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7화. 개막식
내일은 운동회였다.
형아들을 보러 가는 것과 더불어 손꼽아 기다리던 이벤트 중 하나.
그래서인지 연두는 잠을 못 이루고 있다.
‘하긴, 첫 운동회니까.’
계주가 아니라고 해서 운동회에 참여하지 않는 건 아니다.
응원부장이라 해서 응원만 하는 것도 아니고.
까마득하긴 하지만 내 기억상 여러 종류의 경기가 있고, 계주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학생이 참여하는 걸로 알고 있었다.
당연히 연두도 마찬가지겠지.
“연두야.”
“네, 아빠..”
“내일 운동회에서 경기하는 종목 알고 있어? 이어달리기 말고.”
연두는 응원부장이다.
응원구호를 준비해야 하는 입장인 만큼 알고 있을 확률도 높았다.
아니나 다를까 연두는 대답했다.
“박 터트리기...”
추억이 물씬 떠오른다.
다같이 콩주머니를 던져, 어떤 팀이 먼저 박을 터트리는지를 겨루는 게임이었지.
팡 하고 터질 때의 쾌감이 상당했던 거 같은데.
아직도 그거 하는구나.
“또?”
몇 개의 게임이 더 흘러나왔다.
운동회의 마스코트인 줄다리기는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그 외에도 익숙한 종목들과, 미처 생각지 못한 종목들도 섞여있었다.
“그게 전부야?”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연두도 모든 종목을 다 알고 있지는 못한 모양이다.
사전에 체육시간에 연습했거나, 선생님이 알려준 것들이 지금 말한 전부라는 거지.
총평을 하자면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종목이 많이 겹치네.’
하기야 그랬다.
근본에 충실하면 밑져야 본전인 법이니.
실패할 확률은 현저히 줄어드는 데다가, 학교 측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이벤트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도 묘하게 설레는 기분이다.
학부모로서 운동회에 참여하는 건 나 역시 처음이니 말이다.
‘.. 항상 이러네.’
연두로 인해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날 때면 늘 함께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다름 아닌 아빠였다.
그 순간들에는 항상 아빠가 함께하고 있었으니까.
문득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의 내 곁이 그저 빈 공간이 아니라, 환하게 나를 보며 웃어주는 아빠가 있었다는 게.
이렇게 떠올릴 수 있다는 사실이.
‘채워주고 싶어.’
나 역시 그 빈 공간을 채워주고 싶었다.
나중에 연두가 과거를 추억할 때, 그 시간 속에 빠짐없이 꼭 내가 있었으면 했다.
물론 나는 그때에도 연두의 곁에 있을 테지만.
“많이 떨려, 연두야?”
괜히 애틋하게 목소리가 나갔다.
“.. 네.”
“운동회에 갈 생각에 설레서 떨리는 거야, 아니면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돼서 떨리는 거야?”
“둘 다요.. 설레고 걱정돼서……”
둘 다라.
아무래도 자신감을 불어넣어 줄 필요가 있겠군.
시선을 맞추며 힘주어 말했다.
“연두야.”
“네.”
“아빠는 운동회를 해 봤잖아. 아빠도 연두처럼 꼬꼬마 시절이 있었으니까.”
아차.
어쩌다 보니 예민한 부분을 건드려버렸다.
입이 삐죽 나온 연두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말한다.
“꼬꼬마 아닌데……”
혼잣말하듯 덧붙인다.
“우영이오빠는 맨날 땅콩이라고 하고, 할머니는 쥐방울이라 하고, 그리고……”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심통이 나서 투덜대는 말투를 구사하는 건 또 새로운 모습이다.
하기야 그럴 만도 하다.
땅콩에 쥐방울에 꼬꼬마까지 추가되는 거니까.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유성초 스나이퍼, 평화고 미켈란젤로, 그리고……’
또 하나가 추가된다고 보면 된다.
끔찍한 일이군.
고개를 휙휙 저어 생각을 떨쳐낸 나는 말했다.
“연두 꼬꼬마 아니야?”
“네.”
“그럼?”
“어린이에요! 연두도 클 만큼 컸어요..!”
“푸흣.”
이런 표현은 어디서 배운 건지.
유리도 그렇고 가끔 이런 조숙한 표현이 튀어나올 때면 웃음이 나오곤 했다.
애써 웃음을 그친 나는 말했다.
“알겠어, 우리 어린이 연두.”
“네에.”
“어쨌든 아빠는 운동회를 해 봤거든? 그래서 방법을 한 가지 알고 있어.”
“어떤 방법이요..?”
호기림 어린 눈으로 되묻는다.
좋은 반응이다.
뜸을 들일 대로 들인 후에 나는 굉장히 있어보이게 입을 뗐다.
“줄다리기 잘 하는 방법.”
“...!”
둥글어지는 눈.
보아하니 줄다리기에 대한 고민이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빙고였다.
내가 말을 꺼내기 전에 연두가 먼저 얘기했다.
“청팀에는요..”
연두가 백팀이니 청팀은 반대팀이다.
“힘이 쎈 친구들이 엄청 많대요.”
“그래?”
“네, 재호가 그랬어요..”
비집어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어떻게 이렇게 각본을 쓴 것처럼 척척 맞아떨어질 수 있는 건지.
걱정스런 표정의 연두를 향해 말했다.
“괜찮아, 연두야.”
“으응..?”
“아빠가 알려주려는 방법은, 힘이 약한 팀이 강한 팀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거든.”
“...!”
다시 한 번 연두가 흠칫 몸을 들썩인다.
바로 지금이었다.
사실 내 운동회 경험과는 관계없는, 줄다리기의 비기를 전수해줄 타이밍.
“잘 들어봐, 연두야.”
“네, 아빠..”
“줄다리기는 말이야. 힘으로만 허는 게 아니야. 아빠가 소싯적에……”
나는 알 수 있었다.
지금 내 영혼은 주원이 아닌 깐부할아버지에 완벽하게 빙의했다는 걸.
설명은 한참동안 이어졌다.
***
다음날 아침.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나는 잠든 연두를 그대로 두고 방을 나왔다.
문을 닫는 것도 잊지 않았다.
‘좋아. 시작해 볼까.’
운동회에 관한 가정통지문을 받았다.
일정이 나온 건 아니지만 학부모가 준비해야 할 사항들이 적혀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도시락이었다.
점심을 넘어서까지 운동회가 진행되는 만큼 식사는 당연히 준비해야 했다.
그에 따라 꽤나 특별한 메뉴를 준비해 볼 계획이다.
그게 뭐냐고?
바로 김밥이었다.
특별한 메뉴라면서 고작 김밥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해해 주길 바란다.
그야, 나는 김밥은 만들어 본 적 없거든.
이호연을 스승님으로 모신 뒤에 수많은 요리를 섭렵했지만 김밥을 만드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별로 좋아하지도 않지.’
소풍이나 도시락의 대명사로 꼽히는 김밥이지만 딱히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었다.
누구나 그런 게 하나쯤은 있는 법이다.
다들 호불호 없이 좋아하는데도 왜인지 입에 안 맞는 음식이.
내게는 그게 김밥이었다.
‘그 생각이 처음 깨진 게 동물원 때였고.’
세연씨가 만들어 온 김밥을 먹고 눈이 번쩍 뜨였지.
김밥이 이런 음식이었나 하고.
세연씨가 마음 먹고 만든 요리는 셰프 못지않을 정도였다.
이제는 나도 요리 경력이 꽤나 쌓인 만큼, 연두가 먹고 놀랄 만한 김밥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탁.
먼저 계란을 풀었다.
어떤 요리든 변화를 주더라도 근본에 충실해야 한다.
김밥에 있어서 그 근본에 해당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계란이었다.
“소금소금소금……”
이제는 버릇이다.
이걸 해 주지 않으면 이호연의 제자라고 할 수 없다.
딱히 레시피는 보지 않았다.
이제는 재료만 확정해 두면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감이 오는 경지에 도달한 상태니까.
첫 미션은 계란말이 만들기였다.
‘완벽하군.’
사실 싱거운 미션일 수밖에 없었다.
계란과 관련된 요리는 자취하던 시절에 마스터했으니까.
완성된 계란말이는 도톰하고 길게 썰어서 준비해 둔 뒤에, 다른 재료들도 손질을 시작했다.
탁. 탁. 탁.
특별할 건 없었다.
‘게맛살, 오이, 양상추, 햄, 당근.’
전부 비슷한 방식으로 재료를 손질했다.
딱 기본 재료였다.
아까의 표현을 빌리자면 근본은 완성된 상태, 그러나 이대로 끝낼 생각은 없다.
이대로는 평범한 김밥밖에 되지 않으니까.
툭.
이게 바로 내가 선택한 메인이 되는 재료.
바로 돈까스였다.
자글자글 튀겨서 꺼낸 뒤에 대략 1cm 정도의 두께로 썰어줬다.
돈까스가 들어가니 소스도 빠질 수는 없었다.
특제 소스.
재료는 두 가지다. 돈까스소스랑 마요네즈.
내게 있어서 마요네즈는 후추와 마찬가지로 들어가서 맛 없기가 힘든 녀석이었다.
휘릭휘릭 저어서 콕 집어서 먹어봤다.
‘이거 뭐야.. 대단하잖아!’
요리만화에 등장할 법한 멘트가 절로 나온다.
물론 입 밖에 뱉지는 않았다.
아무리 혼자라고 해도 오글거림 수치가 치사량을 넘을 거 같았으니까.
아무튼 맛있다는 뜻이다.
이제 남은 절차는 하나.
고슬고슬 지은 밥을 김 위에 넓게 펴 바르고 재료를 하나하나 올려준다.
양상추, 계란, 게맛살, 오이, 햄, 그리고 대망의 돈까스까지.
사라락.
특제소스를 얹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제 말면 끝이다.
조심스레 두 손으로 잡고 힘주어 김밥을 돌돌 말기 시작했다.
“후우..”
중요한 건 일정한 힘을 가하는 것.
“.. 됐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밀려오는 성취감.
잘 말린 김밥의 윗면에 참기름을 솔솔 발라주고,
“깨깨깨...”
통깨도 적당히 뿌려줬다.
그렇게 완성됐다.
외관상으로는 김밥 전문점의 김밥에도 전혀 밀리지 않는 이주원표 돈까스 김밥이.
여러 레시피를 내 마음대로 짬뽕한 거긴 하지만.
‘뭐, 어때.’
중요한 건 맛이다.
꿀꺽 침을 삼킨 나는 김밥의 끝을 적당한 크기로 잘랐다.
소위 말하는 꽁다리라 칭하는 부분.
휙.
바로 입 안에 던져넣었다.
오물. 오물.
섞이는 재료, 그 조화가 만들어내는 맛.
그 맛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할 수 있었다.
극락 그 자체였다.
***
“우으...”
눈을 비비며 연두가 방을 나온 건 김밥을 완성한 후였다.
이미 통 안에 넣어뒀고.
그걸 꿈에도 모르는 채로 연두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일어났어여..?”
“응.”
이후에는 일사천리였다.
아침을 먹은 뒤, 치카치카 양치를 하고, 세안까지 마쳤다.
뒤이어 향한 곳은 드레스룸.
촤락.
장롱을 여니 옷들이 눈에 들어온다.
예쁜 옷이 많아 늘 고민하곤 하지만 오늘은 예외였다.
왜냐고?
이미 오늘 코디는 정해 둔 상태거든.
슥.
이든표 트레이닝복 상하의 세트.
베이스가 되는 컬러는 흰색이다.
백팀인 연두에게 찰떡이라 다른 선택지는 떠오르지도 않았다.
“자, 입어볼까?”
“.. 네!”
금세 옷을 갈아입은 연두가 나를 바라본다.
숨이 막힌다.
어떻게 이렇게 잘 어울리지?
대놓고 이렇게 흰색으로 맞춰입은 건 처음이라 더 임팩트가 큰 느낌이다.
찰칵!
도저히 안 찍을 수가 없었다.
“한 번 움직여 볼래, 연두야?”
“어떻게요..?”
“그냥 아무렇게나. 불편하지 않은지 확인해보려는 거니까.”
사이즈가 맞는 트레이닝복이니 불편할 리가 없지만 혹시나 해서 건넨 말이다.
그 말에 연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팔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제자리에서 빙 돌기도 한다.
“안 불편해여! 완전 편해…… 읍.”
“푸흣!”
웃음이 터졌다.
격하게 회전한 탓인지 머리카락이 그대로 연두의 입에 들어간 거다.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빼 줬다.
“.. 테! 테!”
표정을 찡그리며 머리카락을 뱉는 것도 귀여웠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일로 와, 연두야.”
“.. 으응?”
“머리는 아빠가 예쁘게 묶어줄게.”
이제 머리 묶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심지어 평범하게가 아닌, 내가 원하는 모양을 연출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어디 보자. 오늘은 어떻게 묶어볼까.
‘좋아.’
거창하게 묶지는 않기로 했다.
묶는 목적이 미관상의 이유보다는 활동할 때의 편이성을 위해서니까.
어떻게 묶어도 연두는 예쁘기도 하고.
“헤헤..”
바로 돌아서서 앉은 채로 머리를 내어준 연두.
신뢰하는 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그 믿음에 보답하는 수밖에.
슥.
먼저 느슨하게 머리카락을 잡아서 가볍게 묶어준다.
다음은 고무줄을 위로 당겨주고,
핑그르르.
머리다발에서 한 가닥을 잡아서 팽이를 돌리듯 감아준다.
고무줄을 가리기 위한 의도다.
마지막으로 얼마 남지 않은 그 가닥을 고무줄 안으로 쏙 넣어주면 끝이었다.
“.. 됐다.”
그 말에 연두가 휙 고개를 돌리며 나를 바라본다.
“다 됐어여..?”
“...”
어떡하지? 아까보다 더 예뻐졌잖아.
재차 확신했다.
어떤 방법으로도 연두의 미모를 가릴 수는 없겠다고.
***
학교에 도착했다.
운동회답게 벌써 학생과 학부모들이 도착해 운동장을 메우고 있다.
“어머!”
“오랜만에 뵙네요!”
“안녕하세요! 안녕, 연두야!”
먼저 인사를 건네오는 학부모도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마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 역시 모두 연두의 존재는 알고 있을 테니.
그런 와중 타이밍 좋게 마주쳤다.
“시은아!”
연두의 목소리.
그 말대로 시은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저만치 서 있었다.
다가가서 인사를 나눴다.
“교실에는 안 들어가도 되는 거죠?”
“네.”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는 말했다.
“운동장 집합이라고 적혀있었어요.”
“그렇죠?”
“아! 저기 선생님 계신다! 우리 저쪽으로 가면 될 거 같아요!”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5반 담임 김수희가 보였다.
바로 그쪽으로 걸어갔다.
다시 한 번 학부모들과 인사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우리 애가 연두가 착하다고 얼마나 칭찬을 하는지 몰라요.”
“어머.. 연두 너무 예쁘게 입었다, 얘.”
“안 그래도 예쁜데……”
정신없는 와중 고개를 돌리니 세연씨도 크게 상황이 다르지는 않았다.
또 한 분이 인사를 건네왔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성우 엄마에요. 입학식 때 뵀죠?”
확실히 본 기억이 있다.
성우에 대해서도 연두한테 많이 들었고.
콩쿠르 때 시은이와 함께 사회를 본 똑부러져 보이는 아이였지.
나는 능청스레 말을 받았다.
“네. 우리 5반 회장님 어머니시군요.”
“호호, 아니에요.”
“연두한테 성우 얘기 많이 들었거든요. 엄청 똑똑하고 멋진 친구라고.”
사실상 정해져 있었다.
학부모끼리 나누는 대화라면 아이에게 들은 이야기가 바탕이 될 수밖에 없으니.
옆에는 성우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안녕, 성우야.”
“안녕하세요.”
“기분이 되게 좋아보이네?”
빈말이 아니다.
표정에서 감출 수 없는 들뜬 감정이 묻어났으니까.
정곡을 찔린 듯 한차례 몸을 떨더니 애써 태연하게 답한다.
“그런 건 아닌데요.”
“그런데?”
“오늘 형이 오거든요.”
“형?”
“네. 형은 엄청 똑똑하고 학생회장이라 바쁜데, 오늘은 제가 운동회해서 특별히 보러 오기로 했어요.”
뭔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똑똑하고 학생회장이라 바쁜 건 알겠는데, 그게 동생 운동회를 보러 가는 이유가 되나?
동생 운동회는 그냥 가는 거잖아.
그런 의문은 이어지는 성우 어머님의 말에 단번에 풀렸다.
“첫째가 기숙사가 있는 학교에 다니거든요. 거리가 멀어서 오고 가기도 힘들고요. 그래서 안 와도 된다는데 기어코 오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랬군요.”
“자주 보지는 못해도 동생을 엄청 아껴서…… 성우도 마찬가지고요.”
기숙사는 인정이지.
오늘 공교롭게도 개교기념일이 겹쳤다는 모양이다.
좋아하는 형이 보러 온다는데, 이렇게 기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잘 됐다, 성우야.”
“흠.”
태연한 척 하면서도 입꼬리는 제어를 못하는 게 귀여웠다.
그때였다.
“저기.. 학부모님들. 잠깐만 주목해 주시겠어요?”
담임교사 김수희의 말이었다.
여전히 목소리는 작네.
그래도 처음에 비하면 한층 또렷해진 목소리였다.
“곧 운동회가 시작합니다. 그럼 학생들은 여기 남고 학부모님들은 저쪽 스탠드로 이동해 주시면 감사할 거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갈라져야 하다니.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아쉬운 기분이다.
뭐, 어쩔 수 없지.
연두의 손을 꼭 잡고 작별인사를 나눴다.
“아빠가 계속 지켜보고 있을게, 연두야.”
“네, 아빠..”
“어차피 조금 있으면 다시 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알겠지?”
고개를 끄덕인다.
이후 학부모 일동은 스탠드 지정석으로 이동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학생과 학부모가 전부 도착하고, 백팀과 청팀 아이들도 구분되어 한데 모였다.
그 속에서 들려왔다.
“안녕하십니까! 먼저 이 자리를 빛내주신 우리 선화초등학교 학생들, 그리고 학부모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교장선생님이었다.
입학식 때도 그랬듯 길게 말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부디 아이들과 더불어 함께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지금부터 선화초등학교 운동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끝이었다.
간결하고 담백한 멘트를 마치고 강당을 내려오는 교장선생님.
동시에 흘러나왔다.
두둥. 둥.
운동회 개막을 알리는 신나는 음악소리가.
드디어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