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8화. 꼬마신사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연두초대석을 진행하는 날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방송이 예정된 시각까지는 아직 한참 남은 상태이다.
침대에 기댄 채로 연두튜브에 들어갔다.
[Return to 단비어린이집!(feat. 간이 콘서트)]
어제 밤늦게 편집해서 올린 영상이었다.
어울리지 않게 제목에 영어를 넣어봤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거 같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어디 볼까.’
어차피 중요한 건 내용이다.
제목을 기깔나게 잘 짓는 센스는 없지만 내용만큼은 자신 있었다.
왜냐고?
내가 직접 본 장면들을 편집한 거니까.
-미쳤다...
┖제목에 단비어린이집 보이는 순간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들어왔다.
┖원래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들어오잖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영상 보기도 전인데 나만 뭉클하냐? 연시레가 초등학생이 돼서 단비어린이집에 갔다는 게.
┖그니까 ㅠㅠ 우리 뽀짝이들... ♥
┖하긴.. 모든 건 단비어린이집에서 시작됐지.
역시나 감성적으로 된 연두부들이 많았다.
그럴 만도 했다.
나도 아이들을 데리고 단비어린이집을 찾았을 때 왠지 모를 감정이 올라왔으니까.
-선생님 애기들 바라보는 표정 애틋한 거 봐 ㅠㅠ
┖단비어린이집 선생님 표정 = 내 표정
┖나라도 그럴 듯. 졸업한 애기들이 초등학생 돼서 다 같이 찾아오면.
┖나라면 울었음.
┖역시 민우네 ㅋㅋㅋ 초등학생 돼서 어린이집 가도 위화감이 1도 없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요한이랑 민우 왤케 닮았냐. 형제라 해도 믿을 듯.
언제나 그렇듯 민우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연두 동생 챙기는 거 봐.. 쏘 스윗...
┖초록님한테 배운 듯. 아주 그냥 다정함에 녹네, 녹아...
┖그냥 연두라서 녹는 거 아니고?
┖연두한테 언니라 부르고 싶다...
┖어린이집에서 피아노 치는 연두... 이 구도를 다시 보게 되다니 허으 ㅠㅠ
댓글을 보니 느껴졌다.
내가 기억하는 순간들을 수많은 연두부도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게.
그래서 좋았다.
차곡차곡 쌓아 올리지 않았다면 내 기억 속에만 남았을 장면들이 연두튜브 속에 저장되어 있으니까.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도록.
‘이것도 남겠지.’
시간이 지나면 또 꺼내 보며 웃음 지을 수 있는 추억으로 남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웃음이 번졌다.
스크롤을 쭉쭉 내리다 보니 한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 어떤 날인지 잊은 연두부는 없겠지...?
수많은 답 댓글이 달려있었다.
┖아 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거 모르면 연두부 실격이지.
┖공지 올라온 순간부터 존버중이다...
┖얼마 안 남았다. ㄷㄱㄷㄱㄷㄱㄷㄱ...
┖젠장! 얼마만의 연두 스트리밍이냐고!!!
┖그런 의미에서 초록님은 진짜 사랑이다.
┖갑자기?
┖이런 날까지 우리 기다리다 지치지 말라고 일용할 양식을 주셨잖음.
┖ㅇㅈ
쑥스럽구먼. 확실히 고민하긴 했다.
영상 업로드 날짜와 스트리밍 날짜가 겹치니 내일쯤 올리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그러나 생각해보니 큰 의미는 없었다.
‘영상 업로드와 스트리밍은 별개니까.’
스트리밍은 별개의 콘텐츠였다.
그로 인해 영상 업로드 주기를 깨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단순한 생각으로 올린 영상인데, 이렇게 얘기해주니 나로서는 기분이 좋을 따름이다.
그 외에도 오늘 스트리밍에 관한 댓글이 많았다.
‘게스트를 궁금해하는 댓글이 많네.’
유추하는 댓글도 많았다.
가장 많이 나오는 이름은 기존에 연두와 잘 어울린다고 알려진 케미가 많았다.
시은이랑 레나는 말할 것도 없고, 우영이, 유리, 민우, 그리고 주연이의 이름도 나왔다.
동건이랑 범재, 예림이도 등장했고.
시골에 있는 선동이와 독일에 있는 노엘도 빼놓을 수는 없었다.
‘아닌데.’
의외로 정답은 보이지 않는다.
설마 기존 케미를 벗어나는 인물일 거라고는 생각 못 한 모양이다.
바로 그 점이었다.
내가 첫 게스트로 수호를 생각한 건.
모두의 예상을 깨고 싶기도 했고, 재미있는 그림을 만들 수도 있겠다 생각했으니까.
‘이 정도면 됐어.’
영상 반응도 봤고 스트리밍을 기대하는 연두부들의 댓글도 확인했다.
그럼 남은 건 하나였다.
본격적으로 스트리밍 준비를 할 시간이었다.
***
한편 그 시각.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 한 아이가 있었다.
“하아..”
한숨이 아니었다.
조금의 긴장과 떨림, 그리고 커다란 설렘으로 인해 내뱉는 숨이었다.
그런 아들을 본 손재희가 말했다.
“우리 수호, 많이 떨리나 보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러나 이어지는 엄마의 말에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두 볼 생각에.”
“.. 어?”
입이 벌어진 수호가 얘기했다.
“그, 그런 거 아니야!”
“그럼 왜 그렇게 긴장했대?”
“그냥.. 방송이라 그런 것도 있고.. 그리고...”
“그리고?”
“연두부들이 실망할지도 모르니까.”
수호도 연두의 구독자 명칭을 알고 있었다.
손재희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왜 실망해?”
“연두부들이 나왔으면 하는 게스트가 내가 아닐 수도 있잖아.”
그 말에 손재희는 주먹을 꾹 쥐며 말했다.
“그런 걱정은 하지도 마. 우리 아들이 얼마나 멋진데. 연두부들도 다 좋아할 거야. 만약에 안 좋아하면……”
“안 좋아하면?”
“엄마가 다 혼내줄게.”
그런 엄마의 말에 수호가 작게 웃으며 입을 뗐다.
“근데 엄마.”
“응.”
“연두부는 이천만 명이나 되는데?”
손재희가 눈을 끔뻑였다.
이천만 명.
혼내주기에는 너무 많은 숫자였다.
그래도 그녀는 다시 눈에 꽉 힘을 주며 얘기했다.
“에이, 걱정하지 마. 우리 아들 괴롭히는 사람은 이천만 명이든 이억 명이든 이백억 명이든 엄마가 다 혼내줄 테니까.”
과장해서 말하긴 했으나 진심이었다.
콩쿠르가 있었던 날.
수호의 이전 스승이었던 조희나의 벗겨진 민낯을 확인하고서 그녀는 무척이나 자책했다.
더 빨리 아들을 조희나라는 새장 속에서 꺼내주지 못한 걸.
‘그렇게 힘들어하는지도 모르고……’
엄마가 돼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으면서도 수호가 어느 정도로 힘든지 알지 못했다.
그게 사무치도록 아팠다.
그리고 그날 손재희는 다짐했다.
이제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남 눈치 따위는 보지 않기로.
“고마워, 엄마. 그런데……”
“응?”
“세계 인구는 칠십억 명이래. 그래서 이백억 명은 혼내줄 수 없어.”
“...”
이백억 명을 혼내주기에는 수호가 너무 똑똑했다.
그래도 수호는 웃었다.
진심으로 자신을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으니까.
그런 수호를 향해 손재희는 말했다.
“많이 걱정되니? 그럼 지금이라도……”
“아니야.”
걱정되는 건 사실이다.
막연히 떨리기도 하고, 방금 말한 것처럼 사람들이 실망할까 봐 두렵기도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런 마음보다 연두가 더 보고 싶었으니까.
딴. 따따단. 딴.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때의 장면이 그려졌다.
대기실에서 넋을 놓고 무대 위를 바라보게 만들었던 연두의 연주가.
그 연주는 수호로 하여금 다시 피아니스트라는 꿈을 꾸게 만들었다.
‘만나고 싶어.’
그래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네 연주로 인해서 나는 다시 피아니스트라는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수호가 시선을 내렸다.
시선에 닿는 손에는 자그마한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좋아하겠지, 엄마?”
“그럼.”
“.. 좋아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말하는 수호의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가 번졌다.
***
스트리밍 준비라 해 봐야 특별한 건 없었다.
마이크와 캠이 잘 기능하는지 확인하고, 방송상의 세팅을 점검하는 것 정도이다.
방법은 간단했다.
가상으로 방송을 만들고 확인해보면 된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 원 투 쓰리.”
좋아.
큰 문제는 없어보인다.
몇 차례 더 테스트를 하다 인기척이 느껴져 돌아보니 연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비몽사몽한 표정으로.
“아빠아..”
눈을 비비더니 내 앞에 세팅되어 있는 캠을 보고는 깜짝 놀라서 얘기한다.
“방송 벌써 시작했어요..?”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빨리 와, 연두야.”
“네에.”
총총 뛰어온 연두가 별안간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말한다.
“그런데 수호오빠는여..?”
“헉!”
짐짓 놀란 척을 하며 말했다.
“연두야. 게스트는 아직 비밀인데……”
“.. 헉!”
입을 틀어막는 연두.
동그래진 눈이 얼마나 놀랐는지 말해주는 거 같았다.
“여, 연두는 잘 몰라여! 수호오빠가 게스트인.. 아!”
확실히 잠이 덜 깼다.
더 장난치면 패닉이 올 거 같아 나는 웃으며 입을 뗐다.
“장난이야, 연두야.”
“.. 으응?”
“놀라지 않아도 돼. 아직 방송 시작한 거 아니거든.”
“그, 그럼요?”
“그냥 방송 잘 되나 테스트해 본 거야.”
그제야 장난이었다는 걸 안 건지 연두가 제자리에서 펄쩍 뛴다.
“.. 아빠!”
퍽. 퍽.
이건 누렁이한테 배운 냥냥펀치다.
솜털처럼 가볍다.
뾰로통한 표정의 연두를 향해 얘기했다.
“하하, 미안.”
“우으...”
“그럼 이제 본격적인 준비를 해볼까?”
연두가 되묻는다.
“어떤 준비요?”
“연두초대석 첫 번째 손님을 맞이할 준비.”
손님을 초대하면서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니다.
첫 번째로 준비해야 할 건 음식이었다.
‘요리는 거창하고.’
예정된 방송 시각도 점심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러니 방송을 하면서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간식 정도가 적당하다는 뜻.
물론 오늘을 위해 미리 준비해뒀다.
각종 과자를 비롯한 간식들, 즉석에서 잘라줄 과일, 그리고 연두가 좋아하는 천하대장 소시지까지.
“우아...”
이미 연두는 소시지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다.
“아빠.”
“응, 연두야.”
“수호오빠도 소시지 좋아하겠죠?”
“그렇지 않을까?”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다.
뭘 좋아할지 몰라서 종류별로 다 준비해놨으니 말이다.
손님을 초대했는데 이 정도는 기본이지.
“됐다. 먹을 건 이 정도로 충분할 거 같고.”
미리 방송할 장소에 세팅해뒀다.
시간이 지나서 점심을 먹은 뒤에 우리는 다시 행동을 개시했다.
이제 남은 준비는 하나였다.
바로 복장이었다.
아무리 집이라지만 손님을 불러놓고 추리닝이나 잠옷 복장으로 있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
‘오늘 의상 콘셉도 있고.’
그건 바로 콩쿠르 무대의상이었다.
콘셉이 다소 추상적이다 보니 수호가 어떤 옷을 입고 올지는 모르겠다.
저번에 입은 것과 비슷한 거려나.
뭐, 그와 별개로 연두가 입을 옷은 정해져 있었다.
‘첫 콩쿠르 때 입었던 연두색 원피스.’
이든의 스테디셀러로 매년 나오지만 한 번도 바뀌지 않은 디자인이었다.
연두의 콩쿠르 영상을 돌려볼 때마다 강하게 드는 생각이 있었다.
정말이지 탁월한 의상 선택이었다고.
“와.. 연두야.”
“네에.”
지금도 그랬다.
원피스를 입고 거울 앞에 선 연두를 보니 자연스레 감탄사가 새어 나온다.
어느새 예정된 시각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데스크톱을 켜 놓은 채로 나는 핸드폰을 손에 들었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늦어도 방송이 시작하기 조금 전에는 도착하는 게 좋았다.
걱정되는 마음에 연락을 취하려는 참이었다.
귓가에 울리는 벨소리.
슥,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인터폰을 향해 다가갔다.
동시에 눈에 들어왔다.
작은 화면 속에 비치는, 멋스럽게 턱시도를 차려입은 꼬마신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