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국적 분식생활-108화 (108/210)

108. 오늘도 배운다, 말조심

브랜드 런칭 중간 보고를 하기 위해 부사장실을 찾았다.

“본부장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오늘따라 부사장실의 분위기가 침울한 것처럼 다가온다. 곳곳에 피곤함이 묻어 있는 느낌이랄까.

“흐음…….”

부사장이 서류를 집중해서 들여다볼 동안, 그의 책상을 살펴봤다.

와인잔과 와인병, 먹다 남은 치즈가 보였다. 부사장이 보통 야근할 때의 책상 상태이다.

“요즘 야근이 잦으십니다.”

어제도 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있었던 거 같다.

“그런가? 뭐… 좀 큰 걸 계획하고 있어서.”

“그게 뭡니까.”

부사장의 스케일에 큰 계획이라면, 엄청난 사이즈일 거다.

“조만간 결과 나올 거다. 아직 말할 단계가 아냐. 잠깐 앉을래?”

뭐가 나올지 기대된다.

“네.”

부사장은 서류철을 그대로 갖고 소파로 움직였다.

“이거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살짝 뜸들이며 말을 잇지 못한다.

“말씀하십시오.”

“너무 비용적으로 큰 거 아니냐?”

이번 브랜드의 최소 입지 규모가 꽤 큰 편이다. 특히 씨푸드 뷔페는 어림잡아 20억 정도는 투자해야 운영할 수 있는 수준이다. 아무래도 이 조건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거다.

“브랜드의 메리트를 살리기 위해선 어쩔 수 없습니다.”

인상을 써 가며 보고서를 훑어보는 부사장. 내 말의 모순을 발견하려는 것처럼 집중해서 본다.

“그래, 다 좋다 이거야… 근데 우리는 어디까지나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는 거잖냐. 어쨌든 가맹 사업이잖아, 내가 보기엔 가맹점주들이 감당하기 좀 벅찬 거 같은데. 씨푸드 뷔페는… 어우야, 좀 세다?”

지적 사항이 될 줄 알았다. 개인이 접근하기에 어려운 수준의 자본이 투입되어야 할 테니까. 하지만 그래야 강점이 두드러진다.

“그런 감이 좀 있지만, 가맹점주의 편의를 봐 가면서 만들 수 없는 상황이라서요. 그렇게 됐습니다. 은행과 연계하여 대출 서비스를 더 늘리는 방안으로 진행해 보겠습니다.”

여전히 부사장은 탐탁치 않은 표정이다.

“뭐, 뚜껑을 열어 봐야 알겠지만 난 좀 회의적이다.”

“정 안 되면, 다른 수가 있긴 합니다.”

이 카드를 지금 꺼내고 싶진 않았는데.

“말해 봐.”

“본사 직영으로 돌리는 겁니다.”

부사장의 미간이 팍 좁혀진다.

“얘가 지금 뭔 소리하는 거야. 야, 우리가 지금 자영업하려고 이 짓거리하는 줄 알아?”

“자영업도 일종의 사업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자영업의 종류도 다양하죠.”

“아니, 네 말은, 그니까… 브랜드 3개를 다 본사 직영으로 돌리자?”

부사장은 당황스러운지, 말을 더듬었다.

“불가능할 것도 없다고 봅니다.”

“허어! 이것 봐라? 가뜩이나 신경 쓸 것도 많은데… 너까지 왜 그러냐.”

이런 반응을 예상했다. 당연하다. 일반적으로 본사 직영 운영은 플래그십 매장이나 콘셉트 매장이 아닌 이상에야, 초반에 브랜드를 홍보하기 위한 전략이다. 명동이나 강남역 중앙 상권에 직영을 두는 이유는 마이너스 영업 이익을 거두더라도 홍보 효과가 좋기 때문이다.

“너까지 내 어깨를 짓누르는구나.”

“스타박스는 전부 직영입니다. 물론, 초기엔 가맹점을 받긴 했었죠. 그것도 건물주에 한해서였죠. 현재는 본사 직영으로만 운영하고 있습니다.”

잠시 생각하던 부사장이 입을 열었다.

“그건 물장사잖아. 애초에 우리랑은 마진율 자체가 다르다고. 거, 알면서 그러냐.”

“같은 물장사인 다른 프랜차이즈 카페는 완전 직영으로 돌리는 곳이 없습니다. 이건 왜 그런 거 같으십니까?”

“그야… 당연히, 사업성이 떨어지니까 그렇지. 본사 입장에서야 수익성만 받쳐 준다면야 다 직영으로 돌리고 싶지. 근데 그게 어디 쉽냐? 매장에 돈 쏟아부었다가 폐점이라도 하면 어쩔 거야?”

막대한 자본력의 투입은 그 이상의 기대 수익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쉽게 말해, 내 돈 들였는데 망할까 봐 투자를 망설이는 것이다.

“홍보 목적으로 영업 중인 직영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수익성이 나쁘지 않습니다. 이것도 마저 검토해 주십시오.”

혹시 몰라, 준비한 파일철을 건넸다. 대국푸드의 전국 직영점 수익성을 요약 정리한 자료다.

“아이고, 우리 수찬이가 또 힘든 길을 가려고 하는구나…….”

한숨을 내쉬며 내가 준 자료를 들춰보는 부사장.

“저희가 자체적으로 운영해도 손해 보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맹점을 아예 안 받겠다는 게 아닙니다. 자본력과 운영 능력이 있는 가맹점주를 모집하자는 겁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가맹점주의 교육을 더욱 강화할 방침입니다. 그것도 조만간 정리되는 대로 보고 올리겠습니다.”

프랜차이즈의 고질적인 문제는 지점마다 편차가 크다는 것이다. 그것을 상쇄할 수 있는 방법은 가맹점 교육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야! 굳이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데. 괜히 진입장벽만 높이는 꼴이라고. 지금도 대국푸드는 교육이 빡센 걸로 알려져 있잖아. 그런데 여기서 더하자고?”

“저희가 제작년부터 새로운 브랜드를 런칭하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현재의 가맹점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으로 전환한 것이죠. 그 결과로, 폐점율이 92%까지 떨어졌습니다. 2년 반 동안 폐점한 가맹점이 11곳밖에 되질 않습니다.”

이건 업계 최저 수준이다.

“그거야, 기존 업장에 힘을 실어 줬으니까 그런 거 아니겠냐.”

실제로 프로모션과 마케팅으로 가맹점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었다. 쓸데없는 연예인 마케팅이 아니라 실효성 있는 것들만 추려서 진행했기 때문에 가맹점주들의 불만도 거의 없었다.

“거기에 더불어, 교육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분기별 교육을 매달로 진행했고, 슈퍼바이저의 방문 횟수도 2배가량 늘렸습니다. 사실은, 본사가 책임져야 할 가장 큰 지원 분야가 교육이라 생각합니다. 그 결과는 확실히 나타나고요.”

따지고 보면, 본사 입장에선 신규 매장이 늘어날수록 수익은 극대화된다. 인테리어와 초기 오픈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가맹점주의 주머니에서 나오니까.

“너무 급작스러운 건 아닌가, 싶다.”

“단순히 가맹점만 늘리면 회사는 돈을 벌겠죠. 하지만 길게 보자면, 폐업률의 증가는 곧바로 회사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대국푸드의 인지도와 이미지는 물론이고, 회사의 정체성까지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최근엔 유난히 프랜차이즈 갑질 문제가 있잖습니까. 거기에 발맞춰 대응하기도 수월할 거라 생각합니다.”

요 며칠 뉴스를 뜨겁게 달구는 화제가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이다. 올해에만 두 명의 가맹점주가 자살했다.

“맞다. 말 나온 김에, 그것 좀 얘기해 보자. 다음 달에 국회에서 청문회 있을 거 같다.”

이맘때면 나오는 단골 메뉴다. 서민들의 대리만족인, 대기업 때려잡기. 더구나 이번엔 대기업의 갑질 횡포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는 기자들의 여론몰이가 한몫했다.

‘또 피맛을 보겠네.’

연례행사로 보기엔 상당히 가혹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제가 갑니까?”

“나야 바쁘니까.”

“저도 바쁩니다.”

“부탁 좀 할게. 네 급에서 가야 적당한 선에서 끝난다고. 내가 가면… 어우, 끔찍해…….”

부사장은 국회의원에게 크게 데인 적이 있다. 기자까지 가세해 대놓고 언론플레이에 놀아난 적이 있어서, 아직도 트라우마가 있을 거다.

“알겠습니다.”

직장인인데, 위에서 시키면 해야지. 별수 있나.

“고맙다. 얼굴 좀 펴, 인마!”

“네.”

나도 죽을 만큼 가기 싫다. 가 봐야 국회의원들의 무능한 국정 능력만 목도하게 될 거다. 권력의 취한 놈들끼리 향 피우고 노는데 들러리 서는 느낌이 들어서, 좀 역겹다.

“아무튼!”

부사장이 파일철을 탁, 닫으며 말을 이었다.

“구체적인 모델링 나오면 보고하고. 내가 지금은 집중해서 못 보겠다. 대충 이 정도로 인지하고 있을게.”

“알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나오려는데, 뒤에서 부사장의 목소리가 나를 멈춰서게 만들었다.

“너… 쫌 변한 거 같다?”

“네? 제가요?”

“어, 뭔가… 아닌가?”

“변화한 게 확실해지면 그것도 보고 드리겠습니다.”

나름 유머다.

“새끼, 지랄은. 가 봐!”

“알겠습니다.”

* * *

“오늘이 마지막 날이네. 그동안 고생했다.”

내일부터 가게 공사가 시작된다.

“어째 가게 그만하실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송용진이 맥주캔을 따면서 말했다.

“그럼 이렇게 말할게. 앞으로 더 고생 좀 해 줘. 됐지?”

“넵!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좀 낫네요.”

“수연이는 왜 아무 말도 없어?”

강수연의 표정이 어두웠다.

“기분이 좀 이상해요?”

“왜.”

“모르겠어요. 막… 뭔가 끝나는 느낌이라서 그런가. 아 모르겠어요.”

“야, 너 벌써 취했냐?”

송용진이 피어오르려는 감성적인 판을 확 깨 버린다.

“저, 한 캔밖에 안 마셨거든요.”

“근데 왜 울적한 말을 해? 좋은 거지. 우리 가게 잘되니까 확장도 하고 하는 거 아냐.”

송용진의 말에서 ‘우리 가게’라는 말이 내 귀를 잡아끌었다.

“오빠가 뭘 알겠어요. 제 마음을 알아 주길 바라는 건 욕심이겠죠?”

“그건 모르겠고, 이거 닭다리 안 먹을 거면 내가 먹는다?”

“드세요, 제발 좀 드세요! 이거 다 먹어요.”

강수연이 짜증을 내며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너희 부쩍 가까워졌다. 남매 같아.”

“이런 애랑 엮지 마세요. 저 불쾌합니다.”

“애? 애라고요? 오빠 저랑 몇 살 차이도 안 나거든요!”

강수연의 기분이 널뛰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수연아 너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가게 때문에 기분 이상하다고… 하지 않았니?”

“아, 맞다. 감정 잡고 있었는데… 이 오빠 때문에, 아 망했어!”

요즘 수연이가 컨셉 잡는 데 재미 들인 건가. 몰래카메라 이후로 더욱 연기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안 어울리게, 혼자 분위기 잡더니만 쌤통이다!”

“진짜 사람이 낭만이 없어.”

강수연이 볼멘소리가 나는 좀 낯선데, 용진이는 익숙한 모양이다.

“낭만? 그게 뭐냐. 너랑 안 어울려.”

“아 빡쳐!”

“수연아, 너도 그런 말 써?”

오늘 의외의 모습 많이 보네.

“죄, 죄송해요. 그냥… 저 좀 취했나요? 취한 거 같죠? 그런가 봐요.”

매우 멀쩡해 보이는데.

한참 치킨을 뜯던 송용진이 곁눈질로 강수연을 보더니 중얼거린다.

“형님 앞에서 호박씨 까지 마라. 너 욕쟁이인 거 내가 다 알거든.”

강수연의 매서운 눈매가 송용진에게 꽂혔다.

“가게 공사 끝나면 우리 둘 중 하나는 없어질 수도 있겠네요.”

차분히 말하는 게 더 무섭다.

“아무튼 그동안 고생 많았고… 해서 이건 보너스의 개념으로 받아.”

준비한 봉투를 하나씩 건넸다.

“이게 뭐예요?”

송용진이 궁금해하는 건, 봉투 안의 내용물인 거 같다. 곧바로 바람을 불어 봉투 안을 살펴보며 말한다.

“그런 질문은 봉투를 열어보기 전에 묻는 게 일반적인 거 아닌가?”

민망한지, 머쓱해하며 웃는 송용진.

“하하, 뭔지 알아야 궁금증이 해소될 거 같아서요.”

강수연은 아직 봉투를 만지지도 않았다.

“한 달 넘게 공사하잖아. 그 기간의 월급이야.”

눈이 휘둥그레지는 용진이와 수연이.

“우와아아아!”

“사장님 짱이다.”

“그걸로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 오든가.”

“그럼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유급휴가비인가요? 신의 직장인들만 받는다는!”

이게 어디서 들은 건 있어 가지고. 돈도 많은 녀석이 수연이보다 더 좋아는 것 같다.

“뭐, 그렇게 생각하든지.”

사람 참 창피하게 만드네. 그냥 아무 말 없이 받으면 될 것을.

“맞다, 사장님! 우리 야유회 가기로 했잖아요?”

“와우! 강수연, 나이스! 맞네요. 형님은 약속을 중시하는 어른이니까, 약속 지켜 주실 거죠?”

말렸다. 얘들이 공책에 적은 내용은 모두 수용하겠다 말한 게 실수였다.

“그렇긴 한데… 내가 요즘 바빠서, 시간이 날지 모르겠네.”

“시간이 아니라 마음이 안 나는 거 아닙니까?”

일리 있는 지적이다. 가기 싫다.

“봐서, 봐서… 결정하자.”

“형님, 진짜 이러실 거예요? 봐서 은근슬쩍 빼려고 그러시는 거죠?”

와, 이 새끼 어느새 귀신이 다 됐네.

“아니야.”

“그럼 지금 정하죠? 숙박업소 예약하려면 미리 결정하는 게 좋아요.”

“자고 와야 되는 거야?”

굳이 왜 자고 오자는 거야. 하루 빼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아, 형님! 당일치기로 친목이 다져집니까?”

“나는 가능하다고 보는데?”

이때 강수연이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건… 제가 봐도 어려울 거 같아요. 당일이면 가는 데 오는 데만 반나절인데, 밥 한 번 먹으면 다시 돌아와야 할걸요?”

팀플… 친해진 만큼 막강한 팀워크를 자랑한다.

“아유회 겸 가게 확장 기념 겸 단합대회입니다. 반드시 사장님이 참석해야 된다고 봅니다! 직원들 사기를 위해서요.”

이 새끼는 이럴 때만 사장님이래.

“그래, 뭐…….”

“이히힛! 어디로 갈까요?”

강수연은 어느새 바캉스 무드로 바뀌었다.

“수연아! 내가 누구냐? 다 알아놨지.”

송용진이 가슴을 내밀면서 어깨에 뽕을 넣은 것처럼 우쭐해 한다. 아우, 꼴 봬기 싫어.

“정말요?”

“넌 참 대단하구나… 그런 준비성으로 일을 하면 대성하겠네.”

나도 모르게 비꼬게 되는 상황. 귀찮은데 피할 수 없을 거 같다.

“형님! 저희 아버지가 이번에 펜션 사업 시작했는데, 거기로 가시죠. 사진으로 봤는데 엄청 좋아요.”

“오예, 저는 찬성입니다!”

“형님도 오케이죠?”

“그으으래…….”

이래서 말조심해야 한다. 오늘 또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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