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2화. 자작곡
방송이 시작됐다.
“오오, 시작한다!”
“대박!”
“이거 무슨 노래야? 처음 들어보는데.”
픽 미 픽 미.
대충 그런 가사가 귀에 꽂힌다.
처음 들어보는 노래긴 하지만, 직역하면 나를 뽑아달라는 뜻 아닌가?
‘주제곡인가.’
자연히 그런 예상이 들었다.
어디선가 가져온 노래가 아닌, 프로그램 자체에서 제작한 음악이 아닐까 하는.
슥.
호들갑을 떠는 아이들과 달리 우영이는 삐딱하게 앉아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곧이어 화면에 떠오르는 문구와 들려오는 음성.
“당신의 마음속 데뷔 멤버, 열 한 명의 참가자에게 지금 바로 투표하세요!”
지금 바로?
처음부터 일반적인 형식과는 다르다.
이어지는 멘트는 나를 더더욱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투표처는 프로젝트 101 공식 홈페이지! 지금 바로 투표창이 열립니다!”
시작되는 카운트다운.
5초의 시간이 지나간 후, 바로 투표창이 열렸다는 문구가 떴다.
어안이 벙벙하다.
‘방송이 끝난 것도 아니고.’
이제 시작이었다.
보여준 건 아무것도 없고 심지어 참가자들의 얼굴과 이름조차 모른다.
그런데 바로 투표라니.
“뭐야.”
“지금 투표 시작된 거야?”
“그, 그럼 우리도 빨리 주연이한테 투표해야 하는 거 아니야?”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참가자들이 쭉 나열되어 있다.
맨 위 참가자의 투표수를 본 내 입이 벌어졌다.
‘벌써.. 수천명대라고?’
아까 말했듯 아무것도 나온 건 없었다.
그 말인 즉슨, 이미 팬층을 확보한 참가자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나는 처음 보지만.
‘주연이는 어디 있지?’
그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들려오는 예림이의 목소리.
“여기 주연이다! 주연이……”
왜인지 말끝을 흐린다.
고개를 돌려 보니 어두운 표정이 떠올라 있다.
그런 채로 예림이는 중얼거렸다.
“83등..”
곧바로 머리가 회전했다.
111명 중에 83등.
굳이 말하면 하위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소규모 팬층도 없는 주연이가 유투브에조차 출연 사실을 알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데뷔하는 11명에 들기는 턱도 없고.’
예상이 빗나갔다.
순위를 매기는 건 당연하지만 최소한의 모습을 보여주고 투표를 진행할 거라 생각했다.
허나 아니었다.
이 프로그램은 어차피 불공평할 수밖에 없다는 걸 전제에 두고 있었다.
‘1등부터 101등.’
처음과 끝.
당연하게도 그 순위에 해당하는 참가자가 존재했다.
이제 느낌이 왔다.
“잔인해...”
예림이 말대로였다.
그러나 어찌 보면 선택의 여지없이 취할 수밖에 없는 형식이었다.
이건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니까.
“괜찮아, 괜찮아!”
순위를 보고 처진 분위기를 끌어올릴 생각이었는지 동건이가 나서서 텐션을 올렸다.
“방송 이제 시작했어! 투표는 언제든지 뒤집어질 수 있는 거고! 그러니까 슬퍼할 필요 없어, 우영아!”
“...?”
하필이면 타겟을 옆에 있는 우영이로 잡은 게 문제였다.
황당함을 머금은 표정.
“슬퍼한 적 없는데.”
“에이, 그렇게 말 안 해도 너 마음 다 안다, 이 츤데레 녀석!”
“... 허.”
얼마나 기가 찬 건지 숨까지 내뱉는다.
다행히 꽤나 효과가 있었다.
가장 심각하던 예림이가 쿡쿡 웃음을 지었으니까.
그러나, 그것도 오래 가지 못했다.
둥!
화면에 떠오른 세트장.
잠깐이지만 이집트에 온 줄 알았다.
1부터 101까지 적힌 좌석이 피라미드 형식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자칫하면 조금 심한 말을 뱉을 뻔 했다.
‘작정했구나, 방송국 놈들.’
꾹 삼키긴 했지만 말이다.
***
피라미드 형식의 세트장.
첫 참가자가 들어온다.
같은 기획사 참가자인 건지 두 명이 함께였다.
“헐... 뭐야.”
경악에 찬 표정.
하기야 나도 그랬는데 직접 참가하는 참가자는 오죽하겠는가.
나머지 한 명도 입을 틀어막았다.
동시에 전환되는 인터뷰 화면.
“그때 확 실감이 드는 기분이었어요. 정말 시작이구나.”
피라미드 형식.
그에 따라 가장 위층에는 하나의 좌석밖에 없었다.
당연히 앉으라고 둔 자리겠지.
‘보통 담이 아니면 못 앉겠지만.’
우선 이 둘은 그 정도 담을 보유한 거 같지는 않았다.
“우와.. 저기는 1등 자리인 거죠?”
“그런 거 같은데.”
“앉으면 원샷은 제대로 받긴 하겠다.”
딱 거기까지였다.
둘이 선택한 곳은 그나마 중앙의 센터 자리였다.
또다시 들어오는 참가자.
“오오! 대바악! 안녕하세요!”
유세은.
쾌활한 참가자였다.
그리고 처음 들어간 둘보다는 눈치가 빨라보였다.
옆에 있는 두 언니를 향해 말한다.
“숫자가 적혀 있는데요? 1부터 100까지.”
“어, 그러네?”
장난기를 머금은 표정으로 유세은은 말했다.
“아마 스스로가 생각하는 자기 순위대로 앉으라는 말 아닐까요?”
그 말에 흠칫 놀란 건 이미 앉은 둘이었다.
보아하니 숫자는 생각 안 한 모양이다.
“헐.. 그런 거였어?”
“우리 66, 67번인데? 지금이라도 바꿀까?”
“이미 늦은 거 같아요...”
그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유세은은 두 동료를 데리고 거침없이 위로 올라갔다.
당황한 표정의 둘.
“세, 세은아.”
“언니, 어디까지 올라가려구요..”
숫자의 의미를 깨달은 이상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세은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괜찮아. 밑공기보다는 윗공기가 좋잖아~”
십대 소녀답지 않은 능청스러움이 느껴진다.
그걸 보며 범재가 입을 뗐다.
“뭔가 잘 될 거 같네.”
“엥?”
“뭔가 밝은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냐? 딱 이런 프로그램에서 밀어줄 거 같은 캐릭터인데.”
안경테를 손에 쥐며 화면을 응시하는 게 마치 능력치를 분석하는 듯하다.
분석도 꽤나 설득력이 있고.
동건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말했다.
“그런가? 밝은 건 하주연이 더 밝지 않나?”
범재는 안경에서 손을 놓지 않은 채 답했다.
“일단 웃는 거부터 다른 참가자들이랑 다르잖아.”
“뭐가 다른데?”
“좀 카메라 전혀 신경 안 쓰고 웃는 느낌? 그래서 확 눈에 띄는 거 같은데.”
그러자 또 동건이는 뚱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런가? 하주연도 웃는 거 하나는 잘하지 않냐?”
“...”
이쯤 되니 눈에 보였다.
동건이녀석.
계속해서 무심한 듯 주연이를 감싸고 있다.
모른 척 넘어가 줄 범재가 아니었다.
“어휴. 그냥 하주연이 좋다고 말해.”
“므.. 뭐?”
눈을 끔뻑이는 동건이.
그 사이 세 명이 앉은 건 3, 4, 5등 자리였다.
이후 속속들이 참가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역시 유명 소속사 위주인가.’
인지도 있는 참가자가 등장할 때는 시간을 할애하는 한편 아예 생략되는 참가자도 많았다.
예상은 했던 일이다.
101명의 참가자가 모두 주목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은 안 했으니까.
‘개개인의 몫이겠지.’
기존의 격차를 뒤집는 건 개개인의 역량일 터였다.
불가능할 리는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그냥 그룹을 내지, 이런 프로그램을 할 이유도 없을 테니 말이다.
부디 주연이가 그 안에 들길 바랐다.
“연두야.”
“네에.”
“잘 보고 있어?”
침을 꼴깍 삼키고 연두는 대답했다.
“잘 보구 있어요!”
의외로 힘찬 목소리다.
사실 이 구조를 연두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때였다.
“착해요..”
“응?”
알 수 없는 한 마디에 내가 반응했다.
“세은이언니.. 착해여...”
“세은이라면……”
방금 나온 참가자였다.
범재의 분석 대상이었던 웃는 게 매력적인 참가자.
조금 놀랐다.
‘웃는 게 예뻐서 그런가.’
하기야 그럴 만도 했다.
때 묻지 않은 웃음은 누구에게나 좋은 이미지를 주곤 하니까.
그런 상황 속에 등장한 참가자.
포스가 넘치는 참가자였다.
101개의 자리를 쭉 굽어본 뒤 그녀는 천천히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여유로운 발걸음이었다.
왜인지 알 거 같았다. 그 발걸음이 향하는 목적지를.
툭.
역시나 그녀가 앉은 곳은 최정상에 위치한 1등 자리였다.
“미쳤다..”
“완전 멋있어...”
“저 정도 자신감이 있어야 가능한 거구나.”
여기저기서 감탄사와 리액션이 터져나온다.
이제 남은 자리는 얼마 남지 않았다.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생략된 건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앵글을 하나하나 잡아주지 않으니 이미 어딘가에 앉아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예감에 불안해지는 순간,
끼익.
모습을 드러냈다.
나와 연두, 그리고 우리가 모두 기다리고 있던 참가자가.
주연이였다.
***
한순간에 흥분의 도가니가 된 거실.
“하주연이다!”
“와, 이미 나온 줄 알고 식겁했는데.”
“아빠! 주여니언니에요..!”
따분한 표정으로 그림을 그리듯 손을 끄적이던 우영이도 시선을 옮겼다.
-UNH 엔터테인먼트
(하주연)
이름표와 명찰이 적혀있었다.
극도로 긴장한 표정.
참가자들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이고선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또 화면이 전환됐다.
“UNH가 어디야?”
“처음 듣는데.”
“생각보다 우리가 모르는 회사가 많구나.”
그런 리액션이 담긴 편집이었다.
앞서 대형 기획사 참가자들을 보여준 뒤 이런 식으로 대비되는 느낌을 살리고자 한 모양이다.
주연이가 낙점된 건가.
“아니, 근데 쟤 왜 저렇게 떨어?”
“그니까.”
“어떡해. 쭈여니 많이 긴장했나 봐...”
실제로 주연이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화면상으로도 느껴질 정도.
평소의 모습을 알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런데 그때, 생각지 못한 장면이 펼쳐졌다.
“뭐, 뭐야.”
올라가기 시작했다.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그리고 가장 위칸까지.
모든 참가자의 시선이 고정됐다.
“의외로 담이 세구나 했어요.”
어떤 참가자의 멘트와 교차되며 주연이의 자리 선정은 더욱 부각됐다.
그렇게 앉은 곳은 2등 자리였다.
다른 시청자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몰랐네.”
입 밖으로 나간 속마음에 동건이가 말을 받았다.
“백퍼센트 몰랐네요.”
“응.”
그렇다.
2등 자리인 걸 알고 앉은 게 아니다.
긴장한 나머지, 처음으로 보인 구석의 빈자리로 향한 것 뿐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그 의도치 않은 행동이 모두의 이목을 끌었다.
“마지막에 봤어?”
“와아... 앉기 전에 1등 자리 한 번 쳐다보는데 나 소름돋았잖아.”
“거기 제 자린데. 이럴 줄 알고 완전 식겁...”
그거 아니야, 얘들아.
참가자들은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하고 있었다.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도 같은 오해를 하고 있을 거라는 점.
‘생략되는 것보다는 나은지도 모르지만.’
이런 식으로 주목받는 게 마냥 좋을 거 같지는 않았다.
양날의 검 같다고 해야 하나.
편집자의 눈으로 볼 때 편집점도 그 오해를 부각시키기 위해 잡은 거 같고.
‘아이고, 주연아..’
아주 심장이 벌렁벌렁 뛴다.
미치겠네.
이런 게 부모의 마음일까.
‘맞다, 나 부모지?’
그런 의식의 흐름 속에서 다시 한 번 화면이 주연이의 모습을 비췄다.
또 뭐지.
불안함 속에 화면을 응시하는데,
“우와.. 주연님 짱이네요.”
짱이다.
연두가 좋아하는 표현이다.
공교롭게도 주연이의 옆에 앉은 건 초반부에 나온 참가자 유세은이었다.
화들짝 놀란 주연이가 둥그렇게 눈을 뜨고 말한다.
“.. 느에?”
이마를 부여잡는 동건이.
다소 빙구(?)같은 주연이의 대답에도 유세은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저는 2등은 좀 부담돼서 한 칸 띄어서 앉았거든요.”
“.. 2등이요?”
역시 몰랐구나.
유세은도 이상함을 눈치챈 건지 되묻는다.
“설마 모르셨어요? 거기 2등 자리인데.”
그제야 주연이는 봤다.
등 뒤에 적힌 2라는 숫자를.
얼마나 놀란 건지 ‘흐엑!’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나다 그만 자빠질 뻔 하기까지 했다.
동시에 들려오는 웃음소리.
“푸하하! 진짜 바보다, 하주연은.”
동건이의 폭소였다.
그렇게 장면은 전환됐다.
다소 우스꽝스럽긴 했지만, 분량만 놓고 보면 대형 기획사 참가자에게도 밀리지 않은 느낌이다.
그와 별개로 다행이었다.
유세은이라는 참가자한테 고마웠다.
주연이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면 풀리지 않았을 오해였으니까.
문득 아까 연두가 한 말이 떠오른다.
‘세은이언니.. 착해여...’
조금 신기했다.
주연이와 옆자리에 앉게 됐다는 것도 그렇고.
의도는 전혀 없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주연이를 도와준 셈이었다.
‘귀여웠어.’
아끼는 동생이라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볼 때도 방금의 주연이는 꽤나 귀여웠다.
한 명당 투표가 가능한 수는 열 한 명.
그 중 하나 정도는 선뜻 건넬 의향이 생길 정도로.
나쁘지 않은 시작이었다.
***
마침내 전부 소개된 101명의 참가자.
뒤이어 심사위원이 소개됐다.
내가 아는 유명인도 있었고, 처음 보지만 대단한 듯 묘사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럼 대단한 거겠지.’
역량이 없는 사람을 심사위원으로 쓰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슬쩍 옆을 바라봤다.
언제부터인가 우영이는 TV는 안 보고 태블릿을 꺼내서 무언가 끄적이고 있다.
아까 주연이가 나왔을 때 잠깐 보더니.
‘재미가 없나.’
오해할까 봐 말하자면 방송은 재미있다.
솔직히 잘 만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잘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우영이가 흥미를 느낄지는 다른 분야다.
‘그림이 아니니까.’
보아하니 뭔지는 몰라도 그림을 그리는 거 같은데.
이 와중에도 그림으로 도피하는 게 정말이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영이답네.
피식 웃으며 TV로 시선을 옮겼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본격적으로 무대가 시작됐다.
솔직히 놀랐다.
라라라~ 라~ 라라~
음악에 맞춘 군무.
절도 있게 맞아떨어지는 셋의 호흡은 절로 리듬을 타게 만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영이는 시선도 안 주고 있지만.
뒤늦게 그 모습을 본 건지 동건이가 입을 연다.
“우영쓰~”
살짝 우영이가 고개를 든다.
“TV 안 봐?”
“안 봐.”
“왜? 지금 리얼 꿀잼인데...”
“나는 하주연을 보러 온 거지 TV를 보러 온 게 아니니까.”
논리적이었다.
말문이 막힌 동건이는 결국 조용히 TV를 응시했다.
그나저나 뭘 그리는 걸까.
뒤쪽에 앉아서 잘 보이지도 않네.
태블릿의 편리함을 알게 된 이후로, 저렇게 틈만 나면 그림을 그리곤 하는 우영이였다.
‘뭐, 괜찮겠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TV를 보러 온 게 아니라 주연이를 보러 온 거다.
놀랍게도 첫 무대의 참가자들은 ‘B’ 등급을 부여받았다.
‘A부터 F’
참가자에게 부여되는 등급이었다.
고로 지금 하는 건 등급 심사.
무대를 보고 당연히 전원 A일 거라 생각했는데 첫 무대라 그런지 기준을 높게 잡은 모양이다.
이후 여러 참가자들의 무대가 펼쳐졌다.
“훌륭했어요.”
“완전 물 만난 물고기네.”
“한세경 참가자. 본인이 춤 잘 춘다는 거 알고 있죠?”
칭찬도 있었지만,
“이건 뭐, 평가가 불가능한 수준인데?”
“연습 많이 했어요?”
“데뷔 경험도 있다고 하지 않았나? 데뷔는 어떻게 한 거지?”
독설이 훨씬 더 많았다.
그래도 납득이 안 가도록 무작정 독설을 퍼붓는 건 아니었다.
대체로 무대에 걸맞은 심사평이 나왔다.
F를 받고 우는 참가자, A를 받고 환호하는 참가자.
참고로 아까 본 참가자인 유세은은 A를 받았다.
춤 실력이 장난이 아니었지.
빠른 속도로 무대가 지나가는데 좀처럼 주연이의 이름은 호명되지 않는다.
벌써 한 시간이 훨씬 넘었는데... 설마 안 나오는 거 아닌가?
가능성이 있었다.
꼭 첫 방송에 무대를 다 보여주리란 법은 없으니 말이다.
또 불안해하는 와중에 들려왔다.
“다음은.. 하주연 참가자 나와주세요!”
나왔다.
기다림이 길었던 탓인지 연두도 몸을 크게 들썩인다.
무대 위로 걸어나오는 주연이.
“안녕하세요! UNH 엔터테인먼트 소속 하주연입니다!”
“반가워요.”
“네!”
한 심사위원이 말했다.
“하주연씨.”
“네!”
“2등 자리에서 내려오던데, 실력에 자신이 있나 봐요?”
“아, 아니, 그게……”
어쩔 줄 몰라하는 주연이.
의아한 표정의 심사위원을 향해 주연이는 다짜고짜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풋.”
긴장한 와중에 웃음이 터졌다.
사과는 왜 하는데.
영문을 모르는 심사위원들은 물었다.
“몰랐다뇨?”
“빈자리가 보이길래 앉았는데.. 숫자를 앉고 나서 봐 버려서……”
“푸하핫!”
심사위원진의 장원석이 폭소를 터트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2등 자리인지 모르고 앉았다는 거죠?”
“.. 네.”
“아이고, 근데 그게 왜 죄송해요? 모르고 앉을 수도 있지.”
“저 때문에 앉고 싶었는데 못 앉은 분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와우. 거기까지 생각했단 말야? 배려심이 아주 깊은 친구구만.”
은근히 놀려먹는 느낌이다.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와중 심사위원들이 말을 주고받는다.
“귀여운데?”
“큭큭, 그니까.”
“잘 하면 좋겠다. 못 하면 속상할 거 같아.”
그런 분위기 속에서 심사위원이 무대 시작을 알렸다.
흘러나오는 음악.
그에 따라 주연이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춤을 추는 주연이의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왜인지 알 거 같았다.
딱히 틀린 부분은 없었지만 보는 재미가 있는 춤은 아니었다.
특색이 없다는 뜻이다.
짧게 편집된 무대가 지나가고 심사위원들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위험했다.
꽤나 많은 분량이 할애된 주연이였다.
그런데 그에 걸맞은 실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여론이 어떨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 아빠...”
분위기를 감지한 건지 연두도 초조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무대를 한 주연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 감사합니다.”
인사하는 와중에도 표정이 좋지 않다.
얼마간 흐르는 정적.
그 정적을 깨고 심사위원이 손에 든 무언가를 보며 의아한 듯 물음을 던졌다.
“특기가 노래라고 돼 있네요?”
“.. 네.”
“그런데 왜 춤을 췄어요?”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는 연달아 물었다.
“주연씨 춤에 자신 없죠?”
“.. 네.”
“주연씨만 그런 게 아니거든요. 춤에 자신 없는 참가자들이 꽤 있어요. 그래서 최대한 춤을 배제하고 노래에 초점을 맞춘 무대가 많았는데…… 주연씨는 그 반대네요?”
확실히 그랬다.
단점을 최소화하고 강점을 부각하는 게 영리한 선택인데.
주연이는 완전히 반대의 무대를 펼쳤다.
“..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뭐라구요?”
“제가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 하는, 그런 대단한 사람이었으면 좋았겠지만…… 부족한 부분도 저라고 생각해서……”
그제야 이해가 갔다.
숨기지 않고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어차피 알게 될 거라면, 피하기보다는 당당히 마주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 주연아.”
예림이는 거의 울기 직전이다.
그러나 심사위원은 매정했다.
“이번 무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끝은 아닐 터였다.
그랬다면 이렇게 등급을 매기지도 않았겠지.
허나 쉽지 않아보였다.
‘주연이보다 못한 참가자는 많아.’
하지만 그걸 이 정도로 부각한 참가자는 없었다.
한 마디로 독박을 쓴 거다.
편집의 희생양으로 많고 많은 참가자 중에 주연이가 낙점된 거다.
그걸 위한 분량 할애였던 거고.
틀림없이 그렇다고 생각했다. 이어지는 심사위원의 한 마디가 있기 전까지는.
“그래도 재밌네요.”
“...?”
“쉽지 않은 거잖아요. 정답이 뭔지 알면서도 일부러 오답을 찍는 것도.”
그 한 마디로 갑작스럽게 분위기는 반전됐다.
편집자로서 알 수 있었다.
그냥 이대로 대충 넘어갈 흐름이 아니었다.
“노래 준비한 거 있어요? 만약에 없으면 나 주연씨 진짜 미워할 거 같은데.”
역시나!
예상한 흐름이 들어맞자 일종의 쾌감까지 들었다.
그리고 이변은 없었다.
“이, 있어요! 있습니다..!”
그래. 없을 리가 없지.
그렇게 주연이는 대기실을 향해 질주했다.
곧 들고 온 건 기타였다.
“자작곡을 준비했는데……”
“.. 자작곡?”
심사위원들의 표정에 흥미가 일었다.
“자작곡을 준비한 참가자는 처음인데?”
“궁금하다.”
“바로 들어보죠.”
자작곡.
만약 내 예상이 맞다면, 나는 이 곡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이윽고 귀에 들어왔다.
“곡 이름은... ‘봄꽃’ 입니다.”
동시에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그야, 이 곡은 주연이가 카페에서 내게 들려줬던 연두를 뮤즈로 만든 자작곡이었으니까.
비록 후렴은 듣지 못했지만.
두근. 두근.
심장이 뛰었다.
도입부만으로 나를 소름돋게 만들었던 그 곡의 후렴을 이제 들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연두의 손을 꼬옥 잡았다.
“잘 들어봐, 연두야.”
“.. 으응?”
“가사에 집중하면서.”
연두를 향한 곡이니까.
굳이 그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기타소리가 정적을 메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들려왔다.
“자꾸 눈이 가네~ 말간 그 입술에~ ♪”
아무래도 1화의 주인공은 주연이가 될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