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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바보가 되었습니다-734화 (735/850)

734화. 녹음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대망의 녹음 날이었다.

“어때, 연두야?”

식탁에 마주 앉은 나와 연두.

아까는 비몽사몽하더니 이제야 잠이 좀 깬 듯한 표정이다.

“목 컨디션은 괜찮아?”

고개를 갸웃하며 연두가 묻는다.

“목 컨디션이여..?”

“응.”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이제 녹음하러 가야 하니까. 목 상태가 괜찮은지 물어보는 거야.”

“아.”

이해한 표정.

그러나 다시 표정에는 의문이 떠오른다.

“아빠.. 목 상태가 괜찮은지는 어떻게 알아여?”

“목 상태가 괜찮은지?”

“네.”

조금 생각한 나는 얘기했다.

“목소리가 잘 나오는지 확인해보면 되지. 아빠가 하는 말을 따라 해볼래?”

고개를 끄덕인다.

잠깐 생각한 나는 빙긋 웃으며 입을 뗐다.

“아빠.”

“.. 아빠?”

“연두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요.”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연두는 곧잘 따라 했다.

길게 갈 것도 없었다.

속삭이듯 나는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아빠예요.”

그렇다.

이건 목 컨디션 확인을 빙자한 사심 채우기다.

“아빠에요. 응..?”

아무 생각 없이 내 말을 따라 하던 연두는 뒤늦게 그 사실을 눈치챘다.

피식 웃으며 얘기했다.

“목 컨디션은 괜찮은 거 같네.”

“.. 아빠.”

“연두 마음도 잘 알았고.”

그 말에 입을 삐죽 내민 연두가 치사하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아빠도 해여!”

“응?”

“목 컨디션..”

“어떻게?”

“연두가 하는 말을 따라 하면 돼여!”

어떤 말을 할지는 감이 왔다.

조금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얘기했다.

“근데 연두야. 아빠는 성우가 아니라서 목 컨디션 안 좋아도 되는데?”

“...”

안 되겠다.

이대로면 내가 연두 컨디션을 망쳐버릴지도 모르겠다.

“걱정하지 마, 연두야.”

“.. 네?”

“목 컨디션이 좋든 안 좋든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연두니까.”

연두의 입가에 번지는 미소.

그때였다.

평소와 달리 나를 바라보는 연두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자그맣게 입을 연다.

“얼마나?”

“.. 응?”

“얼마나 좋아하는데?”

깜짝 놀랐다.

반말인 건 둘째치고 표정과 목소리 톤이 완전히 바뀐 모습이었으니까.

이건 마치……

‘.. 구민아잖아.’

대사도 그랬다.

작중에서 민아가 처음 오빠를 만났을 때 뱉는 대사가 있었다.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거의 흡사했다.

그 대사를 뱉을 때의 상황과 분위기가.

바로 감이 왔다.

녹음을 앞둔 상황에서 지금 맞춰주지 않는 건 최악이라고.

양손을 들어 동그라미를 그렸다.

“이~ 만큼.”

“애걔.”

실망한 듯한 반응.

허나 그 속에는 지울 수 없는 장난기가 묻어났다.

“그만큼은 풍선 정도밖에 안 되잖아.”

“그럼 이만큼?”

“그건 커다란 공 정도밖에 안 되는데..?”

우영이가 혈압이 오르게 만들었던 부분이었다.

확실했다.

지금 연두는 구민아가 되어 있었다.

이제 내가 구종현에 빙의해서 주접을 떨 차례였다.

“하늘만큼 땅만큼! 아니, 별만큼 우주만큼 좋아해!”

“히히.”

민아가 다가온다.

나를 꼭 안은 채로 속삭이듯 말한다.

“연두는…… 별보다 우주보다 더 많이 아빠를 좋아해요..!”

“하하..”

당했다.

마지막 대사를 바꿀 줄이야.

그와 별개로 방금 주고받은 대사를 통해 확실하게 느꼈다.

“연두야.”

“네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렇게만 하면 되겠다.”

진심이었다.

처음 봤을 때보다 연두는 한층 더 구민아에 가까워져 있었다.

쿡쿡 웃으며 연두가 말한다.

“우영이 오빠도 그랬어여..”

“응?”

“하던 대로만 하고 오라고.. 그럼 잘할 거라고……”

우영이녀석이 그런 말을 해 줬을 줄이야.

이제야 납득이 간다.

다른 사람도 우영이한테 그런 칭찬을 들었는데 자신감이 안 붙는 게 이상하지.

“좋아. 그럼 가볼까?”

“네!”

이제 스튜디오로 향할 차례였다.

***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훨씬 커다란 건물이었다.

“안녕하세요.”

우리를 반긴 건 한 남성이었다.

“저는 녹음 엔지니어 김형락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연두도 꾸벅 인사했다.

남자는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으며 얘기했다.

“녹음 엔지니어라는 게 뭔지 생소하실 수도 있을 거 같은데요. 간단히 설명을 드리자면……”

그의 말을 요약하자면 간단했다.

성우는 배우이다.

그리고 자신을 비롯한 녹음 엔지니어는 성우의 연기를 녹음하고 편집해주는 역할을 한다.

즉, 감독이라 봐도 무방했다.

설명을 듣고 나서 바로 인사를 건넸다.

“오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연두 목소리를 녹음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그는 바로 녹음실로 안내했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네.”

얼마나 걸었을까.

따라서 걸어가던 도중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

“아, 참.”

뒤를 돌아본 그는 조금은 난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깜빡하고 말씀 못 드린 게 있는데요.”

“네.”

“오늘 연두랑 같이 호흡을 맞출 성우분이 이미 녹음실에 도착해 계시거든요.”

“아, 정말요?”

지각을 한 건 아니었다.

아직도 녹음을 시작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것보다는 이른 시간이었으니까.

그래도 먼저 와 계시다고 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그럼 빨리 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하, 괜찮습니다. 그보다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네.”

“들어보셨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윤선 성우님이라고 되게 업계에서 잔뼈가 굵으신 성우님이거든요. 저랑도 오래 호흡을 맞춰왔고요.”

고개를 끄덕이자 말을 이었다.

“알고 나면 좋은 분인데 일에 관해서는 타협이 없는 편이라서…… 조금 날카로워 보일 수 있다는 점은 미리 말씀드리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오해하지 마시라고.”

“아.”

어떤 느낌인지 감이 왔다.

꽤 있는 유형이었다.

프로의식이 강하고 일에 들어가면 예민해지는 타입.

그런 유형을 나쁘게 보지는 않았다.

한때는 미술 분야에서 고흐나 미켈란젤로 같은 화가들을 동경하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지.’

이건 일이었다.

특히나 이 업계에 몸을 담은 입장에서는 직업 그 자체다.

“네, 알겠습니다.”

“.. 네에.”

조금은 움츠러든 목소리.

그런 연두를 향해 김형락은 얘기했다.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단다. 아저씨가 잘할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까.”

“고맙습니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복도를 따라 걸어가던 김형락의 발걸음이 멈췄다.

“여기입니다.”

앞선 이야기 때문인지 조금은 떨리는 기분이다.

이윽고 열리는 문.

안에 있던 사람과 마주한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 남자가 아니었어?’

구종현.

그 역할을 맡은 성우 이윤선은 중년의 여성이었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이름도 남자보다는 여자 쪽에 가까웠으니까.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여..!”

그러고 보니 들은 적이 있다.

목소리 하나로 연기하는 만큼 캐릭터와 성우의 모습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유명한 일례로 짱구를 들 수 있다.

짱구의 성우는 할머니라는 걸 들은 기억이 있으니까.

‘실제로 그렇구나.’

도무지 구종현과는 매치가 되지 않는 외관이었다.

차가운 표정.

우리를 바라보며 그녀가 입을 뗐다.

“.. 반가워요.”

조금은 숨이 막히는 첫 만남이었다.

***

바로 녹음이 시작되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연두의 녹음이지만.

나와 연두를 향해 김형락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이윤선 성우님이 단독으로 녹음하실 게 조금 있거든요. 괜찮으시면 먼저 조금만 진행해도 될까요? 보면서 어떤 식으로 녹음이 이루어지는지도 감을 잡을 수 있을 테니까요.”

“네, 물론이죠.”

말없이 이윤선은 녹음실로 들어갔다.

음향 장비 앞에 앉은 김형락은 우리를 향해 얘기했다.

“대단하신 분이에요.”

“네?”

“원래 남자가 여자 목소리를 내는 건 비교적 쉽지만, 여자가 남자 목소리를 잘 내는 건 무척 어렵거든요. 그런데 이윤선 성우님은 어떤 캐릭터든 목소리를 바꿔서 소화해내세요. 그게 천의 목소리라 불리는 이유고요.”

천의 목소리.

말 그대로 천 개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성우의 대표적인 예가 그녀라는 듯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김형락의 지시에 따라 이윤선이 연기를 시작했다.

들려오는 목소리.

“하.. 너희 똑바로 안 해?”

충격은 바로 찾아왔다.

방금 인사를 나눌 때의 목소리가 아니었으니까.

다른 사람의 목소리 같았다.

목소리뿐 아니라, 잔뜩 악에 받친 눈빛과 목에 선 핏대까지 그대로 눈에 들어왔다.

“이따위로 할 거면 꺼져. 무대가 애들 장난으로 보여? 이 무대에 서려고 얼마나 많은 녀석들이 인생을 거는데……”

이게 구종현의 캐릭터였다.

여동생인 민아에게는 세상 다정하지만, 무대에 관한 거라면 그런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연두도 숨죽인 채로 연기를 바라보고 있다.

새삼 드는 생각.

‘이게 프로구나.’

성우는 목소리만으로 연기하는 거라 생각했던 게 부끄러울 정도였다.

전신이다.

마이크 하나를 앞에 둔 채로 그녀는 전신으로 연기하고 있었다.

구종현에 빙의된 채로.

“네, 수고하셨습니다!”

녹음이 끝난 뒤에야 나는 꾹 쥔 두 주먹을 펼칠 수 있었다.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헤드폰을 귀에서 뗀 그녀는 어느새 이윤선으로 돌아와 있었다.

“.. 아빠.”

“응, 연두야.”

“멋있어요...”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연두의 눈은 한없이 반짝이고 있었다.

***

이윤선.

그녀가 상대역인 구민아가 연두라는 걸 전해 들은 건 얼마 전이었다.

악감정은 없었다.

그러나 별로 탐탁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한둘이 아니니까.’

성우라는 직업.

업계에 오랜 기간 뼈를 묻은 그녀가 생각할 때 성우만큼 전문성을 띠는 직업도 없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많아졌다.

아이돌 혹은 배우가 인기에 편승해 주연을 맡는 경우가.

‘엉망이지.’

하나같이 엉망이었다.

그런 업계의 실태에 진절머리가 난 그녀였다.

이번에도 그랬다.

구민아라는 캐릭터.

비록 주연은 아니고 대사 난이도도 어려운 축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하나의 캐릭터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또 하나의 거슬리는 점이 있다.

함께 호흡을 맞춰야 한다는 것.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연기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아무리 명배우라 할지라도 함께 호흡을 맞추는 사람의 연기가 형편없다면 영향을 받게 된다.

싸잡아 욕을 먹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 리스크를 감당해야 한다는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본은 해 줬으면 좋겠는데.’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다.

어차피 전문 성우의 수준을 요구할 수는 없다.

캐릭터를 살리는 디테일한 요소를 배제하더라도, 차마 못 들어줄 정도의 수준만 아니었으면 했다.

그런 생각으로 입을 뗐다.

“시작하죠.”

시간 끌 거 없었다.

다소 부담스러울 정도의 눈빛이 느껴지긴 했으나 익숙한 일이었다.

“우아...”

존경이 담긴 눈빛.

그러나 이윤선은 가장 싫어했다.

형편없는 실력을 감추기 위해 동경과 존경 등의 감정으로 포장하는 경우.

‘어린아이니까 그런 의도는 아니겠지만.’

굳이 어울려줄 필요는 없었다.

녹음실에 들어갔다.

음향 엔지니어인 김형락이 따라 들어와 연두에게 어떤 식으로 녹음이 진행되는지 설명해줬다.

마이크 높이도 설정해줬고.

당연한 얘기지만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좋아. 그렇게 하면 돼, 알겠지?”

“네..”

마주 보고 선 둘.

따로따로 녹음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이렇게 호흡을 맞추듯이 녹음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시작 사인.

그에 따라 이윤선은 다시 구종현의 캐릭터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런 와중에 눈에 들어오는 장면.

‘.. 저 애, 뭐 하는 거지?’

눈을 감고 있다.

이윽고 천천히 눈을 뜬 연두의 시선과 마주했을 때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어딘가 다른 느낌.

그런 상황 속에서 연기가 시작됐다.

“오빠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했다.

“이~만큼.”

“애걔! 그만큼은 풍선 정도밖에 안 되잖아.”

“그럼 이만큼?”

“그건 커다란 공 정도밖에 안 되는데?”

논스톱으로 이어지는 대사.

어느 순간부터 이윤선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 아이……’

구민아와 대화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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