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기다렸던 속보
“일 매출 55만 원.”
다들 표정이 좋지 않다.
잠시 동안의 정적.
“그런데요… 사장님.”
매니저답게 송용진이 먼저 운을 떼었다.
“말씀하세요, 매니저님.”
일하는 자리인 만큼 호칭이 자연스레 따라붙었다.
“요즘 들어 계속 40만 원을 넘기긴 하는데요, 50만 원대는 한 번도 넘어선 적이 없어요… 아까는 최고 매출이지만 나중엔 최소 달성 매출처럼 될 거라고 하신 거 아닌가요?”
“그러기엔 55만 원은 과하다?”
“뭐, 아무래도… 좀 그런 면이 있죠.”
처음에 들었을 땐 부담스러운 매출 금액일 거다. 하지만 허황된 수치가 아니라, 충분히 손에 잡힐 만한 금액이다. 목표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든다.
“장부를 보면 알겠지만 점점 더 매출이 늘어나는 건 알 거야. 조만간 50만 원도 돌파할 거고.”
“그래도 55만 원이면 제 생각엔 마감 끝까지 해야 하는 지금과 그다지 다를 거 같지 않아서요.”
맞다. 지금이야 그렇게 예상하겠지만 해 보면 다를 거다.
“목표치를 55만 원에 잡은 이유는 수연이가 들어왔기 때문이야. 오늘 일하는 걸 지켜보니까, 충분히 가능하겠다는 확신이 생겼어.”
“바쁘긴 많이 바쁘겠네. 여기저기 손가는 데가 많던데, 난 모르겠다!”
정수환이 마치 본인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말했다.
“너도 같이할 거거든.”
송용진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나는 직업이 있거든요. 누구처럼 백수가 아니거든요.”
“용진이가 왜 백수야. 여기 매니저인데.”
내가 편을 들어주자, 송용진의 눈빛이 반짝인다.
“역시 형님뿐입니다! 그럼 저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수연 씨 우리 파이팅해요!”
“네? 네!”
송용진이 손바닥을 내밀었고 얼떨결에 강수연이 하이파이브를 했다.
“이 새끼 이거 괜히 스킨십하고 싶으니까. 너 내가 미리 말해 두는데, 수연이는 넘보기만 해 봐. 진짜 죽일 거야.”
정수환이 눈을 부라렸다. 같은 시설 출신이면 오빠 동생 같은 사이가 되긴 한다. 자주 보지 않아도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봐도 수연이가 아깝… 무슨 상상을 하는 거야.
“네가 뭔데? 죽인다 만다야.”
“이 새끼 봐? 수연이한테 관심 있단 소리로 들린다?”
“아, 그, 그건… 아닌데, 그래도…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니까!”
응? 뭐지. 정말 관심이 있어 보이는데? 이거이거 수연이 여기서 일해도 되는 걸까.
가운데서 강수연이 불편한 듯 미간을 좁히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자자, 각설하고 용건으로 다시 들어가자. 그러니까 매출 55만 원 찍으면 그때부터 남은 음식만 팔고 마감하면 돼. 손님이 더 와도 받을 필요없어. 오늘 준비한 음식 다 소진했다고 안내만 드리면 된다. 알겠지?”
“넵.”
“알겠습니다.”
“알겠어.”
사실은 좀 버거운 목표이긴 하다. 일반 분식점도 아니고 우리 가게는 음식 하나하나에 손이 너무 많이 가기 때문이다. 단순히 식재료의 코스트를 빼고서라도, 손이 더 가기 때문에 만드는 속도가 느려서 효율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다른 분식집에서 30만 원 어치의 음식을 만들 때, 우리는 20만원 정도 팔 수 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다. 만드는 프로세스가 복잡하여 신경 써서 집중해야 한다. 절대 순서가 꼬이면 안 된다.
‘그래도 맛.’
이 모든 단점은 맛 하나로 뒤집어진다. 결과물을 맛보면 모든 비효율이 잊혀질 만큼 맛있으니까.
“음식점은 본질은 맛이야. 바쁘다고 맛의 퀄리티가 떨어지면 안 돼. 그런 마인드로는 장사할 필요가 없어. 우리는 최고의 분식을 만든다는 자부심이 있어야 해.”
다들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며서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래.”
송용진이 입을 다부지게 다물었다. 뭔가 새로운 의지가 생기는 모양이다.
용진이는 아직 완성된 게 아니다. 내가 보기엔 점점 속도와 정밀도가 나아지고 있다.
수연이는 이제 막 걸음마 수준인데도 제법 잘 따라와 주고 있고. 둘이 시너지를 낸다면 일 매출 55만 원은 어렵지 않을 거 같다.
“근데 형님 수연 씨가 들어왔다는 것 말고 혹시 다른 이유라도 있어요? 어차피 형님 말씀대로 할 건데, 뭔가 다른 확신이 있는 거 같으셔서요.”
예상외로 송용진이 눈치가 빠르단 말이야. 가끔씩 허를 찌르는 발언을 할 때가 있다.
“있지. 이거 볼래?”
나는 매출 장부를 삭삭 넘겨 가며 설명했다.
“아까 보여 주셨잖아요.”
“아냐, 잘 봐. 홀에서 먹는 손님, 밖에 서서 먹는 손님.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포장 손님.”
장부에는 손님을 3분류로 나눠서 체크해 놨다.
“엊그제 포장, 어제 포장, 그리고 오늘 포장…….”
홀이나 밖에서 먹는 손님보다 포장 손님이 현저히 적었다.
“오…….”
“봐라, 우리는 한정된 공간에서 장사를 하잖아. 바깥이나 홀은 현재의 손님보다 많아져 봐야, 20%를 넘지 못할 거 같다. 정말 아다리 맞게 딱딱 타이밍이 잘 떨어지면 35% 정도 되려나.”
“그렇죠. 홀은 테이블이 3개뿐이니까요. 밖에도 좁고.”
“그리고 여기서 드시는 손님이 많을수록 우리가 힘들어져, 설거지가 나오니까. 거기다 중간중간 요구사항도 있을 수 있잖아? 예를 들어 떡볶이 양념 좀 더 달라든지, 어묵 국물을 더 달라든지, 하는 식으로.
그런데 포장 손님은 우선은 설거지할 필요없지? 그리고 중간에 요구사항도 있을 수 없고, 가장 중요한 건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거야.”
“와, 그 말씀은…….”
이제야 송용진이 깨달았다는 듯이 입을 살짝 벌렸다.
“그렇지. 포장 손님은 우리가 음식만 준비해 둔다면 무제한으로 받을 수 있단 말이야. 보다시피 하루에 포장 손님이 5팀에서 8팀 정도 돼. 이 숫자를 높이면 최소 달성 매출도 그리 어렵지 않을 거다.”
내가 목표로 하는 포장 손님은 하루에 30팀이다. 홀에서 20팀의 손님을 받는 것보다 훨씬 더 수월할 거다.
“형은 참… 사람을 일하게끔 만드는 게 있어.”
듣고 있던 정수환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내가?”
“뭔가, 그런 게 있어. 사람한테 가능성을 보여 주면서 너도 할 수 있어, 라고 말하는 느낌이랄까? 이러면서 몸에 있는 부스터를 켜 주는 느낌? 뭐 암튼 그런 게 좀 있어.”
수환이의 말을 용진이가 바로 이어받았다.
“맞아, 나도 자주 느껴. 형님이랑 있으면 내가 이런 것까지 할 수 있다고? 막 이런 생각이 들어. 근데 해 보면 또 되더라고! 진짜 신기해. 형님 어떻게 하시는 거예요?”
이게 무슨 소리지? 리더로서 자질 있단 소린가.
“나도 몰라.”
내 말에 한층 북돋아졌던 분위기가 화악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말실수인가.
“그냥 하는 거야. 가능성이야 언제나 열려 있고, 그걸 찾아서 적용하는 게 전부야.”
내가 계속해 오던 일이란 게 사실 이런 거 아닐까 싶다. 비전을 보고, 사람들의 열정에 불을 지펴 주는 일.
‘근데…….’
아씨, 또 이러네. 취미 생활이라면서!
근데 왜, 왜 직장처럼 이러냐고. 나는 쉰다고 믿고 있었는데 사실은 휴식을 취하는 게 아니라 일처럼 쉬고 있다. 쉬고 있다고 착각하는데 실상은 일하고 있는 느낌. 이런 거 좋지 않다.
나 자체가 문제가 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할 건 해야지.
“마지막으로 정리를 좀 하자.”
이것 역시 대국푸드 본부장 같은 마무리다. 하지만 이렇게 끝을 맺지 않으면 뭔가 어색하고 찝찝하다.
“아까 전에 말했던 것의 연장선인데, 우리는 본질에만 충실하면 돼. 내 사정이 있기 때문에 외부적으로 우리 분식집이 알려지는 걸 나는 원치 않는다. 그냥 편하게 동네장사만 할 생각이야.”
우리는 동네에서 가장 맛있는 분식집을 목표로 한다.
어떠한 광고나 호객행위도 하지 않는다. 그 흔한 전단지도 돌리지 않고 쿠폰 이벤트도 하질 않는다.
오로지 맛과 청결함, 친절함. 본질로만 승부를 본다.
“…그런데도 달성 매출이 높은 편이야. 너무 부담 느끼지 않아도 돼. 해 봐서 안 되면 말지 뭐. 우리가 일할 때 즐겁고, 손님이 음식에 만족하면 되는 거 아니야?”
“맞습니다. 형님! 절대적으로 옳습니다.”
“그래, 그냥 게임이라고 생각하자. 광고하지 않고 유명해질 생각도 없는 작은 분식집인데 엄청 맛있어! 그럼 손님이 자연스레 몰릴 거야. 우리는 알려지길 원하지 않는다는 핸디캡을 갖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거야. 그래야 재밌지. 게임은 어려울수록 흥분되잖아.”
“그거는 형이 좀 변태라서 그런 것도 있어.”
이때 찬물을 확 끼얹는 정수환. 이 점이 회사와 다르다. 내가 말할 때 중간에 끼어드는 사람이 없는데, 여기선 특히 동생이라 내 말도 끊고 너무 편하게 말한다.
“세상에 변태 아닌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디에서 희열을 느끼느냐의 차이지. 난 어려운 미션을 돌파했을 때 진짜 짜릿하다. 그 짜릿함을 함께 만끽했으면 좋겠어. 오늘은 이만 얘기할게.”
짝… 짝, 짝, 짝…….
송용진이 박수를 치기 시작해서, 정수환, 강수연까지 박수를 쳤다. 이젠 덩달아 나까지 박수를 치고 있다.
“잘될 거예요!”
입이 찢어질 듯 웃는 송용진. 그 옆에서 슬며시 미소 짓는 강수연, 그리고 내 옆에서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정수환.
‘근데…….’
박수가 멈추질 않는다. 왜 안 멈추지?
장수를 위한 건강 박수, 뭐 그런 건가.
* * *
그렇게 3주가 흘렀다.
내 예상대로 정성 분식은 최소 달성 매출 55만 원을 가뿐히 넘겼다. 이젠 평균 매출이 58만 원 부근이다. 더 이상의 성장은 무의미하다. 욕심을 부리다간 제 살을 파먹는 수준이 될 거다.
“그건 그렇고… 이거 진짜 너무 부담되는데.”
사무실에서 컴퓨터로 인터넷뱅킹을 하고 있다. 이번 달 대출금 이자가 출금되었다.
“다 해서 1,127만 원… 와 진짜.”
이게 월 이자다.
돈을 한두 푼 빌린 게 아니지만 1년에 이자만 1억 3천 정도 나가게 생겼다. 변동 금리라서 더 나가게 될지도.
부자들도 유난히 돈 아까워하는 부분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주차비와 기름값을 아까워한다. 겪어 보니 대출 이자는 그것보다 더 아깝다.
‘그나저나 신도시 발표는 언제 나는 거야? 미치겠네.’
숨이 막힌다.
당장 부사장한테 말이라도 해 볼까. 언제쯤 발표가 나겠냐고.
“너 지금 나 못 믿냐? 이 새끼가 호의를 베풀어 줘도 이딴 식으로 사람을 불신해? 너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어. 내가 늘 말하지 않냐. 사람이 말이야,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조급한 새끼는 아무것도 못 해. 야? 야! 내 말 또 잔소리로 듣지 말라고!”
아니다, 됐다. 충분히 상상했다.
괜히 말 꺼내 봐야 그의 분노 조절의 안전핀만 제거하는 꼴이다.
곧 나올 거다.
“곧… 제발.”
설마 내년이나 내후년에 나오진 않겠지. 그럼 정말 부사장을 미워하게 될 거 같다.
원래 뉴스는 달고 살지만 요즘 들어 더욱 뉴스에 절박하게 매달리게 된다. 오늘의 뉴스보다는 부동산 정보부터 먼저 눌러 본다.
똑똑.
“전용재 부장입니다.”
벌써 시간이 됐네.
“들어오세요.”
나는 재킷과 서류가방을 챙겼다.
“본부장님 시간 됐습니다. 가시죠.”
“그럽시다.”
오늘 대국푸드 R&D 연구센터에서 개발한 신제품을 시연하기 위해서 하남으로 움직였다.
“이겁니까?”
신제품은 소시지다.
“네, 비쥬얼보다는 맛으로 평가받는 제품입니다.”
“맛있을 거 같네요.”
둘 다 좋으면 베스트겠지만 비쥬얼에 신경 쓴 제품이 있고 맛에 집중한 제품이 있다.
삶아진 소시지부터. 칼로 조금 잘라서 먹어 봤다.
“으음…….”
맛있었다. 입안에서 엄청난 양의 육즙이 터졌다. 짭쪼름한 맛과 소시지 겉껍질의 쫀득쫀득함이 살아 있었다.
“식감이 상당하네요.”
“아무래도 비쥬얼보다는 맛에 중점을 둔 제품이라서요.”
“그럼 제품 패키징에 신경을 좀 써야겠습니다.”
언뜻 보기에 먹음직스럽지 않은 제품은 최대한 감추고 숨겨야 한다. 그리고 문구나 그림으로 겉면을 뒤덮는 게 일반적인 룰이다.
프라이팬에 구워진 소시지도 맛봤다.
삶아서 맛있었는데 구워서 맛이 없을 리가 없다. 겉면의 탱탱한 껍질이 살짝 더 탄력이 생긴 것 같았다. 씹히는 느낌이 부드러우면서도 고기의 육질을 그대로 드러났다. 고기 함량이 매우 많이 들었다는 걸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근데 이 맛… 어디서 맛봤는데.’
내 기억엔 소시지가 아니었다. 소시지가 아닌 그 어떤 걸로 이와 비슷한 맛이 났었는데…….
“본부장님 어떠십니까?”
옆에서 함께 시식하고 있던 전용재 부장이 물었다.
“좋아요. 이거 시중에 풀리기 전에 부대찌개로 먼저 나오죠?”
이 소시지 제품은 대국 부대찌개 지점에 먼저 도입될 예정이다. 그다음엔 시중 마트에 풀릴 거다.
“그렇습니다. 관리팀과 유통팀과 협의 중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잘 만드셨네요.”
비쥬얼이 거무튀튀한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맛으로 충분히 보전 가능하다.
연구센터의 소장과 차를 한 잔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연구 개발비가 조금 더 필요하다길래, 건의해 보겠다고 했다.
새로 증축한 발효, 숙성 센터를 둘러보고 차에 올랐다.
회사로 복귀하는 차 안에서 전용재 부장이 내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본부장님 이거 보셨습니까?”
“그게 뭡니까.”
핸드폰으로 켠 인터넷 뉴스였다.
“방금 뜬 속보입니다.”
“속보요? 뭐 전쟁이라도…….”
헤드라인 뉴스를 보자마자 소리를 지를 뻔했다.
[정부, 신도시 발표 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