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1화. 형아학교 전학생
얼어붙은 건 이윤결뿐만이 아니었다.
연두도 마찬가지였다.
마술을 좋아하는 연두에게 있어서 이윤결은 그 어떤 연예인보다도 더 연예인이었으니까.
입 밖으로 터지듯 새어나오는 숨소리.
“.. 후아.”
이윽고 연두는 조심스레 발을 뻗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런 와중에도 시선은 모자에 반쯤 가려진 이윤결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윤결은 장신인 축에 속했다.
톡.
그대로 직진하는가 했으나 연두가 도달한 곳은 다름 아닌 내 뒤였다.
몸을 감추고 고개만 살짝 내민다.
뭐라 말은 안 했지만, 수줍은 표정과 떨리는 눈동자가 연두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
이런 반응을 보는 건 또 처음인데.
‘부끄러워하는 건가.’
아무래도 연두는 생각 이상으로 마술사 이윤결을 더 좋아하는 거 같다.
아니, 선망한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이러면 곤란한데.
‘질투나잖아.’
위기감이 든다.
설마 했던 우려가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심지어 아직 제대로 된 마술을 보여주기도 전 아닌가.
‘전이라면 필사적으로 부정했겠지만.’
쿨함은 벗어던진지 오래다.
적어도 연두와 팀 동료에 한해서는 내게 쿨함 따위는 없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으니까.
그런 내 귀에 들려오는 목소리.
“.. 아, 아빠.”
“응.”
“마술사님 왔어요.. 세계 지키다가……”
질투와 별개로 웃음이 나온다.
그렇다.
프로그램에 나올 때마다 이윤결은 이런저런 멘트를 던지곤 했다.
준비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중 하나는 바로 이런 멘트였다.
‘그럼 저는 세계평화를 위해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세계평화를 위해서는 제 마술이 필요하니까요. 여러분, 안녕!’
아마 그 멘트를 생각하고 하는 말인 거 같았다.
어쩌면 연두가 동경하는 눈빛을 보내는 건 그런 사명감이 느껴지는 멘트 때문일지도 모르겠네.
연두는 자그맣게 말을 이었다.
“마술사님..”
그제야 정신을 차린 이윤결이 셀카봉을 고쳐 잡고 답했다.
“오, 연두양!”
그러고선 카메라를 보며 말한다.
“죄송합니다, 여러분. 갑자기 너무 예쁜 공주님이 나와서 멍때려버렸네요. 잠깐 마법에 걸린 줄 알았어요. 저같은 일류 마술사는 어지간해서는 마법에 걸리지 않는데 말이죠.”
그렇게 말하며 윤결은 카메라로 연두를 비쳤다.
“자, 보세요. 어떤가요? 제 말이 조금 이해가 되시나요?”
의도는 간단했다.
지금 연두의 모습은 나중에 프리뷰로 시청자들이 보게 될 터였다.
어찌어찌 다시 진행된 인터뷰.
“그럼 이어서 해 보죠. 초록님은 여섯명의 형아들 중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형아가 있었나요?”
“있습니다.”
“오, 누구죠?”
이 질문이 있을 거라는 걸 알긴 했지만 그와 별개로 답은 정해져 있었다.
왜냐고?
나는 대한민국 20대 후반 남성이거든.
“영훈이형아입니다.”
“영훈이형아!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거창한 건 필요없었다.
나는 씩 웃으며 한 마디로 답했다.
“그 시절 우리는 모두 비즈였거든요.”
비즈 보컬 민영훈.
그의 전성기는 내 학창시절과 맞닿아있었다.
아무리 음치였다고는 해도, 쉬는 시간마다 노래가 울려퍼지니 모를 수가 없었다.
“크.. 맞죠! 그 시절은 모를 수가 없죠.”
“요즘은 또 춤으로 활약하시던데 꼭 가까이에서 직관해보고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초록님도 한 춤 하시잖아요.”
“.. 예?”
“오늘 볼 수 있는 건가요? 영훈이형아랑 댄스 배틀.”
“아니, 그게……”
한 방 먹었군.
괜히 춤 얘기를 꺼냈다가 피를 보게 생겼다.
몇차례의 질문을 거쳐서 인터뷰는 연두의 턴으로 넘어갔다.
“자, 연두양은 최고의 마술사 이윤결의 굉장한 팬이라고 들었는데 맞나요?”
그거 당신이잖아.
자기 얘기를 제삼자 얘기를 하듯이 얘기하는 게 대단하다.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예능의 일환으로 하는 말이라는 건 잘 알고 있으니.
“.. 네, 맞아요.”
“으하하! 최고의 마술사 이윤결을 좋아하는 이유가 뭔가요?”
“멋있어서요...”
이어지는 연두의 말.
“마술사님, 지금은 세계 안 지켜도 돼요..?”
잔뜩 폼을 잡은 이윤결은 능청스레 답했다.
“요즘은 세계가 평화로워서요. 호구와트 마법학교에서 제자 양성을 하고 있답니다.”
“제자 양성?”
“그러니까.. 저와 같이 세계평화를 위해 힘쓸 제자들을 가르치는 거죠.”
거짓말!
아까는 호구와트 마법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고 했으면서.
학생에서 선생으로 둔갑하다니.
그런 내 속마음은 말 그대로 울부짖음에 그쳤다.
“우아...”
반쯤 체념했다.
어떤 말과 모함을 해도 이윤결을 향한 연두의 콩깍지는 벗겨지지 않을 거 같았다.
연두에게도 똑같은 질문이 돌아갔다.
“가장 보고 싶었던 형아가 있나요? 아, 저는 제외하구요! 보나마나 일등이니까.”
아까와 달리 근자감이 아닌 사실이라서 더 슬프다.
계속 진행되는 인터뷰.
그 속에서 이윤결은 대본에는 없던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연두양.”
“네.”
“교실에 들어가면 아빠가 아니라 다른 형아랑 짝꿍이 될 수도 있는데.. 아빠랑 떨어져도 괜찮나요?”
“괜찮아요!”
쿵.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다.
이렇게 즉답이라니.
지금까지는 일부러 삐진 척(?) 했지만, 이번에는 진짜 마상(마음의 상처)을 입을 거 같았다.
그때였다.
내 손을 잡은 연두의 자그마한 손에 힘이 들어간다.
“아빠랑 연두는.. 운명공동체니까.”
“운명공동체요?”
“네. 운명공동체는 떨어져 있어도 같은 팀이에요. 그러니까 아빠랑 연두는.. 짝꿍 안 돼도 같은 편이에요.”
운명공동체.
전에 크리에이터 파티에서 OX 퀴즈를 하며 알려준 단어였다.
그걸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
“하하..”
부끄러웠다.
내가 알려줘 놓고 쫌생이처럼 삐지기나 하다니.
좋아. 기죽어 있어서는 될 것도 안 된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당당하게 이윤결과 형아들 사이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로.
“가 보자, 연두야.”
“네, 아빠!”
이제 시작이었다.
***
프리뷰 영상을 찍은 후에는 친목도모 시간을 가졌다.
“아, 정말요?”
“네. 윤결님 유투브 보고 동전 마술 배웠거든요. 연두가 엄청 좋아하더라구요.”
“처음 보고 따라하기 쉽지 않은데 재능이 있으신가 보네요. 하긴, 초록님이니까. 그림은 말할 것도 없고 초등학교 때부터 장난 아니셨잖아요. 유성초 스나이퍼! 흐하하!”
“...”
“죄송합니다.”
선후관계가 뒤틀리긴 했다.
보통 먼저 친해지는 게 우선인데, 프리뷰 영상을 찍고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그래도 서로 구독자라 그런지 말이 잘 통했다.
“오늘 잘 부탁드릴게요.”
“아뇨.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야죠.”
슬쩍 연두를 본 그는 귓속말로 속삭였다.
“준비해 온 마술 중에는 초록님의 협조가 필요한 마술도 있거든요.”
“제 협조요?”
“네. 기가 막힌 마술 하나를 준비해왔는데 그게 모두의 협조가 없이는 불가능한 마술이라서요.”
“뭔지는 모르겠지만 미리 언지만 주시면 제대로 협조해드릴게요.”
“후후후, 감사합니다.”
기대가 됐다.
대체 어떤 엄청난 마술이길래 마술이 본업인 본인조차 이렇게 설레할 수 있는 건지.
표정에서는 조금의 광기마저 느껴진다.
“연두야.”
“네, 아빠.”
“형아들 만나러 갈 준비 됐지?”
여기서 말하는 건 마음의 준비였다.
대본은 이미 숙지했다.
그래 봐야 처음의 인사말을 제외하면 들고 읽어도 되는 정도의 대본이지만.
‘대본만 봐도 느껴졌어.’
코너 외에 정해진 건 없었다.
전부 임기응변과 토크 형식으로 촬영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조금은 떨리기도 한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여섯명의 형아들은 모두 방송계의 스페셜리니스트나 마찬가지다.
이윤결도 그렇고.
그 사이에서 잘 얹혀가고 떠먹여 주는 것만 잘 받아먹으면 성공이라는 마인드였다.
그나저나 연두의 경우는 조금 의외였다.
‘전혀 안 떨려 보여.’
형아들을 만나러 가는 게 조금도 긴장이 안 돼 보인다.
오히려 기대감에 벅찬 표정이다.
차라리 아까 이윤결을 봤을 때가 훨씬 더 떨려 보였지.
‘.. 그런 건가.’
어느 정도 감이 왔다.
연두는 이걸 방송이라 생각 안 하는 게 틀림없다.
그럼 뭐냐고?
말 그대로 형아학교에 형아들을 보러 놀러 온 거라 생각하는 거겠지.
‘오히려 좋아.’
연두튜브를 촬영할 때도 그랬다.
촬영인 걸 의식하지 않을 때 연두는 훨씬 더 자연스러운 모습이 나왔다.
조금 안심이 되는 기분이다.
“빨리 보고 싶다...”
중얼거리는 연두의 말에 대답했다.
“이제 보러 갈 거야.”
“네에.”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열리는 대기실 문.
문을 연 건 피디였다.
“이제 이동하실게요.”
“네.”
형아들을 마주할 시간이었다.
***
교실 앞에 도착했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연두는 말했다.
“아빠..”
“응, 연두야.”
“여기가 형아학교에요?”
“맞아.”
“선화초등학교같다...”
그렇게 말할 만도 했다.
적어도 이 촬영장만큼은 실제 교실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궁금한 게 떠오른 듯이 연두는 말했다.
“마술사님..”
“네, 연두양.”
“호구아트 마법학교 교실은 어떻게 생겼어요..?”
언제 챙긴 건지 이윤결의 손에는 빗자루가 들려있다.
컨셉에 충실하군.
신비로운 목소리로 입을 연다.
“이런 교실과는 다르죠. 호구와트 마법학교는 통로를 모르면 갈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세계 속에 있거든요.”
점점 벌어지는 연두의 입.
내가 알기로 저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표정이다.
이윤결은 빗자루를 쓱 올리며 말했다.
“자세한 건 형아들을 만나고 제대로 알려줄게요.”
“.. 네에.”
“아, 참. 연두양.”
이윤결은 입을 뗐다.
“이제 존댓말은 안 돼요.”
“으응..?”
“비록 제가 마법학교 교사라고 해도, 여기에서는 형아학교의 학생이니까.”
그렇다.
이제 슬슬 교칙을 적용할 때가 왔다.
“자, 그러니까 나한테 반말을 해 볼래?”
“반말해도 화 안 나요?”
“당연하지.”
“연두한테 마법 안 써요..?”
“어떤 마법?”
“파이어볼.. 아이스 애로우……”
“푸핫!”
못 참고 터진 윤결은 목소리를 가다듬고서 말했다.
“쓸 리가 없잖아. 우리는 친구인데.”
“친구……”
마음을 먹은 듯 연두가 입을 뗐다.
“유, 윤결아...”
“좋아! 다음은 초록이랑 말을 놓을 차례네?”
“초록이랑? 아!”
자연스레 말하고선 깜짝 놀라 스스로 입을 틀어막는다.
순간적으로 자각 못했나 보다.
초록이가 나라는 걸.
‘한 번도 없구나.’
생각해 보면 내 기억상 연두가 나한테 말을 놓는 걸 본 적은 없었다.
언제인가 한 번 얘기하긴 했다.
꼭 존댓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아빠한테 편하게 얘기해도 된다고.
‘못했지.’
연두는 말을 놓지 못했다.
그래서 그대로 뒀다.
억지로 바꾸려는 것도 강요가 될 수 있었으니까.
빙긋 웃으며 나는 말했다.
“괜찮아, 연두야.”
“아빠..”
“여기 있는 동안만큼은 우리도 나이가 똑같은 친구인 거니까. 편하게 얘기해도 돼.”
“네에. 아니…… 응.”
또 혼자 깜짝 놀란다.
나한테 반말을 하는 게 그렇게나 어색한 모양이다.
그 반응이 재미있어 또 말을 건넸다.
“이름도 불러줄래?”
“.. 이름도?”
“응. 원래 친구끼리는 이름으로 부르는 거니까.”
꼴깍.
침을 삼킨 연두가 세상 조심스럽게 입을 뗀다.
“초록아..”
“하하, 그래 연두야. 잘 부탁해.”
“으응.”
이렇게 말을 튼 나와 연두였다.
***
게스트 입장 전.
그러나 카메라는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었다.
‘알지? 한 장면도 놓치면 안 돼. 연두랑 초록님은 그냥 대화하는 것도 하이라이트가 될 수 있으니까. 비하인드 영상으로 쓸 수도 있고.’
그 말대로였다.
촬영은 이미 시작됐다.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피디는 지시받은 말뜻을 알 수 있었다.
‘너무 귀엽잖아..’
카메라를 의식하지 못한 상황이다.
단순히 말을 놓는 과정인데 그걸 바라보는 우진리 피디의 입에는 자꾸만 웃음이 번졌다.
들은 그대로였다.
사소한 반응과 표정, 대화가 모두 하이라이트였다.
‘.. 알겠어.’
그 잠깐의 모니터링만으로 왜 방송계에서 그렇게 섭외하려 하는지 감이 왔다.
단지 시청률 때문이 아니다.
편집점을 잡을 것도 없이,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편집점이었다.
또 한 가지.
연두튜브 속 모습에서 연출 따위는 없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케미도 장난이 아니고.’
초록님의 존재감도 결코 적지 않았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번지는 연두지만, 그런 연두의 다양한 모습은 초록님과의 케미 속에서 뿜어져나온다.
괜히 수천만의 구독자가 이 케미에 끌린 게 아니었다.
한편 교실 내부.
“아니, 근데 다들 그 소식 들었어? 진짜야? 진짜냐구우!!”
여느 때처럼 앙탈을 부리며 강호등이 포문을 열었다.
움츠러든 이수군이 말한다.
“무서우니까 조금 진정하고 말씀해보세요.”
“오늘 역대급 전학생이 우리 형아학교에 전학 온다는 소식을 들었단 말야! 맞아? 괜히 거짓말 치는 거 아니야?”
“에이~”
“뭐?”
“게스트 명단 초록창에서 다 보고 왔잖아요. 왜 그러세요.”
“.. 켁!”
수군의 팩폭에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웃음.
사레가 들린 호등이 반응한다.
“아니, 그걸 이렇게 받는다고? 내가 지금, 게스트 기대감 심어주려고 막 연기하고 그랬는데. 어? 너 혼나고 싶어? 피나고 싶어?”
옆에서 민영훈이 툭 한 마디를 뱉는다.
“그런 진행 좀 그만하래두.”
“.. 엥?”
“구식이야, 구식!”
눈이 태평양처럼 커다래진 강호등이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뭐? 구우식?”
“...”
“내가 구우식이라고? 허! 허허!”
잔뜩 열을 올리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다.
영훈의 특징이었다.
일침을 꽂고서 어떻게 반응하든 나 몰라라 하는 반응.
수군이 웃으며 얘기했다.
“어차피 시청자분들도 누군지 다 알아요. 장원이형 머리만 봐도 알겠다! 오늘 전학생한테 잘 보이려고 짧은 머리에 무스 잔뜩 바르고 나왔잖아요.”
“...?”
난데없이 공격을 당한 서장원.
황당하다는 듯 특유의 실소를 지으며 말한다.
“아니, 잠깐만.”
“형 머리가 지금 태양보다 반짝거려요. 눈이 부시다구요.”
“말은 바로 해야지. 무스가 아니라……”
유쾌한 콩트가 이어진다.
촬영하는 피디들도 웃음을 터트린다.
늘 게스트 입장 전에 있는 타임이긴 했지만, 오늘따라 유독 더 텐션이 높은 거 같았다.
특별한 전학생이 와서 그런지.
휙. 휙.
얼마간 지켜보다가 피디는 사인을 보냈다.
그걸 본 수군이 말했다.
“잠깐만요! 전학생들이 지금 막 도착했다는데요?”
“진짜?”
“들어오라고 할까요?”
“잠깐!”
목소리를 낮추고 강호등이 민영훈을 향해 말했다.
“야, 민영훈.”
“왜.”
“전학생들 들어오면 니가 따끔하게 한 마디 해.”
“뭐라고?”
“그건 알아서 하고. 아무리 엄청난 전학생이라 해도 우리 형아학교가 만만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라구. 기선제압. 알겠어?”
피식 웃은 영훈은 말했다.
“니가 해.”
“뭐?”
“니가 하면 되잖아. 왜 나를 시켜? 내가 너 부하냐?”
“.. 허. 나 진짜 기가 막혀서.”
“흥, 코도 막혀라.”
김하철이 깔깔 웃음을 터트리며 얘기했다.
“영훈이 오늘 신났나 보네. 말 많이 하는 거 보면.”
그 말에 영훈도 웃음을 터트린다.
드디어 박영철도 입을 열었다.
“그만하고 빨리 좀 불러. 나 연두 보고 싶어서 못 참겠다구.”
“아!”
싸늘하게 식은 분위기.
모두가 눈치를 보는 상황 속에서 호등이 말한다.
“여기서 이름을 말해버린다고? 일부러 우리 다 꼭꼭 숨기고 있었는데?”
“.. 또 나야?”
“진짜 감 다 잃었구만.”
“그래! 다 잃었다! 전학생 이름 좀 미리 말했다고 아주 물어뜯고, 어? 마음대로 해라!”
씩씩거리는 영철.
아무리 디스를 받아도 기죽지 않는 것도 영철의 매력이었다.
그 속에서 드디어 나오는 멘트.
“전학생, 들어와줘!”
가장 가까운 김하철이 다가가 문을 열어주려는데,
쾅!
거세게 열리는 문.
그 틈으로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건 다름 아닌 연두였다.
환호를 지를 틈도 없이 연두는 말했다.
“.. 다들 조용!”
눈을 끔뻑이는 형아들의 귀에 연달아 멘트가 꽂혔다.
“꼼짝 마! 우, 움직이면 가만 안 둬..!”
몇 없는 대본 속 멘트.
생각지도 못한 컨셉을 잡고 나온 연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