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8화. 일수 태권도
최근에 섭렵하기 시작한 유투브 채널.
잘 모르겠다.
왠지 모르겠지만 대형 채널보다는 아직 구독자가 그리 많지 않은 채널에 눈길이 갔다.
그렇다고 대형 채널을 보지 않은 것도 아니긴 했지만.
‘재밌었어.’
빡빡.. 아니, 김겨란 아저씨 채널 영상도 여러 개 봤다.
아주 일품이었다.
이호연을 요리 스승으로 모신 것처럼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운동 스승으로 모시고 싶을 정도로.
워낙 바쁘신 분이라 거절당할 거 같긴 하지만.
‘연두를 데려간다면 얘기는 다르지.’
아까 말했듯 유투브 영상을 보면 상대의 성향에 대해 알 수 있다.
그걸 토대로 분석한 결과 김겨란님은 귀여움에 약하다.
분명히 연두와 함께 찾아간다면 일일 운동 배우기 콘텐츠 정도는 진행할 수 있을 터였다.
화려하게 유투버로 데뷔한 김정국 채널도 마찬가지였다.
영상을 보는 내내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40이 훌쩍 넘는 나이에 이런 몸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경탄했으니까.
그리고 거울을 봤다.
우울해졌다.
‘.. 뭐라는 거야.’
자학을 하려고 이 얘기를 꺼낸 건 아니다.
방금 말한 것처럼 둘은 운동 유투버 하면 바로 떠오르는 사람들이다.
허나 문제가 있다.
두 채널의 주 콘텐츠가 웨이트라는 것.
아쉽게도 웨이트는 활동적인 취미를 찾기 위해서라는 연두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연두가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해 보라.
‘취미는 웨이트에여..!’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기에 두 채널은 배제했다.
다음에 상황이 달라지면 연이 닿을지도 모르지만 이번은 아니었다.
또 누가 있을까 생각하던 와중 떠오른 채널이 있었다.
[관장 성일수]
쿨내가 진동하는 채널명.
영상을 보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우연히 시선을 끄는 썸네일을 보게 됐고 처음부터 끝까지 영상을 다 봤다.
물론 하나의 영상 말이다.
‘전부는 무리였지.’
영상이 지루해서가 아니었다.
채널의 첫 영상을 보니 업로드 시점이 무려 3년 전이었다.
연두튜브와 비슷하단 뜻이다.
그로부터 한순간도 쉬지 않고 영상을 올린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였다.
구독자 : 3,372
구독자가 3000명가량밖에 되지 않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3000명.
물론 적은 숫자는 아니다.
허나 내가 영상을 연달아 볼 정도의 채널이라는 걸 고려하면 낮은 수치였다.
게다가 채널 주인은 특별한 이력도 있었다.
‘전 태권도 국가대표.’
한참 지난 일이긴 하지만 태권도 국가대표 출신이라는 점이었다.
따라서 의문이었다.
왜 그런 이력을 썸네일에 올려두지 않은 건지.
국가대표 출신이라는 것만으로도 꽤나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게다가 상당한 미남이기도 하고.
‘아니, 미중년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거나 그런 채널이었다.
국대 출신이라는 걸 알게 된 것도 영상 도중에 스치듯 언급해서였다.
그리고 또 하나.
개인적으로 내적 친밀감을 느끼게 만든 포인트가 있었다.
‘아들바보라는 거.’
정작 영상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아들을 잊을 만하면 언급하곤 했다.
같은 부모끼리는 정이 가기 마련이다.
이쯤 되면 눈치챘겠지만, 내가 생각한 건 태권도였다.
복싱 같은 무술과 달리 태권도는 아이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운동이었다.
“어때, 연두야?”
“태권도..?”
“응.”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빠랑 같이 태권도를 배우러 가는 거지.”
취미를 바로 정할 필요는 없다.
일일 수업을 통해 적합한 취미인지 확인하는 게 좋겠지.
다행히 연두는 대답했다.
“네! 태권도 배워보고 싶어여..!”
“아, 참.”
기왕 데려간다면 다른 아이들도 데려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시은이랑 레나, 그리고……
‘오랜만에 유리도 부르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한 가지 간과한 점을 깨달았다.
너무 설레발이었다.
아직 떡 줄 사람은 아무런 제스처도 취하지 않은 상황인데.
심지어 ‘관장 성일수’ 채널은 연두튜브에 쪽지를 보내온 채널도 아니었다.
나 혼자 영상을 보고 호감이 생겼을 뿐이지.
일방적인 짝사랑인지 아닌지는 쪽지를 보내봐야 알 일이었다.
-안녕하세요, 성일수 관장님. 저는 연두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초록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타 채널에 쪽지를 보내는 게 다소 어색하긴 했으나 최대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영상을 재밌게 보고 있다는 서론과, 함께 콘텐츠를 진행해보고 싶다는 결론까지.
전부 작성한 뒤에 연두를 향해 말했다.
“어떤 거 같아, 연두야?”
쪽지를 본 연두가 쿡쿡 웃더니 얘기한다.
“편지 같아여.”
“응?”
“좋아하는 사람한테 쓰는 편지...”
틀린 말은 아니다.
연두가 그렇게 봤다면 꽤나 괜찮은 편지를 완성한 거 같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마우스를 클릭했다.
달칵.
그렇게 날아갔다.
성일수 관장님을 향한 나의 마음이.
***
유투브에는 영상이 올라갔다.
얼마 전에 진행한 스트리밍의 하이라이트 편집본과 풀버전이었다.
-젠장! 너무 맛있어!!
-너무 달아!!
-10분짜리 꿀단지와 세 시간짜리 꿀통?? 이가 다 썩어버린다고!!!
-미쳤다 미쳤어...
-포브스 선정)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만찬.
-둘이 먹다가 셋이 죽어도 모를 맛.
-기다리고 있었다고!
-누군가 나한테 물었다. 하이라이트 영상을 볼 거냐고, 풀영상을 볼 거냐고.
-그래서 뭐라고 대답함.
-그걸 고민하는 너는 천하의 머저리라고 말해줬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연두부들은 평소보다 더 흥분한 상태였다.
영상을 보기 전부터 텐션이 잔뜩 올라가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반응들.
-어떻게 방송마다 레전드를 찍냐, 진짜...
┖게스트도 찰떡이었음.
┖ㄹㅇ 처음에 수호 나왔을 때는 읭? 했는데 초대박게스트라는 걸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의외로 케미가 미쳤음.
┖뭐라 불러야 하냐. 연수 케미? 수연 케미?
┖개인적으로 나는 무해케미라고 부르고 싶다.. 진짜 둘 다 무해해서 보기만 해도 눈이 깨끗해지는 기분이야.
┖와, 인정이다...
┖그래도 남친은 안됨.
┖그것도 인정.
-이번 방송에 극락 도배가 평소보다 적었던 이유가 뭔지 아냐.
┖뭔데.
┖매 순간이 극락이었기 때문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연탄곡 파트만 스무번째 듣는 중. 진짜 힐링 그 자체다.
┖콩쿠르도 연탄곡 정식 장르로 도입해야 한다.
┖오엑스 퀴즈, 토크, 음악방송까지 삼박자가 완벽했다... 그리고 올라오는 연두튜브 영상까지.
자연스레 입가에 번지는 웃음.
연두부 반응을 보니 이번 방송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는 게 확실해지는 기분이다.
당시에도 느끼긴 했지만.
‘수호 팬카페를 만들겠다는 댓글도 보이네.’
나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게스트로 출연한 수호의 팬이 생긴다면.
이번 방송을 통해 나 역시도 수호의 팬이 됐고 말이다.
팬카페가 생기면 가입할 생각이다.
-다음 스트리밍은 정해졌다.
┖뭔데.
┖수호랑 유리 불러서 고품격 음악방송. 그냥 번갈아 가면서 피아노만 쳐도 레전드일 듯.
┖그런데 그러지 않을 듯 ㅋㅋ
┖내 생각에는 수호 유리 케미도 나쁘지 않다.
┖ㅇㅈ
┖아 ㅋㅋ 유리도 한 번 나올 때 됐지.
┖좋아. 다음 방송은 수호×연두×유리 케미다. 보고 계시죠, 초록님?
보고 있다.
조금은 의아함이 들지도 모른다.
피아노 방송인데 연두부로부터 노엘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 게.
그럴 수밖에 없었다.
놀랍게도 노엘은 한국에 왔을 때 한 번도 대외적으로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으니까.
‘레나네 집에서 시범을 보여준다는 명목으로 친 게 유일했지.’
저번 연두의 콩쿨곡인 폭풍이었다.
노엘이 피아노를 치는 줄 몰랐던 선동이의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든 찰나의 연주.
한국과 독일은 멀었다.
아무리 노엘이 독일에서 촉망받는 피아니스트라고 해도, 그 소문이 한국까지 전해지기는 쉽지 않다.
지금 보고 있는 댓글이 그 증거였다.
‘오히려 좋아.’
모두가 기대하는 세 아이의 조합.
만약 방송을 진행하게 된다면 그 방송에 노엘을 특별 게스트로 초청하는 거다.
그럼 연두부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생각만 해도 재미있는 구도였다.
‘빨리 왔으면 좋겠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날이 무척이나 기다려졌다.
***
[일수 태권도]
직사각형의 간판.
그 앞을 지나가면 쩌렁쩌렁한 아이들의 기합 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야! 야! 얍!”
“태! 권!”
복도를 따라 들어가서 도장 문을 열면 내부 모습이 펼쳐진다.
줄지어 선 아이들.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직선으로 주먹을 내지른다.
“야!”
절도 있는 동작.
직선적인 움직임과 곡선적인 움직임은 둘 다 태권도가 추구하는 동작이었다.
그리고 아이들 앞에 흰 도복을 입고 서 있는 한 남자.
서글서글한 미소가 인상적이다.
미소가 입에서 사라지지 않는 게 입가에 배인 거 같았다.
“자, 바로.”
듣기 편한 목소리.
눈가에 서린 주름도 잘생긴 외모를 감출 수는 없었다.
이제 마무리 운동이었다.
“앉아서 다리 좀 털어주고.”
그에 따라 앉은 자세로 다리를 위아래로 터는 아이들.
성일수는 웃으며 말했다.
“발목 앞으로 하나, 뒤로 둘.”
인자한 미소로 아이들을 돌아보며 성일수는 다음 동작을 지시했다.
“자, 그리고 팔꿈치로만 뒤로 누울 수 있는 사람?”
“저요!”
“하하, 등이랑 엉덩이 대면 안 돼요. 팔꿈치로만 눕는 거야.”
끙끙대는 아이들.
복근 강화 운동으로 쉬운 동작은 아니었다.
그러나 성일수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그 상태로 발을 왔다 갔다 할 건데, 배에 힘을 꾹 줘야 해요. 똥 쌀 때처럼.”
여전한 미소.
전혀 안 할 거 같은 비유를 곧잘 하는 성일수였다.
웃음을 터트리는 아이들.
“하나, 둘, 셋, 넷, 다섯……!”
성일수가 말한다.
“민성이 제대로 안 하고 있는 거 같은데? 관장님은 매의 눈이라 다 보고 있어요.”
“하, 하고 있어요! 으응..”
귀여운 신음을 내며 최선을 다하는 민성이.
그렇게 운동이 끝나고……
“일어서!”
“야!”
수업이 끝났다.
아이들을 다 돌려보낸 뒤에도 입가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자리로 걸어갔다.
곧이어 노트북을 통해 들어간 건 유투브 채널이었다.
[관장 성일수]
“오오!”
채널에 들어가자마자 그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번 뒤돌려차기 강의 영상은 조회수가 사천이나 나왔잖아?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나이가 들며 많아진 혼잣말이었다.
댓글도 꽤 달려있었다.
-늘 잘 보고 있습니다.
성일수는 미소 가득한 얼굴로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독수리 타자였다.
┖아이고, 댓글 감사합니다. 구독자님. 저도 ‘하꼬 유투버만 봄’ 구독자님 댓글 잘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꼬가 뭔가요?
-뒤돌려차기 예술이네요 ㄷㄷ 역시 국대.
┖아닙니다 ㅎㅎ 어렸을 때는 더 잘 찼는데 나이가 드니 쉽지 않네요. 구독자님도 연습하시면 잘 차실 수 있을 겁니다. 회전에 집중하면서……
-도장만 가까우면 울 애기 보내고 싶어요.
-아쉽습니다 ㅠㅠ 그냥 제가 도장을 어머님 댁 근처로 옮길까요? 하핳하!
-근데 진짜 잘생기셨네요 ㄷㄷ 자꾸 얼굴로 눈이 가요.
┖에이, 과찬이십니다. 왕년에 잘생겼다는 소리를 듣긴 했습니다만은... 지금은 주름 가득한 아재에 불과한걸요. 세월이라는 게 참……
그렇다.
키보드만 잡으면 아재력이 폭발하는 성일수였다.
답 댓글은 하나하나 전부 달아주는 편이었다.
“구독자도 11명이나 늘었네.”
댓글을 전부 달아주고 통장 계좌를 확인한 그는 말했다.
“허허.. 눈이 침침하네.”
못 본 거로 하기로 했다.
역시나 가족을 부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였다.
“응?”
유투브 채널 오른쪽 상단에 반짝이는 무언가.
성일수는 그게 뭔지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지금껏 타 채널로부터 제의를 받은 적도, 협찬 문의가 들어온 적도 없었으니까.
달칵.
그래도 반짝이는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클릭하자 떠오르는 쪽지함.
동시에 눈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성일수 관장님. 저는……
침침하던 눈을 단번에 선명하게 만드는 한 쪽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