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4화. 진심
“도연이가 대학원을 갈 생각이었다는 거 말이에요.”
순식간에 달라진 분위기.
교수님의 한 마디에는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있는 거 같았다.
적어도 내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대학원.’
생각해 보면 그랬다.
초중고, 그리고 대학 과정과 달리 대학원은 오직 학생에게만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게 아니다.
또 누가 있냐고?
그 존재는 다름 아닌 교수였다.
잘은 몰라도 훌륭한 학생이 대학원을 진학하는 건 교수 입장에서 무척 좋은 일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실적에도 도움이 되고.’
서도연.
의심의 여지 없이 그녀는 훌륭한 학생이다.
수석인 건 둘째치고 열심히 하는 데다가 실력까지 뛰어나니 말이다.
내가 교수라도 대학원으로 학생을 데려가야 한다면 1순위로 서도연을 생각하겠지.
서도연이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었다는 건 알지 못했다.
아니, 알 수 없었다.
그와 관련해서 묻지 않은 건 아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있나요?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이라든지.’
그런 내 물음에 서도연은 답했다.
‘아뇨. 그냥 쉬고 있어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뒤에 이런 속사정이 숨어있을 거라고는 조금도 짐작 못 한 채로.
생각이 차곡차곡 정리된다.
그 끝에 나오는 결론은 하나였다.
‘결정한 거야.’
카페에서 대화를 나눈 시간은 기껏해야 두 시간 남짓.
저울질할 시간은 짧았다.
더군다나 그건 서도연에게 있어서 인생이 달린 문제였다.
그런데도 그녀는 말했다.
‘같이 일하고 싶습니다.’
선택을 보류하지도 고민하는 내색을 보이지도 않았다.
마음속에서는 수없이 갈등했을 테지만.
툭.
차를 내려놓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다.
이제는 어느 정도의 관계성도 이해가 간다.
교수님의 입장에서 나는 대학원을 목전에 둔 학생을 가로챈 사람이 된 걸지도 모른다.
입 밖으로 실소가 새어 나온다.
‘이런 식으로 엮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좋은 기억뿐이었다.
대학 입시 때는 실기생과 심사위원으로, 공모전 때는 수상자와 심사위원으로.
마지막 기억은 마주 보고 웃으며 식사를 하던 장면이다.
분명히 그때 말했지.
‘목표라면.. 처음 얘기하는 거라 조금 쑥스럽긴 한데, 작화팀을 만들 계획입니다.’
심지어 교수님의 물음에 건넨 답이었다.
모르겠다.
그때의 말을 기억하고 계실지.
설사 기억한다고 해도 그게 이 상황에 크게 중요하지는 않겠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자리에도 없는 서도연을 사이에 두고 숨 막히는 대화를 하고 있는 실정이니 말이다.
“몰랐나 보군요.”
“네, 몰랐습니다.”
솔직하게 답했다.
그런 내 말에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교수님은 입을 뗐다.
“도연이는 훌륭한 학생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한다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줄 생각이었죠. 전에 말한 것처럼 무척 아끼는 제자니까요. 물론 도연이의 존재는 저한테도 큰 힘이 될 테고요.”
거친 느낌은 조금도 없다.
그런데도 차분히 뱉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처럼 날아와 심장을 찌르는 기분이다.
동시에 솔직했다.
서도연이 대학원에 진학할 경우에 자신에게 득이 될 거라는 사실도 빼놓지 않고 말했으니.
교수님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도연이의 앞길은 분명히 밝았을 겁니다. 제가 말하지 않아도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아이니까요. 저처럼 교수가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겠죠.”
이쯤 되면 모를 수가 없었다. 교수님은 압박을 가하고 있다.
꽃길이 예정되어 있던 서도연의 앞길을 내가 가로막기라도 한 것처럼.
머릿속에 생각들이 흘러 다닌다.
‘뭐라고 답해야 하지.’
교수님의 말에 틀린 건 없다.
딱히 나를 직접적으로 질책한 것도 아니고, 그저 예정된 서도연의 미래를 읊어준 것뿐이니까.
납득이 안 가는 것도 아니다.
교수는 명예로운 직군이고, 100%가 아니라 해도 신생 작화팀에 들어가는 것과 대학원 진학은 안정감에서 비교조차 할 수 없겠지.
특히나 미술 분야에서는.
그럼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 게 맞는 걸까.
슥.
교수님은 지그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대답을 기다리는 거겠지.
여전히 내 머릿속에는 수십 개의 생각들이 떠다녔다.
사과를 할까?
자세한 사정은 몰랐다며, 도연씨에게 더 좋은 미래가 있다면 보내주는 게 맞다고 이야기할까.
그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서도연이 없다고 해서 작화팀을 만들 수 없는 건 아니다.
다른 훌륭한 재원들도 많고 앞으로도 훌륭한 인재는 얼마든지 충원할 수 있었다.
“...”
초조함 속에 시간이 흘러가고 머릿속에는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마침내 흘러나오는 한 마디.
“.. 죄송합니다.”
결국 내 입에서 나온 건 사과였다.
처음으로 보였다.
교수님의 흔들리는 눈동자와 동요한 표정이.
그 입이 작게 벌어지는 찰나, 나는 다시 한번 목소리를 냈다.
“교수님 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 뭐라고요?”
“교수님은 좋은 분이시고 도연씨는 뛰어난 제자니까요. 그건 누구보다도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도연씨가 대학원에 진학한다면 분명 밝은 미래가 펼쳐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하지만 죄송합니다.”
조금 감정적이 된 걸까.
교수님 말을 끊어버렸다.
어느새 내 입은 내 의지와 관계없이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벌써 두 번째 사과.
생각한 대로 나는 사과의 말을 연달아 뱉고 있었다.
허나 그 이유는 생각과는 달랐다.
나름 합리적으로 생각한다고 했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결국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 나를 에워싸고 있는 가장 강한 감정을.
그건 거부감이었다.
‘왜 양보해야 하지?’
위협받는 게 싫었다.
그래, 알겠다. 서도연에게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건.
그런데 어쩌란 거지.
두 가지의 선택지, 그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건 다름 아닌 서도연이었다.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서도연은 선택했다.
그 시점에서 서도연은 작화팀의 일원으로 정해졌다.
동료가 됐다.
그녀가 스스로 선택한 시점부터, 이제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게 됐다는 거다.
설사 그게 교수님이라고 하더라도.
‘나 역시 마찬가지야.’
작화팀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생긴 시점부터 수없이 새긴 단어가 있다.
책임감.
그 대상은 팀원이었다.
스스로 팀원이 되기로 선택한 사람을 타인의 말에 의해 쉽게 놓아버리는 짓만큼은 할 수 없었다.
그럴 거라면…… 시작조차 안 했으니까.
“도연씨는 많은 고민을 했을 겁니다.”
“...”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결코 가볍지 않았다.
작화팀과 팀원을 대하는 데 있어서의 내 마음가짐은.
“그 고민 끝에 나온 선택이라면 도연씨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교수님이 말씀하신 도연씨의 미래보다 더 밝은 미래를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말을 끝맺었다.
“그게 제 생각입니다.”
과거의 나였다면 압박을 느꼈을 때 바로 수긍하고, 딱히 잘못한 게 없으면서 사과했을지도 모른다.
방금과는 다른 의미로.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답변이 옳은 건지는 모르겠다.
허나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후련해.’
눈치 같은 건 보지 않았다.
오로지 내 마음 가는 대로 이야기했다.
이제는 교수님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와도 상관없을 거 같았다.
그런데도,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 다행이네요.”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교수님의 입에서 흘러나왔으니까.
“그렇게 말해줘서.”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교수님은 지금껏 본 그 어떤 표정보다도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
홍원대 복도.
“땅콩.”
“네.”
“보고 싶은 거 있어?”
우영이는 연두의 손을 살짝 잡고 있었다.
불가항력이었다.
눈치가 보이긴 하지만 살짝이라도 잡고 있어야 미아가 되는 걸 방지할 수 있으니까.
다른 쪽 손을 번쩍 든 연두가 말했다.
“그림!”
“뭐?”
“우영이오빠가 학교에서 그린 그림 보고 싶어요!”
떠오르는 난처한 표정.
그림을 보여주기 위해서 가야 하는 장소는 화실 하나뿐이다.
멀지도 않다. 그런데도 꺼리는 이유는 하나였다.
동기들이 있기 때문.
“다른 건 없어? 그림 말고.”
“...”
축 처지는 어깨.
이제는 실망감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법을 배운 연두였다.
그 모습을 본 우영이는 말했다.
“알겠어. 보여주면 되잖아.”
“진짜여..?”
“그래.”
금세 바뀐 표정을 보고 우영은 입가에 실소를 머금었다.
바로 도착한 화실.
빼꼼 문을 열고 보니 역시나 동기들이 보인다.
“어.. 우영 하이.”
눈이 마주친 학생이 어색하게 인사를 건넨다.
“어.”
“오늘은 좀 늦게……”
재차 어색한 멘트를 던지려던 동기의 눈이 태평양처럼 커다래졌다.
석상처럼 얼어붙은 모습.
“아, 안녕하세여..”
앳된 목소리에 화실 내 학생들의 시선이 전부 쏠린다.
사실상 예정된 수순이었다.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야단법석이 된 화실.
“후우...”
우영은 말없이 이마를 부여잡았다.
“뭐야, 뭐야?”
“잠깐만.. 미친.”
“연두가 왜 여기에 있어? 우영이 너 보러 온 거야?”
평소에는 거의 말을 섞지 않는 동기도 흥분한 나머지 질문을 쏟아냈다.
대신 연두가 답하긴 했지만.
“네! 우영이오빠 보러 왔어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주원도 연두도 이곳에 온 건 우영이를 보기 위해서였으니까.
또 질문이 마구 쏟아졌다.
“와, 대박.”
“개부럽다...”
“우영! 연두랑 친한 건 어떤 기분이야?”
답을 전부 생략한 우영은 말했다.
“신경 안 쓰고 그림 그려도 돼. 내 그림 보고 싶다고 해서 데려온 거니까.”
“어이, 그건 아니지!”
“연두가 왔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 써!”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우영아. 많이 늦긴 했지만. 흐하하!”
아무래도 의미가 없을 거 같다.
그렇게 판단한 우영은 연두를 데리고 자리에 가서 앉았다.
이젤 위 그림을 본 연두가 말했다.
“우영이오빠 그림이다..”
“어떻게 알았어?”
“우영이오빠 그림 많이 봤어요. 그래서 알아요..”
“.. 그래?”
어느새 학생들은 뒤쪽으로 가서 둘을 에워싸고 있었다.
연두는 자그맣게 물었다.
“아직 다 안 그린 거에요..?”
“응, 그리는 중이야.”
“어떻게 그려요?”
그 말에 우영이는 대답 없이 펜을 쥐었다.
슥. 슥.
준비 없이 쥔 펜이지만 우영이의 손은 거침이 없었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소리 없는 감탄사.
그럴 만도 한 게, 이렇게 빠른 속도로 그리는데 퀄리티까지 뛰어나니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성격이 대하기 어려울 뿐 실력에 있어서는 모두가 인정하는 우영이었으니까.
“너도 해 볼래, 땅콩?”
조금 그리다가 우영이는 연두에게 펜을 쥐여줬다.
“연두가요..?”
“응.”
“어디에요?”
“어디긴. 여기 있잖아.”
우영이가 가리킨 건 방금까지 그림을 그리던 종이였다.
깜짝 놀란 연두는 고개를 휙휙 저었다.
“안 돼요!”
“왜?”
“연두가 그림 그리면 우영이오빠 화나요..!”
전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주연이의 채널아트를 그릴 때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던 연두였으니까.
대수롭지 않다는 듯 우영은 답했다.
“괜찮아. 학교 과제도 아니고 연습하는 거니까.”
“그래도 안 돼여..”
“고집은. 그럼 손 이리 줘 봐.”
해결법 역시 동일했다.
주원이 그랬듯 우영도 연두의 손을 겹쳐 잡았다.
“손에 힘 빼고.”
“어, 어...”
스윽.
이번에는 저항할 틈도 없었다.
우영이의 손안에 쏙 들어간 연두의 자그마한 손은 의지와 관계없이 움직였다.
역시나 거침없는 움직임이었다.
사각. 사각.
뒤에서 보고 있던 학생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선우영 원래 자기 미술도구도 못 만지게 하지 않냐? 그런데 애기한테 그리던 그림을 내어준다고?”
“저 스윗함 뭐냐고.”
“난 잘 모르겠고.. 연두한테서 눈을 못 떼겠다.”
어느새 연두는 완전히 손을 맡긴 상태였다.
“우아...”
그림은 조금도 망가지지 않았다.
아빠와 함께 주연이언니 채널아트를 그리던 때처럼.
한동안 그림을 그리다가, 둘은 아쉬워하는 학생들을 뒤로하고 화실을 나왔다.
“어때, 재밌었어?”
“네! 진짜 재밌었어요...”
“뭐, 다행이네.”
“아빠가 작화팀 만들면 연두도 많이 놀러 가기로 했어요. 우영이오빠도 이제 많이 볼 수 있겠다, 헤헤...”
피식 웃으며 우영이는 답했다.
“학교나 열심히 다녀.”
“학교도 열심히 다닐 거에요!”
“원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가 둘 다 놓치는 법이야. 나 같은 천재는 둘 다 잡지만.”
“...”
고개를 갸웃한 우영이는 물었다.
“왜 이번에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냐?”
그 말에 연두는 풀 죽은 목소리로 답했다.
“…… 서요.”
“뭐?”
“연두는.. 천재는 아닌 거 같아서요. 공부도 잘 못 하고...”
“푸흣.”
웃음이 터진 우영이는 연두의 머리를 살짝 두드리며 말했다.
“괜찮아.”
“으응?”
“원숭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땅콩 너한테도 재주 하나쯤은 있잖아.”
“재주요?”
“뭘 모르는 척이야. 피아노.”
“아!”
깨달음을 얻은 듯 연두는 얘기했다.
“맞아요! 피아노 잘 쳐요!”
“그래, 그럼 된 거지.”
“지우한테는 연두가 피아노 선생님이에요!”
“지우?”
“연두 친구요. 윤지우!”
생긋 웃으며 연두는 덧붙였다.
“나중에 우영이오빠도 가르쳐줄게요.”
“뭐, 피아노?”
“네. 우영이오빠도 연두한테 그림 가르쳐줬으니까……”
대화는 잘 이어졌다.
작업실에 도달할 즈음, 연두는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
“우영이오빠.”
“응.”
“선화초등학교 운동회 해여..”
“운동회?”
“네. 우영이오빠도 와요!”
다짜고짜 오라는 말에 우영은 물었다.
“왜. 너 무슨 계주야?”
“..!”
움찔하는 모습을 보고 덧붙였다.
“딱 보면 잘 뛸 거 같지는 않은데.”
“..!”
또 정곡을 찔린 표정이다.
어두워진 낯빛.
고개를 홱홱 저은 연두는 힘주어 말했다.
“.. 계주는 아니에여.”
“그럼?”
“연두는.. 응원부장이에요!”
“응원부장?”
“네. 우영이오빠도 와서 연두랑 같이 응원해요! 달려라, 백팀! 달려라, 백팀! 이 세상 끝까지~ ♪”
이윽고 우영이의 입에서 나온 건 짤막한 한 마디였다.
“안 가.”
***
“다행이네요. 그렇게 말해줘서.”
대체 뭐지.
생각한 반응과는 너무 달라서 나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를 향해 교수님은 말을 이었다.
“미안해요.”
“네?”
“그 아이를 아끼는 사람으로서 알고 싶었거든요. 주원씨 각오가 어느 정도인지. 도연이를 어느 정도로 생각하는지.”
“잠깐만요. 그 말씀은……”
“역시 주원씨는 내가 생각하던 그대로의 사람이었네요.”
미안함을 머금은 표정으로 유호걸은 물었다.
“기분 많이 상했나요?”
그런 거였구나.
얼떨떨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허나 괜찮았다.
방금 교수님과의 대화로 인해 나도 다시 한번 내 각오를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아닙니다.”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나 역시 아끼는 누군가가 어딘가에 소속되게 된다면 최소한 그 대표에 대한 검증은 거칠 거 같으니.
주연이 때도 그랬고.
“얼마 전에 도연이가 찾아왔어요.”
“네.”
“저한테 말하더군요.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겠다고,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고.”
그는 미소를 머금은 채로 말을 이어갔다.
“그 아이의 그런 표정을 보는 건 처음이었어요.”
“표정이라면……”
“늘 그랬거든요. 누구보다 열심히 하지만, 막상 열심히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모르는 느낌이라 해야 하나.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더군요.”
이어지는 말은 내게도 깊숙이 다가왔다.
“그건 무언가를 진심으로 하고 싶어 하는 눈빛이었어요.”
“.. 그랬나요.”
“저는 생각해요. 그 눈만큼 아름다운 건 이 세상에 없다고.”
교수님이 나를 향해 걸어왔다.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그렇게 내 앞에 도달한 그는 재차 입을 열었다.
“아까 그랬죠?”
“네?”
“제가 말한 미래보다 더 밝은 미래를 만들어주고 싶다고.”
허공에 뻗는 손.
“도연이를 잘 부탁할게요.”
진심은 언제나 와닿는 법이다.
그리고 나는 확신했다.
지금 마주 보는 눈과, 이 손에 담긴 감정은 한 치의 거짓 없이 진심이라고.
그래서 교수님의 말대로 아름다웠다.
척.
피하는 건 도리가 아니었다.
손을 맞잡았다.
내가 담을 수 있는 진심을 모두 끌어모아서.
지금껏 내가 해 본 악수 중에서 가장 많은 것들이 담긴 무거운 악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