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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바보가 되었습니다-779화 (780/850)

779화. 괴짜가족

텅 빈 쪽지함에 떠올라있는 하나의 쪽지.

-안녕하세요, 성일수 관장님.

성일수? 그건 내 이름인데.

아직까지 성일수는 자신에게 쪽지가 왔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어지는 내용.

-저는 연두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초록이라고 합니다.

“허허..”

그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이제는 쪽지가 왔다는 사실과 더불어 한 가지를 더 알게 됐으니까.

“어떤 귀여운 친구가 이런 장난을……”

연두튜브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성일수는 아들이 둘이었다.

물론 눈에 넣어도 아픈... 아니, 아프지 않은 두 아들이지만 내심 딸 하나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연두튜브를 보고 있으면 흐뭇한 미소가 떠오르는 건.

늘 미소를 짓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나한테 쪽지를 보낼 리가 없잖아.’

그와 별개로 말이 되지 않았다.

연두튜브는 구독자가 무려 이천만에 달하는 초대형 채널이다.

반면에 ‘관장 성일수’ 채널의 구독자는 삼천이다.

삼천만이 아니고 삼천 명.

쪽지는 고사하고 그런 채널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할 게 분명하다.

그런데…….

‘...정성스럽네.’

아무리 장난이라고 해도 이렇게 지극정성이면 안 읽어볼 수가 없다.

쪽지에는 나와 있었다.

성일수의 채널을 알게 된 시점과 계기, 그리고 함께 콘텐츠를 진행하고 싶은 이유와 부탁까지.

그리고 성일수의 머릿속에는 두 글자가 떠올랐다.

‘설마……?”

마법의 단어였다.

보통 설마 뒤에 오는 생각은 대개 들어맞는 법이다.

마침 쪽지를 다 읽고 난 뒤에, 성일수의 시선에 쪽지 발신인의 썸네일이 들어왔다.

연두튜브의 썸네일이었다.

달칵.

쪽지 내용은 속여도 발신인을 속일 수는 없다.

눈앞에 떠오르는 채널.

한동안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던 성일수가 입을 뗐다.

“...진짜였어.”

장난이 아니었다.

쪽지를 보내온 건 정말 연두튜브 공식 채널이었다.

“진짜였다고!”

“뭐가 진짜야?”

그때였다.

그의 혼잣말에 대답이 들려온 건.

옆을 돌아보니 보이는 건 아내인 윤경아의 얼굴이었다.

“여보, 이거 봐.”

윤경아가 고개를 쏙 내밀어 화면을 바라봤다.

“이게 뭔데?”

“연두튜브 알지?”

“알지. 당신이 좋아하는 채널이잖아.”

“연두튜브에서 나한테 쪽지를 보내왔어.”

“왜?”

세상 진지한 얼굴로 그녀는 물었다.

“왜 연두튜브에서 당신한테 쪽지를 보내?”

“내 채널 팬이래. 내 이번 뒤돌려차기 영상 조회수가 터졌는데 아마 그걸 본 걸지도 몰라.”

“.. 풋.”

작게 웃은 윤경아는 말했다.

“그 영상에 당신 잘생겼다는 댓글 달렸던데.”

“봤구나?”

“응.”

성일수를 바라보며 윤경아는 말했다.

“잘생기긴 했지.”

“응?”

“그거 하나 보고 결혼한 거니까.”

조금은 침울한 미소를 지으며 성일수가 묻는다.

“그거 하나 보고 결혼한 거야?”

“당연하지. 그럼 뭘 보고 결혼해? 다혈질이지, 앞뒤 안 가리지, 툭하면…… 읍.”

윤경아의 입을 틀어막은 건 성일수의 입술이었다.

천천히 입술을 뗀 뒤에 그는 말했다.

세상 다정한 목소리로.

“하하, 다 지나간 일인데.”

“치..”

성일수의 숨겨진 과거를 아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그중 하나가 윤경아였다.

“그래서 같이 콘텐츠 하려고?”

“응. 연두튜브랑 같이 콘텐츠 하면 우리 채널도 더 커질 테니까. 그럼 가족끼리 외식도 한 번 하고……”

윤경아는 알고 있다.

남편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할 때 한쪽 눈꺼풀이 흔들리는 버릇이 있다는 걸.

그게 바로 지금이었다.

“그냥 연두가 보고 싶은 건 아니고?”

“...”

“맞구나?”

성일수는 화면을 보며 얘기했다.

“허허, 이게 답장을 어떻게 보내는 거지. 보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

“으휴...”

윤경아는 마우스를 손에 쥐었다.

“줘 봐, 그것도 못 하면 어떡해.”

그로부터 답장 보내는 법을 알아내는 데는 정확히 30분가량이 소요됐다.

윤경아 역시 컴맹이었으니까.

진이 빠진 표정으로 그녀는 말했다.

“이제 당신이 해. 뭐라 보낼지 적고 전송 버튼만 누르면 되니까.”

“알겠어.”

“나 간다?”

뒤돌아서는 그녀를 성일수가 불렀다.

“잠깐만, 여보.”

“응?”

“당신은 연두 보면 어때?”

아리송한 얼굴로 윤경아는 답했다

“어떻다니? 당연히 귀엽지.”

“그렇지? 당신 눈에도 귀엽지?”

“응.”

“나는 한 번씩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 어떤 생각?”

가늘어지는 윤경아의 눈매.

보통 남편이 이렇게 길게 밑밥을 까는 경우에 하는 말은 정해져 있었다.

“나랑 당신 유전자를 물려받은 딸아이가 태어나면 얼마나 예쁠까……”

서늘한 감각.

고개를 드니 보이는 건 차갑게 식은 얼굴로 걸어오는 윤경아의 모습이었다.

“내가 각오하라고 했지. 한 번만 더 셋째 얘기하면.”

“자, 잠깐만 여보.”

윤경아는 배구선수 출신이었다.

여담으로 지금껏 공식 경기와 비공식 전투를 통틀어 성일수의 전적은 47승 2무 1패이다.

그리고 윤경아는 그에게 1패를 선사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

늦은 저녁.

쪽지가 하나 날아들었다.

-안녕하세요. 관장 성일수입니다.

조금 놀랐다.

무려 4일 만에 온 답장이었으니까.

솔직히 답장이 오지 않길래 마음속으로 어느 정도 체념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결론적으로 콘텐츠를 진행하자는 답장이었다.

‘좋아.’

날짜와 시간이 정해졌다.

그에 따라 나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네, 세연씨.”

“안녕하세요, 레나 어머님.”

차례로 두 사람에게 연락을 돌렸다.

시은이와 레나는 어렵지 않게 섭외할 수 있었다.

남은 건 한 명.

“여보세요.”

“어머, 오랜만이에요. 연두 아버님.”

“하하, 그러네요.”

은주아에게 연락을 취했다.

“오, 너무 재밌겠는데요?”

긍정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우리 유리도 운동을 너무 안 해서 탈이거든요.”

나쁜 의미는 아니지만 확실히 운동을 좋아할 거 같은 이미지는 아니긴 하다.

그녀는 입을 뗐다.

“저야 너무 좋지만 그래도 유리한테 한 번 물어봐야 할 거 같은데...”

“물론이죠.”

물어보고 답을 달라고 말하려는 차에 그녀가 얘기했다.

“괜찮으시면 직접 통화하실래요? 유리 지금 방에 있는데.”

“아, 그럴까요?”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유리랑 마지막으로 통화한 지 꽤 되기도 했고.

얼마 뒤에 왠지 모를 우당탕 소리와 함께 유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보세요.”

***

유리는 혼자만의 밀당 중이었다.

마지막으로 아저씨와 통화하고 난 뒤에 일부러 전화를 걸지 않고 있었으니까.

서운하기도 했다.

얼마 전 방송 게스트가 자신이 아니었다는 게.

그로 인해 심통이 나서 전화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있던 유리였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 물어보는 거야. 그건 아무렇지도 않잖아.’

한계를 맞이한 유리였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는 전화해서 물어볼 생각이었다.

다음 연두초대석은 언제냐고.

물어본 다음에 할 말도 정해져 있었다.

스케줄이 바쁘긴 하지만 정 원한다면 다음 연두초대석의 게스트로 나가주겠다고.

그런데 그때, 방문이 열리고 엄마가 들어왔다.

“유리야. 아저씨한테 전화 왔는데?”

콰당.

놀란 나머지 의자에서 넘어져 버렸다.

“어머! 괜찮아, 유리야?”

“괘, 괜찮아!”

툴툴 털고 일어서며 짐짓 모르는 척 얘기했다.

“아저씨가 누군데?”

“누구긴. 연두 아버님이지.”

“나 바꿔 달래?”

“응.”

웃음이 나오려 했으나 가까스로 꾹 참았다.

저녁까지 참길 잘했어.

그렇게 생각하며 유리는 엄마를 향해 손을 뻗었다.

“줘.”

핸드폰을 건네받은 유리는 말했다.

“.. 여보세요.”

“유리야.”

틀림없는 아저씨 목소리였다.

“어때. 지금 스케줄은 안 바쁘니? 전화 괜찮아?”

“네, 지금은 괜찮아요.”

“다른 게 아니라 유리한테 할 얘기가 있어서 전화했는데……”

그럼 그렇지.

연두초대석 다음 게스트로 섭외하려는 게 분명하다.

그런데……

“.. 태권도요?”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들려왔다.

태권도라니.

전혀 흥미 없는 분야였다.

학교에서 띠를 두르고 잘난 척을 하고 다니는 아이들만큼 한심해 보이는 것도 없었으니까.

누구는 흰 띠, 누구는 빨간 띠.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 그런 생각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누구랑 같이 가면 좋을지 생각하니까 바로 유리가 떠오르더라고.”

“.. 진짜요?”

“응?”

“진짜 제일 먼저 떠올랐어요? 연시은이랑 이레나보다도?”

안타깝게도 주원은 쓸데없이 솔직한 편이었다.

“그게.. 굳이 말하자면 동시에 떠올랐다고 볼 수 있는데……”

연애를 못 한 이유였다.

입이 삐죽 튀어나온 유리는 얘기했다.

“뭐예요, 그게.”

허나 거절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 갈게요.”

“응?”

“어쨌든 제가 없으면 안 된다는 거잖아요.”

“그, 그렇지?”

“그럼 어쩔 수 없죠.”

그렇게 성사된 태권도 멤버였다.

***

[일수 태권도]

콘텐츠 당일.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태권도장 앞에 도착했다.

오늘은 신세연도 함께였다.

도장 앞에는 아이들을 픽업하는 데 쓰이는 것처럼 보이는 대형차 한 대가 서 있다.

“그럼 들어갈까, 얘들아?”

“네!”

신난 표정의 연두.

늘 그렇듯 레나는 해맑은 표정이다.

무표정인 시은이 옆으로는 유리가 시큰둥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러다 결국 입을 뗀다.

“아저씨.”

“응, 유리야.”

“근데 왜 하필이면 태권도예요?”

나는 빙긋 웃으며 되물었다.

“유리는 태권도가 싫어?”

“싫은 건 아닌데, 학교에 태권도 배우고 까부는 애들이 너무 많아서요.”

하기야 어렸을 때를 돌아보면 그때도 있었다.

꼭 학교에 도복을 입은 채로 띠까지 두르고 오는 아이들이.

유리가 다니는 학교에도 많은 모양이다.

‘이상한 건 아니지.’

어린 나이에는 누구든 배운 걸 자랑하고 겉으로 드러내고 싶은 법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걱정하지 마, 유리야.”

“네?”

“아마 관장님한테 배워보면 알게 될 거야. 태권도가 얼마나 매력 있는 운동인지.”

그렇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복도를 따라 걸어가니 나오는 태권도장 문.

노크 후 살짝 문을 열었다.

“계신가요?”

그러자 모습을 드러냈다.

화면에서만 보던 인자한 미소를 가진 성일수 관장님이.

“어서 오세요. 일수 태권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실제로 보니 더 잘생겼다.

어지간하면 남자한테 잘생겼다는 말 안 하는데.

“처음 뵙겠습니다.”

“아이고, 초록님.”

그의 시선이 아이들을 향했다.

“전부 잘 아는 얼굴들이네요. 연두, 시은이, 레나, 그리고 유리까지.”

“안녕하세요.”

꾸벅 인사하는 아이들.

외모 때문일까.

힐끗 관장님을 바라보는 유리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관장님은 흰 도복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검은띠인가..’

태권도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대충은 알고 있다.

검은띠가 가장 높다는 것도.

사실 국가대표 출신인데 검은띠가 아니라는 게 말이 안 되긴 한다.

“자, 그럼……”

어색하게 서 있는 우리를 향해 성일수가 입을 떼려는 찰나였다.

“.. 아앙! 흐아앙!”

웬 울음소리가 메아리치듯 들려온다.

귀를 쫑긋 세웠다.

“.. 으응?”

아이들도 눈치챈 모양.

그러는 사이에 울음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하하.. 제 아들 녀석이 왔나 보네요.”

“아드님이요?”

“네.”

이윽고 문이 열린다.

“흐앙!”

들어온 건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왜인지 펑펑 울고 있다.

“아빠!”

“왜 그래, 아들?”

“애들이 이름 가지고 또 놀렸어! 흐아앙! 애들 혼내줘어!!”

“아이고...”

보아하니 밖에서 놀다가 친구들이 놀려서 속상해서 들어왔나 보다.

그나저나 이름이 뭐길래.

“일단 뚝 하자. 응? 삼수야, 뚝.”

“...”

바로 납득했다.

성이 ‘성’인 걸 고려하면 이름이 성삼수인 건가.

“흐아앙! 애들이 나는 바보라서 삼수할 거래!”

“어허, 어떤 녀석들이?”

“최진호! 박동수! 김시철! 오경민! 흐아앙!”

그 와중에 하나도 빠짐없이 말하는 게 대단하다.

울음은 그칠 기색이 없다.

다소 갑작스러운 상황에 연두를 포함한 아이들은 눈만 깜빡이고 있다.

그때였다.

끼익.

또 도장 문이 열렸다.

한쪽 어깨로 가방을 둘러멘 남자가 들어왔다.

이번에는 고등학생 정도로 보인다.

삼수를 달래던 성일수가 조금 놀란 얼굴로 묻는다.

“어, 이수야. 무슨 일이니?”

“그냥 잠깐.”

이번에는 이수인 거냐.

재수가 아닌 게 천만다행이다.

얼굴을 보니 확실히 관장님과 닮은 구석이 많았다.

그럼 첫째아들인 건가.

“근데 얘는 왜 또 울고 있어?”

“친구들이 놀렸다고 하는구나.”

“하.”

비웃음 섞인 어조로 입을 뗀다.

“야, 삼수.”

“삼수라고 하지 마! 흐아앙!”

“놀리면 울 게 아니라 다시는 놀리지 못하게 해줘야지.”

주먹을 들고서 얘기한다.

“태권도는 왜 배운 거냐?”

“흐아앙! 아빠가 폭력은 나쁘다고 했어! 바보 형아!”

“바보는 너고.”

신기하다.

전혀 다른 두 형제.

한 명은 펑펑 울고 한 명은 그런 동생을 갈구는데 정작 우리에게는 일말의 관심도 없다.

“나랑 이름 바꿔, 형아! 나도 이수하고 싶어! 삼수하기 싫어! 흐아앙!”

“너랑 이름 바꿀 바에야 차라리 이름이 바보인 게 낫겠다.”

“흐.. 흐아앙!”

가만 보니 안 울고는 못 배기게 만드네.

자리에서 일어나는 성일수.

“하하.. 이수, 이 녀석. 동생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니까.”

아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

그리고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장면이 펼쳐졌다.

거리가 좁혀지는 순간.

관장님인 성일수의 머리를 향해 이수의 발이 올라왔다.

믿을 수 없이 빠른 속도였다.

그런데 끝이 아니었다.

휘릭.

가드로 킥을 흘려낸 뒤에 팽이처럼 회전하는 관장님의 몸.

뒤돌려차기였다.

그렇게 이수의 얼굴을 겨냥한 발끝은 정확히 가격하기 직전에 멈췄다.

이어지는 한 마디.

“옆차기가 많이 늘었구나, 아들.”

“.. 쳇.”

나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사전에 맞춰진 콩트를 보고 있는 건지, 아니면 이게 현실인지.

뭐라 해야 할까.

너무 현실감이 없어서 현실처럼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모르겠어.’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둘 중 어느 쪽이든 간에 흔히 볼 수 없는 가족인 건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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