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9화. 환영
문 앞에 서 있는 꼬마신사.
연두초대석의 초대 게스트 안수호였다.
“어서 와, 수호야.”
“안녕하세요.”
옆에는 수호를 데려오신 어머니도 있었다.
그녀와도 인사를 나눴다.
“오랜만에 뵙네요.”
“네. 그때 콩쿠르 이후로 처음 뵙는 거니까요. 사실 그때도 제대로 인사를 나누지는 못했는데...”
그녀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우리 수호, 잘 부탁드릴게요.”
“물론이죠.”
게스트로 초대한 건 나다.
그런 만큼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쪽 역시 나였다.
게다가 수호를 섭외하는 과정에서 어머니와 따로 나눈 대화도 있었고.
콩쿠르 때 나는 알지 못했던 비하인드가 있었으니까.
‘정확히는 나만 몰랐던 거지.’
다름 아닌 수호의 사제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콩쿨장에서 이은경과 인사를 나눴던 조희나라는 대학교수, 그녀의 잘못된 교육방식으로 인해 수호가 많은 상처를 받았다는 이야기.
수호 어머니는 자책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으면서도 수호 내면에 있는 상처를 보지 못한 걸.
그 심정은 백분 이해가 갔다.
‘나라도 그랬을 거 같으니까.’
연두의 지난 상처를 전부 헤아릴 수 없다는 것도 나한테는 커다란 고통이었다.
그런데 현재의 상처마저 보지 못하고 넘어간다면 그건 꽤나 큰 충격으로 다가올 게 분명하다.
그야, 부모니까.
아무튼 그게 수호 어머니를 망설이게 만든 포인트였다.
허나 그녀가 게스트 섭외에 응하며 마지막으로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었다.
‘수호는.. 연두 얘기를 할 때 제일 환하게 웃거든요.’
아들이 웃는다.
그게 가장 큰 이유라는 점만 봐도 그녀가 좋은 부모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인사를 끝내고 그녀가 나갈 채비를 한다.
“그럼 저는 가 볼게요.”
“괜찮으시면 과일이라도……”
이제는 이런 말이 익숙해졌다.
집을 찾아온 손님을 그냥 돌려보내는 건 예의가 아니었으니까.
허나 그녀는 얘기했다.
“호호, 아니에요. 눈치 없게 방송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아, 그런데 연두는……”
“.. 안녕하세요!”
불쑥 모습을 드러낸 연두.
깜짝 놀란 수호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고, 어머니의 얼굴에는 반가움이 떠올랐다.
“안녕, 연두야! 가더라도 연두랑 인사는 하고 가야지.”
“헤헤..”
그녀가 나간 뒤에 얼마간 수호는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갑작스러운 재회에 놀란 모양이다.
촬영 본능이 발동한 내 손에는 어느새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연두도 조금은 어색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여, 수호오빠..”
“아.. 안녕.”
대놓고 쑥스러워하며 수호가 말한다.
“그.. 저번에는 말 못 했는데……”
뭐지, 이 멘트는?
아빠로서 긴장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멘트였다.
내 안의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보통 이렇게 운을 뗄 때는 고백으로 수렴하니까.
그러나 이어지는 수호의 말에 내가 순수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나한테 반말해도 돼. 그냥 수호라고 불러도 되고..”
“진짜요?”
“응.”
“수호오빠가 한 살 많은데……”
“한 살 많아도, 우리는 같은 피아니스트니까...”
멋쩍은 얼굴로 수호가 덧붙인다.
“친구인 게 더 좋지 않을까..?”
의견을 구하는 게 귀엽다.
가만 보면 기본적으로 말투에 다정함이 탑재되어있다.
같은 나이 또래인 선동이나 노엘, 민우, 그리고 내가 아는 연두 주위의 남자아이들과는 결이 다른 느낌이다.
그렇다고 인정한다는 건 당연히 아니고.
“그, 그러면...”
조심스레 연두는 말을 얹었다.
“.. 수호야?”
“응..”
“수호야. 헤헤..”
배시시 웃는 걸 보니 연두도 친구인 편이 더 좋은 모양이다.
내가 봐도 더 잘 어울렸다.
선동이랑 말을 놓으면 상당히 어색할 거 같은데, 수호는 말을 놓은 직후인데도 조금의 위화감도 없다.
그리고……
‘인정하기 싫어.’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풋풋하다.
그냥 소소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뿐인데도 둘의 모습은 무척이나 풋풋했다.
무대의상으로 맞춰서인지 의상도 찰떡이고.
그때였다.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온 건.
“냐아!”
캣타워 위에 올라가 있던 누렁이가 총총총 내려온다.
놀란 수호의 표정.
그런 수호를 향해 누렁이는 냅다 돌진했다.
“냐아.. 냐..”
볼을 비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수호 1차 관문 합격!”
누렁이의 모습에 조금은 안심했는지 수호가 눈을 뜨고 묻는다.
“네?”
“누렁이는 좋은 사람한테는 낯을 안 가리거든. 그리고 지금처럼 볼을 막 비비고. 이렇게 내려와서 바로 그런다는 건 수호가 좋은 사람이라는 거겠지.”
“아...”
납득한 얼굴.
그러다 무언가 떠오른 듯 얘기한다.
“그런데 엄마 있을 때는 안 내려왔는데……”
“...”
의도치 않게 시전한 탈룰라였다.
죄송합니다, 어머님.
***
연두초대석.
시작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큰 틀은 잡아뒀고.’
추가적으로 콘텐츠를 위해 맞춰봐야 할 건 첫 동선 정도였다.
나는 캠에 나오지 않는 의자에 수호를 앉힌 뒤에 얘기했다.
“처음에는 아저씨랑 연두가 둘이서 방송을 켤 거야.”
“네.”
“그리고 인사한 다음에 수호를 부를 거거든? 어떻게 부를 거냐면……”
막상 하려니 쑥스럽지만 원활한 방송 진행을 위해서라면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목을 가다듬은 나는 말했다.
“그럼 연두초대석의 첫 게스트를 소개합니다! 짜잔!”
쿡쿡 웃는 연두.
애써 못 들은 척하며 태연하게 말했다.
“이렇게 얘기하면 수호가 들어와서 여기 의자에 앉으면 되는 거야. 앉으면 시청자들한테 인사를 건네고.”
“그다음에는요?”
“다음에는 수호가 걱정할 건 없어. 방송은 알아서 흘러갈 거니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방송을 끌어가는 건 내가 아니다.
시청자들이다.
그렇다고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시청자들에게 얹혀가겠다는 뜻이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뜻이었다.
‘결국 방송을 보는 건 시청자들이니까.’
항상 그랬다.
시청자들과 호흡하며 방송을 진행하다 보면 하나같이 레전드 방송이 탄생하곤 했다.
그로 인해 깨달았다.
내가 뭔가를 완벽하게 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는 걸, 그냥 부담 없이 방송을 즐기면 된다는 걸.
연두 옆에 수호 의자는 미리 준비해둔 상태다.
“자, 그럼 한번 해볼까?”
“.. 네.”
“그럼 연두초대석의 첫 게스트를 소개합니다! 짜잔!”
수호가 걸어와서 의자에 앉는다.
따로 요청하지도 않았지만 연두는 짝짝 박수를 치며 수호를 반긴다.
이어지는 수호의 어색한 인사.
“안녕하세요. 안수호입니다.”
그런 뒤에 이게 맞냐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나는 엄지를 척 내밀었다.
“좋아. 그렇게만 하면 돼.”
놀랍게도 이로써 모든 준비는 끝났다.
남은 건 본방이었다.
***
드디어 예정된 시각이 찾아왔다.
“준비됐지, 얘들아?”
고개를 끄덕이는 두 아이.
수호는 옆 의자로 이동하고 나는 연두와 함께 캠 앞에 자리를 잡았다.
나름 몇 번의 방송을 진행해 본 탓일까.
이제 그리 생소한 느낌은 없다.
‘연두도 그런 거 같고.’
시간에 맞춰 나는 마음속으로 카운트다운을 했다.
하나, 둘, 셋.
달칵.
스트리밍 시작 버튼을 눌렀다.
화면 한켠에 우리 모습이 떠오르고 우측에는 댓글창이 떠오른다.
시작된 방송.
채팅이 쏟아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시작
-극
-락
-락
-극
-락
…………
…………
오늘도 어김없이 시작과 동시에 쏟아지는 두 글자.
그게 눈에 들어온 걸까.
“.. 헤.”
연두가 짤막하게 뱉은 한 글자에 채팅창은 또 난리가 났다.
이게 실시간 방송의 묘미다.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시청자와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진다는 점.
먼저 내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연두 아빠 초록입니다.”
“안녕하세여.”
꾸벅 고개를 숙이며 연두가 인사한다.
“초록 딸 연두입니다..!”
초록 딸 연두.
그렇게 인사하니 연두부들도 채팅창을 통해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연두부입니다.
-어, 너두? 야, 나두.
-아직도 연두부 아닌 흑우가 있냐 ㅋㅋㅋㅋㅋ
-어허, 나쁜 말 금지.
-연두야, 사랑해!! ♥ ♥
결국은 연두부 특유의 주접으로 번지긴 했지만.
-오늘 연두 미모 미쳤다...
-연두 수술했다는데 괜찮은지 모르겠네. 날개 제거 수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지금 연두 복장 콩쿠르 때 복장 아니야?
-맞음.
이런저런 얘기들이 많았다.
콩쿠르 의상 때문인지 음악방송을 진행할 거 같다는 말부터, 게스트를 유추하는 댓글도 눈에 들어온다.
가장 많이 나오는 이름은 유리와 노엘이었다.
그런 와중에 스치듯 눈에 들어왔다.
-수호 아님?
나는 봤다.
엄청난 댓글의 파도에 묻혀버리긴 했지만.
애써 못 본 척하며 빙긋 웃어 보이고서 나는 얘기했다.
“공지한 대로 오늘은 연두초대석을 진행해보려 합니다. 그래서 특별히 게스트를 모셨는데요. 다들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고래만큼은 아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진행이 능숙해졌다.
쏟아지는 수많은 댓글.
-궁금해요!
-아 ㅋㅋㅋㅋ 유리인 거 아니까 빨리 나오라고.
-응, 아니야~
-내 생각에는 반전으로 주연이임. 그리고 연두가 치는 피아노에 맞춰서 노래를 부르는 거지.
-어, 주연이 지금 일본에 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팩트로 꽂아버리네.
-백프로 노엘임. 노엘 아니면 ㄹㅇ 머리 무지개색으로 염색함.
-어, 노엘은 독일에 있어~
-무지개색 염색약은 내가 준비할게, 친구.
미안하지만 전부 아니었다.
이쯤 됐으니 슬슬 게스트를 공개할 시간이었다.
“자, 그럼 게스트를 공개하겠습니다.”
리허설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소개멘트를 뱉었다.
“그럼 연두초대석의 초대 게스트를 소개합니다!”
“짜잔..!”
나와 연두의 합작 멘트.
그와 동시에 의자에서 일어난 수호가 걸어와 의자에 앉았다.
캠을 향해 건네는 인사.
“아, 안녕하세요.. 안수호입니다.”
첫 게스트가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
“아, 안녕하세요.. 안수호입니다.”
수호는 캠을 향해 걸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솔직히 겁이 났다.
알고 있어서였다.
연두부가 나왔으면 하는 게스트들의 이름을.
‘시은, 레나, 선동, 노엘...’
그 외에 언급되는 사람들도 모두 연두와 친한 데다가 연두부들이 잘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그에 비하면 수호는 연두를 지금껏 콩쿨장에서 겨우 한 번 만났을 뿐이었다.
그래서였다.
연두부가 많이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이 든 건.
“아, 안녕하세요.. 안수호입니다.”
리허설 때보다 더 소극적으로 인사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수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직 뭐가 뭔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수호야.”
고개를 돌리니 연두가 화면 속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여기 보면 댓글 볼 수 있어..!”
그 말에 수호가 연두의 손끝을 향해 시선을 가져갔다.
눈에 들어오는 댓글창.
얼마간 시선이 머무르고 자연히 입이 벌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생각과는 전혀 다른 댓글이 마구 쏟아지고 있었으니까.
-뭐야. 수호야??
-와.. 생각도 못했다, 진짜.
-중앙음악콩쿠르 대상 수상자와 최우수상 수상자의 만남... 가슴이 웅장해진다.
-수호 레전드 수상소감의 주인공이자나.
-안 본 사이에 더 잘생겨진 거 같네.
-이런 말 하기 좀 그런데... 연두랑 수호 이 투샷, 좀 많이 예쁜데...?
-이런 말 하기 좀 그러면 하지 마.
-안수호! 안수호! 안수호!
예상을 벗어나서 놀란 눈치긴 하지만 모두가 반겨주는 분위기였다.
실망감을 드러내는 댓글은 하나도 없었다.
-어서 와, 수호야!!
모두가 수호를 반겨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