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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바보가 되었습니다-791화 (792/850)

791화. 갑분동창회

연두의 앞니.

덜렁거리긴 하지만 빼는 걸 서두를 이유는 없다.

톡 건드리면 빠질 정도까지 기다린 뒤에 빼도 늦지 않으니까.

아빠와 나는 달랐다.

‘귀엽겠네.’

그래도 가능하다면 앞니가 빨리 빠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왜냐고?

엄청 귀여울 거 같거든.

앞니 하나가 톡 빠진 연두를 생각하기만 해도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그리고 또 하나.

아무리 유치라고 해도 앞니가 흔들리는 상태로 생활하는 건 불편한 일이다.

연두를 위해서라도 빨리 빠지는 게 좋았다.

그러고 나면 단단하고 예쁜 영구치가 새로이 자리잡을 테니까.

‘근데 잘 안 빠지면 어쩌지?’

유치 개수는 보통 20개이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잘 빠지는 치아도 있는 반면에 쉽게 빠지지 않는 치아도 있었다.

그럴 때는 어느 정도의 강제력을 동원해서 이를 빼 줘야 한다.

뭐, 방법이 있겠지.

겁을 낼 수도 있겠지만 치과를 가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스윽.

마우스를 손에 쥐었다.

출시 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긴 했으나 ‘드림 큐!’ 열풍이 가라앉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기사와 함께 올라오는 수많은 댓글들.

-와.. 이쯤 되면 초록님은 진짜 미친 거 같다.

-마이더스의 손..

-근데 퀄리티 보면 납득이 감 ㅋㅋㅋ 일러스트 보면 진짜 말이 안 나옴.

-ㅇㅈ

-현 시점 가장 폼 좋은 작화팀 아니냐.

-엄마, 저는 커서 초록님이 될래요!

-이쯤 되면 진정한 먼치킨은 초록님이 아닐까.. 뭐 하나 부족한 게 없는데 화룡정점으로 연두가 딸이라는 것까지...

-ㄹㅇ ㅋㅋ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낯 뜨거운 찬사가 이어진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인정한다.

뭐 하나 부족한 게 없다는 말은 동의하지 않지만, 지금 내 인생에 100% 만족하는 건 맞으니까.

자신이 있었다.

그 어떤 삶을 가져와도 바꾸지 않을 자신이.

“아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삶을 포기하라는 건 지금 눈앞에 있는 연두를 포기하라는 건데.

헛웃음만 나온다.

“더 많이 흔들려요..”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내가 가진 모든 걸 빼앗아도 포기할 수 없는 단 하나.

그게 연두였다.

조금은 불편한 듯이 입을 우물거리며 연두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 연두를 쓰다듬으며 얘기했다.

“그래서 신경쓰여, 연두야?”

“네에.”

“괜찮아. 더 예쁘고 튼튼한 이가 돋아나려는 거니까. 많이 흔들릴수록 좋은 거야. 그러니까 신경쓰여도 조금만 참아.”

고개를 끄덕이는 연두.

살짝 손을 뻗으며 조심스레 얘기했다.

“괜찮으면 아빠가 살짝 만져볼까?”

“으응, 괜찮아여..”

“그럼……”

살짝 벌어진 틈새로 앞니를 톡 건드려봤다.

역시나 많이 흔들린다.

이대로 툭 건드리면 빠질 것도 같지만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아직은 타이밍이 아니라는 생각도 있었고, 혹여나 실패라도 했다가는 대참사가 날 테니까.

펑펑 우는 연두를 보게 될 거다.

“금방 빠지겠다. 아마 내일이나 모레 정도면 빠질 거 같아.”

“.. 진짜여?”

“응.”

표정을 보니 걱정과 동시에 조금은 기대하고 있는 거 같다.

이가 빠지는 순간을.

잠깐만.

그렇다면 지금이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뺄 타이밍은 아니고, 그 두려움과 거부감을 조금은 덜어줄 타이밍.

자연스레 혼자 이가 빠지는 경우도 있지만 20개의 치아가 모두 그렇게 빠질 거라는 법은 없으니까.

“연두야.”

“네, 아빠.”

“아빠도 어렸을 때 이를 뺏거든? 아빠는 할아버지가 이를 빼 주셨어.”

“.. 할아버지가요?”

“응. 할아버지는 하나도 안 아프게 이를 빼는 방법을 알고 있었거든.”

선의의 거짓말이다.

방법 자체는 틀리지 않았을지 몰라도 아빠는 충분히 흔들리기 전에 내 이를 빼 버렸으니까.

비유하자면 열매가 완전히 익기 전에 따 버린 거나 마찬가지다.

어쨌거나……

“어, 어떻게여..?”

“그건 연두가 이를 빼야 할 때 알려줄게. 치과에 가지 않아도 하나도 아프지 않게 이를 뺄 수 있는, 할아버지가 알려주신 방법.”

“우아...”

다행이다.

이가 빠지는 게 아니라 빼야 한다는 사실 자체에 겁을 내면 어쩌나 했는데.

그건 아닌 거 같으니 말이다.

이제 남은 건 최적의 시기를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

한 달 간의 휴가.

그 시작에 맞춰 제이디한테 연락이 걸려왔다.

“잘 지내셨죠, 초록님?”

제이디.

그녀는 이모티콘 부서에서 나를 담당하는 직원이었다.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덧붙인다.

“물론 초록님이 어떻게 지내시는지는 이렇게 여쭤보지 않아도 알 수 있지만요.”

확실히 오픈된 편이긴 했다.

연두튜브는 말할 것도 없고 업무에 관련된 것도 기사와 각종 매체를 통해 드러나니까.

꼭 연예인이라도 된 기분이다.

“점점 이렇게 연락드리기도 어려운 분이 되어가시는 거 같아요.”

“하하, 아닙니다.”

“먼저 다시 한 번 축하드려요, 드림 큐.”

다시 한 번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게임의 흥행이 확실시된 시점에 제이디로부터 축하 메시지가 왔으니까.

“감사합니다.”

그와 별개로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전화해 온 건 단순히 축하 인사를 건네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는 걸.

당연한 일이었다.

나와 그녀의 관계는 이모티콘 부서 담당자와 이모티콘 작가로서 성립된 거니까.

연락의 주목적도 이모티콘과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초록님께 축하인사 말고도 드릴 말씀이 있는데……”

역시나 그랬다.

대답하려는데 또다시 들려오는 제이디의 목소리.

“이렇게 말씀드리면 앞서 드린 축하인사가 가식으로 느껴질까 봐 조금 조심스럽네요.”

“그럴 리가요.”

작게 웃으며 나는 입을 뗐다.

“그래도 나름 두 개의 이모티콘을 함께 제작한 사이인데요.”

말 그대로였다.

함께 호흡을 맞춰 이모티콘을 제작하는 동안,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는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였다.

그녀는 항상 내 편의를 봐 주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에 이모티콘이 생소했을 때도 다방면으로 제이디가 노력해 준 덕에 빠르게 감을 잡을 수 있었고.

따라서 그런 오해같은 건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러네요.”

작게 웃더니 그녀는 안심한 듯이 본론을 꺼냈다.

“혹시 저랑 마지막으로 통화한 거 기억하시나요, 초록님?”

“네, 기억하죠.”

마지막으로 제이디와 통화한 건 게임을 출시한 시점보다 꽤나 전이었다.

당시에 한 말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차기작에 관한 아이디어가 있다고 하셨는데.. 아직도 유효한가 해서요.”

차기작.

그건 연두티콘과 연두부콘에 이어 세 번째 이모티콘을 뜻하는 게 분명했다.

“시간이 꽤 지났으니까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셨을 수도 있고……”

조금은 불안한 듯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전에 초록님이 차기작을 그릴 의향이 있는지도 다시 한 번 여쭤봐야 하니까요.”

“그렇군요.”

당시에는 이번 프로젝트를 끝낸 뒤에 이모티콘을 제작할 의사를 밝혔던 나였다.

그러나 인간은 변덕쟁이다.

시시각각 마음이 바뀌는 경우도 허다하니 제이디가 이렇게 말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빙긋 웃으며 나는 얘기했다.

“우선 답을 드리자면 차기작을 그릴 의향은 있습니다.”

“.. 정말요?”

과하게 기뻐하는 게 느껴진다.

그러다 조금 반응이 과했다고 생각했는지 말을 더한다.

“다행이네요. 저도 꼭 초록님이랑 한 번 더 담당자로서 호흡을 맞춰보고 싶었거든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외로 중요했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담당자가 있다는 건.

앞서 두 개의 이모티콘을 제작하면서 제이디가 업무적으로 나와 잘 맞는다는 건 검증이 끝난 상태였다.

그렇기에 차기작 제작도 큰 부담없이 결정할 수 있었고.

“그리고 아이디어는 그때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정확히 말했던 건 아니다.

당시에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는 것 정도만 얘기하고 넘어갔으니까.

이제는 말해줄 타이밍이었다.

“떠올리면 다른 좋은 아이디어도 많겠지만, 이번에는 그만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 기대되네요.”

제이디가 조금은 상기된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어떤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네.”

곧바로 나는 생각해 둔 명칭을 입에 담았다.

“이름은 누렁티콘입니다.”

“누렁티콘이요?”

되물은 그녀가 외마디 소리를 내뱉는다.

“아!”

바로 감을 잡은 모양이다.

그럴 만도 했다.

제이디도 누렁이의 존재를 알고 있을 테니.

“소재가 누렁이인 건가요?”

“맞습니다.”

“벌써 좋은데요? 일단 고양이 자체가 사람들한테 친숙하기도 하고, 누렁이라는 특정 고양이를 차용한다는 점에서 평범한 느낌도 없앨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벌써 조금은 흥분한 듯한 모습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녀의 열정에 불이 붙도록 한 발 더 나아가 줘야겠지.

빙긋 웃으며 얘기했다.

“사실 생각만 한 건 아니고 그동안 틈틈이 그려둔 게 있긴 하거든요. 괜찮으시면……”

“정말요?”

바로 돌아오는 답.

“가능하다면 지금 바로 보내주실 수 있나요?”

“네, 그럼……”

마침 태블릿이 앞에 있었다.

그려둔 것을 전부 한데 모아서 해당 파일을 제이디 메일로 보내줬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 하.”

몇 번이나 실소와 함께 그런 숨소리를 뱉던 제이디가 말했다.

“다음 미팅에서 바로 컨택 넣어볼게요, 초록님.”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적어도 그녀만큼은 누렁티콘을 마음에 쏙 들어한다는 게.

***

이번 휴가계획은 간단하다.

누렁티콘을 그리는 것 외에 그림이나 업무에 관한 건 일절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래야 휴식의 취지에 맞으니까.

이모티콘을 그리는 것 정도는 참작의 여지가 있었다.

‘그림도 근육이니까.’

근육은 정기적으로 쓰지 않으면 사라지고 만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아예 손을 놔 버린다면, 다시 펜슬을 쥐었을 때 감을 잃어버릴 우려가 있었다.

이모티콘은 최소한의 시간을 들여 그 감을 유지해 줄 좋은 장치였다.

초고를 거의 다 그려둬서 매일 조금씩 그리는 정도로 충분하고 말이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연두랑 보내는 거지.’

어떤가. 완벽한 계획이지 않은가.

최근 들어 유행하는 MBTI라는 걸 했는데, 네 번째에 위치한 P와 J 중에 나는 치우친 P가 나왔다.

계획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녀석이라는 뜻이다.

뭐, 인정한다.

허나 그런 내가 생각하기에도 퍼펙트한 계획이었다.

이모티콘 조금씩 그리다가 남는 시간은 전부 다 연두랑 놀기.

“흐흐.”

절로 새어나오는 웃음.

그러나 그 계획에는 아주 조금의 결함이 있었다.

비는 시간이 있다는 거다.

그건 바로 연두가 학교에 간 시간동안이었다.

이모티콘을 그리고 누렁이랑 놀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꽤나 시간이 남았다.

‘편집은 새벽에 하는 편이니까.’

집에서 뒹굴거린다는 선택지도 있지만 그건 생산적이지 못하다.

따라서 나는 생각했다.

그 시간을 활용해서 그동안 바쁜 탓에 만나지 못한 주위사람들을 만나는 게 어떨까 하고.

적어도 집에 박혀있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아빠, 다녀오겠습니다..!”

“하하, 그래.”

오늘도 약속을 잡았다.

연두를 학교에 데려다 준 뒤에 나는 곧바로 약속장소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목적지.

[코끼리 볼링장]

그렇다. 오늘 약속장소는 볼링장이었다.

흘러나오는 음악.

이른 시간인데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볼링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내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저렇게 티가 나냐.’

익숙한 삼인방의 실루엣.

실소가 나왔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꽂히듯 눈에 들어온다는 사실이.

연두랑은 다른 의미로 눈에 띄는 녀석들이다.

“아니, 얘 언제 오냐?”

“지가 불러놓고 제일 늦는 건 뭐냐. 솔직히 볼링비 내라고 해야 한다, 인정?”

“안 돼. 그럼 노잼이야. 볼링은 무조건 내기볼링이라고.”

“그렇긴 하네.”

“아니, 머리를 좀 굴려라, 얘들아. 볼링비는 내기로 하고 이주원한테 밥 사라고 하면 되잖아.”

“아, 그러네.”

“일단 근처에 제일 비싼 레스토랑 알아봐.”

더는 못 들어주겠군.

“레스토랑같은 소리하고 있네.”

“뭐, 뭐야!”

“언제 왔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

“너네가 내 욕하던 때부터.”

“뭐야. 그럼 30분 전부터 있었다는 건데?”

“뒤진다.”

낄낄 웃는 성현이.

정말이지 한결같은 녀석들이다.

나란히 웃는 세 녀석을 보다가 살짝 고개를 돌려 레인을 바라봤다.

‘오랜만이네.’

확실히 나는 운동신경이 좋은 편은 아니다.

그래도 나름 자신있는 스포츠를 꼽자면 그게 바로 볼링이었다.

씩 웃으며 나는 입을 뗐다.

“그래서 발릴 준비는 됐고?”

“푸핫!”

“아이고, 무서워라...”

비웃는 녀석들.

습관성 억까였다.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나는 입을 열었다.

“뭐, 그렇게 말해도 이기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지.”

녀석들도 과거 내 볼링실력을 알고 있었다.

나는 선심 쓰듯 얘기했다.

“나랑 팀할 사람?”

“...”

그리고 놀랍게도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부글부글 끓는 속.

그때였다.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진 건.

“저기...”

가느다란 목소리.

고개를 돌린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눈앞에 서 있었으니까.

“.. 최서아?”

“지, 진짜 주원이네...”

결혼식 때 마지막으로 본 최서아와 그 옆에 두 명의 동창 여자애까지.

난데없이 동창회 현장이 된 볼링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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