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딸 바보가 되었습니다-726화 (727/850)

726화. 후일담

연두의 첫 콩쿠르.

아직 영상을 올리기 전이었지만 콩쿨장을 찾은 기자에 의해 결과는 알려졌다.

댓글창은 떠들썩했다.

결과에 아쉬움을 표하는 연두부도 여럿 있었다.

-우리 연두 ㅠㅠ 대상은 못 탔구나. 그래도 잘했어!

┖첫 콩쿠르 최우수상이면 엄청난 거죠.

┖근데 진지하게 신기하긴 하네. 연두부긴 하지만 솔직히 상은 못 탈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슨 뜻임?

┖콩쿠르에서 연두라고 가산점을 주지는 않을 거 아님. 연두가 상을 탈 정도의 실력은 아니라고 생각했음. 그래서 기사 쏟아질 때 걱정도 됐고. 근데 최우수상이라니 ㄷㄷ

┖이분 최소 연두 콩쿠르 연주 안 보신 분.

┖님은 봤음?

┖ㅇㅇ 직관 갔다 옴.

┖오 어땠는데요?

┖나는 님이랑 다르게 기대했는데 그 기대를 아득히 뛰어넘는 연주였음 ㅋㅋㅋ 여기까지만 말함.

그렇다.

댓글 사이에는 직관을 왔던 연두부들이 하나둘 섞여 있었다.

그걸 보는 게 나름의 묘미였다.

-아 ㅋㅋㅋ 직관 간 사람은 알지.

┖뭘요?

┖이 결과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는 걸.

┖근데 크게 신경 안 쓰긴 함. 처음에는 납득 못 했는데 연주를 떠나서 너무 레전드였어서……

┖진짜 그 자리에 있었던 건 축복이다.

┖ㄹㅇ 다시 보고 싶음...

알다시피 많은 연두부가 관객으로 콩쿨장을 찾았다.

신기한 건 그런 연두부에 의해 연주하는 영상이 외부로 퍼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따로 부탁을 한 것도 아닌데.

그 이유도 댓글을 통해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연두 연주 찍으신 분 없나요 ㅠㅠ 너무 보고 싶어...

┖당연히 찍었죠 ㅎㅎ

┖저 공유해주시면 안 되나요.

┖안 됨 ㅋㅋㅋ

┖...

┖님을 위해서임. 곧 연두튜브에 올라올 텐데 내가 찍은 영상으로 보면 임팩트가 덜할 거임.

┖아 ㅠㅠ 그런가요.

┖초록님, 제발 빨리 좀...

이런 반응인데 도무지 대충 편집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더 걸리는 이유는 또 있다.

‘10분으로는 안 돼.’

단순히 콩쿠르뿐 아니라 그 과정까지 담아내고 싶었다.

그에 더해 시상식 이후의 모습까지도.

10분으로는 짧았다.

그렇다고 여느 때처럼 영상을 두 개로 쪼개고 싶지도 않았다.

‘임팩트가 덜할 테니까.’

내가 느낀 감정을 가능한 한 고스란히 전달하고 싶었다.

그걸 위한 편집이었다.

며칠간 혼을 갈아 넣은 끝에 완성된 영상길이는 자그마치 30분에 달했다.

처음이었다.

풀버전도 아니고 편집본이 30분짜리인 건.

[연두의 첫 콩쿠르!(feat. 아름다운 경쟁)]

희대의 라이벌.

기사에서 다소 부자연스럽게 튀어나왔던 키워드였다.

그래서였다.

그런 식으로 엮는 게 아니라 더 발전적인 경쟁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단지 제목일 뿐이지만.

‘상처받지 않았으면 해.’

콩쿠르 이전도 그렇고.

지금도 알려진 결과에 대해서만 얘기하며 무작정 수호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확신했다.

영상이 올라가면 그런 사람조차 생각이 달라질 거라고.

비록 영상 제목은 연두의 첫 콩쿠르지만, 이 영상의 주인공은 연두만이 아니었다.

달칵.

업로드 버튼을 클릭했다.

바람은 하나였다.

그날의 감동이 절반, 아니 반의반만이라도 전해지기를 바랐다.

***

시골길.

요즘 들어 민홍임은 부쩍 동네를 산책하는 일이 많아졌다.

산책이 목적은 아니었다.

손주한테 연두의 수상 소식을 전해 듣고,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한 시점부터였다.

‘할머니!’

처음 마주친 건 옆집의 오동남이었다.

‘연두 상 탔다면서요!’

그럴 때마다 민홍임은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반응하곤 했다.

‘뭘 그렇게 소리치고 그래? 대단한 거라도 되는 것처럼.’

‘최우수상이라던데요? 엄청 대단한 거 아니에요?’

‘최우수상 위에 대상이란 게 있어. 대상이 1등이고. 그것도 몰라? 촌사람 아니랄까 봐.’

‘그럼 최우수상이 2등인 거잖아요.’

‘그렇지.’

‘뭐야. 2등이면 대단한 거죠! 기쁘시겠어요, 할머니! 축하드려요!’

그런 말에 민홍임은 대답했다.

‘축하는 무슨 놈의 축하. 내가 상 탄 것도 아닌데.’

그때부터였다.

틈만 나면 민홍임은 마을을 산책하곤 했다.

대화 패턴은 늘 비슷했다.

‘축하는 무슨 놈의 축하.’

‘2등이 뭐 대단한 거라고.’

‘그러니까 최우수상은 대상 아래에 있는 상이라니까! 최고로 우수한 상이 아니라……’

사실 그랬다.

손주와의 통화에서 연두가 최우수상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눈이 동그래졌던 그녀였다.

최우수상이 가장 높은 상인 줄만 알았으니까.

보다시피 손주로부터 상에 대해 전해 들은 뒤로는 되려 역정을 내고 있는 상황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그녀는 산책을 멈추지 않았다.

‘연두가 최우수상을 탔대요!’

‘이야, 정말?’

‘최우수상이면 최고라는 뜻 아녀? 그럼 1등 한 거야?’

‘당신 할머니 앞에서 그 소리 했다가 큰일 나요. 최우수상은……’

그쯤 되니 연두의 수상 소식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왜일까.

오늘도 민홍임은 어김없이 마을을 돌았다.

“이따가 밥이나 먹으러 오던가.”

“할머니 집에요?”

“그럼 우리 집이지. 다른 집에도 전화해서……”

작은 시골 마을이다 보니 종종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식사하거나 시간을 보내는 일은.

‘무슨 일 있으신가?’

보통은 미리 날짜를 정해주는 게 일반적이었다.

당일 소집이다 보니 의문이 들긴 했지만 김진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할머니.”

저녁이 찾아왔다.

당일 소집임에도 불구하고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이 민홍임의 집에 모였다.

선동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야, 선동이. 이번에도 학교에서 1등 했다며?”

“네, 뭐……”

선동이는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이 정도의 칭찬은 이제 별로 임팩트가 없었다.

“이러다 진짜 의사 되는 거 아니야? 대수 기대 좀 해 봐도 되겠는데?”

대수는 선동이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불편한 그의 다리를 겨냥한 말이 틀림없었다.

실제로 선동이가 의사를 꿈꾸는 이유도 그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으니까.

벽에 대고 걸터앉은 오대수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을 받았다.

“안 그래도 오래전부터 기대 중입니다. 저를 닮아서 이 녀석이 똑똑합니다, 아주.”

“허허. 자네를 오래전부터 봐 온 내가 듣기에는 그만큼 허무맹랑한 소리가 없구먼.”

“.. 예?”

둘의 대화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즐거운 분위기.

그 사이에 음식이 준비되고 너나 할 것 없이 일어서서 접시를 날랐다.

마침내 끝난 식사 준비.

“잘 먹겠습니다!”

식사가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왠지 모르게 민홍임의 행동이 부자연스러웠다.

무언가 말을 꺼낼 듯 말 듯 고민하는 표정이라고 해야 하나.

‘.. 응?’

그 모습을 가장 먼저 포착하고 김진아가 입을 열려는 참이었다.

민홍임의 입에서 냅다 튀어나왔다.

생각지도 못한 한 마디가.

“이, 이번에 올라온 연두튜브 봤어!?”

다 계획이 있는 민홍임이었다.

투명한 유리처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게 문제지만.

***

톡.

건반에 손을 올렸다.

레슨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쳐다보기도 싫었던 피아노.

억지로 그 앞에 앉아 내는 소리들은 하나같이 악보에 갇힌 색깔 없는 음들뿐이었다.

울렁거리는 속.

그러나 수호는 손을 떼지 않았다.

스윽.

눈을 감았다.

콩쿠르 때의 연두가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머릿속에는 떠올랐다.

그날 대기실에서 선 채로 지켜봤던 연두의 연주가.

‘반짝였어.’

눈부시게 반짝이던 음표.

어떤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는지 알려준 그 순간을 떠올리며 수호는 손가락에 마음을 담았다.

딴.

눈은 뜨지 않았다.

악보를 볼 필요도 없었다.

그저 그 순간에 느낀 감정에 집중하며 수호는 손가락을 움직였다.

마음이 가는 대로.

어떠한 형식에도 얽매이지 않고.

따단. 딴.

시간에 구애받지도 않았다.

한참을 자유롭게 연주하던 수호는 느낄 수 있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걸.

눈을 감고 있었지만 미세하게 빛을 내는 음들이 보였다.

‘.. 부족해.’

이 정도가 아니었다.

그 애의 손끝이 만들어내는 빛은 이렇게 흐릿하지 않았다.

반짝이고 싶었다.

시상식 때에 했던 말처럼, 언젠가 그 애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무대에 서고 싶었다.

같은 피아니스트로서.

‘더.. 좀 더……!’

수호는 자신을 더욱 몰아붙였다.

그러나 타인에 의해 벼랑 끝에 내몰리던 상황과는 달랐다.

수호였다.

지금 만들어내는 음의 향연은 오로지 수호의 연주였다.

‘나는.. 안수호가 아니다……’

몇 번이고 뱉었던 그 말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연주.

그렇다.

수호는 스스로를 되찾기 시작했다.

단번에 되찾을 수 없을지는 몰라도, 그 여정의 첫발을 내디딘 거다.

“...”

우연이었다.

그 모습을 보게 된 건.

손을 꼭 잡은 두 사람은 말없이 아들의 연주를 지켜봤다.

알 수 없었다.

두 사람의 표정이 먹먹함과 대견함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는.

툭.

아내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남편.

한 가지는 확실했다.

둘의 눈에 비치는 건 순수하게 피아노를 즐기던 그 어느 날이 떠오르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수호는, 반짝이고 있었다.

***

영상을 올린 뒤.

여기저기서 연락이 쏟아졌다.

예외적으로 한 사람한테는 영상 업로드 전부터 연락이 오긴 했지만.

‘할머니.’

아침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자마자 다짜고짜 들려온 말.

‘언제 올릴 거냐?’

‘네?’

‘연두튜브 말이야, 연두튜브!’

‘그건 왜요?’

‘왜긴 왜야! 2등을 할 만해서 받았는지, 옜다 하고 던져준 상인지 봐야 알 거 아니야!’

그 말에는 나도 조금 발끈했다.

‘옜다 하고 던져준 상이라뇨. 영상 보시면 절대 그 말 못 하실걸요? 아마 화내실지도 몰라요. 이게 왜 대상이 아니고 최우수상이냐고.’

근거는 충분했다.

30분의 영상에는 내 편집자로서의 역량을 총동원해 가능한 모든 것들을 담아냈다.

연두의 노력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미처 카메라 안에 담지 못한 시간들이 있어서 아쉽긴 했지만.

‘어쭈. 팔은 안으로 굽는다더니……’

‘무슨 뜻이에요?’

‘네 말을 어떻게 믿냐 이거야! 애비야 당연히 내 딸이 최고라 그러지.’

‘...’

맞는 말이라 말문이 막혔다.

그래, 인정한다.

마지막에 한 말은 할머니 말대로 팔이 안으로 기운 게 맞았다.

괜히 심술이 나서 말했지.

‘아니, 그럼 할머니는 왜 그러세요?’

‘뭐시?’

‘왜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인데 할머니는 사랑하는 손주한테 최고라고 안 해주시냐고요.’

‘염병.. 이놈의 조대새끼가 또……’

불리할 때는 화제전환이 최고였다.

투닥투닥 몇 마디를 더 주고받은 뒤에 할머니는 얘기했다.

‘잔말 말고 빨리 얘기나 해! 언제 올릴 건지.’

‘오늘 올릴 거예요.’

‘.. 오늘?’

‘네. 별일 없으면 한 다섯 시쯤 올릴 거 같은데.. 근데 그건 왜……’

‘끊어, 이놈의 새끼야.’

그렇게 전화가 끊겼다.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영상은 예정대로 업로드했고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연락을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동창들에게도 연락이 올 정도였다.

“후우..”

반응을 확인하러 연두튜브에 들어간 건 늦은 밤이었다.

일부러였다.

다른 때도 그런 편이지만 특히 이번만큼은 시간이 지난 뒤에 반응을 보고 싶었으니까.

이 정도면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

달칵.

화면에 떠오른 연두튜브.

[연두의 첫 콩쿠르!(feat. 아름다운 경쟁)]

썸네일과 제목을 지나쳐 시선이 멈춘 곳은 조회수란이었다.

순간 눈을 의심했다.

‘.. 이게 맞아?’

숫자 감각은 마비된 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벌어지는 입을 컨트롤할 수 없었다.

그런 나조차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조회수였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