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국적 분식생활-50화 (50/210)

50. 쓰레기 속에서 발견한 순대 로드 티켓

“그래서 거기가 어딥니까?”

내 간절함에 응답하듯이 엄석민 부장이 손뼉을 쳤다.

“제 고향집 근처에 있던 순대집입니다. 그 시장 골목에 있던…….”

“지금도 있습니까?”

“거기까진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네?”

이게 무슨, 허망한 말인가. 한껏 기대에 부풀게 해 놓고선.

“사실은… 중학교 때 이후론 맛을 못 봤거든요. 언젠간 한번 어머니한테 여쭤보니까 공장을 세웠다고 그러더라고요.”

엄석민 부장은 혀가 예민한 편이다. 음식을 맛보면 식재료 사용 유무와 신선도, 가공법, 향신료 등을 구별할 수 있을 정도의 섬세한 미각을 지녔다. 사람 입맛이라는 게 정확할 순 없지만 여기 모인 사람들 중에선 가장 미각이 뛰어나다.

“정리해 보자면, 중학생 때 맛본 게 가장 최근이라는 말이죠?”

“네, 그렇습니다.”

그럼 믿어도 되는 건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자극적인 감각은 오래 기억된다. 미각은 후각 다음으로 기억력이 좋은 감각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도 마냥 믿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어머니의 손맛을 평생 그리워한다곤 하지만 그건 매일매일 먹어서 그 맛을 기억해 낼 수 있는 거다. 그런데 몇 번 먹어 보지도 않았을 동네 순대집에서 먹은 걸, 지금 기억해 낸다는 게 좀 미심쩍었다.

“이 순대가 그 집 거라는 걸 확신하시나요?”

“글쎄요… 확신이라고까지는 말씀 못 드리나, 제 기억엔 그 집의 맛인 거 같은데요.”

그럼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아까 말씀하신 공장이라는 곳. 지금도 있습니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 부모님한테 전해 들은 거라서요.”

“부모님은 여전히 고향에 거주하세요?”

“그렇죠, 근데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답을 찾다 보니 호구조사까지 하고 앉았다. 가벼운 사안이라고 생각했던 엄석민 부장도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하여 표정이 무거워졌다.

“아니, 뭐 별건 아니고요. 제가 이 순대 만드는 곳을 찾고 싶어서요. 개인적, 개인적인 겁니다.”

“그러시군요. 그럼 한번 여쭤 볼까요?”

“엄 부장님 부모님한테요?”

“네, 평생을 그 동네 사셨으니 이사를 갔더라도 연줄이 닿을 거 같긴 한데요.”

오호, 아직 부모님이 고향에 계신다면 연락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 나는 어느새 엄석민 부장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마치 그가 중학생 때 맛본 순대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순대라고 예측하고 있다. 솔직히 그랬으면 좋겠다는 희망 사항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부탁 좀 드릴게요. 지금 시각이 늦지 않았나요?”

현재 시각 9시 반을 넘겼다. 어르신들은 초저녁잠이 많을 텐데.

“괜찮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늦게 주무시고 늦게 일어나세요.”

특이하시네. 무슨 일을 하시길래, 완전히 은퇴하셔서 그런 건가.

“다행이네요.”

엄석민 부장은 내게 눈짓하고 핸드폰을 꺼내 회의실을 나섰다. 복도에 서서 전화를 하는 목소리가 얼핏 들렸다.

“엄마? 나야 석민이.”

저 나이 먹고도 ‘엄마’라고 부르네. 난 불러 본 적이 없는 이름이라서 저게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른다.

슬며시 뒷문 자리로 옮겨, 통화하는 엄석민 부장을 관찰했다.

“아, 그래? 어… 그렇구나.”

마치 친구랑 통화하는 것 같다. 웃으며 통화를 한다. 40이 넘은 사람이 저렇게 편안하게 엄마랑 대화한다는 게 신기했다.

‘화목한 가정이라는 게 현실에서 존재하는구나.’

좀 기분이 이상하다. 내가 알던 엄석민 부장이 아니라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 알았어요. 그리고 이제 더덕무침 좀 보내지 마. 그거 맛없어. 애들도 안 먹는다고.”

저런 투정. 진짜 애 같다. 엄마한테 투정을 부리면 어떤 기분일까.

“…그럼 끊을게요. 아버지한테도 안부 전해주고.”

정말 이상했다. 어머니는 ‘엄마’인데, 아버지는 ‘아버지’다. 그 차이가 뭘까?

엄석민 부장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그래요, 뭐라고 하십니까?”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그래서 자식들도 다 그 동네에서 이사 갔대요.”

“아…….”

갑자기 숙연해진 분위기. 회의실에서 분식을 즐기는 직원들도 우리 때문에 눈치를 보는 것 같다. 이러다 단체로 체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거기 사장님이 병치레를 좀 오래하셨던 거 같습니다.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가게는 아예 닫아 놨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아까 말씀하셨던 공장은요? 짓는다고 하셨잖아요.”

“그게요, 말이 공장이지, 가게 옆에 창고 같은 데서 제조하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니까 좀… 우리가 생각하는 공장이 아니라 가게의 확장이라고 보셔야 될 거 같습니다.”

그렇구나. 자동화 시설을 갖춘 공장이 아니라, 가내수공업에 용이하도록 시설 확충만 했다는 것. 굳이 보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는 가늠이 간다.

‘그 사이즈로 순대를 서울까지 유통할 수는 없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엄석민 부장의 기억이 내가 찾던 순대를 가리키는 것 같지는 않았다. 돌아가셨다니 더더욱 근거에 어긋난다.

“지역이 어디세요? 고향이요.”

“저희 고향집이요? 충남 태안입니다.”

어지간한 수재였나 보다, 지방 출신이 서울의 명문대까지 입학한 걸 보니. 하긴, 고아인 나도 서울대 나왔는데 뭐.

팀장, 부장급의 신상을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다. 그게 일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야식 마저 드시고 30분 후에 회의 다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회의실을 나왔다. 몇 개 집어먹으면서 고민했더니 입맛이 뚝 떨어졌다.

생각을 정리하고 바람도 쐴 겸 옥상 정원으로 올라왔다.

‘요즘 여기 자주 오네.’

막상 올라와도 멍하니 앉아 있을 뿐 할 만한 게 없다. 기껏 한다는 게 자판기에서 음료수 뽑아먹는 것.

철커덕!

이온 음료를 마시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쓰레기 수거차가 보였다. 오늘따라 자주 본다.

‘이럴 거면 나도 담배나 한번 배워 볼까.’

다른 직원들처럼 담배라도 한 대 피우면 기분이 좀 나아지려나.

지금 내 기분이 이상한 건, 대국푸드 일 때문도 아니고 순대 회사를 알아내지 못해서도 아니다.

‘엄마라고… 했었지?’

아까 잠깐 봤던 엄석민 부장 탓이 컸다. 그가 어머니와 웃으며 통화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나는 한 번도 겪어 보지도 못 한, 부모의 사랑을 한껏 받으며 자랐을 엄석민 부장.

‘에이씨, 그만하자.’

나는 돈이 많은 재벌도 권력을 쥔 국회의원도 부럽지 않다.

그것보단 부모가 있고 화목한 분위기의 집안이 부러웠다. 돈은 내가 노력하면 충분히 벌 수 있지만 가정은… 노력한다고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눈 아래로 펼쳐진 화려한 도시의 야경이 더욱 나를 옭아매는 기분이다.

외롭진 않은데, 혼자 사는 게 만족스럽다. 그래도 가끔은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게 무슨 궤변이지?

‘이런 것도 애정결핍인가.’

나 같은 사람이 결혼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 * *

“자! 잘 먹고 잘 쉬셨죠. 이제 시작합시다.”

그래도 일할 땐 정수찬이 아니라 본부장이다.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 없다.

“저번에 길창수 부장님이 제시했던 새우장부터 시작합시다. 각자의 의견부터 들어보겠습니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예상을 뒤집는 조합이라 좋았다.

“신선했습니다. 누구도 샐러드에 새우장을 넣는다는 생각을 못 했을 겁니다. 맛도 나쁘지 않았고요.”

“저도 마찬가지인데요, 구성에 추가해도 좋을 거 같습니다. 만들기도 쉽고 보관도 용이하고, 식재료 단가도 충분히 해 볼 만한 수준이라 생각합니다.”

새우장이 다크호스이긴 한데, 다 좋은 의견일 순 없다.

“저는 조금 생각이 다른데요, 만약, 새우장을 구성에 포함시킨다면 저희가 애초에 밀었던 연어는 힘을 잃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유야 다들 추측이 가능하시겠죠. 그만큼 새우장은 괜찮은 아이템입니다. 파급력이 크죠. 그래서 연어의 포지션을 간섭하게 될 겁니다. 같은 팀끼리 경쟁할 필욘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누가 이기든 팀킬의 결과물이라 저희로선 손해입니다.”

어느 정도는 일리 있는 의견이다.

“그럼 어떻게 하셨으면 좋겠습니까?”

내 질문에 김철수 팀장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선택과 집중을 하였으면 합니다. 새우장을 한다면 연어를 구성에서 제외하고 차라리 연어 스테이크를 메인 메뉴에 포함하는 방식이 좋을 거 같습니다.”

어차피 스테이크와 파스타는 따로 메인 메뉴로 빼놓을 예정이었다. 연어 스테이크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에선 스테이크하면, 육고기라는 공식이 박혀 있다.

내가 나서서 의견을 피력할 필요는 없다. 오늘 나는 참관하며 회의를 주관하는 롤이니까.

“김 팀장님, 저희는 해산물 레스토랑이 아니라 해산물 샐러드 뷔페입니다. 연어 스테이크는 좀 많이 나간 거 아닐까 싶은데요.”

전용재 부장이 김철수 팀장 의견에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새로운 스테이크 아닙니까, 연어 스테이크를 맛본 소비자가 국내에 몇이나 있을까요? 저희가 후발주자인 만큼 새롭다는 이미지를 가져가는 게 좋다고 봅니다. 그 중심에 연어 스테이크가 있을 것이고, 뒤에서 서포트해 주는 새우장 샐러드가 있습니다. 괜찮은 조합 아닙니까?”

김철수 팀장의 말이 맞다. 최소한 메뉴 간의 간섭을 일으킬지언정 신선함은 가져갈 수 있다. 새롭다는 이미지는 새로운 프랜차이즈를 런칭하는 데 있어 매우 강력한 무기다. 하지만 신선함을 무장하였더라도 고객의 니즈 파악이 먼저다. 괜히 앞서 나갔다간 남좋은 일만 하게 될 수도 있다.

‘유행의 시점과 타이밍이 맞아떨어져야 해.’

나만 해도 해외 출장 때 먹어 본 기억은 있으나, 국내에선 연어 스테이크를 먹어 본 적이 없다. 2004년인 현재로선 연어라는 식재료가 그리 대중적으로 알려진 게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충분히 좋은 구성입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요, 지금 시점에서 연어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친근하진 않아요. 일반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연어는 연어초밥입니다. 현재는 딱 그 정도예요. 근데 여기서 바로 스테이크로 넘어간다는 건, 아무래도 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예리한 지적이다. 전용재 부장답다.

나는 누구 의견에도 힘을 싣지 않는다. 회의를 주관하는 입장이라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만 유연한 결론에 도움이 된다.

“전 부장님 말씀도 맞네요. 어쨌든 제 의견은 그렇다는 겁니다. 연어로 빌드업을 짜기엔 한계가 있긴 하죠.”

김철수 팀장이 한 걸음 물러났다.

“더 얘기 좀 들어볼게요.”

* * *

두 시간 정도 회의를 이어 갔다. 더 다양한 의견이 나왔고, 실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 시장 예측이 치밀하고 디테일했다. 듣는 입장인데도 뿌듯했다.

“더 하실 말씀 있으신 분.”

내가 손을 올려 참여를 유도했으나, 아무도 대꾸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대립과 인정을 반복하며 회의를 진행했다. 나도 그런데, 다들 지칠 만하다.

이제 내 위치에서 모두의 고개가 끄덕여질 만한 결론을 내야 한다.

최종 의견에 수렴하는 결과여야 오늘 회의를 성공적으로 끝냄과 동시에 내일 있을 업무를 수월하게 이끌어갈 수 있다.

“좋습니다. 그럼 정리할게요. 새우장… 구성에 포함하겠습니다. 그리고 대하와 기타 칵테일 새우는 제외하겠습니다. 연어는 기존의 포지션을 유지한 채로 투입시키고요.”

팀원들이 오늘 회의 내용을 개인적으로 기록했다.

잘 풀린 거 같다. 구성은 위험부담을 줄이고 무난하게 갈 필요가 있다.

“얼른 들어가 푹 쉬시고, 내일 봅시다.”

이제 몇 분 후면 내일이 오늘이 된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팀원들은 인사를 하고, 하나둘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본부장님 퇴근 안 하십니까?”

“정리 좀 더 하다 갈게요. 먼저 퇴근하십시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전용재 부장이 마지막으로 나갔다. 회의실에는 나 혼자 남았다.

오늘 기록된 회의록을 바탕으로 내일 할 업무를 짚어 봤다. 디테일한 메뉴 선정과 더불어 콘셉트를 조금씩 정해야 한다. 메뉴가 먼저이고 그다음이 콘셉트와 타깃팅이다.

‘다른 프랜차이즈와는 달라서 어려워.’

이번 프로젝트는 패밀리 레스토랑이라는 장르를 서포트할 샐러드 뷔페가 포인트다. 보통은 기둥을 하나만 세우는데, 이번 프로젝트는 기둥이 두 개다.

‘패밀리 레스토랑과 샐러드 뷔페.’

단단히 땅에 박아 놔야 흔들리지 않는다.

회의실을 나오는데, 탕비실 앞에 비닐봉지와 박스가 쌓여 있는 게 보였다. 사무실에서 먹었던 분식을 모아 둔 쓰레기를 급한 대로 한쪽에 모아 놓은 것이다. 치우려는 걸 깜빡하고 퇴근한 모양이다.

‘이 사람들, 좀 깨끗이 치우고 가지.’

모두가 퇴근한 텅 빈 사무실에서 내가 쓰레길 모았다.

비서도 운전기사도 먼저 퇴근시켰다. 이렇게 늦은 시각엔 택시 타고 가는 게 마음 편하다.

바스락바스락.

거의 다 쓰레기를 모았을 무렵, 배달 박스 바닥에 구겨진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찢어진 주문서였다.

[전통 순대 3kg x 20개 / 입금 완료]

‘이거 혹시?’

순대 주문서였다.

맨 아래에 순대 회사의 이름이 적혀 있어야 하는데… 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주문서의 맨 아래로 눈과 모든 신경이 집중됐다. 간이 영수증처럼 회사의 직인까지 찍혀 있었다.

“어… 뭐야?”

그런데 예상치 못한, 정말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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