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1화. 특종
벚꽃이 지면.
슬픈 분위기가 연상되는 제목과 달리 멜로디와 가사는 밝고 희망찬 노래이다.
그에 따라 모두들 곡의 콘셉트에 맞게 파트를 소화했다.
사락.
연분홍색 꽃잎이 흩날리는 연출도 훌륭했다.
사실 놀랐다.
총 22명의 연습생이 걸어나오며 삼각대형을 형성할 때, 점점 가까워지는 주연이를 보며 생각했다.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런 내 예상과 22분의 1의 확률을 뒤집고,
툭.
주연이는 정면에 섰다.
마치 나랑 연두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서 자리를 선정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허나 그럴 리는 없다.
생방송인 만큼 걸어 나오는 동선부터 자리까지 전부 사전에 정해뒀을 테니.
이건 100% 우연의 일치라는 뜻이다.
“.. 아, 아빠!”
“응.”
“주연이언니! 주연이언니 앞에 있어요..!”
이쯤 되니 연두도 동동 뛰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나 역시 놓칠 수는 없었다.
이 앵글을 선물 받고도 가만히 있는다면 이든의 사진작가라고 할 수 없지.
스윽.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구도가 안정되고 나니 앵글 안에 주연이가 잡힌다.
자연히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외마디 소리.
“.. 어?”
떨고 있다.
초점이 고정돼서인지 두 눈으로 볼 때보다 오히려 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주연이는 떨고 있었다.
설렘이나 동요 정도로 일어나는 떨림이라기에는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
‘왜 그러지?’
몸이 아픈 건 아닐 터였다.
만약 그랬다면 아까 춤을 출 때 진작에 드러났을 테니.
전혀 그런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최상의 컨디션으로 보일 만큼 앞선 주연이의 퍼포먼스는 훌륭했다.
‘주연이한테는 더 쉬운 무대일 텐데.’
앞서 본 영상에서 주연이의 파트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짐작할 수 있었다.
보컬에 있어서는 22명의 연습생 중 그 누구한테도 밀리지 않는, 아니 독보적인 실력을 자랑하는 주연이였으니까.
곡의 하이라이트인 후렴을 맡을 확률이 높다.
더군다나 주연이의 음색은 이런 분위기의 음악과 찰떡이기도 하고.
“.. 진정해, 주연아.”
고정된 앵글 속 떨림이 보일수록 조바심이 들었다.
그야, 알고 있으니까.
평범하게만 해도 주연이가 돋보일 수 있는 무대라는 걸.
“.. 아빠?”
내 표정을 본 걸까.
조금은 불안한 표정으로 연두가 나를 바라본다.
“괜찮아, 연두야.”
애써 그렇게 말했다.
괜히 티를 내서 연두까지 심각해지게 만들 수는 없으니.
그 사이 귓가에는 들려왔다.
“소리 없이 저물어가는 우리들만의 봄을~ ♪”
“살며시 눈을 감고~ 끝나지 않길 기도하죠~ ♪”
감이 왔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처음 들어보는 곡이지만, 멜로디는 확실히 후렴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다시 앵글로 눈을 돌렸다.
“...!”
그 순간.
깜짝 놀란 나는 눈을 감았다 뜨고 다시 앵글을 바라봤다.
…… 착각일까?
주연이의 시선이 정확히 앵글을 향하고 있었다.
마치 우리를 보기라도 한 듯이.
‘.. 떨고 있지 않아.’
변화를 포착하는 과정은 자연스러웠다.
살며시 미소 짓고 있는 주연이의 입가를 봤고, 내 시선은 밑으로 내려갔다.
더 이상 떨지 않는 주연이의 손.
바로 그때였다.
곡의 후렴 파트가 찾아온 건.
“벚꽃이 지면~ 나의 사랑은~ 여름처럼 뜨거워질 수 있나요~ ♪”
귀를 사로잡는 목소리에 자연히 입이 벌어진다.
임팩트가 다르다고 해야 할까.
‘다른 멤버들이 못한 게 아니야.’
모두 곡의 분위기에 알맞게 파트를 소화했다.
그러나, 독보적이었다.
음역대를 뽐낼 만큼 높은 고음부가 아닌데도, 오로지 음색과 실력만으로 귀를 사로잡는다.
이렇다 할 기교는 없었다.
희망찬 분위기를 이어가지만 그 속에는 미묘하게 슬픈 정서가 묻어난다.
“우리의 사랑이 조금 따스했다면~ 이젠 좀 더 뜨겁게~ 서로를 안아줘요~ ♪”
그렇게 끝나는 파트.
한 곡을 무려 스물두 명의 연습생이 나눠 불러야 하니 파트가 짧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허나 임팩트는 결코 작지 않았다.
“와.. 뭐야?”
“소름이다.. 잘 부르는 건 알았는데 이 정도였나?”
“음색 미쳤잖아...”
“노래도 좋은데 이건 하주연 캐리인 듯?”
“투표해야겠다.”
이해가 가는 반응이다.
만약 내가 주연이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고 해도, 방금의 노래를 들었으면 주저 없이 한 표를 던졌을 거 같으니.
안도감과 함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잘했어, 주연아.’
비록 긴장한 순간에 직접적인 힘이 되어주지는 못했지만 고마웠다.
씩씩하게 극복해 줘서.
그나저나 진짜 마지막에 그건 뭐였지.
‘분명히 눈이 마주친 거 같았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고개를 휙휙 저었다.
착각일 거다.
애초에 정면에 섰으니 단지 앞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느껴질 확률이 높다.
설마 이 많은 관객들 틈에서 우리를 봤을 리가 없잖아.
“.. 푸흣.”
난데없이 웃음이 터졌다.
옆에서 매직글래스를 착용하고 있는 연두를 보고.
“그래. 그럴 리가 없지.”
심지어 완벽분장을 한 상태다.
그런 우리를 보고 나와 연두라는 걸 알아봤을 리가 없다.
가까이서 봐도 모르는데.
‘뭐,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주연이가 멋지게 해냈다는 게 중요했다.
카메라에도 담았고.
그런 나를 향해 벅차오르는 목소리로 연두가 중얼거린다.
“.. 아빠.”
“응, 연두야.”
“주연이언니.. 가수에요.. 진짜.. 진짜 가수에요...”
매직 글래스에 얼굴이 반은 가렸지만 표정이 보이는 거 같다.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하하, 맞아.”
연두 말대로였다.
지금 이 순간.
주연이의 모습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가수의 모습이었다.
***
무대를 찾은 건 대부분 프로젝트 101의 팬이었다.
또는 연습생의 지인이거나.
연습생과 같은 소속사 가수나 관계자는 따로 지정석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그 외의 경우도 없는 건 아니었다.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쉬는 유서영.
그녀는 기자였다.
원래는 무대를 찾은 유명인들의 인터뷰를 따는 게 목표였지만, 지정석에 들어가는 것부터 실패했다.
‘기회가 날 거 같지도 않고.’
자연히 목표는 변경됐다.
정보를 선점하면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지만 이건 생방송이다.
실시간으로 기사가 쏟아질 거다.
‘어쩔 수 없지.’
어차피 이 상황에 특출난 기사를 쓰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현장 사진을 최대한 생동감 있게 찍어서 뭐라도 쓰는 게 최선이었다.
특출난 기사는 아니더라도.
프로젝트 101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정보는 하나였다.
요즘 핫한 프로그램이라는 것.
당연히 22명의 연습생 개개인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했다.
이름과 얼굴을 대충 보고 오긴 했지만.
‘뭐, 어쩌겠어.’
기자의 숙명이었다.
화제를 끌고 있는 곳이라면 잘 몰라도 일단 찾아가고 보는 것.
그럼 뭐라도 나오게 되어 있다.
관객들 틈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직관하던 유서영의 눈에 들어온 건 한 연습생이었다.
“.. 좋은데?”
확연히 달랐다.
춤을 출 때는 이리저리 치이느라 제대로 못 봤는데, 노래 무대에서는 단연 돋보이는 연습생이 있었다.
…… 저 애, 이름이 뭐였지?
기억난다. 분명히 하주연이라는 이름이었다.
-프로젝트 101 신곡 발표, 천상의 목소리 하주연
거침없이 적어내려갔다.
제목이 오글거리지 않냐고?
모르는 소리.
‘속도는 생명이야.’
그리고 제목은 자극적일수록 좋았다.
서영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은 그리 심한 편도 아니었다.
적어도 제목에 거짓을 적지는 않으니까.
‘그렇게 느꼈잖아.’
실제로 하주연 연습생의 목소리가 무척 좋다고 느꼈다.
그걸 천상의 목소리라 표현했을 뿐이다.
전혀 문제는 없었다.
토독. 톡.
어디서든 기사를 작성할 수 있는 건 기자의 기본 소양이다.
순식간에 적어내려간 열댓 줄.
빠르게 검수한 뒤에 유서영은 등록 버튼을 눌렀다.
[프로젝트 101 신곡 발표, 천상의 목소리 하주연]
기사가 올라갔다.
누군가 보면 기가 찰지도 모르지만, 대중이 보는 기사가 올라가는 흔한 방식 중 하나였다.
다행히 타임라인에 비슷한 기사가 보이지는 않는다.
고개를 끄덕이며 서영은 창을 닫았다.
‘오늘은 이 정도로 만족해야겠네.’
물론 여기서 끝내겠다는 건 아니다.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다음 무대에 관한 기사와 결과 발표에 대한 것 정도는 더 뽑아내고 가야지.
‘영양가는 그리 없겠지만.’
확정이 된 일인 만큼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기자들이 많을 터였다.
그런 기사는 영양가가 거의 없다.
차라리 방금 작성한 특정 연습생에 초점을 맞춘 기사가 훨씬 반응을 끌 확률이 높았다.
그나마 경쟁이 덜할 테니.
‘빨리 했으면 좋겠네.’
미리 제목에 ‘프로미스 신곡 발표!’를 적어두고서 유서영은 따분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였다.
문득 시선을 돌리는데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있었다.
“.. 풋. 재밌게 생긴 안경이네.”
부녀로 보이는 둘이 나란히 색안경을 끼고 있다.
문득 아빠 생각이 난다.
저렇게 어렸을 때는 아빠랑 같이 이런 공연을 보러 오곤 했는데.
어느새 까마득한 기억이다.
‘잠깐만. 이렇게 말하니까 뭔가 이상하잖아.’
아빠는 정정하시다.
단지 기자가 된 후로 바빠져서 자주 찾아뵙지 못할 뿐이지.
난데없이 추억에 잠긴 서영은 미소를 머금은 채로 계속 부녀를 바라봤다.
총.
방금 무대로 신이 나서일까.
아이가 폴짝폴짝 뛴다.
그런 아이가 넘어지지 않도록 꼭 잡고 있는 아빠의 손도 보인다.
그때였다.
“.. 앗!”
너무 세게 뛴 건지 아이가 쓰고 있던 색안경이 떨어진다.
자기도 모르게 서영은 내뱉었다.
“.. 어머.”
안경이 망가지지는 않을까 해서 뱉은 말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왜 저렇게 당황하지?’
어쩔 줄 몰라 한다.
아이 쪽이 아닌 아빠 쪽이.
세상 놀라서 바닥을 이리저리 보더니 빛의 속도로 안경을 집어 든다.
‘의외로 성격이 급한 사람이네.’
그렇게 생각하며 서영은 아이를 바라봤다.
문제는 그때였다.
아빠가 집어 든 색안경을 아이에게 씌워주는 그 찰나의 순간,
“.. 어? 어어? 어어어어?”
무려 세 번의 의문사.
사람들 틈으로 서영은 똑똑히 보고 말았다.
아이의 얼굴을.
***
“휴...”
식겁했다.
그 외에는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을 거 같았다.
매직 글래스를 떨어트리다니.
‘.. 안 들킨 게 신기하네.’
모두 무대에 정신이 팔려있는 탓에 재빨리 수습할 수 있었다.
만약 색안경이 발밑에 안 떨어졌다면?
상상하기도 싫다.
“연두야.”
“네에.”
“이제 점프는 자제하자. 매직 글래스 떨어트리면 안 되니까.”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한다.
“네! 예은이가 준 거니까 잃어버리면 안 돼여! 비밀통로도 찾아야 하고...”
“그, 그래.”
이제는 고개 끄덕이는 것도 불안하네.
뭐, 괜찮겠지.
헐렁하게 걸쳐있던 걸 제대로 콧대에 고정했으니 어지간해서는 안 떨어질 거다.
한시름 놓은 나는 무대를 바라봤다.
“네, 여러분! 무대는 잘 보셨나요?”
MC 장원석의 말이 이어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국민 프로듀서님들의 투표에 따라서 시시각각 연습생들의 등수가 갈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는 멤버가 열한 명에 안착해서 데뷔멤버로 합류할 수 있을지, 그것도 역시 국민 프로듀서님들의 투표에 달려있죠.”
그 말에 여기저기서 핸드폰을 꺼낸다.
투표를 하려는 거겠지.
방금 무대의 여파로 이 중 대다수는 주연이를 찍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안심이 되는 기분이다.
“이제는 마지막 무대를 앞두고 있습니다. 무대 뒤에서 가슴을 졸이고 있을 연습생들의 표정이 눈에 선한데요. 무대에 앞서 이제 프로젝트 101의 마지막 수업, 파이널 무대를 위한 연습 현장, 그리고 마지막 무대까지. 지금 바로 만나보겠습니다!”
다시 화면이 떠오른다.
이 영상을 보고 나면 마지막 무대가 펼쳐지고 결과가 발표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심장이 두근거린다.
‘.. 잘할 거야.’
방금의 떨림도 극복해낸 주연이다.
마지막 무대도 멋지게 해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 생각과 함께 연두의 머리를 쓰다듬는데,
톡.
반대쪽 팔에 왠지 모를 감촉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건 나를 빤히 바라보는 한 젊은 여자였다.
순간 당황한 나는 말했다.
“.. 누, 누구시죠?”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공연장에서 안면도 없는 사람이 다짜고짜 찾아와 나를 향해 말을 걸 이유가 없지 않은가.
여전한 시선.
더더욱 놀란 건 기습적으로 나를 향해 다가오는 그녀의 얼굴이었다.
슥.
피할 틈도 없이 얼굴을 맞댄 그녀는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한 마디를.
“혹시.. 초록님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