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잠입
“이 동네 사람들 다 미쳤어요! 제정신이 아니라고.”
“그만해, 그만하라고!”
사장님은 뭐가 무서운 건지, 아들의 말을 제지했다.
“멀리 서울서 오셨는데, 드릴 말이 없어요. 이만 돌아가 주세요.”
아들이 그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라고 처음엔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잠깐, 조용!”
사장님은 미닫이문을 열고 주변에 사람이 있나를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뭘 그리 겁내십니까?”
“이보슈, 잘 알지도 모르면 가만히 좀… 냅두세요. 잘 살고 있는 사람 들쑤셔서 뭐 좋을 게 있다고…….”
난 단지, 순대를 계속 제공받고 싶어서 온 거다. 내가 뭘 들쑤셨다는 건가.
“저는 순대를 계속 받고 싶어서 왔습니다. 개인사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아니, 내 말씀 드렸잖소! 더 이상 못 대 준다고.”
수세에 몰린 사람처럼 소리를 지른다. 그 모습이 불안해 보였다.
“그니까 왜요? 단가가 안 맞으면 맞춰 드리겠습니다.”
“아버지! 제발 정신 차리세요. 그 새끼들이 하라는 대로 하지 마시고. 이제 제발 쫌…….”
“너 이놈 새끼, 집구석에나 들어와. 만날 쏘다니지나 말고!”
이 가족은 뭔가 복잡한 불협화음으로 얽힌 것처럼 보였다.
“제가 남의 가정사에 끼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요. 사장님께서 전혀 잘 사시는 것 같지 않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여기, 도선 순대만큼 맛있는 순대는 드뭅니다. 원하신다면 제가 많은 편의를 봐드릴 수도…….”
“드릴 말씀 없어요. 가세요.”
몹시 급한 듯, 사장님은 나를 밀쳐 밖으로 내몰았다. 사장님이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는 걸 처음 알았다.
“저, 저기요. 사장님… 잠시만요…….”
“할 말 없다고요. 내 사정 좀 있어서…….”
결국 밖으로 밀려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문을 휘이익, 쾅, 닫았다.
“미안하게 됐어요. 먼 길 오셨는데.”
되레 아들이 내게 사과를 한다.
“괜찮습니다.”
밤이라 그런지 바닷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우리 말고 다른 누군가 근처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여길 지켜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진달까.
“저기요, 이거 진짜 아저씨 차예요?”
아들은 차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네, 한번 태워 줄까요?”
이자에게 뭔가 들을 만한 얘기가 있을 거 같았다.
“진짜죠? 완전 좋죠!”
나이는 대략 20대 중반쯤 돼 보였는데, 잽싸게 조수석에 타는 모습이 영낙없는 어린아이 같았다.
“그, 교회라는 곳은 어떤 뎁니까?”
동네를 천천히 운전하면서 물었다.
“미친놈들 천지인 곳이에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보세요.”
순대를 계속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하려면 교회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 같았다. 무분별한 오지랖 부리는 건 아닐 거다. 종로 분식 사장과 도선순대와의 교집합 사이에 교회가 자리한 게 틀림없었다.
“아저씨. 정수찬 맞죠? 사람들이 히어로라고 하던데, 도와줄 수 있어요?”
괜한 일에 얽히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으나,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우선 들어보고요. 대신,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합니다.”
“당연하죠. 거짓말 보태지 않아도 말도 안 되는 얘기니까요. 그 교회가 어떤 데냐면요…….”
도선순대 사장님 아들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그동안 본인이 조사한 내용과 봐 온 것들을 하나씩 상세하게 말해 주었다.
1시간이 넘도록 차에서 열분을 토해 가며 말하는 걸 보니, 맺힌 게 많은 모양이다. 충분히 그럴 만하다. 너무 놀라워, 나는 중간중간 다이어리에 메모를 해 가며 들었다.
“잠깐만요. 전화 한 통만 하겠습니다.”
나는 미래전략 3팀의 박상식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제가 말씀드린 내용 확인 부탁드릴게요. 지금 필요한 사항입니다. 경찰과 시청, 면사무소에 접수된 내용이 있는지도 확인해 주시고요.”
미래전략 3팀은 임원들의 개인적인 용무도 처리가 가능하다. 철저히 해결사와 심부름꾼의 역할을 자처하는 부서니까. 내가 부사장이 되어 한결 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알겠습니다. 바로 조사하여 연락 드리겠습니다.
어렵지 않게 정보를 취득할 거다. 경찰 측은 물론이고, 다이렉트로 연결된 창구가 여럿 마련돼 있을 거다.
“어디에 전화 건 거예요?”
“팩트를 체크해 봐야 하니까요.”
굳이 어디인지 말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나저나, 아드님은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이성원이에요. 아, 인사가 늦었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그는 내게 악수를 청했다. 기본 됨됨이는 나빠 보이지 않는다.
“정수찬입니다. 곧 연락이 올 겁니다. 좀 기다려 보죠.”
최대한 간략한 내용 확인만 부탁했다. 미래전략 3팀의 정보력이면 얼마 걸리지 않아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다.
“초면에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뭡니까.”
“지금 교회에 엄마랑 동생이 잡혀 있어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잡혀… 있다고요?”
“네! 한 달째 집에 안 들어오고 있어요. 거기서 뭔 일이 생겼을지 모른다고요! 도와주세요,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어요. 제발 부탁드려요.”
“아니, 잠시만요……. 아드님이 교회에 가서 확인해 보시면 되는 거 아닙니까. 아니면 아버님이 가셔도 되고.”
이해가 안 된다. 교회라면 신자들에게 항상 열려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저는 못 가요. 교회에서 배교자라고 낙인 찍혔거든요. 강제로 배척당했어요. 이제 그 근처는 얼씬도 못 해요…….”
왜인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그럼 아버님은 출입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아버지도 저한테 교회 얘기는 아예 안 하세요. 그리고… 이건 제 예상이지만 아까 아버지가 보인 태도로 보면, 아마도 교회에서 배척됐을 수도 있어요. 아저씨가 여기 온 걸 누가 보기라도 했으면 그랬을 거예요.”
“아니, 잠시만요. 대체 그게 무슨 소립니까. 누가 절 보면 안 되는 겁니까. 그리고 설사 저를 봤다 한들 그게, 교회랑 무슨 연관성이 있습니까.”
“이 동네는 상식이 통하질 않는 곳이에요. 저는 잘은 모르는데, 아버지가 그렇게 경기 일으키는 것만 봐도 사태는 심각하다는 뜻이에요. 후, 모르겠어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요, 대책도 없고…….”
이성원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도통 이해가 안 되는군요. 뭐, 어쨌든… 그래요, 갑시다. 교회 어딥니까.”
나는 단지 순대를 계속 받고 싶어서 온 것뿐인데, 졸지에 인질 구출 작전에 뛰어든 기분이었다. 솔직한 심정은 목적 달성을 위해서다.
종로분식 사장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그래야 순대도 계속 받을 수 있고 복수도 해 줄 수 있다. 주환이에게 한 짓을 떠올리며, 혼을 내주고 싶다는 목적 때문에 움직이게 되었다.
“코너 돌아서, 저 길 따라서 계속 가면 돼요.”
속 편하게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 분위기는 무거웠다.
“그 교회는 사이비라고 봐야 합니까?”
핸들을 휘감으며 말했다.
“거긴 죄다 미친 것들뿐이에요. 완전 사이비라고요.”
이 좁은 땅덩이에 종교도 많고 종교 시설도 많은데 사이비까지 있다니. 참 대한민국은 복잡한 나라다.
“근데 지금 가면 닫혀 있을 거 아닙니까.”
“아직도 사람이 있을 거예요.”
“이 시간에도요? 심야 예배라도 하는 겁니까.”
“아뇨, 내일이 목사 생일이라서요. 다들 탄신일 준비할 거예요.”
더 이상 묻질 않았다. 내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이성원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할 순 없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이고, 치기어린 마음에 없는 말도 지어 낼 수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나이라 생각한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는 보장도 없고.
“이쯤입니까.”
“네, 조기서 코너로 들어가면 돼요.”
교회의 규모는 크지 않았다. 동네 교회라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이 교회는 그냥 평범해 보이는데요.”
“겉으로 보이긴 그렇죠. 여기는 입구고… 조기, 조리로 들어가면 궁궐 같은 곳이 나와요.”
“궁궐이요?”
“보면 입 벌어질걸요? 사실 들어가진 못해요. 사설 경비가 있거든요.”
이성원은 감정이 조금 누그러진 모습이었다. 다시 내 차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관심이 차에 꽂힌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자에겐 이곳 실정이 하루 이틀 겪는 건 아닐 테니.
“입구는 볼 수 있겠군요.”
“가능은 할 텐데, 제지당할 수도 있어요.”
“저 뒤에 차는… 혹시 아는 차입니까.”
아까부터 거리를 두고 따라오는 듯한 느낌이다. 이 시골에 수입 SUV가 흔하진 않을 텐데, 게다가 이렇게 늦은 시간에.
“이 동네 차는 아닌 거 같은데요…….”
이성원이 차에 관심이 많은 청년이라, 수입차라면 주의 깊게 봤을 거다.
‘외지 사람의 차다.’
아까부터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저 차와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 왔어요.”
교회에서 한참을 더 들어가야 나오는 곳.
입구부터 어마어마한 규모라는 걸 짐작할 만하다. 중세 유럽의 절대 왕정을 연상시킬 만큼 입구가 화려했다. 족히 5미터는 넘어 보이는 철제 도어가 고급스러웠다.
“저, 잠깐 내릴게요. 여기 계세요.”
나는 밖으로 나와, 입구 앞까지 걸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이성원의 말처럼 사설 경비원이 두 명 지키고 있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건장한 체격의 경비원이 내게 다가왔다.
“내가 길을 잘못 들었나? 여기가 아닌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그들이 입고 있는 유니폼을 살펴봤다.
‘더원 시큐리티…….’
나는 빠르게 눈을 굴려 주변 상황을 판단했다. 경비초소까지 갖춰진 입구는 어느 대기업 회장님의 사택보다 돈을 많이 들인 티가 났다.
“여기 계시면 안 됩니다. 돌아가십시오.”
“여기가 맞는 거 같은데… 근데 여기는 뭐하는 뎁니까. 엄청 멋진 곳이네요!”
너스레를 떨어가며 그들의 반응과 주변 지형 구조를 살폈다.
“개인 부지입니다. 돌아가세요.”
“어? 더원 시큐리티 직원분이시네. 그럼 여기가 맞네!”
경비원이 젊고 인물도 제법 괜찮아 보였다. 직원들 허우대가 멀쩡할수록 경비업체의 의뢰 비용은 비싸진다. 돈깨나 썼단 소리다.
“누구십니까.”
“여기가 맞네, 그럼. 나 이 집에 볼일이 좀 있어서.”
“아, 그러십니까. 성함을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이 대목에서 약간 아쉬움이 묻어났다. 주변이 어두워서 그런가, 내 얼굴을 못 알아보네.
“이 바닥 생활을 하면서 초장부터 신분을 묻는다고? 늬들 초짜냐?”
이제부터 내 태도를 바꿔야 한다. 고분고분한 사람으로 보여선 안 되는 타이밍이다.
“죄, 죄송합니다. 실례입니다만 여긴 어쩐 일로 오시게 됐는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경비원들 상태가 A급인 걸로 봐선, 업체와 초호화 보안 계약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 말은, 켕기는 게 많다는 뜻이고 익명성을 요구하는 방문객들이 많이 드나들 거란 의미도 된다.
“늬들이 잘하고 있는지 확인차 나왔어. 여기 목사님이 내 아는 지인인데, 가끔 와서 똑바로 하는지 확인해 달라 하더만. 너… 통성명 대 봐.”
“죄, 죄송합니다. 저는 A초소 심야 근무 담당인…….”
이때 경비 초소에서 다른 경비원이 현재 상황을 무전으로 보고하는 정황을 목격했다.
“야! 너 안 나와? 이 싸가지 없는 새끼들!”
나는 초소 안의 경비원에게 삿대질을 했다.
“죄송합니다! 불쾌하셨다면 용서해 주십시오!”
불이나게 뛰어와 허리를 숙이는 경비원.
“야. 늬들 정말 나 모르냐?”
이런 시건방이 불편하긴 한데, 어쩔 수 없다.
“죄송… 아! 혹시 정수찬 선생님이십니까? 대국푸드 부사장이신…….”
이럴 때 유명세가 먹힐 줄이야. 집중하자. 나는 시건방을 더 떨어야 한다.
“이 새끼 눈깔은 아직 붙어 있나 보네. 너, 지금 내 심기가 매우 불편하거든. 어쩔 거야? 어!”
지금도 매스컴에 심심찮게 나의 근황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나는 현직 대국푸드의 부사장이다. 내 직급이 명함이기에, 저들은 나를 높은 사람으로 대우할 수밖에 없을 거다.
“죄송합니다. 제가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용서를 해 주십시오.”
주변 야산이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로 목청이 대단한 청년이었다.
“오케이. 한 번은 봐주지. 문 열어라.”
보아하니, 정치인들도 이곳에 들락날락거릴 거 같은데.
“알겠습니다!”
“야, 그리고… 보고하지 마. 목사한테도 알리지 말고, 약간 서프라이즈로 온 거니까. 알아 들냐? CCTV 다 지워. 알았어?”
“네. 바로 시행하겠습니다.”
두꺼운 철문이 스르륵 움직였다.
이이잉-
문은 자동으로 부드럽게 열렸다.
나는 차에 타, 철옹성 같은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하신 거예요?”
이성원이 놀란 토끼눈을 하고 물었다.
“모르겠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두근거린다.
‘오, 대박. 이제 나도 연기 좀 되는데? 짱이다!’
스스로 자축하는 기분으로 액셀을 밟고 언덕길을 올랐다.
곧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또 들렸다.
‘누가 또 들어왔나.’
넓고 반듯하게 닦인 길을 차로 올라가는 데만 5분이 걸렸다.
“엄청 크네요.”
“이것들은 여기서 왕이에요. 신이고.”
신이라고?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나.
“불안해하지 마세요. 누구도 저를 함부로 대할 순 없을 겁니다.”
이성원은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지 계속 혀로 침을 발랐다.
“네에…….”
곧, 거대한 저택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정말 중세 시대에나 있을 법한 왕의 거처처럼 보였다. 대국 리조트 VIP 특채를 세 개 합쳐 놓은 규모라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었다.
“정말 크네요. 어지간한 대기업 회장님 집보다 크네요.”
“제가 그랬잖아요.”
오는 동안에도 곳곳에 설치된 CCTV를 여러 개 봤다. 이 넓은 부지에 이만한 첨단 시설을 갖추다니.
이제 내 머릿속엔 오지랖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흥미가 생겼다. 어떤 되먹지 못한 인간인지, 그 면상을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