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딸 바보가 되었습니다-782화 (783/850)

782화. 삼수조교

재능이란 명백히 존재한다.

나도 부모님께 감사해야 할 여러 재능을 물려받았다.

대표적인 게 손재주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가 가지고 태어나지 못한 재능도 수없이 많았다.

‘당연한 거지.’

모든 부면이 완벽한 인간은 없다.

신체적 능력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신체 능력 중에서 가장 취약한 능력을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답할 수 있었다.

유연함이라고.

“지금부터 일수 태권도의 유연성 트레이닝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였다.

유연성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숨이 턱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든 건.

“먼저 2인 1조로 조를 지어볼 건데요.”

우리를 훑어본 성일수는 빙긋 웃으며 얘기했다.

“마침 딱 맞네요.”

나는 연두와 한 조를 이룰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조를 이뤄 트레이닝을 하기 위해서는 신장이 어느 정도 비슷해야 했으니까.

따라서 내 짝이 될 수 있는 건 한 명뿐이었다.

“잘 부탁해요, 주원씨.”

“아, 네.”

다름 아닌 세연씨였다.

성일수는 나머지 아이들의 짝도 지어줬다.

“그리고 연두랑 시은이, 유리랑 레나가 같이 하면 되겠다.”

“.. 네?”

눈이 동그래진 유리.

“이레나랑요? 싫어요!”

“나도 싫거든!”

또 불똥이 튄다.

그런 둘을 향해 다가온 건 다름 아닌 삼수였다.

“그럼 나랑 하자!”

“응?”

삼수는 그대로 미끄러지듯 양쪽 다리를 뻗어 일자를 만들었다.

소위 말하는 다리찢기 자세.

허나 끝이 아니었다.

‘180도가 아니야.’

일자가 된 상태에서 다리는 더 꺾여서 자유자재로 앞뒤로 움직였다.

연체동물이 연상될 정도였다.

보기만 해도 고통이 느껴지는데, 삼수는 여전히 마냥 해맑은 얼굴이다.

“나랑 짝꿍 하면 이렇게 할 수 있어! 그러니까 나랑 짝꿍 하자!”

“...”

그리고 이어졌다.

성일수 관장님의 무시할 수 없는 한 마디가.

“짝꿍이 마음에 안 들면 삼수랑 짝꿍을 해도 좋단다. 집에 걸어가기는 조금 힘들겠지만 괜찮을 거야.”

집에 걸어가기 힘들 거라는 얘기를 웃으면서 하니까 더 섬뜩하다.

유리와 레나.

시선이 교차하더니 누가 먼저다 할 거 없이 입을 뗀다.

“그, 그냥 짝꿍 하자.”

“.. 그래.”

그 모습을 본 삼수가 풀 죽은 얼굴로 말한다.

“힝.. 나랑 짝꿍 안 하는 거야?”

동시에 혼잣말을 하며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왜 다들 나랑 짝꿍을 안 하려고 하는 걸까...”

흘러나오는 실소.

아마 그 이유를 모르는 건 삼수밖에 없을 거 같았다.

***

2인 1조로 진행되는 유연성 트레이닝.

관장님이 시범을 보이면 우리가 그 동작을 따라 하는 구조였다.

물론 관장님도 짝꿍이 있었다.

“아니, 내가 왜 아빠랑 손을 잡아야 하는 거냐고.”

“허허..”

관장님이 우리를 보며 말한다.

“제 아들놈이 원래 이렇게 솔직하지 못합니다.”

“...?”

이수의 얼굴에 떠오르는 물음표.

전혀 개의치 않고 관장님은 입을 열었다.

“자, 처음은 개인 동작인데요. 모두들 잘 알 만한 동작을 한번 해볼까요?”

바로 이어지는 동작.

허리를 굽히며 손을 아래로 쭉 뻗는다.

국민체조에도 나오는 동작이었다.

허나 익숙하다는 게 쉬운 걸 의미하는 건 아니다.

적어도 나한테는.

‘.. 말도 안 돼.’

눈을 감았다 뜨니 성일수의 손바닥은 발이 아닌 지면과 맞닿아 있었다.

그것도 손바닥 전체가.

50을 앞둔 나이에 저 정도의 유연함을 가지고 있다니.

“자, 이렇게 최대한 밑으로 뻗어주세요.”

그렇게 시작된 첫 동작.

곧잘 따라 하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들은 내 생각 이상의 유연함을 갖추고 있었다.

‘연두도 잘하네.’

어렵지 않게 손을 발에 가져다 대는 모습을 보니 절로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역시 우리 딸이야.

그러나 가장 의외였던 건 세연씨였다.

대개 유연한 동작을 취하는 건 아이들보다 성인의 경우가 훨씬 어렵다.

더군다나 세연씨는 팔다리가 긴 편이기도 하고.

‘유연한 편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손이 지면에 닿아 있었다.

가만 보면 생각 외로 반전을 보여줄 때가 많단 말이지.

학창 시절에는 글도 잘 썼다는 거 같고.

그때였다.

툭. 툭.

누군가 두드리는 감촉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보니 눈에 들어오는 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삼수의 얼굴이었다.

“초록아저씨도 해야 해요!”

“아.”

내 정신 좀 봐.

주위를 관찰하느라 내가 수강생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시선을 내리니 보이는 두 발.

‘그래.’

전과는 다를지도 모른다.

유연성과 관련된 건 아니지만 최근 운동을 꾸준히 하기도 했고.

알게 모르게 유연성이 향상됐을 수도 있는 거니까.

생각보다 발이 멀어 보이지는 않는다.

한 번에 간다.

슈욱-

그런 생각으로 있는 힘껏 팔을 내렸다.

그렇게 내린 팔은 정확히 발이 아닌 발목 위에서 제동이 걸렸다.

절로 새어 나오는 신음.

“흐어어..”

무릎 뒤에 느껴지는 통증.

나는 실감했다.

이 이상은 무슨 짓을 해도 무리라고.

그도 그럴 게, 지금 자세를 유지하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에이, 아저씨. 좀 더 내려가야 해요!”

불길한 예감.

정신을 차렸을 때 내 손은 바닥을 찍고 있었다.

반강제적으로.

“끄어억!”

그렇게 나는 유연성을 극복(?)했다.

***

극심한 고통이었다.

다행인 점이라면 단발적이고 일시적이었다는 거지만.

만약 그 고통이 10초만 유지됐어도 내 의지와 관계없이 눈물이 줄줄 흘렀을 거다.

조금은 원망스러운 얼굴로 삼수를 바라봤다.

“잘했어요, 아저씨!”

엄지를 척 내미는 삼수.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고, 고마워..”

“.. 푸흣.”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세연씨도 웃으며 말한다.

“괜찮아요, 주원씨?”

“.. 지금은요.”

트레이닝은 다음 챕터로 넘어갔다.

“자, 이번엔 짝꿍이랑 함께하는 동작인데요. 이렇게 짝꿍과 마주 보고 앉아주세요.”

마주 보고 앉은 관장님과 이수.

그에 따라 우리도 짝꿍끼리 마주 보고 매트 위에 앉았다.

“그리고 손을 잡습니다.”

바로 손을 잡는 연두와 시은이.

옆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엉거주춤하며 손잡기를 주저하는 두 아이가 있었으니까.

“나랑 짝꿍 할래?”

그 한 마디에 바로 손을 마주 잡긴 했지만.

둘의 반응에 또 침울한 표정을 짓고서 발길을 떼는 삼수.

삼수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짝꿍이 되는 건 나 역시 사양이었다.

집에 걸어가고 싶었으니까.

“세연씨.”

“네.”

“빨리 잡아요, 손.”

삼수가 오기 전에 손을 잡아야 했다.

“아..”

왜인지 조금 망설이는 듯했으나 세연씨는 내 손을 잡았다.

삼수가 오기 전에.

그런 우리를 본 삼수는 다행히 그대로 지나쳐갔다.

“다음은 이렇게 발을 양옆으로 쭉 뻗어서 짝꿍과 맞닿게 해주세요.”

이후는 간단했다.

상대의 발을 지지대 삼아 최대한 다리를 곧게 펴고 허리를 젖히는 동작.

다리찢기와 유사한 자세였다.

예상은 했지만 이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 긴 다리가 일자가 되는데도 표정은 세상 평안하다.

따분해하고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이 정도는 애들 장난이라 이건가.’

그럼 그 애들은 어떨까.

연두랑 시은이는 이미 동작에 들어간 상태였다.

“헤헤..”

“좀 더 찢어봐, 연두야. 할 수 있어.”

“응! 으으...”

거의 다리찢기에 성공한 연두.

“할 수 있어, 시은아..!”

시은이도 마찬가지였다.

서로의 응원에 힘입어 다리찢기를 해내는 모습이 세상 훈훈했다.

“아빠! 다리찢기 했어여..!”

“하하, 대단한데?”

그럼 그 옆은 어떻냐고?

아무래도 조금 자극제를 넣어줄 필요가 있을 듯하다.

“레나랑 유리 둘 중에서는 누가 더 유연해?”

내 한 마디가 불러일으킨 파장은 생각보다 컸다.

“당연히 저죠.”

“저요.”

동시에 대답한 둘 사이에 또 불꽃이 튄다.

그리고 이어지는 동작.

“윽!”

“이얏..!”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변한 둘.

그 단순함에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고 있는 중이었다.

또다시 들려왔다.

어디선가 나타난 삼수의 목소리가.

“아저씨랑 누나 차례예요!”

바로 동작을 수행하려다가 어딘가 이상함을 깨달은 나는 말했다.

“잠깐만.”

“네?”

“나는 아저씨인데 왜 세연씨는 누나야?”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이 눈을 깜빡이는 삼수.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묻는다.

“그럼요?”

“통일해야지! 나도 형이라고 불러줘!”

“알겠어요, 형아!”

순순히 받아들이는군.

앞을 보니 세연씨가 이 상황이 웃긴 건지 쿡쿡 웃고 있다.

머쓱해진 나는 말했다.

“세연씨 먼저 할래요?”

“좋아요.”

손을 잡고 발을 맞댄 채로 고개를 숙이는 그녀.

다리가 쭉 늘어난다.

“.. 괜찮아요?”

“네. 아직 좀 더..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세연씨는 실제로 좀 더 다리를 찢었다.

괜히 노란띠가 아니었다.

거의 일자가 될 정도로 다리를 찢고 난 뒤에야 그녀는 허리를 들어 올렸다.

인정한다는 표정으로 나는 입을 뗐다.

“우와.. 엄청 잘하는데요?”

“.. 헷.”

뿌듯한 미소와 함께 그녀가 말한다.

“이제 주원씨 차례예요.”

못하더라도 최선은 다하는 편이었다.

마찬가지로 그녀의 발을 지지대 삼아 최대한 허리를 아래로 내렸다.

“으윽..”

“힘내요! 좀 더 할 수 있어요!”

허리를 젖힌 채로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할 수 없었다.

더는 불가능하다는 판단하에 고개를 들려는 참이었다.

“에이, 형아. 좀 더 내려야 해요.”

순간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잠깐만, 삼수야. 잠깐……”

꾸욱.

등을 지그시 누르는 감각.

그에 따라 입 밖에 또 한 번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 끄억.”

삼수는 나를 싫어하는 게 틀림없었다.

***

그 뒤에도 여러 동작이 이어졌다.

안타깝게도 훈련조교 삼수는 폐급 수강생인 이주원에게 지나치게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이주원은 나였다.

‘다리가 탈탈 털린 기분이야...’

풋살을 쉬지 않고 뛰었을 때와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감각이다.

그래도 느낀 점이 있었다.

유연한 자세를 할 수 없었던 게 아니라 안 했을 뿐이라고.

고통을 각오하면 동작 자체를 수행하는 건 가능했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지만.

“잘했어요, 초록형아!”

“그래, 고맙다..”

애써 미소를 띠며 나는 이를 악물고 덧붙였다.

“.. 삼수야.”

절대 나쁜 의미를 담은 건 아니었다.

유독 삼수라는 이름이 입에 착 달라붙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

삼수에게는 고마웠다.

신경 써준 덕분에 트레이닝을 극한으로 받을 수 있었으니까.

“자, 고생 많았습니다. 이제 제자리에서 가볍게 뛰어볼까요?”

관장님의 지시에 따라 제자리에서 가볍게 점프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 가벼워.’

몸이 가벼웠다.

정확히는 하체가 공기처럼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나만 느끼는 건 아닌 듯했다.

“우아...”

연두의 감탄사.

그 옆에서는 유리도 꽤나 놀란 얼굴을 하고 있다.

“어때요. 몸이 좀 가벼워진 기분이 드나요?”

“네!”

“그럼 이제 여러분은 비로소 준비가 된 겁니다.”

성일수는 허리를 곧게 펴고서 말을 더했다.

“실전에 사용 가능한 태권도 기술을 배울 준비가.”

본론에 들어간 수업.

사전에 설명한 기본준비서기 자세를 취한 관장님이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그 주먹은 용수철처럼 허공을 뻗어나갔다.

간결하고 깔끔한 동작.

“이게 여러분이 배우게 될 첫 번째 기술입니다. 기술명은……”

첫 기술명.

그 명칭은 바로 ‘정권지르기’ 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