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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바보가 되었습니다-577화 (578/850)

577화. 깜짝 게스트

“엄청 깜깜한 곳에 있었는데.. 진짜진짜 무서운 괴물이 나왔어.”

마지막 문제인 연두의 꿈속 이야기.

절로 표정이 굳는다.

그야, 꿈에 관한 건 나로서는 민감할 수밖에 없는 주제였으니까.

좋은 꿈도 있지만 연두는 때때로 악몽을 꿨다.

꿈에서 깬 뒤에도 내 품에 안겨서 한참을 흐느낄 정도로 무서운 꿈을.

정확한 내용은 모른다.

정신없이 울고 나면 연두는 어떤 꿈을 꿨는지 잘 기억하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아예 들은 게 없는 건 아니다.

악몽을 꿀 때마다 등장하는 단어가 몇 가지 있었다.

‘깜깜한 곳, 괴물.’

그게 바로 방금 나온 단어다.

다른 건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두 가지 요소.

따라서 나는 생각했다.

그건 연두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어떠한 ‘기억’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그래. 외삼촌이다.

그는 죽었지만 기억 속에 남아 아직까지 연두를 괴롭히고 있는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꿈일 뿐이야. 연두가 꿈속에서 본 괴물도 실제로 있는 게 아니야.’

‘.. 흑, 흐윽.’

‘아빠 봐, 연두야.’

‘...’

‘아빠 얼굴 보이지? 이게 현실이야. 아빠랑 같이 있는 지금.’

그렇게 꿈과 현실이 다르다는 걸 몇 번이고 되뇌는 게 전부였다.

울지 않길 바랐다.

현실이 아닌 꿈속의 일로 연두가 아파하지 않길 바랐다.

허나 원망스러웠다.

아예 개꿈 취급을 할 수 없다는 게, 그 꿈이 현실은 아닐지라도 연두의 과거 속 현실의 잔재라는 게.

‘.. 또 꾼 거구나. 그 악몽을.’

근거는 충분했다.

아까 말했듯 연두의 입에서 공통되는 두 단어가 나왔으니까.

깜깜한 곳과 괴물.

그렇다면 달리 생각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헌데 이상했다.

‘왜 얘기 안 했지?’

최근에는 보지 못했다.

악몽을 꾸고 무서워서 흐느끼는 연두의 모습을.

이상한 건 또 있었다.

아무리 전에 꾼 꿈이라 해도, 그 이야기를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꺼낼 수 있을 리 없다.

심각해진 나와 달리 형아들은 질문을 던졌다.

“허걱! 언제 꾼 꿈인데?”

그럴 만도 했다.

형아들에게는 단지 평범한 악몽으로 느껴졌을 테니.

조금 생각하던 연두는 말했다.

“으음.. 칠 일 정도..?”

“일주일?”

“응.”

역시 최근에 꾼 꿈이다.

“괴물이 어떻게 생겼길래 그렇게 무서웠어?”

아무래도 모습을 상상하는 건 무서운 건지 연두는 천천히 입을 뗐다.

조금은 움츠러든 채로.

“엄청 커다랬어..”

“그리고?”

“검은색이었고, 눈이 빨간색이고, 연두를 엄청 무섭게 봤어..!”

나도 처음이다.

괴물에 모습에 관해 이렇게 상세한 묘사를 듣는 건.

그래서일까.

영철이는 히익 놀라더니 뒤쪽을 보며 말한다.

“뭐야뭐야. 무섭잖아!”

“형 얼굴이 더 무서우니까 앞에 보세요.”

“아! 쒀리~”

비로 영철이가 고개를 돌린다.

호등이가 말했다.

“수군아.”

“네.”

“어머님 불러야겠는데. 무서운 괴물 쫓아내려면.”

“저희 어머니요?”

“그래.”

“죄송한데 저희 어머니는 귀신 전문이라서요. 괴물이랑 싸우면 져요.”

“푸흣!”

평소라면 함께 웃었을 만한 드립인데도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

연두가 또 그 악몽을 꿨다는 사실만이.

“그래. 계속 얘기해볼래, 연두야?”

“으응!”

이어지는 이야기.

“계속 도망쳤어..”

“어디로?”

“모르겠어. 괴물이 계속 쫓아와서.. 너무 무서워서 막 달렸어. 그래도 괴물이 쫓아왔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하철이가 묻는다.

“그런데?”

“.. 벽이 있었어.”

“벽?”

“응. 괴물이 계속 쫓아오는데.. 앞에 벽이 있어서 못 도망쳤어...”

“안 돼! 막다른 길이었다고?”

눈을 질끈 감았다.

어릴 때는 나 역시 비슷한 악몽을 꾼 적이 많다.

허나 달랐다.

그저 상상에 의한 악몽과 현실을 표상한 악몽은.

“뭐냐고, 이 너무 정석적이어서 화나는 전개는!”

“당장 그 괴물 델꼬와!”

“데려오면 어떡할 건데요?”

“어떡하긴! 혼내줘야지.”

호등이가 목베개를 손에 들고서 마구 짓누른다.

사과를 쪼개는 악력으로.

그걸 본 수군이가 화들짝 놀라며 카메라를 보고 말한다.

“괴물한테 영상편지 한 번 할게요. 당장 도망가세요. 기왕이면 최대한 먼 곳으로요. 걸리면 생명 보장 못 해요.”

그 속에서 연두는 마침내 질문했다.

“이제 맞혀봐!”

“응?”

“그다음에 연두는 어떻게 됐을까?”

마지막 질문이었다.

***

대본의 힘 덕분일까.

그리 어렵지 않게 연두는 질문까지 순조롭게 마쳤다.

“정답! 정식으로 괴물한테 맞짱을 신청했어! 그리고 이겼어!”

“으휴. 연두한테 맞짱이 뭐냐, 맞짱이.”

“앗...”

그 밖에도 많은 답이 나왔다.

주먹으로 벽을 뚫고 도망쳤다거나, 갑자기 엄청난 달리기 실력을 발휘했다거나.

윤결이도 오답행진에 동참했다.

“정답!”

“응, 윤결아.”

“연두 마법 좋아하잖아. 짠 하고 마법소녀로 변신해서 빠샤샤 괴물을 무찔렀어!”

터무니없는 답.

그런데 그 속에 단서가 있었던 모양이다.

“마법.. 마법 같았어...”

그 말이 도화선이었다.

우후죽순으로 쏟아지는 대답.

그에 따라 연두의 힌트도 하나둘 늘어났다.

“엄청 컸어..”

“괴물보다도 더.”

“그리고.. 연두를 구해줬어..!”

늘 그렇듯 이렇게 단서가 나왔을 때 힘을 발휘하는 건 장원이었다.

“마법.. 마법 같았다...”

그렇게 중얼거리던 장원이는 별안간 외쳤다.

“정답!”

“응!”

“연두의 눈앞에서 커다란 나무가 자라난 거야. 괴물이 연두를 못 건드리도록.”

나무?

확실히 그 광경을 생각하니 마법같이 느껴지긴 한다.

놀랍게도 연두는 말했다.

“정답이야..!”

주위에서는 경탄이 나왔다.

“와, 이걸 어떻게 맞혔어?”

“바로 나무로 간다고?”

“대본 유출 아니야? 장원이 너, 제작진이랑 모종의 관계가 있는 거 아니냐구!”

영철이의 억까(?)에도 잔뜩 신이 난 장원이는 벌떡 일어났다.

지미집 앞에 서서 세리머니를 한다.

그나저나 나무가 구해줬다니.

‘평소랑은 달랐던 거구나.’

그래서 질문할 수 있었던 거다.

무서운 꿈이었다고는 해도 마지막에 구해준 나무가 있었기에.

내내 듣고만 있던 나는 그제야 입을 뗐다.

“연두야.”

궁금한 게 있었다.

“근데 원래 꿈 잘 기억 못 하지 않아? 특히 무서운 꿈은.”

아빠이기에 알 수 있었다.

직후면 몰라도 시간이 흐르면 연두는 꿈의 내용을 잊어버리곤 했으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연두가 대답한다.

“응..”

“이번에는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기억한 거야?”

그런 내 물음에 연두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

“무서운 꿈 꾸면.. 잊어버리고 싶어..”

“잊어버리고 싶다고?”

“응. 안 그러면.. 계속 무서우니까.”

알 거 같았다.

어떤 얘기를 하는 건지.

억지로라도 잊고 싶은 꿈이었다는 거겠지.

“그런데..”

연두는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기억하고 싶었어.”

“왜?”

“괴물이 가고 나서, 나무가 너무 고마워서 꼭 안았는데.. 따뜻했어.”

“.. 나무가?”

“응. 그래서 기억하고 싶었어.”

그 따뜻함을 기억하고 싶었다는 건가.

상만이가 묻는다.

“그럼 연두가 기억하고 싶다고 생각하니까 기억이 된 거야?”

도리도리 저으며 대답한다.

“일기에 썼어!”

“일기?”

“응. 좋은 꿈도 나쁜 꿈도 나중에는 까먹으니까. 그래서 일기에 썼어..!”

배시시 웃으며 덧붙인다.

“그럼 기억나!”

자그맣게 웃음이 번진다.

다행이다.

이번에는 괴물로부터 연두를 구해준 고마운 나무가 있어서.

일기에 쓸 수 있을 정도로 따뜻한 나무라서.

“그럼 그렇게 나무 꼭 안아주고 나니까 잠에서 깬 거야, 연두야?”

“응!”

“잠에서 깼을 때 어땠어?”

뭐라 답하기도 전에 하철이가 끼어들었다.

“이불에 지도 그린 거 아니야? 푸하핫!”

“...”

“그래서 따뜻했던 거고.”

뭐냐, 이 동심파괴는.

순식간에 얼굴이 잔뜩 달아오른 연두가 소리친다.

“아, 아니야!”

“그럼 어땠는데?”

“지도 안 그렸어! 아빠랑 껴안고 자고 있었어..!”

깜짝이야.

여기서 내가 나올 줄은 몰랐다.

“잠깐만!”

그때였다.

호등이가 입을 연 건.

“아빠랑 껴안고 자고 있었다고?”

“응.”

“그럼 그 나무가 초록이였던 거 아이가? 괴물한테 연두를 지켜준 거지.”

나도 연두도 흠칫 몸을 떨었다.

나무가 나라고?

그러고 보니 마지막에 연두는 나무를 꼭 안아줬다고 했지.

‘잠에서 깼을 때는 나를 꼭 안고 있었고.’

묘하게 겹치기는 한다.

호등이 말에 무언가 떠오른 듯 연두는 입을 열었다.

“.. 아빠가 그랬어.”

“응?”

“꼭 붙어서 자면.. 아빠가 연두 꿈속에 나올 수 있다고.”

확실히 그런 말을 하긴 했다.

장난이었지만.

그게 이 상황 속에서는 꽤나 설득력 있는 근거로 작용한 모양이다.

“.. 아빠에요?”

“응?”

“아빠가.. 나무에요..?”

모르겠다.

어떻게 답하는 게 좋을지.

그저 앞으로도 꿈속에서 연두를 지켜주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가능하다면 그게 나였으면 했고.

슥.

그런 마음에 어색하게 지은 미소였다.

그때였다.

연두가 나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한 건.

‘설마 대답 안 해서 때리려는 건가.’

손에 뿅망치를 들고 있으니 그런 생각이 들 만도 했다.

이윽고 내 앞에 멈춘 연두.

그러나 뿅망치를 든 손도, 다른 쪽 손도 움직이지 않는다.

쪽.

피할 수 없었다.

움직인 건 연두의 고개였다.

기습적으로 내 볼에 뽀뽀한 연두가 생긋 웃으며 말한다.

“고마워, 아빠..”

마음 깊숙이 와닿는 한마디였다.

***

잘 모르겠다.

연두의 꿈속에서 왜 그 나무가 갑자기 생겨난 건지도, 그게 정말 나인 건지도.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만약 나라면.. 연두는 나를 그런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는 거니까.’

무시무시한 괴물로부터 지켜줄 수 있는 존재.

기댈 수 있는 나무 같은 존재.

게다가 방금 연두가 한 말도 장난 아니게 기분 좋았다.

‘고마워, 아빠..’

처음이다.

아빠라는 단어와 반말을 함께 쓴 건.

형아학교 교칙에 의한 반말과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기습뽀뽀 뭐야?”

“고마워, 아빠. 이게 그렇게 달콤한 말이었나? 나 귀 녹아내릴 뻔했잖아.”

“연두야! 사실 내가 그 나무였어!”

실소가 나온다.

아무리 연두가 순수해도 그런 거짓말에 속을 리 없잖아.

그리고.. 나무는 나다.

뒤에서는 장원이가 투덜대듯 구시렁거리고 있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받는다더니……”

역시 유식한 장원이다.

속담에 빗대자면 정답을 맞힌 곰이 장원이고 뽀뽀를 받은 내가 왕서방인 건가.

옆에서 수군이가 끼어든다.

“에이, 그건 아니죠.”

“뭐?”

“돈은 형이 제일 많이 받잖아요. 건물에서 나오는 돈만 해도……”

“너 조용히 안 해!”

씩씩거리는 장원이.

그와 별개로 나도 부정할 수 없었다.

심쿵했다는 거.

‘반말이 이렇게 기분 좋은 거였나.’

내친김에 연두한테 말을 놓으라고 또 권할까 하다가 그만뒀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막상 그렇게 대놓고 멍석을 깔아주면 못 놓을 거라는 걸.

와다다.

자기 순서를 마친 연두가 와다다 장원이 옆으로 달려간다.

투덜거리던 장원이의 얼굴에도 아빠미소가 번진다.

“여기 앉아도 돼, 장원아?”

“당연하지.”

“읏차..!”

재미있는 기합을 내며 연두가 의자 위에 올라탄다.

의자가 높은 탓이었다.

다행히 앉은 자세가 불편해 보이지는 않는다.

“안녕, 연두야.”

앞뒤로도 인사를 주고받았다.

“자, 그럼 초록이!”

이제 내 차례다.

교탁 앞으로 나가 대본을 들었다.

연두의 차례가 길었던 만큼 내 차례는 짧고 굵게 넘길 생각이다.

바로 포문을 열었다.

“아는 친구들은 알겠지만 연두랑 누렁이는 사이가 엄청 좋아.”

“응.”

“그런데 딱 한 번!”

손가락 하나를 펴며 강조하듯 얘기했다.

“연두랑 누렁이가 정면충돌한 적이 있어. 그게 언제일까?”

초록이의 ‘나를 맞혀봐’ 시작이었다.

***

한편 대기실.

방송국 내 다른 공간에서는 연두와 주원이 꿈에도 예상 못 할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톡. 톡.

“우와.. 너무 예쁘다..”

“...”

“부끄러워하는 거 봐, 귀여워.. 근데 말 안 해도 얼굴에서 다 티 나서 더 귀여워...”

“누, 누가 부끄러워했다고요!”

의자에 앉은 아이가 결국 못 참고 한 마디를 뱉는다.

효과는 없었다.

나란히 선 두 어른 여자는 전혀 개의치 않고 귀엽다는 말을 연발했으니까.

“으윽..”

처음이었다.

이렇게 누군가의 손에 얼굴을 맡기고 우쭈쭈 당하는 건.

‘.. 짜증 나.’

사실 오지 않으려 했다.

나중은 몰라도 지금 그 애와 아저씨의 얼굴을 본다면 쑥스러워 죽어버릴 거 같았으니까.

그것도 형아학교에서 말이다.

허나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친구 두 명은 오기로 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말이 나왔으니까.

‘갈게요!’

그렇게 오게 된 형아학교였다.

결국 체념한 채로 눈을 꾹 감고 뚱한 표정으로 얼굴을 맡겼다.

될 대로 되라지.

그런 마음으로 가만히 있는데 들려오는 목소리.

“.. 흣.”

웬 웃음소리가 들려서 눈을 뜨니 거울에 비친다.

금발의 여자애가.

“푸흣. 표정 완전 웃겨, 미뉴리!”

“.. 우, 웃지 마!”

그 뒤에 비치는 건 레나의 옆에 나란히 선 시은이의 모습이었다.

그렇다.

아는형아의 깜짝 게스트로 방송국을 찾은 시레와 유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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