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1화. 트로피
“대명초등학교 2학년 안수호 학생, 그리고 선화초등학교 1학년 서연두 학생.”
나란히 호명된 수호와 연두의 이름.
그 밖에도 몇몇 이름이 더 호명됐으나 모두는 알 수 있었다.
대상후보는 둘이라는 걸.
“다녀올 수 있지, 연두야?”
“.. 네.”
기본적으로 시상식은 참가자 혼자 올라가는 구조였다.
그에 따라 호명된 아이들이 떨리는 얼굴로 무대 위로 발을 옮겼다.
수호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제자를 바라보는 조희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불안감 때문이었다.
‘설마……’
절대 안 된다.
지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계획이 물거품이 되는 건 물론이고, 웃음거리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그런 와중에도 연주를 보며 느꼈던 불쾌하기 그지없는 감정이 몸을 감쌌다.
절망감.
고작 여덟 살의 연주를 보고 그런 감정이 들었다는 게 열이 받았다.
꼭 이은경을 봤을 때처럼.
주위에서는 결과를 점치는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대상 누가 탈 거 같냐?”
“연두지.”
“솔직히 우스갯소리로 동요만 쳐도 대상이라고 하긴 했는데, 그냥 연주만 놓고 봐도 연두가 제일 좋지 않았냐?”
“진짜.. 연두가 이렇게 잘 칠 줄은……”
“근데 저 애도 있잖아. 수호였나?”
“잘 치긴 했지. 그런데……”
“킥킥, 여기까지.”
그런 대화가 들어옴에 따라 조희나의 안색은 더 어두워졌다.
한편 무대 위.
호명된 아이들이 나란히 서 있다.
사실상 모두 상을 받는다고 봐도 무방했다.
관건은 어떤 상을 받느냐였다.
“네, 그럼 시상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수상자 발표는 추원예술대학교 김주연 교수님이 진행해 주시겠습니다.”
박수 소리.
그와 함께 심사위원석에서 김주연이 무대 위로 올라갔다.
마이크를 건네받는다.
“안녕하세요, 추원예대 교수 김주연입니다.”
바로 발표가 시작됐다.
상은 총 세 종류로 나뉘었다.
장려상, 우수상, 최우수상, 전체 대상.
스윽.
이미 결과지는 김주연의 손에 들려있었다.
펼쳐서 결과를 본 그녀의 얼굴에 이렇다 할 동요는 없었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그녀는 말했다.
“먼저 장려상 수상자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장려상 수상자는 총 세 명이었다.
우수상은 두 명으로 줄어들고, 최우수상과 전체 대상은 각각 1명이 수상하게 된다.
차례로 장려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축하합니다. 공연초등학교 1학년 최지나 학생, 서일초……”
호명된 아이들의 얼굴에 아쉬움이 떠오른다.
그럴 만도 하다.
이미 수상이 확정된 상황에서 장려상은 가장 낮은 상이니까.
게다가 우수상부터는 특전도 존재했다.
-주최에 참여한 예술학교 입학 시 소정의 장학금 혜택을 제공함
안타깝지만 장려상은 배제되는 특전이었다.
그러다 보니 만족하는 아이들도 있는 한편, 울상이 된 채로 상을 받는 아이들도 있었다.
다음은 우수상 수상자였다.
역시나 연두와 수호의 이름은 발표되지 않았다.
“와, 결국 이렇게 되네.”
“근데 이게 맞긴 해.”
“하, 제발 연두.. 대상 받아라...”
“근데 둘 다 뭔가 안 떠는 거 같지 않냐? 표정이 되게 홀가분한 느낌인데.”
“그러네.”
“서로 대상이라 확신하고 있는 거 아니야?”
그 말대로였다.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둘의 표정은 홀가분해 보였다.
연두도, 그리고 수호도.
예능 프로그램이 아닌 만큼 수상 발표를 미루는 식의 전개는 없었다.
“그럼 제43회 중앙음악콩쿠르 대상 수상자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상 수상자는……”
모두의 시선이 무대 위를 향했다.
줄곧 연두를 바라보던 주원도, 옅은 미소를 머금은 이은경도, 포커페이스는 포기한 채로 희번덕한 눈으로 무대를 응시하는 조희나도.
그리고 마침내,
“축하합니다. 대명초등학교 2학년 안수호 학생입니다.”
대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
결과가 발표되는 순간.
“핫!”
자기도 모르게 외마디 소리를 내뱉은 조희나는 아차 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선 생각했다.
‘그럼 그렇지.’
방금까지 불안에 어쩔 줄 몰라 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결과가 나왔다.
이은경을 이긴 거다.
“.. 흣.”
쾌감에 웃음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뭐, 괜찮겠지.
조금 품위가 없어 보일지도 모르긴 하지만, 제자의 대상 수상에 기뻐하는 스승의 모습은 자연스럽다.
오히려 인간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어디 한 번 볼까.’
고대하던 순간이었다.
결과가 나왔을 때 일그러지는 이은경의 표정을 보는 건.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그런 조희나의 눈에 비친 건 생각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 웃어?’
웃고 있었다.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보내고 있다.
살짝 미간을 찡그린 조희나는 조소하듯 원래 자리로 고개를 돌렸다.
‘쿨한 척 넘기고 싶은 모양인데.’
그렇게는 안 될 거다.
원하는 대로의 결과가 나왔고 기사가 마구 쏟아질 테니.
조희나의 제자가 이은경의 제자를 이겼다는.
그런데 왜일까.
‘.. 이긴 거 맞지?’
그도 그럴 게 다들 웃고 있었다.
심지어 아빠라는 사람도 딸이 대상 수상을 실패했는데 전혀 아쉬워하는 기색이 없다.
오히려 기뻐하는 모습이다.
무엇보다도 거슬리는 건 무대 위였다.
‘저 애는 왜……’
그 누구보다도, 연두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
선천적으로 음감이 뛰어나고 음악적으로 듣는 귀가 발달한 연두였다.
그래서일까.
수호의 연주를 듣는 순간에 알 수 있었다.
‘우아...’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연주였다.
위축이 될 정도로.
그러나 어딘가 슬퍼 보였다.
연주를 마치고 걸어 내려온 수호는 연두를 향해 말했다.
‘꼭, 나를 이겨줘...’
이겨달라는 말.
진심이 느껴졌지만 ‘응.’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연두는 알았다.
자신과 수호 사이에는 지금으로서는 극복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는 걸.
대상이 목표였다.
그 목표를 이룰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상태에서 연두는 무대에 올랐다.
좌절하지 않았다.
왜냐고?
연두에게는 결코 바뀌지 않는 목표가 하나 더 있었으니까.
톡.
건반 위에 손을 올린 채로 눈을 감았을 때.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선생님과 연습하던 시간들, 콩쿠르를 위해 연습하던 시간들, 그리고 아빠와 함께 흠뻑 비를 맞았던 그 날의 장면들이.
소중한 기억들.
모두 전달하고 싶었다.
닿았으면 했다.
아빠와 선생님, 친구들, 관객들뿐 아니라 수호에게도.
딴.
마법 같은 경험이었다.
떨림 속에서 누르는 건반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음표가 떠다녔다.
폭풍처럼 격정적인 음이 이어졌지만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함께 비를 맞았던 그 날처럼, 옆에 꼭 아빠가 있는 것만 같았으니까.
‘할 수 있어, 연두야...’
아빠의 목소리.
그 소중함은 음에 고스란히 담겨 관객들의 귀에 전달됐다.
그렇다.
다른 누구도 아니었다.
무대 위의 피아니스트는 원곡자인 부르크 뮐러도, 그 누구도 아닌 연두였다.
딴. 따단.
진심은 전해지는 법이다.
완성도 면에서는 뒤처질지 몰라도 연두의 연주는 모두의 마음을 움직였다.
결과가 발표됐다.
연두의 표정에는 조금의 아쉬움도 없었다.
마치 오래전에 꼬마 피아니스트였던 이은경이 은주아에게 지고 나서 환하게 웃었던 것처럼.
“...”
그래서일까.
연두를 바라보는 이은경의 입가에는 세상 따스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축하해, 수호야..”
인사를 건넨 연두가 아차 하고 정정한다.
“아니, 수호오빠..!”
“.. 고마워.”
여전히 조희나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원하는 결과가 나왔지만 생각한 흐름이 아니었으니까.
“최우수상 수상자는 선화초등학교 1학년 서연두 학생입니다.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어지는 수상소감 발표.
추원예대 교수 김주연이 손에 든 마이크를 수호에게 건넸다.
슥.
마이크를 입가에 댄 수호.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에 입을 뗐다.
“.. 대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난한 첫 멘트였다.
보통은 가족을 포함한 고마운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다른 말이 이어졌다.
“가장 먼저 옆에 있는 연두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모두가 놀랄 만한 말이 이어졌다.
“이 상은 제가 아니라 연두가 받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희나의 입이 벌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대상을 탔을 때의 수상소감도 미리 전달해 둔 상태였으니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저런 식의 겸손을 떨라는 지시를 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간과한 점이라면, 수호는 지시대로 따르는 로봇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지금은 더더욱 그랬다.
옅은 미소와 함께 수호는 덧붙였다.
“엄마가 그러는데 제가 돌잡이 때 열두 개 중에 피아노를 잡았대요. 그것도 두 번이나. 아빠는 청진기나 축구공을 잡기를 바랐는데……”
수상소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수호는 담백하게 마음속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었다.
피아노를 통해 표현하고 싶었지만 새장 속에 갇혀서 차마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 여보.”
손을 꼭 잡고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수호의 부모님.
어느새 관객들도 하나같이 수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결과에 불만을 표현하던 사람들까지도.
“그래서 저는 피아노랑 운명이라고 생각했어요. 피아노 치는 게 너무 즐거웠는데……”
“...”
“요즘 피아노 치는 게 싫어졌어요. 다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떨리는 손.
그러나 수호는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그런데 연두 연주를 듣고 알게 됐어요. 제가.. 어떤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은지.”
그 말을 들은 연두가 흠칫 몸을 들썩였다.
벅차오르는 마음과 함께 왠지 모르게 울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이어지는 수호의 말.
“다시 피아노를 치고 싶어요.”
역설적인 말이었다.
계속 피아노를 쳐 왔지만 다시 치고 싶다는 말은.
“그러고 나서, 또 연두랑 콩쿠르에서 만났으면 좋겠어요. 꼭.”
그때는 돌려주고 싶었다.
오늘 받은 것들을.
마이크를 건네받은 김주연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들어본 것 중에 가장 좋은 수상소감이었네요.”
동시에 터져 나왔다.
아까 수호의 연주에는 나오지 않았던 박수와 함성 소리가.
“와아!”
“힘내, 수호야!”
“멋지다!!”
모두의 마음이 채워지는 콩쿠르였다.
***
유일하게 채워지지 않은 건 조희나의 마음뿐이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고 있어.’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애써 밝은 웃음으로 포장하고 함께 사진을 남겼다.
이윽고 걸어 나온 복도.
부모가 있기에 둘만 있을 때처럼 얘기할 수는 없었다.
“잘했어, 수호야.”
“감사합니다.”
“그래도 수상소감에서 선생님 얘기 한 번은 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호호.”
뭐, 괜찮았다.
원하는 결과는 손에 들어왔다.
그 결과를 통해 창출될 것들을 생각하면 수상소감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 죄송해요.”
조희나는 말했다.
“죄송하긴. 앞으로도 선생님만 따라오렴. 그럼 전에 말할 것처럼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만들어 줄 테니까.”
그런데 이상했다.
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고개를 돌리니 보이는 건 수호가 내밀고 있는 금색 트로피였다.
“응? 이걸 왜 나한테 주니?”
“선생님 덕분에 탈 수 있었던 상이니까.. 선생님한테 드리고 싶어서요.”
“어머, 얘는……”
마다하면서도 조희나는 생각했다.
그게 고마우면 수상소감 때나 그렇게 얘기할 것이지.
아직 그녀는 몰랐다.
금색 트로피를 건네는 수호의 행동이 의미하는 바를.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또한 몰랐다.
사제관계를 끊는 게 자신이 아닌 수호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