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딸 바보가 되었습니다-674화 (675/850)

674화. 야무진 부녀

[연시레의 이든 여름촬영!(feat. New model)

영상이 올라갔다.

아름이 채널에 올라간 메이크업 이후의 촬영이 담긴 영상이었다.

편집하면서 생각했다.

또 하나의 손꼽히는 레전드 영상이 탄생할 거 같다고.

‘비주얼은 말할 것도 없고.’

일단 연시레가 함께 나온 것부터 그랬다.

지금껏 몇차례 이든 촬영 영상을 올렸지만, 반응이 좋지 않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잠깐만.

그렇게 치면 반응이 나빴던 적이 없긴 하구나.

‘엄청 좋았지.’

그렇게 표현하는 편이 가장 알맞을 거 같다.

이든 촬영은 보장된 콘텐츠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연시레가 함께 나오는 데다가, 이든의 신상 옷들을 입고 촬영하는 거니까.

비주얼이 폭발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달라.’

연시레만 나온 게 아니었다.

마지막에 언급되어 있듯이 이번 영상에는 뉴 모델이 나오니까.

선동이와 노엘.

그래서인지 반응이 평소보다 더 기대가 됐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마이너스가 될 거 같지는 않았다.

일단 선동이는 연두부로부터 사랑받는 몇 안 되는 남자아이 중 하나였다.

아니, 유일할지도 모른다.

-우리 연두는 못 준다, 이 놈!

이런 식으로 언급될 때가 많긴 하지만.

그런 드립과 별개로, 선동이에 대한 연두부의 애정을 증명하는 요소가 존재했다.

다름아닌 조회수였다.

유투브는 조회수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니까.

‘낮은 적이 없었어.’

선동이가 등장한 영상 중에 조회수가 낮은 영상이 없었다.

왜냐고?

늘 재미가 증명됐거든.

선동이의 비밀장소 영상은 아직도 연두튜브 조회수 Top 10 안에 자리하고 있고.

그렇다.

‘괜히 이든 모델 자리를 차지한 게 아니지.’

단순히 친분 때문이라 하기에는 선동이 자체도 너무 매력있는 아이였다.

그리고 그 자리를 위협하는 게 노엘이었다.

근거는 역시 조회수였다.

저번에 올린 영상에서 난데없이 조회수가 터졌거든.

물론 좋은 쪽으로.

실소가 나오게 한 점은, 그 영상에서 노엘은 밥만 먹었다는 점이었다.

짤막한 몇 마디를 뱉은 거 빼고는.

달리 말하면 그것만으로도 연두부에게 존재감을 각인시키기에는 충분했다는 거고.

‘뭐, 좋은 거지만.’

당연했다.

내가 등장시킨 만큼, 미움받는 걸 원할 리 없지 않은가.

이윽고 눈앞에 떠오르는 댓글창.

-미쳤다...

┖옷이 더 예뻐진 거냐, 아니면 연시레가 더 예뻐진 거냐...?

┖둘 다인 듯.

┖진짜 위험했다, 이번 영상은.

┖선동이 표정 찐이네 ㅋㅋㅋ

┖아니 ㅋㅋ 연두부 대변인이냐고. 침 안 흘린 게 용하네.

┖왤케 귀엽냐, 선동이.

-근데 이번 영상은 선동이 입덕영상인 듯.

┖ㅇㅈ

┖선동이가 더 좋아졌음.

┖나는 이번 영상 보고 그냥 선동이 응원해주기로 했다...

┖??? 그건 선 넘지.

┖뭘 생각한 거임.

┖연두랑 잘 되는 거 응원해준다는 거 아님?

┖아닌데요. 노엘이랑 우정 얘기하는 건데요.

┖아 ㅈㅅ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나 그랬다.

이번 영상에서도 존재감을 확연히 드러낸 선동이였다.

정작 본인은 모르겠지만.

-노엘 비주얼은 진짜 미쳤다.

┖그냥 가만히 앉아만 있는데 화보네. 저런 외모로 살면 어떤 기분일까.

┖너는 평생 느껴볼 수 없는 기분? ㅎㅎㅎ

┖왜 시비냐 ㅁㅊㅅㄲ야.

┖근데 노엘이랑 선동이 케미 미치지 않음?

┖막 사이가 좋아보이는 건 아닌데 같이 있을 때 그림이 너무 예쁨. 그리고 선동이가 노엘 은근히 챙겨주는 거 개치인다...

┖캐스팅 누가했냐.

┖노선코인 열차 출발합니다... 탑승하실 분 계신가요?

┖저요.

뿌듯한 마음이다.

나름 선동이와 노엘의 섭외에 둘 다 개입한 입장에서 안목을 인정받는 느낌이었으니까.

-나만 그 부분에서 멈췄냐.

┖어떤 부분이요.

┖선동이랑 노엘 사이에 연두가 서서 촬영하는 부분. 3인 케미에서 그냥 녹아버렸는데.

┖나 그거 보는 거 같았다고.

┖뭐요.

┖응팔에서 덕순이가 탁이랑 정한이 둘 중 한명이랑 결혼하는데 누구랑 할지 모르는 거.

┖그럼 어남노 vs 어남선인 거냐.

┖그 전개대로라면 노엘이랑 결혼한다는 거잖아.

┖아니, 너네 어디까지 감? 미쳤냐? 남친도 안 되는데 무슨 남편 얘기를 하고 있어.

┖과몰입 자제해라. 주먹맛 보기 전에.

드문 광경이다.

이렇게 연두부들이 정색하는 건.

여기서 말하는 어남 어쩌고는 응팔이라는 드라마에서 나온 밈으로 알고 있었다.

‘어차피 남편은 ~다의 줄임말이겠지.’

댓글에 나온 걸 예로 들자면, 어남선은 ‘어차피 남편은 선동이’의 줄임말일 테고.

웃음이 나오긴 했다.

이제 여덟살인 연두의 남편이 벌써부터 거론되고 있다니.

나는 느꼈다.

노엘 특유의 썩소가 내 입가에 번지고 있다는 걸.

“하하하.”

연두의 남편감을 거론하는 건 백년은 이르다.

뭐, 그것만 제외하면 영상에 대한 반응은 생각 이상으로 좋았다.

자연히 떠올랐다.

영상에 담지 않은 부분이.

‘촬영 이후.’

수목원에서의 연두와 노엘, 그리고 선동이의 모습을 담은 부분이었다.

숨은 하이라이트라고 해야 하나.

일부러 영상에 담지 않고 남겨뒀다.

‘비하인드로 올릴 거거든.’

기대가 됐다.

나조차 몰입해버린 셋의 케미를 봤을 때 연두부들이 보일 반응이.

***

연두네 집.

현관 앞에서 원래는 볼 수 없었던 인사말이 들려왔다.

“다녀오겠습니다.”

다름아닌 주원의 인사였다.

대상은 민홍임이었다.

선동이와 함께 서울로 올라와, 촬영을 마칠 때까지는 머물기로 한 상태였으니까.

출근하는 손주의 모습에 묘한 감정이 일었으나 내색할 그녀가 아니었다.

퉁명스레 인사를 받았다.

“후딱 갔다와. 이 나이에 애 둘 보는 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 알어?”

“하하, 빨리 올게요.”

멋쩍은 표정.

할머니 말이 백번 옳았기에 반박이 불가능했다.

“아빠 다녀올게, 연두야.”

“.. 네에.”

연두도 집에 남았다.

주원 대신 할머니가 보호자 역할을 할 수 있었으니까.

남은 건 선동이였다.

“천천히 오셔도 돼요, 아저씨.”

“...?”

앞선 민홍임의 말과 상충되는 얘기였다.

아직 잠이 다 깨지 않은 건지, 잠긴 목소리로 선동이는 말을 이었다.

“촬영 일정도 최대한 천천히 잡고요.”

“.. 왜?”

“그래야 서울에 오래 있을 수 있잖아요. 아!”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라도 한 듯이 선동이가 손뼉을 짝 치며 말한다.

“가을 촬영이니까 아예 가을에 찍는 거 어때요? 어쩔 수 없이 저는 서울에서 학교 다니면서……”

신나서 얘기했지만 끝까지 말이 이어지지는 못했다.

왜냐고?

청양고추보다도 매운 민홍임의 손바닥이 선동이의 등을 강타했으니까.

짜악.

“.. 어억!”

잠이 깨다 못해 정신이 번쩍 드는 등짝 스매싱이었다.

등을 부여잡고 통통 튀는 선동이.

뭐라 입을 떼기도 전에 할머니의 말이 들려왔다.

“어쩔 수 없긴 뭐가 어쩔 수 없어, 이 놈의 새끼야. 가을까지 누구 고생을 시키려고……”

이번에는 선동이도 단단히 화가 났다.

평소의 스매싱보다 강도가 한참 셌으니까.

뜨거운 콧김을 내뿜으며 반박하려는데 느껴지는 감촉.

고개를 돌리니 눈에 들어왔다.

“괘, 괜찮아여, 선동이오빠..?”

세상 걱정어린 시선.

그건 천사의 눈이었다.

화끈거리는 등의 통증과 함께 올라온 감정도 사르르 녹아내렸다.

“흐허허, 괜찮다. 하나도 안 아프다.”

제대로 고장나 장수원에 버금가는 로봇멘트를 선보이는 선동이.

연두의 말이 이어졌다.

“할머니! 때리는 건 나쁜 거에여..!”

“어쭈, 요 년이? 할머니 편이 아니라 이 밤톨새끼 편을 들어? 너도 등짝 한 대 맞고 싶어?”

“아, 안 맞고 싶어요!”

민홍임이 손을 뻗으니 냅다 줄행랑을 치고서 빼꼼 고개만 내민다.

향상된 스피드를 이런 식으로 활용하는 연두였다.

그 모습을 본 주원은 큭큭 웃으며 말했다.

“참으세요, 할머니. 그럼 저 진짜 가 볼게요.”

훨씬 임팩트가 생긴 출근길이었다.

멀찌감치 떨어진 와중에도, 연두는 환하게 웃으며 아빠를 향해 손을 흔든다.

경계를 늦추지 않긴 했지만.

끼익.

현관문이 닫혔다.

얼마간 지속되는 냉전상태, 그 속에서 먼저 입을 뗀 건 연두였다.

“.. 할머니.”

“뭐.”

“연두가 잘못했어여...”

그 말에 민홍임은 고개를 휙 저으며 말을 받았다.

“됐어, 요 가시나야.”

누가 봐도 삐진 제스처였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앞서 연두가 그녀와 선동이 중 선동이 편을 든 건 사실이니까.

그리고 민홍임은 생각보다 단순한 사람이었다.

“할머니..”

“또 뭐.”

“연두가 가까이 가면, 때찌할 거에요..?”

사실상 그게 이유였다.

아까 연두의 눈에 선동이오빠는 진짜 아파보였으니까.

민홍임은 대답했다.

“안 때려! 때려봐야 내 손만 아프지.”

그 말대로였다.

이번에도 그렇고, 실제로 민홍임은 한 번도 연두에게 손을 댄 적이 없었다.

선동이나 주원에게 하듯이.

왜냐고?

장난으로라도 연두는 때릴 수 없는 이유가 있었으니까.

“.. 할머니!”

달려와서 와락 안기는 연두.

“저, 저리 안 떨어져!”

“헤헤..”

그런 연두를 바라보는 민홍임의 눈에는 지울 수 없는 아픔이 서려있었다.

더 정확히는, 미안한 감정이었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대한.

***

아침식사를 위해 부엌에 간 민홍임.

아직 식지 않은 채로 덮여있는 음식들을 보고 미세하게 입이 벌어졌다.

냉장고를 열어도 그랬다.

꺼내서 데워먹기만 하면 되는 반찬들이 많았다.

매일 구박하는 손주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야무졌다.

내로라하는 주부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언제 일어난 건지……’

아침잠이 없는 민홍임이었다.

이걸 다 준비했다는 건 그녀보다도 빨리 일어났다는 뜻이다.

서울에 오자마자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할머니.’

‘뭐.’

연두랑 선동이를 맡기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다른 건 신경 쓰실 일 하나도 없도록 할게요.’

그래서일까.

아침을 준비하는 민홍임의 입가에는 본인도 자각 못한 미소가 떠올라있었다.

“주세요, 할머니..!”

연두가 준비를 도왔다.

그런 연두를 보니 혼자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선동이가 합류했고.

그렇게 시작된 아침식사.

후릅.

콩나물국을 떠먹은 민홍임은 또 한 번 생각했다.

야무지다고.

그 표현만큼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와...”

그런 야무진 맛 때문일까.

눈 깜빡할 사이에 한 그릇을 해치운 선동이는 두 그릇째를 먹으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괜히 민홍임은 입 밖에 뱉었다.

“식사를 왜 그렇게 요란하게 해?”

“맛있어서요.”

와구와구 먹으며 선동이는 덧붙였다.

“저번에 서울 왔을 때도 그랬는데, 아저씨 요리 진짜 잘하는 거 같아요.”

흐뭇한 표정으로 연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민홍임이 퉁명스레 대꾸했다.

“오버는. 평범하구만.”

민홍임어로 해석하자면 더 칭찬하라는 뜻이었다.

비록 그 의도를 알아채지는 못했지만 선동이는 계속해서 말했다.

“진짜 맛없는 게 없다니까요? 우리 엄마보다 아저씨가 요리 잘해요. 그리고 할머니보다도……”

뒤늦게 아차 싶어서 말을 멈췄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 나보다 뭐?”

꿀꺽.

싸늘한 공기.

다소 이르게 목구멍으로 밥을 넘긴 선동이가 말했다.

“할머니 닮아서 그런지 요리를 잘하는 거 같다구요. 하하. 그치, 연두야?”

“네, 맞아여!”

기가 막힌 수습이었다.

연두에게 자연스레 호응을 유도하는 것까지.

그 덕에 넘어갈 수 있었다.

“빨리 먹기나 해.”

얼마 뒤에 아침식사가 끝났다.

아침부터 과식을 한 선동이는 배를 부여잡고 괴로워했다.

“으어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과하게 먹으면 부작용이 있는 법이다.

연두도 그 마음은 잘 알고 있었다.

“연두가 담가줄게요, 선동이오빠..!”

“고, 고마워.”

그 뒤에 이어졌다.

“살찌면 안 되는데... 나 이든 모델인데……”

그런 와중에도 이든 모델로서의 품위를 걱정하고 있는 선동이였다.

***

‘설거지는 제가 퇴근하고 와서 할게요.’

그 말을 들었지만 민홍임은 바로 싱크대로 향했다.

애초에 눈에 보이는데도 내버려 둘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런데,

슥. 슥.

생각지 못한 장면에 민홍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쥐방울.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렇다.

민홍임의 눈에 들어온 장면은 다름아닌 고무장갑을 끼고 있는 연두였다.

“설거지 연두가 할게요!”

어느새 의자도 가져와서 위에 올라가 있다.

위험할라.

마음속에 스치는 말 대신 민홍임은 얘기했다.

“됐어, 요 년아. 방해만 되니까……”

쏴아아!

그러나 연두는 이미 행동을 개시한 상태였다.

손에 든 접시와 수세미.

슥삭. 슥삭.

얼마나 지났을까.

민홍임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은 하나였다.

‘.. 뭐가 이렇게 야무져?’

세상 야무진 부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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