는 내가 진짜로 하루종일 비웃어 줄 거라고.”
모순이었다.
비웃어 주겠다면서 그 안에는 포기하지 않길 바라는 말이 들어가 있었으니까.
그걸 깨달은 시은이는 천천히 입을 뗐다.
“민유리, 너……”
“난 간다.”
발길을 돌려 걸어가는 유리.
은주아가 그런 유리를 따라가며 뒤통수를 쥐어박았다.
꽁!
“악! 왜 때려!”
“유리 너, 친구한테 그렇게 말하는 습관 고치라고 했지.”
“친구 아니야!”
“시끄러. 오늘 집 가서 제대로 혼날 줄 알아.”
“아니, 그게 아니라……”
제대로 혼나는 건 무서운 유리였다.
***
천장을 바라보고 누웠다.
연두랑 나란히 누워있으니 어느새 누렁이도 올라와서 한 자리를 차지했다.
아웅.
기지개에 하품에 대자로 뻗은 모습까지.
언니랑 아빠 마음도 모르고 아주 천하태평이다.
얼마간 그렇게 누워있다가 나는 말했다.
“연두야.”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자고 있지 않았다.
시간차로 대답이 들려온다.
“네, 아빠..”
“속상하지? 콩쿠르에 나가지 못하게 돼서.”
“속상.. 해요.”
목소리에서도 속상함이 잔뜩 묻어난다.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말이야. 아빠는 연두가 진짜 대견하다?”
“.. 연두가, 대견해요?”
“응.”
“왜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진심이었다.
속상해하는 걸 보며 가슴이 아팠지만 그만큼 대견했다.
연두가 살짝 고개를 돌리며 묻는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응.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마지막에는 연두 포기했는데……”
“풋.”
뻘하게 터진 웃음.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마지막에 ‘포기’라는 단어를 입밖에 낸 건 연두였으니까.
“맞아. 그렇긴 했지.”
그 말에 연두는 처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연두는 대견하지 않은 거에요. 포기했으니까……”
별안간 연두는 울컥한 듯 말을 덧붙였다.
“무서웠어요..”
“응?”
“포기하자 하는 거. 레나가 아파할까 봐. 그런데.. 그런데……”
“알아, 연두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나는 마지막까지 정확하게 알지도 못했다.
더 듣기 좋아진 연주에 레나의 상태가 괜찮아진 게 아닐까 생각까지 했으니.
‘어쩔 수 없지.’
그건 내 음악적 역량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허나 연두는 아니었다.
그 모든 걸 느끼고 가장 먼저 ‘포기’라는 말을 뱉었다.
가장 먼저 용기를 낸 거다.
따라서 그건 내게 있어서는 포기가 아닌 용기였다.
“더 빨리 포기할 수도 있었어.”
“으응..?”
“레나가 다쳤을 때 연두도 실망해서 포기해버릴 수도 있었으니까.”
마치 동화책을 읽듯이, 나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연두는 안 그랬어. 레나의 환상의 짝꿍이 되려고 매일 연습했지. 레나가 없는 곳에서도.”
“...”
“그러니까 어떤 대단한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
역시 동화책을 읽어줄 때 쓰는 기법이었다.
질의응답.
이야기를 잘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데에는 질문하는 것만큼 탁월한 방법이 없으니 말이다.
어느새 이야기에 몰입한 연두는 되물었다.
“.. 어떤 일이요?”
“그런 연두의 모습을 알게 되고.. 레나가 콩쿠르를 포기하지 않기로 결정했어!”
연두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가 이윽고 가라앉았다.
“그런데……”
“그래. 결국 콩쿠르에는 나가지 못했지.”
“.. 네.”
“그런데 생각해 봐, 연두야. 만약에 연두가 훨씬 더 빨리, 레나다 다쳤을 때 포기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책을 펼치듯 손을 내밀며 나는 덧붙였다.
“…… 이 이야기는.”
침을 꼴깍 삼키는 연두.
꽤나 내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는 반응인 거 같아서 조금은 뿌듯했다.
허공에서 손을 떨구며 나는 말했다.
“없었을 거야.”
“...?”
“이 이야기 자체가 없었을 거야. 포기하지 않고 혼자 연습하는 연두도, 그 모습을 보고 다시 일어서기로 결심하는 레나도, 손을 쓸 수 없는데도 최선의 방법을 찾아서 연습하는 예쁜 두 공주님의 이야기도.”
예전에는 생각했다.
결과가 따라오지 않는 과정에 그다지 의미는 없다고.
허나 지금은 아니었다.
내가 지켜본 연두와 레나가 만들어 온 과정은 너무 아름다웠으니까.
다시 한번 나는 되뇌었다.
“전부, 전부 없었을 거야.”
잠깐의 침묵이 일고 연두의 자그마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포기했어도...”
“...”
“마지막에 포기했어도.. 빨리 포기하지 않은 건 잘한 거에요..?”
대답에 망설임은 없었다.
“당연하지.”
다시 허공에 책을 펼친 뒤 씩 웃으며 덧붙였다.
“그리고 마지막이 아니야.”
“.. 그럼요?”
“아빠랑 읽은 동화책을 생각해 봐. 어떤 이야기든 위기는 있기 마련이지?”
“네에.”
“아직 연두랑 레나의 이야기는 중간 정도밖에 오지 않았어. 빨리 포기했으면 없었을 이야기인데, 연두가 포기하지 않아서 중간까지 달려온 거지. 그리고 이후의 이야기는……”
연두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부터 만들어가는 거고.”
“.. 이제부터요?”
“그래. 연두랑 레나가.”
눈을 깜빡이는 연두를 향해 물었다.
“해피엔딩이라는 말 기억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네.”
“뭐였지?”
“.. 행복한 엔딩.”
한글이랑 영어가 섞였네.
그래도 뜻은 확실히 아는 것처럼 보인다.
연두의 머리를 쓸어내리며 말했다.
“아빠는 믿어. 앞으로의 이야기를 연두는 해피엔딩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해피엔딩...”
“또 위기가 있어도, 아빠가 옆에서 도와줄게.”
그 말에 입을 꾹 다문 연두가 내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었다.
등을 토닥이며 나는 덧붙였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다시 읽어줄게. 끝까지.”
물론 그 이야기의 끝은 해피엔딩일 터였다.
***
다음날.
책가방을 멘 연두는 교문에서 아빠를 향해 씩씩하게 인사했다.
“다녀올게여, 아빠!”
“하하, 그래.”
어제의 일로 상심한 건 레나뿐만이 아니었다.
분명히 연두도 그랬다.
그러나 어젯밤, 아빠와의 대화를 통해 깨달았다.
‘끝난 게 아니라는 거.’
레나와 자신의 이야기는 끝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포기한다고 해도 정말 포기한 게 아니라는 것도.
위기가 있어도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나면 된다.
해피엔딩으로 만들면 된다.
‘.. 말해줘야 해!’
어서 레나에게도 이 깨달음을 말해주고 싶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고.
그 얘기를 해 줄 생각을 하니, 묘하게 설레는 기분이었다.
스르륵.
일찍 도착해서인지 교실은 거의 비어있었다.
연두의 시선은 레나의 자리를 향했다.
‘아직 안 왔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레나는 대체로 등교시간에 딱 맞춰서 오는 편이었으니까.
늘 빨리 등교하는 짝꿍 하연이가 연두를 맞이했다.
“.. 연두야!”
“하연아!”
옆에 앉는 연두를 향해 하연이는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 괜찮아, 연두야?”
“응?”
“콩쿠르 못 나가서. 많이 속상했지.”
그 말에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미안해, 하연아..!”
“.. 으, 응?”
“어제 보러 왔는데.. 연주 못 해서...”
“아냐!”
하연이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연두랑 레나 잘못이 아닌데!”
몇 마디를 주고받다가 뒤늦게 연두는 아까 하연이의 말에 대답했다.
“연두는 괜찮아!”
“정말?”
“응. 이야기는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
말뜻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괜찮아보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걱정했는데.
이윽고 하나둘 교실에 들어오는 친구들.
“안녕!”
“두드등장!”
“좋은 아침이에요를레이히!”
계속 교문을 바라봤지만 레나는 들어오지 않았다.
종이 울릴 때까지도.
점점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좋은 아침이에요.”
심지어 아침 조례가 끝날 때까지도 레나의 자리는 비어있었다.
1교시가 시작하며 한 친구가 던진 질문.
“선생님! 레나는요?”
그 말에 김수희는 답했다.
“레나는.. 오늘 학교에 오지 못할 거 같아요.”
연두의 심장이 쿵 내려앉게 만드는 한 마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