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8화. 이주원의 마술쇼
“연두가 생각해도 그렇지?”
“.. 네.”
노래가 끝난 뒤 이어지는 정적.
심사위원도 참가자들도 입을 다문 채로 얼마의 시간이 지나갔다.
보통 정적에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딱히 할 말이 없어서 모두 입을 다문 경우, 혹은 너무 놀란 나머지 말이 나오지 않는 경우.
지금은 후자인 게 분명했다.
스윽.
그런 상황 속에서 마이크를 잡는 한 심사위원.
“어.. 주연씨?”
“.. 네.”
심사위원은 모두 저마다 담당하는 분야가 있었다.
춤이면 춤, 랩이면 랩.
그리고 지금 마이크를 쥔 건 유명 그룹의 보컬 출신 우정아였다.
‘맡은 분야도 보컬이고.’
따라서 방금 무대의 심사에 가장 적합하다고 할 수 있었다.
어떤 얘기를 할까.
그런 의문 속에 들어온 그녀의 말은 상당히 뜻밖이었다.
“본인이 잘 했다고 생각해요?”
다소 공격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물음.
예상과는 달랐다.
지금까지의 심사 패턴을 보면 바로 극찬이 쏟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독설할 때는 독설하더라도 잘 한 참가자에게는 칭찬도 아끼지 않았으니 말이다.
대체 왜지?
그런 의문 속에 들려오는 주연이의 목소리.
“.. 자, 잘 모르겠습니다.”
잔뜩 풀이 죽었다.
심사위원 우정아는 그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래요? 왜 모를까.. 모를 수가 없을 거 같은데.”
혹평으로 받아들인 걸까.
기타를 쥔 주연이가 살며시 고개를 떨궜다.
그 순간 나는 봤다. 우정아의 입가에 자그맣게 번지는 미소를.
‘설마.. 장난치는 건가?’
사실 저 심사평이 진심일 리는 없다.
나는 주연이가 무대를 할 때의 심사위원들의 표정을 봤으니까.
그건 절대 혹평이 나올 수 있는 표정이 아니었다.
“아, 아빠..”
“괜찮아, 연두야.”
“주연이언니 잘 했는데.. 노래 진짜진짜 좋았는데.”
그 말대로였다.
그렇기에 나는 연두를 안심시킬 수 있었다.
“맞아. 그러니까 조금 더 보자.”
“네에.”
아무래도 우정아는 질문을 좋아하는 거 같았다.
연달아 질문을 던졌다.
“주연씨.”
“네.”
“이거 주연씨 자작곡이라고 했죠?”
“네, 맞습니다.”
“그럼 들려준 적 있어요?”
“.. 네?”
“여기서 말구, 주위 사람들한테 들려준 적 있냐구요.”
조금 흠칫했다.
정확한 답은 모르지만 내가 해당되는 질문이었으니까.
이윽고 주연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있습니다.”
“누구한테 들려준지 물어봐도 돼요?”
“그게.. 두 명인데요.”
여전히 긴장을 머금은 목소리로 주연이는 말했다.
“소속사 이사님이랑 아는 오빠한테 들려줬습니다.”
“그렇구나.”
여기서 아는 오빠는 나겠지.
흥미롭다는 듯이 그녀는 또 물었다.
“그 두 분은 뭐라고 했어요?”
망설이는가 싶더니 주연이는 대답했다.
“좋다고 했어요..”
“푸흣.”
갑작스레 웃음을 터트리는 우정아.
눈이 동그래진 주연이를 향해 그녀는 얘기했다.
“맞아요.”
“네?”
“그 두 분 말이 맞다구요. 주연씨 무대 진짜 좋았어요.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어안이 벙벙한 주연이의 표정.
그럴 만도 했다.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과 함께 쏟아진 호평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왜 모른다고 대답해요. 그렇게 잘 해 놓고 모르겠다고 하니까 장난치고 싶잖아, 후후.”
연두의 표정도 밝아진다.
그제야 다른 심사위원이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한다.
“가만히 있느라 입 간질거려서 죽는 줄 알았네.”
“그니까요.”
“아니, 진짜.. 노래 안 시켰으면 어쩔 뻔 했어요. 음색은 그냥 타고났고.”
“자작곡이라 해서 불안했는데 세상에나……”
그래, 이거지.
이런 반응이 나와야 하는데 깜짝 놀랐잖아.
계속해서 쏟아지는 극찬.
“헤헤..”
배시시 웃더니 연두는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주연이언니.. 웃는다...”
그 말대로였다.
TV 속 주연이는 이제야 밝게 웃음짓고 있었다.
이제야 좀 주연이답네.
***
한편 핸드폰은 또 미쳐 날뛰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채팅이 마구 떠오른다.
오범재 : 쉐엣! 하주연 믿고 있었다고!!
오예림 : 쭈여나 ㅠㅠ 나 진ㄴ짜 눈물나와ㅏ 어엉엉
오범재 : 진짜 찢었다...
조동건 : 뭐 그냥 들어줄 만은 하네 ㅋ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말해도 누구보다 좋아하고 있을 거 아는데.
귀여운 자식.
그런데 뜻하지 않게 화제거리가 된 주연이의 한 마디가 있었다.
오예림 : 근데 아는 오빠가 누구징..?
오범재 : 그니까. 우리한테도 안 들려준 하주연의 ‘아는 오빠’??? 떠오르는 사람이 없는데.
조동건 : 딱 봐도 뻥 치는 거잖아 ㅋㅋ
오범재 : 무슨 뻥.
조동건 : 친구 없는 거 들키기 싫어서 그냥 얘기한 거지. 하주연한테 아는 오빠가 어딨냐? ㅋㄷㅋㄷ
오범재 : 응. 일단 눈물부터 닦고 얘기해.
조동건 : 무슨 뜻이냐?
확실히 의아해 할 만도 하다.
가장 친한 자기들에게도 들려주지 않은 자작곡을 들려준 아는 오빠가 있다고 한다면.
특히나 동건이는 타격이 클 수도 있겠지.
“하하..”
그러나 나는 다른 의미에서 상당히 멘탈에 타격을 입었다.
왜 나라고 생각 못하는 거지?
아무리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해도 어떻게 같은 단톡방에 있는 나를 아무도 생각 못할 수 있냐고.
‘.. 오빠잖아.’
그렇게 부르잖아.
그건 그저 허울뿐인 호칭뿐이었고 나는 이 녀석들에게 아재였던 걸까.
생각할수록 설움이 차오른다.
안 되겠다. 추해 보일지 몰라도 할 말은 해야겠어.
이주원 : 나는 오빠가 아닌 거구나..(우울 연두부)
작성하고 보니 생각보다 더 추하다.
제 발 저린 듯 고개를 푹 숙인 연두부 이모티콘까지 완벽하다.
곧이어 떠오르는 채팅들.
오예림 : 헐.. 잠깐만. 왜 오빠 생각을 못했지?
오범재 : ㅁㅊ 이게 등잔 밑이 어둡다는 건가. 진짜 왜 생각 못했지.
조동건 : 너넨 진짜 안 되겠다. 언제 행님인 거 눈치채나 하고 가만히 지켜봤는데 끝까지 모르네 ㅉㅉ
오범재 : ㄷㅊ 누구보다 불안해한 ㅅㄲ가
조동건 : 뭐라 했냐? 너 진짜 나랑 해 보자는 거냐?
오범재 : ㅈㅅ
하기야 범재도 자유롭지는 못하지.
오예림 : 오빠 죄송해여 ㅠㅠ
많이 미안해하네.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마음에도 없는 채팅을 보냈다.
이주원 : 아냐아냐. 이제부터 예전처럼 아저씨라 불러줘 ㅎㅎ
오예림 : 아 진짜ㅏ ㅠㅠ 왜 그래요.
어쨌든 나인 걸 밝히긴 잘 한 거 같다.
그대로 뒀다면 아마 동건이는 방송이 끝날 때까지 불안해서 어쩔 줄 몰라했을 테니.
나인 걸 알아봤다지만 뻥인 게 당연하고.
어느새 심사는 끝나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은 건 장원석이었다.
그는 특유의 능청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주연쒸~”
“네.”
“이게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야.”
여지없이 그도 극찬을 쏟아냈다.
그러고선 장난스레 말했다.
“근데 주연씨.”
“네.”
“아는 오빠, 이런 말 되게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거 알아요?”
설마 여기서도 언급될 줄이야.
한 템포 늦게 말뜻을 알아들은 주연이가 화들짝 놀라 몸을 들썩였다.
세상 당황한 목소리가 이어진다.
“아, 아니에요!”
“뭐가요?”
“그런 거 아니에요!”
“하하, 그렇게까지 말하면 그 아는 오빠가 되게 속상해 할 수도 있겠는데?”
아무래도 장원석도 깨달은 모양이다.
장난칠 때 주연이의 반응이 얼마나 재밌는지.
짓궂은 장원석의 공격은 주연이의 한 마디로 정리됐다.
“딸도 있어요!”
“엥?”
“그 오빠.. 딸도 있다구요...”
훌륭한 디펜스였다.
웃음바다가 된 심사위원진.
유독 크게 웃던 장원석은 눈물까지 닦으며 말했다.
“아, 흐흐 미치겠네. 하여간 재밌는 캐릭터야.”
“감사합니다.”
“어구, 또 감사까지 해?”
마지막 멘트가 이어진다.
“어쨌든 진짜 잘 들었어요. 음원으로 나오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감사합니다!”
그 상태에서 심사위원이 회의에 들어갔다.
이후 주연이에게 주어진 등급.
“하주연 연습생, C입니다.”
납득 가능한 등급이었다.
두 번째 무대만 놓고 보면 의심의 여지없이 ‘A’겠지만 노래가 전부가 아니었으니까.
춤을 담당하는 심사위원이 입을 열었다.
“주연씨.”
“네.”
“알다시피 이건 아이돌 데뷔 멤버를 뽑는 프로그램이에요. 춤은 극복해야 된다는 거.. 알고 있죠?”
“.. 알고 있습니다.”
“할 수 있겠어요?”
주연이는 의지에 찬 표정으로 대답했다.
“꼭 극복하겠습니다!”
“흐흥, 그래요.”
그렇게 주연이는 C등급 목걸이를 건 채로 무대에서 내려갔다.
허나 등급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에게 주연이의 두 번째 무대는 A등급, 아니 그 이상의 임팩트를 남겼을 테니.
***
방송이 끝났다.
좋은 무대가 이어지고 첫 번째 단체 미션이 등장했다.
연습하는 장면까지 방영되고 방송이 마무리됐다.
‘재밌었어.’
방송은 전체적으로 재미있었다.
참가자끼리 친해지는 과정도, 갈등 과정도 모두 몰입이 됐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눈에 들어오는 참가자도 있었다.
‘이런 거구나.’
소위 말하는 ‘덕질’이라는 걸 왜 하는지 알 거 같았다.
프로젝트 101 홈페이지.
아직 내게는 앞서 투표한 주연이를 제외한 열 개의 투표권이 있었다.
그 전에 들어오는 현재 순위.
첫 방송 때 83등에서 23등이 됐고, 그렇다면 오늘은……
‘10등인가.’
101명의 참가자 중에 현재 주연이의 순위는 10등이었다.
솔직히 아쉬운 수치다.
무대 임팩트만 놓고 보면 1등을 거머쥐어도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뭐, 그런데 이것도 나쁘진 않지.’
차근차근 올라가는 그림이 더 좋았다.
사실 이 정도 상승세도 차근차근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긴 했지만.
쟁쟁한 기획사의 참가자들 사이에서 2회 만에 데뷔권 안에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성과였다.
“아빠..”
떨리는 연두의 목소리.
“주연이언니.. 10등이에요?”
“맞아.”
남은 회차는 아직 많았다.
결국 최종 데뷔는 그 기간 동안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셈이다.
그러니 지금은 지금 순위에 기뻐하기로 하자.
“10등...”
중얼거리던 연두는 벅차오르는 표정으로 말했다.
“열 한 명...”
“응?”
“프로젝트 일영일은 열한명이 데비할 수 있어요! 일등부터 십일등까지!”
다짜고짜 프로그램 컨셉을 읊고서 연두는 얘기했다.
해맑게 웃으며.
“주연이언니는 십등이니까 데비할 수 있어요!”
“하하..”
아무래도 벌써 데뷔를 한다고 생각하나 보다.
하기야 조금 복잡하긴 하지.
연두가 이해하기에는.
“아직 정해진 건 아니야, 연두야.”
“으응..?”
“데뷔 멤버가 정해지는 건 마지막이거든. 주연이언니가 마지막까지 탈락하지 않고 11등 안에 든다면 데뷔할 수 있는 거지.”
“그, 그러쿠나...”
조금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는 연두를 향해 말했다.
“연두야.”
“네, 아빠!”
“이 투표 말이야. 총 열 한 명을 뽑을 수 있거든? 그러니까 주연이언니 말고도 열 명을 더 뽑을 수 있다는 거지.”
“네에.”
“그래서 말인데, 우리 나머지 열 명을 더 뽑아볼까?”
첫 방송 때는 주연이만 투표했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조금 더 데이터가 쌓였다.
주연이와 잘 맞을 거 같은 팀 멤버를 뽑는다는 취지니 좋을 거 같기도 하고.
‘.. 연두픽도 궁금하단 말이지.’
절대 내가 투표하고 싶은 친구가 있거나 해서 하는 제안은 아니었다.
그래도 공평해야 하니까.
“아빠 다섯명, 연두 다섯명. 어때?”
“좋아요!”
다행히 연두는 동의했다.
그렇게 바라본 투표창.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가장 먼저 한 참가자를 가리켰다.
“세은이언니!”
“유세은!”
처음부터 마음이 맞았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껏 주연이와 가장 접점이 많은 참가자였다.
처음부터 주연이를 향해 호감을 보인 유일한 참가자기도 했고.
“착한 언니……”
아직도 연두는 품성을 고집하고 있다.
뭐, 맞는 거 같긴 하지만.
나는 빙긋 웃으며 장난스레 말했다.
“연두가 먼저 가리켰으니까 연두가 투표권 쓴 거다?”
“.. 네?”
“그러니까 연두 남은 투표권 네 개, 아빠는 하나 더 많은 다섯개!”
동시에 손가락을 쫙 폈다.
내가 생각해도 세상 유치한 모습이었다.
약이 바짝 오른 표정으로 연두는 말했다.
“아, 아빠..”
“응? 뭔가 할 말이라도……”
“아빠 치사 빤스에요..!”
“...”
치사 빤스.
이 말을 내가 연두에게 듣게 되다니.
괜히 나는 말했다.
“어허. 그런 말 하면 못 써요.”
그러자 연두가 흠칫하더니 묻는다.
“나쁜 말이에요..?”
“응?”
“치사 빤스. 나쁜 말이에요..?”
생각해 보니 딱히 나쁜 말은 아니다.
치사랑 빤스.
떼어놓고 봐도 비속어는 아니지 않은가.
“.. 아니네?”
“그럼.. 아빠 치사 빤스에요!”
“허.”
조금 오기가 생겼다.
이렇게 된 이상 진짜 치사 빤스가 뭔지 보여주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치사 빤스 아빠는 다섯 표 있고 연두는 네 표 있는 거다? 신난다!”
“우으...”
장난기가 발동이 걸린 지금의 나는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그 순간 궁금해졌다.
어떤 행동을 했을 때의 연두의 반응이.
나는 일부러 과한 모션을 취하며 말했다.
“그럼 아빠 뽑는다?”
입을 삐죽 내민 채로 대답이 없다.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이 정도로 토라진 연두의 모습을 보는 건.
애석하게도 나같은 녀석은 꼭 한 발자국 더 나가야 직성이 풀리는 짓궂은 아빠였다.
“아까 방송 보는데 진짜진짜 예쁘고 귀여운 언니가 있더라구.”
꿈틀.
연두가 반응한다.
토라져 있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한다.
사실 아직 그 예쁘고 귀여운 대상이 누군가는 생각도 안 한 상태였다.
슬쩍 눈치를 보며 찾는 척을 하고 있으니 들려오는 목소리.
“.. 진짜진짜 예쁘고 귀여운 언니요?”
“응.”
“얼마나여?”
“흠, 글쎄.”
멈췄어야 했다.
거기서 멈췄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그런데 이미 연두의 반응을 끌어내는 데 재미가 들린 내 입은 결국 선을 넘어버렸다.
“아빠가 살면서 본 사람 중에 제일 예쁜 거 같기도 하고.”
“살면서 본 사람 중에여?”
“응.”
“그, 그럼.. 연두보다도요?”
연두를 바라봤다.
빤히 바라보는 얼굴이 너무 예뻐서 순간적으로 고개를 저을 뻔 했지만 간신히 참아냈다.
그러고선 능청스레 말했다.
“그런 거 같기도 하고?”
“...”
슥.
연두가 일어났다.
동시에 들려오는 짤막하면서도 힘없는 한 마디.
“다 줄께요..”
“.. 어?”
“연두 투표건 네 개.. 아빠 다 줄께요...”
아싸, 아홉개!
그 말을 뱉지는 않았다.
아무리 내가 눈치가 없기로서니, 이 분위기도 못 읽을 만큼 바보는 아니었으니까.
뒤돌아선 연두가 터덜터덜 걸어간다.
향하는 곳은 방이었다.
콩.
작게 닫히는 문.
그 소리를 듣는 동시에 나는 직감했다.
이번만큼은 연두를 진짜 삐지게 만들어버렸다는 걸.
***
처음이었다.
삐진 걸 본 적은 많지만 이렇게 행동으로 나타난 건 처음이었으니까.
간접체험을 한 기분이었다.
‘중이병 연두.’
연두튜브에 그렇게나 언급됐던 중이병에 걸린 연두를 말이다.
물론 전적으로 내 잘못이라는 점에서 할 말이 없긴 했지만.
문도 ‘쾅’ 닫은 게 아니라 ‘콩’ 닫기도 했고.
똑. 똑.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
기척이 없어서 한 번 더 두드렸다.
자그마한 발걸음 소리.
얼마 지나지 않아 스르륵 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공주님?”
여전히 토라진 표정으로 연두는 대답했다.
“연두 공주 아니에여...”
“왜죠?”
“안 예쁘니까요.”
단단히 삐졌구만.
“그럴 리가요. 연두 공주님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데요?”
“아빠 나빠여..”
“네?”
“아빠는 거짓말 안 친다고 했으면서……”
확실히 그랬다.
아까의 내 말과 지금의 말은 동시에 성립할 수 없으니까.
“미안해, 연두야.”
“아니에요..”
“거짓말해서.”
깔끔하게 인정했다.
“연두한테 장난치고 싶어서 아빠가 거짓말을 해 버렸네.”
“.. 응?”
“거짓말이란 거 되게 힘든 거구나.”
아리송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연두를 향해 얘기했다.
“아빠 피노키오 되는 줄 알았잖아.”
“거짓말쟁이 피노키오여?”
“응. 연두보다 예쁜 사람을 봤다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려 하니까 막 입이 간질간질하고 코도 간질간질하더라구.”
능청스레 덧붙였다.
“그래서 거울까지 봤다니까? 아빠 코 길어졌나 하고.”
“.. 흣.”
웃는다.
다행히 꽤나 효과가 있었다.
이럴 때는 기세를 몰아 완벽하게 종지부를 찍을 필요가 있었다.
‘마침 필요하던 참이었고.’
곧 가게 될 독일 여행.
여행하는 동안 어느 정도 휴재는 필요할지 몰라도 아예 내팽개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진짜 큰일날지도 몰라.
따라서 유투브 콘텐츠를 비축해 둘 필요가 있었다.
‘꺼내 볼까.’
지금이 적기였다.
연두의 속상한 마음을 단번에 풀어주는 동시에 유투브 콘텐츠까지 확보할 수 있는 기회.
필살기를 꺼낼 차례였다.
연두를 소파에 앉힌 뒤에 나는 말했다.
“연두야.”
“네.”
“이제부터 아빠가 마술을 보여줄게.”
마법이 아니었다.
이주원의 마술쇼 개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