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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바보가 되었습니다-840화 (841/850)

840화. 유종의 미

“준태씨.”

“네.”

“집중하세요. 여기가 첫 번째 포인트니까.”

주아랑의 폭풍 피드백이 시작됐다.

말 그대로 폭풍이었다.

한시도 긴장을 놓으면 안 될 정도로 밀도 높은 강의가 이어졌다.

자연스레 입이 벌어질 정도로.

‘.. 맞았어.’

딱히 의심을 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편집을 한 게 그녀 본인이라는 걸 확신하게 하는 장치 정도는 될 수 있었다.

놀라웠다.

단 10분짜리 영상 속에 이렇게나 많은 생각들이 묻어난다는 게.

“.. 준태씨.”

“네.”

“집중하고 있어요?”

흠칫 놀란 준태는 대답했다.

“집중하고 있습니다!”

알 수 없었다.

갑자기 왜 끌려와서 편집 강의를 받고 있는 건지.

그러나 알 수 없는 카리스마와 강의 퀄리티에 준태는 토를 달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제가 방금 뭐라고 했죠?”

“커, 컷 편집의 자연스러운 전환에 대해 얘기하셨습니다!”

극존대가 나갈 정도였다.

강의는 쉬는 시간 없이 무려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된 후에야 끝이 났다.

목이 타서일까.

그렇게 싫어하는 민트초코라떼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뒤늦게 혀에 맛이 맴돌았다.

“.. 으엑.”

치약 맛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낸 준태는 주아랑의 시선을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

시선을 피했지만 여전히 시선이 느껴진다.

화가 난 걸까.

“왜 연두랑 초록님이 준태씨를 뽑은 건지는 알았어요.”

“네?”

“장점이 확연하니까요.”

영상을 보자마자 감이 오긴 했으나 그 장점은 주아랑만 아는 게 아니었다.

모두 알고 있었다.

연두와 주원, 그리고 연두부들도.

“초록님과 비슷하고, 또 감각적이죠.”

그 말대로였다.

스스로는 모르는 사실이지만 준태는 전형적인 재능충의 범주에 속했다.

편집을 따로 배운 게 아니다.

경험이나 공식에 의해서가 아닌, 오로지 감각에 의존해서 편집을 하는 편이었다.

‘.. 뭐지. 이거 칭찬인가?’

준태는 그저 얼떨떨할 뿐이었다.

초록님과 비슷하고 감각적이다, 그것만 생각하면 명백한 칭찬이었다.

하지만 이어졌다.

앞서 한 말이 생각이 안 나게 만들 정도의 팩트폭행이.

“그런데 기본적으로 영상편집에 대한 이해도가 턱없이 부족해요. 초록님이랑 비슷하지만, 초록님보다 훨씬 뒤떨어지죠.”

귀에 콕콕 박히듯 날아들었다.

“영상 한두 개는 어찌어찌 감각으로 편집해서 좋은 반응을 얻어낼 수 있겠지만 한계는 명확해요. 그게 가능하다고 하면 감각이 아니니까.”

주아랑은 한 마디로 일축했다.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꼴이라는 거죠.”

준태는 뼈저리게 공감했다.

다시는 편집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 준태가 납량특집 영상을 만들어낸 건, 순전히 그 당시의 감각에 의해서였다.

‘일시적이야.’

그건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감각은 변덕쟁이라서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가 아무 말도 없이 떠나가 버린다.

떠나고 나면 남는 건 아무것도 없다.

‘밑 빠진 독.’

그게 자신의 모습이었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 생각을 짐작이라도 한 듯이 주아랑은 얘기했다.

“그러니까 저랑 같이 일하려면 채워줘야겠어요.”

숭숭 뚫린 구멍을 채워야 한다.

“제가 하는 말을 한 마디도 놓치지 말고 흡수하세요. 안 돼도 되게 하세요. 설마 그 정도 각오도 없이 연두튜브 편집자를 하겠다고 고집한 건 아닐 테니까.”

앞서 주아랑은 두 시간 가량의 강의를 통해 보여줬다.

둘 사이에 벌어져 있는 격차를.

‘.. 그만두라는 게 아니야.’

포기를 종용하지 않았다.

짧지 않은 시간을 할애해서 발목을 붙잡을 기회를 줬다.

따라서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 알겠습니다.”

준태는 결심했다.

어떻게든 발목을 붙잡아주겠다고, 그래서 언젠가는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고.

상관없었다.

편집자로서 우열 관계가 나뉜다고 해도 그로 인해 편집자로서 당당해질 수 있다면.

***

강의가 전부 끝난 뒤에 주아랑은 말했다.

“그리고 전달사항이 몇 가지 있어요.”

말이 전달이지 통보에 가까웠다.

“우선 지금부터……”

그녀는 툭 내뱉듯 말했다.

“반말을 할게.”

“네?”

“존댓말은 비효율적이야. 안녕과 안녕하세요, 두 개만 비교해도 세 글자가 차이 나지. 그런 말이 쌓이면 시간 낭비를 하게 돼.”

뭔가 이상하지만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앞으로 계속 피드백을 주고받아야 하는 우리 관계에서 존댓말은 비효율적인 소통 방식이라는 거지.”

“그, 그렇구나..”

“이해했으면 너도 반말해.”

말을 잘 놓는 편은 아니었지만 여기서 안 놓으면 한소리 들을 거 같았다.

그건 무서웠다.

“.. 응.”

“이제부터 존댓말을 하는 건 연두씨와 초록님 앞으로 한정하는 거야.”

자연히 떠오르는 의문.

“연두랑 초록님 앞에서는 왜? 그냥 친해졌다고 하고 반말하면 되는 거 아니야?”

“안 돼.”

“왜?”

“그야……”

무언가 말하려다 말고 그녀는 미간을 찡그리며 얘기했다.

“넌 너무 궁금한 게 많아.”

“.. 어?”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편집에 있어서 내 말은 법이라고 생각해.”

“이, 이건 편집에 관한 게 아니지 않나?”

애써 반박해봤지만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편집에 관련된 거야.”

반박할 수 없었다.

그렇다는데 어쩌겠는가.

‘하라는 대로 하자.’

기본적으로 능력에 대한 존중은 확실한 편이었다.

솔직히 생각했다.

태어나서 본 사람 중에 가장 막무가내인 사람이라고.

그런데 왜일까.

‘.. 싫지 않아.’

준태도 싫어하는 사람 정도는 있었다.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싫었고, 폭력을 쓰는 사람이 싫었고,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완전히 마이페이스인 주아랑은 왜인지 그리 싫지 않았다.

오히려 친해지고 싶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응.”

“아까 그랬지? 그냥 친해졌다고 하면 되지 않냐고.”

“그, 그랬지.”

“착각하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눈을 동그랗게 뜬 준태를 향해 주아랑은 얘기했다.

“너랑 나는 친구가 아니야. 비즈니스 파트너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너한테 할애하는 시간은 너를 위한 게 아니야. 나랑 연두튜브를 위한 거지. 같이 일해야 하는 편집자가 언제까지고 발목만 붙잡으면 내 업무환경에도 지장이 가니까.”

정정한다.

조금은 주아랑이 싫어질 거 같았다.

그보다 무서웠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 알겠어.”

둘 사이에 그어진 선.

친구가 아닌 비즈니스 파트너라는 명확한 선이 생긴 시점에서 주아랑은 말을 더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이번엔 또 뭘까.

어떤 말이 나와도 당황하지 않기로 결심하고서 준태는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런 준태를 향해 주아랑은 손을 내밀었다.

파앗.

그리고 펼쳤다.

손바닥 위에는 무언가가 놓여있었다.

“이게 뭐야?”

웬 쪽지였다.

펼쳐서 보니 적혀있는 건 처음 보는 주소였다.

알 수 없는 표정을 드니 보이는 건 주아랑의 의미심장한 미소였다.

“앞으로 거기로 출근하도록 해.”

“.. 어? 출근?”

주아랑은 태연하게 말을 받았다.

“작업실, 필요하다며?”

할 말은 다 끝났다는 듯이 주아랑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월요일에 봐.”

그대로 유유히 주아랑은 카페를 빠져나갔다.

혼자 남은 김준태.

멍하니 빈 컵을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하고 갔네, 계산……”

그렇게 끝이 났다.

연두튜브 편집자 김준태와 주아랑의 첫 만남이.

***

두 편집자를 만나고 온 뒤에 나는 편집자 초록으로서의 마무리를 준비했다.

유종의 미를.

시작과 과정, 어쩌면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게 끝이라고 생각하니까.

제대로 끝맺지 않는다면 과정이 퇴색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잘 끝맺고 싶어.’

당연한 얘기지만 편집자로서의 여정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만큼 시작과 과정에 만족하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생생했다.

유투브를 하기로 결심하고 편집을 시작했던 게.

‘리얼 꿀마시.’

지금의 연두튜브를 있게 해 준 영상이었다.

그 뒤로 열심히 달려왔다.

편집자로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과 보람을 전부 느껴봤다.

어느 영상 하나도 허투루 편집하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아쉬움과 후련함이 공존하는 거겠지.’

과정에 아쉬움이 남았다면 후련함은 없었을 거다.

그렇다.

나는 마무리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편집자 초록으로서 내 마지막 영상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납량특집 영상.

[연두튜브 납량특집!(feat. 선동이오빠의 도망)]

앞선 영상과 마찬가지로 무려 연두의 자작곡이 ‘BGM’으로 들어간 영상이다.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이번에는 연두부들도 눈치를 채지 않을까.

‘아직도 시끌벅적하니까.’

밤하늘, 별.

앞선 영상에 나온 음악을 궁금해하는 연두부들이 지금도 엄청나게 많았다.

나는 히읗 폭격을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공개하지 않은 건 이번 영상을 위해서였다.

‘좋아.’

영상은 준비됐다.

허나 영상 하나만으로는 마무리하기에 아쉬운 감이 있었다.

성의가 부족하다고 해야 할까.

원래 나는 연두부들과 직접적으로 소통을 많이 주고받는 편은 아니었다.

편집자는 영상을 통해 소통하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공지란도 마찬가지고.’

지금껏 연두튜브를 운영하며 쓴 공지가 한 페이지가 채 안 된다.

그래도 이번에는 공지란을 켰다.

마지막인 만큼 편집자 초록으로서 연두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으니까.

-처음 연두튜브를 시작했을 때가 생각나네요.

생각나는 대로 적어내려 갔다.

잘 쓰려 노력하기보다는 이렇게 의식의 흐름대로 적어내려 가는 편이 내 적성에 맞았다.

그래야 솔직해질 수 있었으니까.

-베어믹스로 편집한 제 영상을 보며 뿌듯해하던 게 아직도 생생합니다.

공지를 쓰다 보니 나도 모르게 웃고 있는 나 자신을 자각할 수 있었다.

편집자로서의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다.

아무리 힘들었던 과거도 돌이켜보면 값진 경험과 추억이라는 말을 자주 듣곤 하니까.

나도 힘든 게 없었던 건 아니다.

벽에 부딪히기도 했고, 끙끙대며 고민하기도 했다.

그 힘들었던 기억이 미화돼서 지금은 추억이 된 걸까.

한 치의 고민 없이 답할 수 있었다.

아니라고.

‘미화된 게 아니야.’

실은 아름답지 않았던 게 아름다운 것이 되어야 미화다.

그렇다면 아니었다.

애초에 아름다웠던 순간들이니 말이다.

타닥. 탁.

그래서일까.

공지에 슬픈 감정은 조금도 묻어나지 않았다.

-이미 영상을 통해 확인하셨겠지만 저보다 뛰어난 두 편집자님이 앞으로 저를 대신해서 연두튜브 편집을 진행하게 됩니다.

-부디 저처럼 두 편집자분들을 아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편집자로서 내 모습도 조금은 기억해달라는 소심한 바람도 담았다.

아예 잊히고 싶지는 않으니까.

‘조금 유치한가.’

어쩔 수 없었다.

거의 4년에 달하는 시간에 걸쳐 형성된 편집자로서의 내 정체성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울부짖고 있다.

투정을 부리고 있다.

아예 잊히고 싶지는 않다고.

이 울부짖음을 아예 무시하는 건 편집자로서의 내 정체성에게 미안한 일이다.

‘이해해 주겠지.’

연두부들도 이 정도는 이해해 줄 거다.

좋아.

하고 싶은 말은 전부 담은 거 같다.

이로써 마지막 영상과 더불어 공지까지 모두 작성했다.

미소를 머금고 나는 마우스를 클릭했다.

달칵.

업로드되는 영상과 공지.

이렇게 마무리됐다.

4년에 달하는 편집자 초록으로서의 내 여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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