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직감은 오지랖을 넘어서 작용하나
“유산 내가 왜 몰라요! 우리 엄마가 만든 거니까 내 거지. 그게 유산이지, 뭐!”
울면서도 소리를 지르는 건 여전하다. 계속 말을 해서 바로잡아 줘야 하나, 고민된다.
“여기서 말하는 유산이라는 건, 죽은 사람이 남긴 재산이에요. 근데… 아니잖아요, 이 분식집은 이제 어머니가 운영하는 게 아니니까요.”
울먹이는 사람 앞에선 괜히 마음이 약해진다. 어느새 내 말투가 조곤조곤해지는 걸 깨달았다.
“…….”
말이 없다. 너무 팩트로 말해서 상처받았나.
건물주 청년도 난감한지,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다.
“그… 어머니는 잘 계세요?”
아무 말 대잔치라도 하듯이, 대뜸 안부를 물었다. 유산이라고 했던 점이 마음에 걸려서 던진 질문이기도 하다.
“죽었어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뭐요?”
학생은 흐느끼더니, 어렵게 입술을 떼었다.
“…사고가 났어요.”
이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또 있을까.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죽다니.
“언제요?”
“5월 22일… 새벽.”
거의 두 달쯤 됐다. 가게를 완전히 나한테 넘기고, 며칠 있다가 그렇게 된 모양이다.
“미안해요, 나는 그런 일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사실은 뭐가 미안한 줄도 모르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어떻게 위로해 줘야 할지 몰라서 사과부터 하는 꼴이라니.
“괜찮아, 내가 있잖아.”
남자친구인 건물주는 다 알고 있나 보다. 놀라는 기색은 없어 보였다.
“왜… 왜 그렇게 살았나 모르겠어요… 엄마가 일할 때 도와준 적도 없어요, 엄마는 힘들게 분식집 하면서… 내 뒷바라지했는데……. 나는 진짜 못된 년이야! 너무 후회돼요. 이 분식집, 할… 거예요. 하게 해 주세요.”
학생이 눈물을 닦고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엄마와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가게니까. 지금은 완전히 리모델링해서 과거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겠지만.
“저도 부탁드려요.”
남자친구도 제 역할을 하려는 듯, 내게 고개를 숙였다.
“음…….”
잠시 고민을 해 보자.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싸구려 감성팔이에 속아서, 그릇된 선택으로 넘어가선 안 된다.
‘엄마의 죽음, 죄책감, 추억의 공간, 남자친구, 짐, 미래…….’
빠르게 생각들이 정리됐다.
“결정했습니다.”
내 확고한 태도를 보고 여학생과 건물주의 눈이 나를 응시했다. 기대하는 눈치다.
“그럼… 해 주시는 거예요?”
나는 또렷한 발음으로 말했다.
“안 되겠습니다. 제 생각이 바뀌었거든요, 3억을 가져와도 가게는 제가 해야 되겠습니다. 그럼 이만.”
나는 돌아서서 바로 가게로 들어왔다. 갑작스러운 속단에 어이가 없었는지, 뒤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안에서 송용진이는 떡볶이를 포장하고 강수연은 어묵을 꼬치에 끼우고 있었다.
“수연이 왔네.”
“네, 급하게 부르셔서요.”
“고맙다, 와 줘서. 오늘 쉬는 날일 텐데.”
“괜찮아요. 집에서 마땅히 할 것도 없어 심심했는데요, 뭘.”
어쩜 말을 해도 이렇게 예쁘게 하지? 밖에 있는 누구와는 정말 딴판이네.
‘좀 미안한 마음은 들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감정이 동할 수밖에 없다. 엄마가 돌아가셨다는데, 그래서 그 가게를 해 보고 싶다는데, 거절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심심한 위로금이라도 쥐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끝내 그러질 못했다. 건물주가 남자친구인데 세입자가 돈을 건네는 그림은 뭔가 이상하다.
“얘들아, 할 얘기 있어.”
아직 손님이 몰릴 시간대가 아니어서 여유가 조금 있다.
“어? 알겠습니다.”
“네, 지금 갈게요.”
용진이와 수연이가 홀 테이블에 앉았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너희 힘들지 않아?
“뭐가요?”
강수연이 큰 눈망울로 호기심을 가득 드러내며 말했다.
“근무하는 날이 너무 많아. 우리 가게 매주 하루씩은 쉬자.”
“그래도 돼요?”
“형님, 저는 지금도 충분히 괜찮은데요, 굳이 쉴 필요 있어요?”
“길게 봐야 돼. 쉬어 가면서 하지 않으면 금방 지치거든.”
두 녀석 다 쉽게 수긍했다. 내심 힘들었을 거다.
“그래서 날을 생각해 봤는데, 매주 월요일이 어떨까 싶다. 장부를 보니까 미세하게나마 가장 매출이 적더라고. 그리고 주말엔 내가 거들 수 있으니까 한 명분은 충족이 되는데, 주중에는 내가 빠질 수밖에 없잖아.”
그리고 회사에서도 일이 좀 바쁘다. 주중에는 회사에 더 집중해야 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워낙 규모가 커서, 성공시켜야 한다는 부담감도 크다.
“알겠습니다.”
“저는 좋아요.”
“수연이는 많이 힘들었나 봐? 뭔가 기뻐 보이는데.”
“아니에요. 저는 여기서 일하는 게 좋아요! 근데 뭐… 하루쯤은 쉬는 날이 생기는 거니까… 그것도 좋기도 하고.”
솔직해서 좋다.
“오케이. 그럼 그렇게 정할게.”
“형님, 근데 아까 밖에서 무슨 얘기하신 거예요?”
“아아, 가게 팔으라고 그래서…….”
“정말 파실 거예요?”
“거절했어.”
내 입장에선 이제 돈이 문제가 아닌 게 됐다.
“아아… 그래요, 어차피 우리 가게 장사도 잘되는데 이대로 쭉 가면 되죠!”
어머니가 일하던 가게를 물려받는 거라면 어쩔 수 없지만, 돈으로 가게를 산다면 느낌이 다를 거다. 내 결정은 순전히 딸을 위해서다.
“그치, 우리끼리 잘하자!”
이 가게를 인수해 봐야 망할 가능성이 크다. 음식점을 운영한다는 게 만만찮은 일이다. 작은 분식점이라도 해야 할 일이 산더미고 고된 강도의 일이다. 젊은 나이에 할 수 있을까.
“근데 얼마 제시한 거예요? 그냥… 개인적으로 궁금해서요.”
나이가 젊다는 게 오히려 가게를 운영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체력보다 중요한 게 참을성이다. 하고 싶은 게 많을 나이인데, 매일 가게에 매어 있다는 게 엄청난 스트레스일 거다. 그렇다고 이런 일을 해 본 적도 없어 보이고, 남자친구 건물주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 녀석은 정서적으로 무척이나 불안정한 상태인데, 손님들 상대하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닐 거다. 결국은 내가 레시피를 알려 준다고 한들 가게는 망할 거다.
“1억 5천. 근데 이제는 3억을 갖다 줘도 싫어.”
처음엔 정말 돈만 주면 가게를 넘길 생각이었다. 그들이 망하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인가. 생각이 바뀐 건, 학생이 엄마의 유산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비싼 거 아니에요? 정말 3억 줘도 안 파실 거예요?”
엄마의 유산을 망쳐 버렸다는 자책감을 견뎌 낼 수 있을까. 그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아무리 돈 많은 남자친구 덕분에 금전적인 책무는 회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마음의 짐은 오랫동안 짊어져야 할 거다.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
“응, 안 팔아.”
부모가 없는 나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감정이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나 같은 인간이 그토록 독하게 버틸 수 있었던 건, 마음의 짐 때문이었다.
부모에 대한 원망과 분노. 그 고통스러운 감정의 짐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다. 행복해지고 싶었고 그러려면 성공해야 했다. 보란 듯이 성공해서 부모를 후회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야 내 행복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뭔가 좀 아쉬운데요.”
나는 죽어야 마땅한 사람이다. 잠을 못 자서 과로사 직전까지 간 적이 수차례였고, 졸린 상태로 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가 날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운이 좋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우연의 연속이었고, 어쨌든 지금까지 살아 있다. 지금은 나름 성공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해석이다. 그래서 행복하냐고?
“아쉽긴, 일이나 하자.”
“옙!”
잘 모르겠다. 적어도 행복하려고 분식집을 하는 거다. 돈은 따지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양가적인 감정이 또 작용한다. 손해 보고 싶지 않은 욕심.
그 욕심 때문에 저 아이한테 짐을 지울 순 없을 거 같다. 엄마의 유산마저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싹트기 시작하면 평생을 키우며 살아야 한다.
내가 그러니까. 아직도 부모를 원망하고 있으니까. 그들을 찾아내서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겠다는, 그런 생각도 희석되어 사라졌다. 이젠 목적을 잃은 분노만 남아 있다.
결국 성공하고 말고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책임지지도 못할 아이를 태어나게 한 그들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나는 버려졌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짐을 짊어지고 태어났다. 하지만 그 여학생은 가게를 하지 않으면 짐의 무게가 덜어질 것이다. 엄마에게 미안한 감정이야, 본인이 알아서 감당해야 하지만.
‘또 괜한 오지랖 부리고 앉았네.’
가게 문이 벌컥 열렸다.
“뭐야, 형까지 있네? 그럼 나 올 필요 없었잖아.”
수환이를 보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얘 누가 불렀니?”
“제가요, 아까 수환이도 부를 수 있으면 부르라고 하셔서…….”
“너 필요 없는 거 같은데?”
“형! 나 택시 타고 왔다고.”
“응, 그럼 택시 타고 다시 가.”
“아, 형! 진짜 이럴 거야. 우리가 유일한 피붙이인데?”
이 새낀 평소에 하지도 않는 소리를 하네.
“시끄럽고 앞치마부터 매.”
“그러려고 했거든. 나 배고파 떡볶이부터 한 그릇 먹을래.”
“응, 그래. 계산부터 하고.”
정수환이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지만 어쩔 수 없다. 이곳 법이 그렇다.
수환이가 떡볶이를 계산했고 내가 서비스로 어묵과 튀김을 줬다. 장부에 전부 다 기록하면 된다.
“어서 오세요!”
손님이 들이닥치자, 순식간에 가게가 꽉 찼다. 바깥에서는 여러 팀의 손님이 기다리지 못하고 포장을 해 갔다.
점심때 매출만 23만 원을 기록했다.
정수환도 몇 번 일을 해 봐서인지 제법 능숙한 손놀림을 보였다.
“내 동생 잘하는데?”
“이 정돈 뭐 껌이지…….”
하면서 떡볶이 한 덩이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어이구, 잘한다 이 새끼야.”
“일부러 그랬지? 나 부담 주려고?”
“내가 무슨 예언자냐, 네가 실수할지 어떻게 알고.”
정수환은 억울한 표정이다. 이 녀석이 벌써 30살이다. 나이 먹고도 저런 표정이 나오다니, 신기하다. 나도 그런가?
저녁 장사도 수월했다.
오늘은 이상하게도 손님들 아다리가 잘 맞아떨어졌다. 한 팀이 나가면 곧바로 한 팀이 들어오고, 를 반복했다.
“와, 이거 실화냐!”
일 매출 70만 원을 달성했다.
“우와, 형님 오늘 회식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맞아! 회식하자. 저번에 하려다 못 했잖아.”
“오늘 진짜 회식해요? 그럼 정성 분식 첫 회식이네요?”
이것들이 이럴 땐 팀웍이 아주 기가 막힌다.
“손님들한테 매주 월요일 쉰다고, 게시를 못 했으니까 내일은 가게 하는 거야. 알지?”
“압니다! 그래도 매니저로서 회식을 적극 요청합니다.”
송용진, 이 새끼도 가만히 보면 타이밍을 잘 탄단 말이지.
“오케이. 좋다. 맥주 한잔하자.”
나도 오늘따라 술 마시고 싶긴 하다.
“오예!”
회식이 확정되자마자, 마감 속도가 미친 듯이 빨라졌다. 함께 마감을 하는 내가 놀랄 정도다. 나를 제외한 3명이 민첩성과 정확성을 두루 겸비했다.
“끝!”
“예스, 갑시다!”
“가요, 가! 사장님.”
수연이가 슬쩍 내 팔짱을 끼고 나를 이끌었다.
“어, 알았어… 머, 먼저 나가 있어. 내가 불 끄고 나갈게.”
왜 말을 더듬고 지랄이야. 진짜, 이 꼬맹이가 갑자기 팔짱 끼는 게… 뭐? 사장이랑 직원 사이에 그 정도 스킨십은 있을 수도 있는 거지! 우린 친하니까.
내가 속으로 자기 합리화를 하는 사이에 모두들 다 나가 버렸다.
“의리 없는 것들.”
딸칵!
가게 문을 잠갔다.
“얘들아 가… 어, 저희 지금 영업 끝났습니다.”
문 앞에 중년의 여성이 서 있었다.
“아쉽네요, 떡볶이 먹고 싶었는데.”
목걸이와 귀걸이가 화려했다. 팔목에 걸친 팔찌까지 모두 한 세트 같았다. 죄다 물방울 다이아로 치장된 것 같은 장신구였다. 진짜 진품일까.
“다음에 방문해 주세요. 맛있게 대접하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얘기만 좀 나눌까요?”
중년의 여성이 내게 명함을 한 장 건넸다.
[Newland International 회장. 신주희]
명함을 받아 들고 잠깐 생각했다.
“형님, 안 가세요?”
뒤에서 아이들이 날 기다렸다.
“얘들아, 먼저 가 있어. 우리 가던 맥주집 알지?”
“네, 저희 먼저 가서 시켜 놓을게요.”
“그래.”
용진이와 수환이는 어깨동무하며 걸어갔고, 수연이는 핸드폰을 만지면서 따라가는 게 보였다.
중년의 여성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지그시 쳐다봤다.
“저희 회사 모르시겠어요?”
뉴랜드 인터내셔널, 들어는 봤는데.
“아!”
생각났다.
부동산 투자회사다. 부동산 개발, 운용, 투자까지 모두 처리하는 대기업이다. 이쪽 계열에선 국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 기업이다.
‘뉴랜드 인터내셔널의 신 회장이라는 사람이 바로 이 아줌마라고?’
여자인 줄은 몰랐다. 워낙 베일에 싸여 있는 인물이라서.
“이제 아시겠어요?”
“네,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나는 손을 내밀어 정식으로 악수를 권했다.
“아니에요. 우리 초면이니까 모르시는 게 당연하죠.”
“근데 어쩐 일로 오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나한테 전혀 용건이 있을 수 없는 사람이다.
“낮에 우리 애를 만났다고 하던데요.”
우리 애라고, 누구를 말하는 거야.
“회장님, 혹시 사람을 착각하신 건 아니신지…….”
“제가 이 건물 원래 주인이에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