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국적 분식생활-85화 (85/210)

85. 부자의 삶

남겨진 전용재 부장에게 손짓했다.

“요즘 구매부와 관리부는 어떻습니까.”

“분위기 말씀이십니까?”

회사 내의 소문을 나만 모를 리가 없지.

“뭐, 그것도 그렇고 김희섭 부장이 좀 시끄럽게 굴었다던데요.”

전용재 부장이 난처한 듯 이맛살을 구겼다.

“들으셨습니까…….”

“어떻게 된 겁니까. 구체적으로 말해 봐요.”

“그게… 하극상이라면서 난리를 쳤답니다. 신태오 이사한테 가서 하소연하듯이 뭐… 그런 스토리죠.”

충분히 짐작이 간다.

참고로 김희섭과 신태오는 입사 동기인데, 지금껏 살아남은 유일한 동기일 거다. 김희섭은 구매총괄부장이 되었고, 신태오는 인사과를 총괄하는 인사담당 이사가 되었다.

‘그래도 신 이사한테는 안 통할 텐데.’

신태오 이사는 까칠한 성격만큼 매사에 공과 사가 확실한 사람이다.

“제가 직접 나서고 싶은데, 그림이 좀 그러네요.”

괜히 건드렸다간 긁어부스럼이다. 김희섭 그 양반 입장에선 가뜩이나 아니꼬와 열 올리고 있는데, 불 꼬챙이로 쿡쿡 찌를 필요는 없지.

“알겠습니다. 예의주시하면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잡음 들리지 않게 신경 좀 써 주세요. 좀 버겁다 싶으면 저한테 말하시고.”

정 안 되면 내가 나설 수밖에 없다.

“알겠습니다.”

구매부와 관리부가 싸우든 지지고 볶든 상관 없고 내 알 바 아닌데, 문제는 우리 팀이 공들여 만든 탑을 무너뜨릴 수도 있단 거다.

우리가 선봉에서 적진을 뚫고 들어가 봐야, 보급이 들어오지 않으면 군대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서포트해 줘야 할 파트에서 분열이 일어나면 어떤 프로젝트라도 성공시키기 어렵다.

‘김희섭 그 양반은 자격지심이 강하단 말이지.’

그 자신도 나름 버티고 버틴 모양새가 현재의 구매총괄부장이다. 물론, 높은 자리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입사동기인 신태오는 이사까지 올라갔다. 거기다 한참 어린 나 같은 놈이 본부장이라며 일을 벌이고 다니는 게 매우 눈엣가시처럼 보일 거고.

“그리고 본부장님.”

“네,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

“혹시 말입니다. 무슨… 그러니까… 어떤 식으로든 다른 외압이 개입하는 것 같은 느낌이 좀 듭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지난번엔 모델점 개점을 결정하시고 오늘은 랩실이라는 실험실까지 하려고 하시는 걸 보면 아무래도 좀 걱정스러워서요.”

하여간 돌려서 말하기는. 내가 어디서 외압을 받는다는 의미인가? 부사장에게? 그럴 리가 없지. 잔소리는 여전하지만.

“외압이라니요, 설마요.”

이례적으로 보이긴 할 거다. 내가 이런 식으로 업무를 과중시키는 경우는 없었으니까. 보통 초반에 전체 그림 잡고 나아가는 식이었다.

“걱정이 돼서요…….”

“그 걱정은 저입니까, 아니면 팀원입니까.”

의미가 모호해도 말은 바로 해야 한다.

전용재는 조용조용하게 일을 처리하는 타입이다. 업무 능력도 좋지만 그보다 처신 능력이 더 발군이다.

“뭐… 솔직히는 둘 다입니다. 팀원들 다 지쳐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래, 이미 팀원들의 원성이 자자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나도 사람인데 눈치라는 게 있지.

“알고 있습니다. 우선, 모델점까지만 갑시다. 그다음에 서프라이즈, 기대해도 좋다고 귀띔해 주십시오.”

힘든 상황을 견디는 데는 보상만 한 게 없다.

“알겠습니다.”

“그럼 더 수고해 주십시오.”

전용재 부장은 내게 인사하고 회의실을 나갔다.

‘저 사람을 믿을 수 있을까.’

간사한 것 역시 인간의 본성이라,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뇌리를 스쳤다.

바깥에 있는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상대하기 까다롭다.

그나저나, 김희섭 그 작자가 나대는 걸 그만 보고 싶은데.

‘관리지원부장이 오면 좀 나아지려나.’

관리부의 수장인 관리지원부장은 현재 해외 출장 중이다. 그 역시 김희섭을 매우 싫어하는 인물이다. 현재는 주적이 없으니 김희섭 부장이 더욱 활개치는 꼴이다.

둘이 앙숙이어서 그런지 두 집단은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다. 원래부터 관계가 틀어진 집단이라서 수장들끼리도 사이가 안 좋은 건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는 관심없지만 그 시초가 궁금하긴 하다.

* * *

회사에 반차를 내고 좀 일찍 나왔다.

다른 직원들은 모두 바쁘게 일하는데, 먼저 나오기가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대출 이자 때문에 불편했기 때문이다.

평일 낮이 아니면 처리할 수 없는 일이다.

“휴우, 이제야 끝났네.”

은행을 나오면서 그동안 묵혀 왔던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개운하다!’

신도시 땅을 사려고 받았던 대출을 모두 갚았다. 증권사에도 들러 빚을 모두 청산했다.

은행의 입구 옆에 마련된 벤치에 앉았다. 재떨이와 주변에 떨어진 담배들이 즐비했다. 흡연실로 쓰이는 공간 같았다.

“후웁!”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니지, 기쁨이 터져 나왔다는 표현이 더 알맞겠다.

만약 내가 담배를 폈다면 한 대 시원하게 폈을 텐데. 기쁨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네.

대출금 다 갚고 나니까 940억가량 남았다. 정확히는 942억 1,270만 원이 남았다.

9억 4천도 꽤 큰 돈인데, 94억도 아니고, 940억이 넘는다니. 비현실적인 숫자 앞에서 머리가 아득해질 지경이다.

‘참 정수찬이 출세했네.’

대출금과 이자를 다 갚았으니, 온전히 내 돈이 된 것이다.

이 돈으로 뭐를 할까, 보다는 내가 무엇을 하든 강력한 방패막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다.

앞으로 뻘짓만 하지 않는다면 평생 돈 걱정은 없는 삶이 펼쳐질 테니까!

‘기분을 내고 싶은데, 놀아 본 적이 있어야지.’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는다고, 놀고 싶은데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이 기분을 만끽할 수 있을까? 잠깐 고민을 하다가 답을 찾지 못해, 결국 분식집으로 향했다.

* * *

가게에 거의 도착할 무렵, 동네 치킨집이 눈에 띄었다.

‘닭이나 한 마리 사 갈까.’

간식으로 먹으면 괜찮을 거 같은데.

잠시 차를 치킨집 앞에 정차시키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공기 중에 식용유가 떠 있는 것처럼 좀 진득거리는 느낌이랄까.

“어서 오세요.”

“닭 한 마리 튀겨 주십시오.”

“어떤 치킨으로 드릴까요?”

“순살… 양념으로요.”

뼈가 있으면 중간중간 먹기 불편할 거고, 후라이드는 좀 싱거울 거 같다. 그냥 내가 달콤한 양념치킨을 선호한다.

“그러시죠, 금방 해 드릴게요. 거기 앉아서 기다리시죠?”

“알겠습니다.”

홀에 앉아서 가게를 둘러 봤다.

치킨뿐만 아니라 골뱅이, 닭똥집, 닭발, 계란말이까지 취급한다. 철저히 술안주로 장사를 하겠다는 의도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개인 치킨집은 오랜만이네.’

오다가다 몇 번 눈에 띄었던 가게이다. 전형적인 동네 치킨집인데, 이제는 이런 가게도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주방을 슬쩍 보니, 동선을 고려하지 않은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되는 대로 들여놓은 주방 기구들이 눈에 거슬렸다.

‘저러면 일하기 힘든데, 매우 비효율적일 텐데…….’

튀김기를 얼핏 보니, 기름색이 탁해 보였고, 후앙에 덕지덕지 낀 기름때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바닥에 덕용 양념통이 보였다. 뚜껑을 열고 보관하는지, 뚜껑 주변에 찐득한 양념이 잔뜩 묻어서 말라 붙어 있었다. 일반 시제품을 사용하는 것 같았다. 익숙하지만 성의없는 맛일 거다.

‘이러니까 프랜차이즈랑 경쟁이 안 되지.’

쓰레기통 속에 분홍색 포장지가 보였다. 익히 아는 닭 포장지다.

‘브라질산 닭다리살 정육 2kg짜리구만.’

따뜻할 땐 몰라도 식었을 땐 육질에서 확연히 국내산과 차이가 난다. 또 닭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강하다.

알려 주고 싶은 게 참 많은 가게이다.

‘안타깝네.’

사장님은 50대 후반의 중년 남자였는데, 얼굴빛이 좋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살펴봤을 때 장사가 안 되는 게 당연했다.

“요즘 장사는 어떠십니까?”

닭을 튀기던 사장님이 뒤돌아 대답했다.

“다 그렇죠, 뭐……. 워낙에 불경기다 보니까.”

다 그렇지 않다. 잘되는 곳이 수두룩하다. 불경기라는 말은 10년 전부터 있었고, 10년 후에도 유지될 사회 정서이다.

“거기다, 요기 앞에 지하철 생기는 거 아시죠? 그것 때문에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그게 왜요, 좋은 거 아닙니까?”

“에이! 좋긴요. 건물주만 노났지. 우리 같은 세입자는 괜히 눈치만 더 보게 생겼어요. 사람이 많아지면 월세 올릴 건 뻔하지 않습니까.”

그렇구나. 세입자 입장은 다르구나.

“치킨 나왔습니다. 콜라 서비스로 하나 넣었습니다.”

시중에서 파는 쇼핑백에 담긴 치킨이었다. 브랜드 로고가 없으니 뭔가 어색해 보인다.

“잘 먹겠습니다. 잔돈은 괜찮습니다.”

나는 계산대 위에 2만 원을 올려놓고 나왔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등 뒤에서 들리는 사장님 목소리.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이유 없이 불편한 느낌이랄까.

* * *

“우와, 이게 뭐예요?”

“치킨. 간식으로 먹고 하자.”

“쫌 출출했는데, 잘됐다! 수연이 이거 먹자.”

“네.”

바깥에서 매대를 닦고 있던 수연이가 대답했다.

“근데, 형님 이 시간엔 어쩐 일이세요?”

“좀 일찍 오게 됐어. 일이 있어서.”

“그러시구나. 맞다! 아까 부동산에서 어떤 분이 왔는데요.”

“부동산?”

“네, 형님 번호 묻더라고요. 집 좀 보여 달라 그러던데……. 여기 명함도 두고 가셨어요.”

“아! 내가 그 생각을 못했네.”

이 건물에는 1층과 2층만 상가이고 나머지는 주거 공간이다. 투룸과 쓰리룸으로 이뤄진 집이 15채 있다.

“뭘요?”

“아냐, 이거 먹고 있어.”

나는 가게를 나와서 핸드폰을 열었다. 이제는 익숙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접니다.”

-어쩐 일이래유?

또 연기하시네.

“어색한 사투리로 하실 거예요? 그럼 그냥 끊고요.”

왜 자꾸 잘하지도 못하는 사투리를 쓰는 걸까.

-죄송합니다. 고객님.

다이나믹 벤처스의 최부용이다.

“뭐, 좀 문의하려고요. 다이나믹 벤처스에서 건물 관리도 하시죠?”

계약을 하러 갔을 때 벽에 걸린 조직도를 본 적이 있다. 거기엔 건물관리 부서가 따로 존재했다.

-물론입니다. 저희가 현재 업계 2위이죠.

단순히 부동산 중개만 하여선 그처럼 성장할 순 없을 거다. 부동산에 관련된 사업을 문어발식으로 다 하고 있을 거라 추측한다.

“업계 1위는 어디입니까.”

-허허, 뉴랜드입니다. 제가 또 솔직한 타입 아니겠습니까? 신주희 그 여자가 있는 곳이죠. 설마 그런 곳에서 하시진 않겠죠?

아무리 사기꾼이라지만 사업 수완이 좋다는 건 인정해야겠군.

“하하, 사장님 하시는 거 보고요. 제 건물 관리 좀 부탁드립니다. 세입자 관리와 청소, 시설물까지 싹 다 위탁했으면 하는데요.”

대형 건물관리 업체는 모든 걸 도맡아서 처리해 준다. 부동산에서 집을 보러 오면 안내부터 계약까지, 건물주가 신경 쓸 겨를 없이 논스톱으로 건물을 케어한다.

-가능합니다. 역시 선생님 사업이 바쁘셔서 관여하기 힘드시죠?

“저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요즘엔 직장인이라 더 힘든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특별한 직장인이시죠. 저희가 운영하는 관리 프로그램이 3단계가 있습니다. 가장 높은 등급이 프리미엄입니다. 이건 모든 걸 선생님 대신 관리해드립니다. 중개, 계약, 청소, 시설물 보수, 세무 서비스까지 들어갑니다.

내가 프리미엄을 할 거라는 예상을 하듯이 다른 등급은 말 꺼내지도 않네.

“그걸로 하시죠.”

-역시 안목이 있으십니다. 아직 법인 갖고 계시죠?

“네, 폐업시키진 않았습니다.”

신도시 땅을 매입할 때, 법인의 명의로 계약했다. 페이퍼컴퍼니라서 굳이 없애지 않고 있었다.

-법인은 갖고 계시면 용이합니다. 세제 혜택도 크니까 그대로 유지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럼 계약은 어떻게 진행할까요?

직접 만나서 하기 귀찮다. 시간도 아깝고.

“계약서 팩스로 보내주세요. 번호 불러드릴게요.”

-그래도 금액이 만만치 않은데 직접 대면 거래가 낫지 않겠어요?

“제가 좀 시간 내기 어려워서요. 저는 괜찮습니다.”

-그럼 그러시죠. 번호 알려 주시면 계약서 팩스로 보내겠습니다.

“그래요.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알겠습니다! 좋은 거래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자본주의의 향기가 코끝으로 들어오는 기분. 돈만 있으면 현대 사회는 너무 살기 편하다.

‘나도 참 웃기네.’

고작 며칠 만에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나. 온몸에서 여유가 넘쳐흐르는 느낌이다.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형님도 좀 드세요.”

송용진이 입을 가리며 말했다.

“맛은 좀 어때?”

“그냥 그래요. 평범한 치킨?”

“그래, 그렇겠지.”

안 봐도 뻔한 맛일 거 같은데.

“근데 저희 공사는 하는 거예요?”

“하지. 왜?”

“아니, 아무 말씀도 없으시길래요.”

“그러게 말이다. 하긴 해야 되는데, 그 얘기 좀 꺼내 보자. 휴게실이 필요하다고?”

“켁!”

갑자기 순살 치킨이 용진이 목에 걸렸나 보다.

“뭘, 놀라? 나 몰래 플랜까지 다 짜놓은 주제에…….”

“아, 형님! 그건…….”

“잘했다고.”

“네?”

“잘했다고 자식아. 그렇게 요구하는 거야. 능력이 있으면 요구해도 돼. 너희 둘 다 그럴 자격 있고.”

“우와, 사장님 멋지다!”

잠자코 있던 강수연이 입을 열었다.

“직원 휴게실 당연히 만들어 줄게. 그리고 직원도 하나 더 뽑자.”

“정말요?”

“역시 형님 배포가 크십니다!”

“가게가 커지는 만큼 메뉴도 좀 늘어야겠지?”

아직 완성시키지 못한 메뉴가 있다.

“그렇죠… 생각하시는 거라도 있으세요?”

“용진이 너는 알아야 할 텐데. 초기에 우리가 완성 못 한 튀김이 하나 있잖아.”

“아!”

송용진이 손뼉을 쳤다.

“그래,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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