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딸 바보가 되었습니다-615화 (616/850)

615화. 미팅

스튜디오 초록의 또 하나의 주요공간인 미팅룸.

“우와..”

“왜 여길 눈치 못 채고 있었지?”

“근데 여기는……”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서도연이 중얼거리듯 말을 받는다.

역시 눈치가 빠르군.

“…… 미팅룸 같네요.”

정답이었다.

내부 구조부터 미팅룸의 형식을 띠고 있다.

빙긋 웃으며 입을 뗐다.

“맞아요, 미팅룸.”

“아.”

“내부 미팅이나 외부 업체와의 미팅은 전부 여기서 진행하게 될 거예요. 미팅이 없을 때는 휴식공간도 될 수 있고요.”

그 말대로였다.

커피를 비롯한 각종 차와 더불어 간식거리도 잔뜩 준비해뒀으니까.

팀원들이 편하게 쉴 수 있도록.

‘인원이 좀 늘어나도 당분간은 커버가 가능하겠지.’

물론 이상은 더 높았다.

아까 말했듯 우리 프로젝트로 벽지를 가득 채울 정도가 되면 새로운 공간이 필요하게 될 거다.

허나 조급한 마음은 없다.

그때까지는 이곳이 소중한 보금자리가 되어줄 테니 말이다.

“우아..!”

별안간 들려오는 소리.

아무래도 연두가 미팅룸 안에서 보물을 발견한 모양이다.

그게 뭐냐고?

“.. 천하대장 쏘시지다!”

“흐흣.”

그렇다.

비축해 둔 간식 중에는 연두의 최애인 천하대장 소시지도 있었다.

반짝이는 눈.

이윽고 그 시선은 나를 향했다.

“아빠..”

“응, 연두야.”

“먹어도 돼여? 소시지...”

도저히 안 된다고 할 수가 없는 눈빛이다.

고개를 끄덕이자,

치직. 칙.

능숙한 손길로 순식간에 소시지 껍질을 벗겨 낸다.

짭짭.

역시 소시지를 먹을 때 가장 행복해 보이는 연두다.

그 모습을 본 한경우가 말한다.

“그런 소문이 있던데요?”

“어떤 소문이요?”

“연두 때문에 천하대장 소시지가 최고 매상을 찍었다는 소문이요.”

여기저기서 터지는 웃음.

우스운 건 이 말이 마냥 농담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그랬다.

워낙 연두튜브로 소시지 사랑을 많이 보여줘서인지, 자연스레 PPL 효과를 드러낸 경우가 많았으니까.

-아니 ㅋㅋ 소시지 왜 저렇게 맛있어 보이지?

-그니까 ㅋㅋㅋ

-초딩 때 이후로 안 먹은 거 같은데 급땡기네.

-안 되겠다. 지금 편의점 가서 사 온다.

-그렇게 전국의 편의점에서 소시지가 품절되었다는 후문이……

실제로 회사 측에서 몇 번이고 광고 모델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미소를 띠며 팀원들을 향해 말했다.

“다들 여기 있는 건 마음껏 먹어도 돼요. 냉장고 안에는 음료도 있구요.”

“네.”

“네, 초록님.”

내 말에 우영이도 잠깐 고민하다가 하나를 집어 든다.

소시지 싫어한다더니.

‘연두 때문인가.’

매일같이 소시지를 찾는 연두 때문에 호기심이 생긴 걸지도 모르겠다.

유심히 지켜봤다.

껍질을 뜯더니 조금 떼서 입에 넣는 우영이.

“.. 으.”

작게 표정을 찡그린다.

“왜. 별로야?”

“그냥 그래요. 맛있지도 않고, 맛없지도 않고. 굳이 따지면 맛없는 쪽인 거 같긴 한데.”

“하하, 그럼 왜 먹었어?”

“그냥요.”

슥.

깜짝이야.

옆을 돌아보니 연두가 서 있다.

고개를 들고 입은 살짝 벌린 채로 우영이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시선을 느낀 건지 우영이가 입을 뗀다.

“뭐야, 땅콩.”

“…… 맛없어요?”

“어?”

“진짜로.. 맛없어요? 천하대장 쏘시지...”

또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어떻게 소시지가 맛이 없을 수 있냐는 듯한 눈빛.

“어, 별로.”

보통은 빈말이라도 괜찮다고 하겠지만, 없는 말을 할 우영이가 아니다.

그 뒤에 덧붙인다.

“너 먹든지. 입 안 댔으니까.”

“.. 진짜요?”

“응. 줘?”

끄덕. 끄덕.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우영이가 소시지를 내민다.

빛의 속도로 건네받은 연두.

“헤헤..”

배시시 웃고서 말한다.

“고마워여, 우영이오빠..!”

“그, 그래.”

짭짭짭.

바로 소시지를 베어 물고서 저만치 달려간다.

흘러나오는 실소.

어느새부터인가 우리 연두가 조금은 말괄량이가 된 거 같은 느낌이다.

***

테이블을 두고 팀원들이 모두 둘러앉았다.

본론을 꺼낼 타이밍이었다.

스튜디오 구경 외에도 팀원들을 불러모은 또 하나의 목적이 있었으니까.

‘연두가 있긴 한데.’

심각한 문제를 다루는 건 아니었기에 괜찮다는 판단이 섰다.

천천히 나는 입을 뗐다.

“단톡방에도 얘기했지만, 다 같이 의논할 문제가 있어서요.”

“의논할 문제라면……”

“우리가 진행할 첫 프로젝트에 관해서요.”

모두 흠칫하는 게 보인다.

그럴 만도 했다.

첫 업무에 관한 얘기라는데 관심이 없는 팀원이 어디 있겠는가.

나도 이렇게 떨리는데.

“첫 프로젝트라면…… 첫 업무가 정해진 건가요?”

그런 최표식의 물음에 나는 대답했다.

“정해졌다고 볼 수는 없죠.”

“그럼요?”

“아직 제의만 받은 상태니까요. 외주를 받을지 안 받을지 결정하는 건 내부 미팅을 통해 결정할 일이고요. 다짜고짜 미팅이라니 당황스러울 수 있겠지만 양해 부탁할게요. 구두로는 오늘 안에 답을 줘야 하는 상황이라서요.”

다들 납득한 건지 고개를 끄덕인다.

아, 참.

본격적인 얘기에 앞서 꼭 해 둬야 할 이야기가 있었다.

“미팅 도중에 조금이라도 걸리는 부분이나 의견이 있다면 부담 없이 얘기해줬으면 좋겠어요.”

사실상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모두가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

그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미팅은 할 수 없었으니까.

“알겠습니다.”

“네.”

“되게 설레네요. 첫 프로젝트라 하니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설레하는 걸 보면 그다지 긴장한 거 같지는 않다.

나도 편하게 말할 수 있겠군.

“그럼 얘기할게요. 먼저 이 프로젝트는 YMD 엔터테인먼트에서 온 외주 제의예요.”

“.. YMD가 어디죠?”

예상한 반응이다.

그러나 내게는 단번에 납득시킬 비장의 무기가 존재했다.

“JBS에서 이번에 자체적으로 설립한 엔터테인먼트죠.”

“.. JBS요?”

“방송국 말씀하시는 건가요?”

역시 바로 알아듣는군.

이게 대기업의 힘인가.

의외로 단서는 경리인 유하나의 입에서 나왔다.

“저기.. JBS면 이번에 프로젝트 101 방영한 방송국 아닌가요?”

“맞아요.”

자연스레 나는 말을 이어받았다.

“이번에 제의받은 프로젝트도 프로젝트 101과 관련이 있구요.”

본격적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의외로 유려하게 말이 나왔다.

혹여나 긴장해서 제대로 된 설명이 불가능할까 봐 걱정했는데.

“앨범 아트...”

팀원들의 눈이 반짝인다.

하기야 첫 업무가 앨범 아트 작화일 거라 생각한 팀원은 하나도 없겠지.

역설적이게도 그렇기에 오히려 방향성이 더 맞는 느낌이다.

한 분야에 치중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게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작화팀의 모습이니까.

“재밌을 거 같은데요?”

“저도요. 앨범 아트에 관해 잘 모르긴 하는데 오히려 그래서 더 흥미가 가네요.”

“총 일곱 곡이라고 하셨죠? 벽지가 한 번에 굉장히 많이 채워지겠는데요?”

다행히 일차적으로는 긍정적인 반응이다.

아직 중요한 얘기가 남아있었다.

“조건에 대해 얘기하자면……”

상세 조건.

세부적인 건 문서로 확인해야 하지만, 중요한 부분은 구두로 전해 들은 상태였다.

그중 하나를 뽑자면 이거겠지.

“러닝 개런티가 있어요.”

생소하지만 이제 내게는 익숙해진 단어였다.

***

러닝 개런티(running guarantee).

간단히 말해 기본료와 별도로 흥행에 따라 추가 개런티를 지급 받는 걸 뜻한다.

앨범의 경우 그 기준은 판매량이 되겠지.

“.. 그러니까, 일정 판매량이 넘어가면 저희 몫이 커진다는 얘기군요.”

“맞아요.”

“잘 몰라서 그러는데.. 원래 앨범의 경우에 작화가한테 러닝 개런티가 돌아가는 경우가 흔한가요?”

“아뇨, 흔하지는 않아요.”

사실상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앨범에 그림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요소이고, 앨범을 사는 팬덤의 수는 정해져 있으니까.

다만, 지금 경우는 조금 달랐다.

‘관심이 쏠리고 있어.’

나와 연두, 그리고 주연이 사이의 관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앨범 아트를 제작한다는 게 알려지면 그 현상은 더욱 강화될 테고.

판매량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지도 모른다.

그게 회사 측의 생각이었다.

간략하게 설명한 뒤에 나는 덧붙였다.

“만약 러닝 개런티가 발생한다면, 그건 여러분한테 돌아가게 될 거예요.”

“...!”

깜짝 놀라는 팀원들.

개인적으로 나는 러닝 개런티가 들어간 계약을 선호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좀 더 완성도와 퀄리티에 있어서 힘을 기울이게 되니까.

‘물론 개런티가 없더라도 대충 그리는 일은 없겠지만.’

그림은 작화팀의 얼굴이다.

설사 무보수라 하더라도 허투루 그릴 수는 없다.

지금껏 쭉 그래왔고.

다만,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저희한테 돌아간다는 건……”

한경우의 말에 나는 얘기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여러분이 그리는 만큼, 그에 따라 발생하는 개런티도 여러분한테 돌아가야죠.”

말뜻은 간단했다.

기본 보수에 개런티가 발생하면, 그게 얼마든 일정하게 분배해서 추가 지급하겠다는 뜻이었다.

전혀 없다면 지급할 수 없겠지만.

‘뭐, 마인드의 차이겠지.’

모두 이런 방식을 채택하지는 않을 거다.

사실상 기본 봉급만 지급한다고 해도 대표로서의 기본 의무는 다하는 거니까.

허나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가 작화팀을 설립한 이유는 팀원들을 이용해 부를 축적하려는 게 아니다.

그럼 뭐냐고?

‘최고의 작화팀을 만들고 싶은 거지.’

그렇다면 내 생각에 가장 중요한 건 팀원들에게 동기부여를 주는 거다.

하는 만큼 얻을 수 있다는.

단지 수익적인 부분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뿌듯함과 성취감도 동반될 테니.’

작화팀의 첫 업무이다.

앞으로도 그러겠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팀원들에게 그런 것들을 심어주고 싶었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다.

팀원 내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으니까.

“초록님..”

“네, 경우님.”

우선은 나도 그대로 존칭으로 부르기로 했다.

아직은 호칭을 정하기 전이니까.

그러자 한경우가 세상 감명 깊은 표정과 목소리로 말한다.

“저 방금 백만 스물한 번째로 생각했습니다.”

“어떤 생각이요?”

“초록님 작화팀. ‘스튜디오 초록’에 들어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요.”

“.. 푸흣.”

생각지 못한 웃음이 터졌다.

너무 솔직하잖아.

애써 웃음을 지우며 얘기했다.

“지금까지 본 경우님 표정 중에서 제일 즐거워 보이는데요?”

그런 내 말에 여기저기서 새어 나오는 웃음.

한경우는 대답했다.

“오해십니다!”

“.. 그런가요?”

“네. 앨범 아트 얘기 나왔을 때부터 생각했거든요. 저는 그런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해 보고 싶었으니까요.”

같은 마음인지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팀원들.

다행이었다.

어느 정도 내 이상에 공감해주는 거 같아서.

장난스레 말했다.

“감동이네요. 그때부터 백만 스물한 번이나 생각해줬다니.”

“흐흐.”

그러자 조용히 있던 연두가 입을 헤 벌린 채로 중얼거린다.

“우아.. 진짜 크다... 백만 스물한 번……”

그 말에 또 웃음이 터지는 팀원들.

적절한 환기였다.

이렇게 감초 역할을 해주는 센스쟁이 우리 딸 연두였다.

“혹시 궁금한 점이나 의견이 있으면 얘기해주세요.”

팀원들은 적극적으로 미팅에 참여했다.

추가적으로 몇 가지 이야기가 나오긴 했지만 반대의견은 없었다.

다들 첫 프로젝트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프로젝트가 마음에 든 건지, 러닝 개런티가 마음에 든 건지 헷갈리긴 하지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어떤 이유든 끝까지 달려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순간 간질거리는 입.

가끔 이럴 때가 있었다. 오글거릴 걸 알면서도 참을 수 없는 순간이.

“의견이 모아진 거 같으니, 한마디만 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말씀하세요, 초록님!”

마치 선언하듯 나는 모두를 향해 말했다.

“저는 정말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

“항상 그렇더라구요.”

돌이켜보면 늘 그랬다.

학습지 작화를 할 때도, 동화책 작화를 할 때도, 이모티콘을 그릴 때도.

시중에 있는 것들에 기준을 두지 않았다.

더 높은 곳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건 배신하지 않았지.’

설사 배신당했다고 해도 그리 억울하지는 않았을 거다.

적어도 나 자신한테 부끄럽지는 않았을 테니.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시중에 널린 앨범 아트에 기준을 둘 생각은 없다.

“프로미스, 그 친구들에게 최고의 데뷔 앨범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어떤 앨범이랑 비교해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진지해진 분위기.

그러나 팀원들의 표정을 보니 우려한 오글거림과는 결이 달랐다.

이윽고 입을 뗀 건 서도연이었다.

“.. 네, 대표님.”

우습지만 한동안 대표님이라 불린 걸 눈치채지 못했다.

다들 한 마디씩 거드는 팀원들.

마지막으로 입을 뗀 건 조용히 듣고만 있던 우영이였다.

“뭐, 늘 하던 대로만 하면 되는 거잖아요.”

우영이다운 말이다.

하기야 내가 달려온 많은 시간들 속에는 우영이도 함께했으니까.

아직 한 명이 남아있다.

뭘 알고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세상 환하게 웃고 있는 연두가 보인다.

자연히 입이 벌어졌다.

“그럼, 잘 부탁할게요.”

그렇게 정해졌다.

찬란하게 첫발을 내디딜, ‘스튜디오 초록’의 첫 프로젝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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