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내가 가질 수 없는 것
도선 순대 앞에 차를 정차했다.
이동훈 사장은 아내와 어린 딸을 끌어안고 울었다.
“당신 괜찮아? 희원아… 미안하다. 아빠가 미안해.”
많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재회의 드라마는 가족들에게 맡기고 나는 이태백 기자와 대화를 나눴다. 그간의 상황을 간략히 설명했다.
“흐음… 거의 영화구만, 영화야.”
그는 국장급의 파워를 지닌 베테랑 기자답게 이해력이 뛰어났다. 스펀지처럼 내 설명을 모조리 빨아들여 이해하고 있었다.
“저도 믿기 어려웠는데, 팩트인 거 같습니다.”
“와, 이거 진짜 대박이다. 그림 한번 제대로 나오겠어. 늬들 아이템 하나 기깔난 거 물었다!”
뒤에 서 있는 기자들에게 박수를 치는 이태백 기자.
“감사합니다, 선배님.”
하지만 후배 기자들의 표정이 좋지 않아 보인다. 아마도 힘들게 취재하고 있었는데, 애먼 선배 하나가 숟가락을 올리는 꼴이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 전에, 부사장님은 왜 여기 온 겁니까? 종로 분식이야 그렇다 쳐도, 여기까지는 어떻게 알고 오셨대?”
나도 참, 대답하기가 애매했다. 돌이켜 보면 어이가 없었고.
“저는 순대를 계속 받고 싶어서요. 여기 사장님 순대가 우리 분식집에 납품되고 있었거든요.”
말을 하면서도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아, 아… 이야~ 기가 맥히네! 그냥 가게 장사 때문에 왔는데, 스펙터클 영화를 찍으셨네.”
“그러게 말입니다.”
“어쨌든 우리 약속은 잊지 마십시오. 부사장님 인터뷰.”
“말로 내뱉은 건 지킵니다.”
“낙장불입! 좋네, 좋아. 말년에 이렇게 기자 생활이 피는구나.”
“기사는 꼼꼼히 써 주시기 바랍니다. 팩트 체크도 제대로 해 주시길 바랍니다.”
모든 상황을 목도한 목격자의 바람이다.
“그건 걱정 마시고, 이 친구들 다 내가 키운 애들이라서 글빨 하나는 죽이거든요.”
“그러다 사람 죽입니다. 글빨이 아니라 사실 여부에 신경 써 주셨으면 합니다.”
“나, 이태백. 기자 생활 20년이오. 선수가 팩트를 놓칠 리가 있나!”
“지나친 자부심은 넣어 두시고요. 우선, 알겠습니다.”
기자들은 저마다 취재한 내용을 취합하여 상의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반대편에선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하듯이 울음바다가 되었다.
“제 생각에는요, 거처를 옮기셔야 할 거 같습니다.”
감동의 분위기를 깨고 싶진 않지만 아직 마음 놓을 상황은 아니다. 그 교회는 분명 와서 해코지를 할 것이다.
“그건 안 됩니다. 목사님의 은혜를 저버릴 순 없습니다.”
이동훈 사장이 단호히 말했다.
“뭐라고요?”
내 귀를 의심했다.
“하늘님이 정해 주신 신념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교회에 가야 해요. 우리는 교리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제정신일 줄 알았는데, 이미 교회에 세뇌되었다. 가족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어 놓은 교회에 충성심을 발휘하다니.
“여보…….”
그의 와이프는 아직 제정신인 것 같았다. 남편을 이상한 사람 보듯이 바라보는 걸 보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당신도 알잖아. 우리가 얼마나 은혜를 입었어. 집에 불났을 때도 도와주시고, 하늘님이 우리 소원이도 찾아주실 거야.”
소원이는 집 나간 딸내미의 이름일 거다.
“여보, 지금 우리 희원이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요? 애 꼴을 보라고. 나도 그렇고…… 더 이상은 이렇게 못 살아요. 이 동네 사람들 다 미쳐 있어. 여기 더 있다간 우리도 미쳐 버릴 거라고!”
이동훈 사장의 딸래미와 와이프 얼굴에는 상처가 많았다.
“나, 이렇게 다쳤다고. 다리도 팔도 성한 데가 없다니까!”
와이프는 이마와 턱에 생채기 상처가 났고 광대 뼈 부근에 시퍼런 멍자국이 있었다. 얼굴에 멍자국이 선명히 날 정도면 매우 큰 폭행을 당한 거다. 팔과 다리에도 멍자국과 핏자국이 곳곳에 있었다.
“우리 애도! 희원이도 지금 아파, 알아?”
딸은 얼굴과 목주변에 피가 흘러 말라붙어 있었다. 무르팍도 까져서 피가 났다. 흉 지기 전에 제대로 치료를 해야 할 것처럼 보였다.
“아빠… 나 교회 가기 싫어요. 무서워… 아프구… 막 때린단 말이야.”
딸은 교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물을 글썽였다.
“안 돼. 그래도 가야 돼. 거기 가야 구원받을 수…….”
“이 한심한 새끼!”
나는 이동훈 사장의 멱살을 잡았다. 더는 못 참겠다.
“이, 이보슈. 뭐하는 거요?”
“왜, 저항하지 않으십니까?”
“뭐라고요?”
“왜 가만히 당하고만 계시냐고요! 당신 와이프랑 딸 아이가 폭행당했습니다. 그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세요?”
“외지 사람이 뭘 안다고 함부로 말합니까. 이건 내 집안일이오.”
그의 말이 물속에서 웅얼거리는 것처럼 아득하게 들린다. 그만큼 현실감이 없었다.
“이 한심한 새끼야! 네가 그러고도 가장이야? 그러고도 이 아이의 보호자냐고!”
“이런 시련을 극복해야 구원에 들 수 있어. 그리고 내가 기도를 해야 우리 큰딸이 돌아온다고. 당신이 뭘 알아!”
그래서, 더 열심히 기도를 한다고?
“따님이 사라진 건 누가 봐도 교회 때문 아닙니까? 근데 아버지면서, 보호자면서! 더 교회에 충성하겠다고요?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정신 차리세요, 가족을 지켜야 될 거 아닙니까!”
나는 이동훈 사장의 몸을 세차게 흔들며 말했다.
이내 정신이 돌아오는지, 그가 고개를 추욱 떨궜다. 나는 손의 힘을 풀었다.
“나는… 무능한 가장입니다. 그래, 그건 인정하오. 그래도… 내 나름의 노력을 펼쳐 왔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그분이…….”
정신병자의 변명은 듣고 싶지 않다.
“그렇게 평생 노예처럼 살면 좋으세요?”
세뇌됐든 어쨌든 상관없다. 할 말은 해야겠으니.
“뭐요.”
“그게 노예 근성입니다. 당해도 참고, 충성을 다하는 게 노예가 아니면 뭡니까! 왜 참고 계십니까. 내 가족이 당했지 않습니까. 왜 가만히 계시냐고요!”
나는 무능력한 부모의 모습에 억장이 무너졌다. 가족보다 교회를 우선시하려는, 무책임함에 분개할 수밖에 없었다.
“끝까지 책임지셔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게 부모의 역할 아닌가요?”
“이보슈, 사람마다 사정이라는 게 있다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봐도 답은 뻔히 보이는데, 정작 당사자인 당신은 왜 가만히 있냐고! 부모면 자식을 지켜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대체 뭐가 그렇게 두렵습니까. 당신이 그렇게 믿는 신이 아이들을 지켜 주기나 한답니까.”
“저기, 선생 말씀 가려 하세요. 이 지역은 서울이랑 생리가 다르다고.”
“따님, 제가 찾아드릴게요.”
“뭐, 뭐요? 어떻게 찾겠다는 거요?”
“당신이 그렇게 믿는, 매일 기도하는 신보다! 제가 먼저 따님을 찾아드리겠다고.”
“어떻게요?”
방법을 묻는 말에는 대꾸할 필요가 없을 거 같다.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죠. 저는 종교는 없지만 신의 존재는 믿습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거고요. 하지만 이곳 사람들이 믿는 신은 신이 아닙니다. 시건방진 소리라고 욕해도 상관 없습니다. 할 말은 해야겠으니… 당신들이 믿는 신은 저들, 저 교회를 지배하는 자들의 탐욕이나 다름없어요. 오만방자한 범죄자들의 속아귀에서 놀아난 거라고요. 정신 좀 차리세요!”
내 말에 이동훈 사장은 말을 잃은 사람처럼 입을 다물었다.
“적어도 인간을 창조하고 세상을 만든 신이라면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핍박하고 헐뜯지는 않을 겁니다. 진짜 신이라면 사랑과 평화를 원하겠죠. 저들이 만드는 세상에 그런 게 있습니까?”
말귀를 알아들었다면 섣불리 대답하지 못할 거다.
“…씨벌 것.”
억울한지 한숨처럼 욕을 내뱉는 이동훈 사장.
“나보고 어쩌라고… 난 그럴 능력이 없다고… 싸워 봐야… 씨벌 것…….”
나약한 아버지의 모습이 엿보였다. 내 마음이 아팠다.
“사장님 순대는 최고입니다. 제가 이 방면에 전문가라서 알아요. 먹어 본 사람은 또 찾게 되는 맛입니다. 능력이 없다고요? 그런 순대를 만들 수 있다는 것만 봐도 당신은 능력 있는 사람입니다. 본인을 과소평가하지 마세요. 가족을 지키세요. 그게 가장으로서의 역할입니다. 내 가족은 나몰라라 하면서 신을 찾는다면… 애초에 당신이 찾는 그런 신은 그곳에 있지 않을 겁니다.”
“으아아앙~”
어린 딸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희원아…….”
“우리 아빠 혼내지 마세요! 아저씨가 뭔데.”
딸아이가 나한테 달려들어, 내 다리를 꼬집고 할퀸다.
“보세요. 당신 아이는 아빠를 지키려고 하잖습니까.”
이동훈 사장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성원도 바닥에 주저앉아 흐느꼈다.
“여보, 우리도 이제 남들처럼 삽시다… 그렇게 보란 듯이.”
“미안해, 당신한테… 난 자신이 없었어. 몸도 성치 않아서… 우리 애들을 지켜 줄 자신이 없었다고…….”
온 가족이 눈물 바다가 되었다.
이들을 보면서, 나는 보지도 못한 부모를 떠올렸다.
내 아버지도 이런 마음으로 나를 버렸을까. 그는 가난했을까. 아니면 자존감이 없는 인간이었을까. 너무나 무능해, 자식을 건사하지 못할 거라는 자책감을 가졌을까.
모르겠다. 본 적도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을 상상한다고 달라질 건 없다.
“아버지, 이제 제발 좀 정신 차리세요! 부탁이에요. 제가 아버지 원하는 대로 살게요. 착한 아들이 될 테니까, 그러니까… 제발…….”
이성원은 차마 아버지 곁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세요. 옷 더러워집니다.”
내 손을 붙잡는 이성원은 나를 올려다봤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되어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부모가 있다는 건 좋은 일입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다. 부러웠다. 무능하든 무책임하든 어쨌든 아버지가 있다는 것 아닌가.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진짜 아저씨는 제 영웅이세요.”
이성원은 내 손을 잡고 일어났다.
“이제 갑시다. 여긴 위험해 보이니까.”
* * *
“오늘은 호텔에서 쉬시고요. 내일 다시 만납시다. 어떻게 해야 할지 의논해 보자고요.”
내 개인 신용카드를 주었다. 한도가 없는 카드다.
“뭐라고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지…….”
이제야 제정신이 돌아온 듯 이동훈 사장의 눈빛이 달라졌다. 혼탁하게 찌들었던 눈동자가 아니라, 맑고 또렷하다.
“내일 밤에나 제가 올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걸로 당분간 여기 머무세요. 애랑 사모님 치료부터 하시고 밥도 사 드시고요. 근처에 백화점 있으니까 옷도 사 입으세요.”
어쨌든 다시 그 동네로 돌아가는 건 위험해 보인다.
“저, 새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을 그가 해 주었다.
“그러셔야죠.”
“염치없지만 도와주십시오. 도움을 청할 데가 없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내게 고개를 푹 숙이는 이동훈 사장. 적어도 이 순간에는 도선 순대의 사장이라기보단 한 가족의 가장이었다. 근처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아들 이성원이 아버지 옆에 섰다.
“부탁드려요, 저희 아버지 도와주세요.”
어느새 다가온 딸 이희원도 내게 꾸벅 고개를 숙인다. 이동훈 사장의 와이프도 다가와 내게 고개를 숙였다.
“우리 남편, 우리 가족 도와주세요. 죄송합니다. 끝까지 염치없는 모습을 보여서요. 반드시 나중에 갚을게요. 약속할게요.”
이동훈 사장님의 아내는 아직도 남편을 사랑하는 것 같았다. 가족애가 끈끈한 것 같아서 괜히 내가 울컥한 심정이었다.
“저기요, 여러분? 여기는 호텔 로비입니다. 그만하세요.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잖아요.”
온 가족이 나를 보며 죄송스러워하는 모습이 보기 불편했다.
“아, 죄송해요. 너무 감사해서 그만…….”
이동훈의 아내는 민망하다는 듯이 딸 아이를 쓰다듬었다.
“어쨌든 내일 뵙죠. 아, 조금 뒤겠군요.”
“그러네요, 새벽이니까요.”
“넓은 방으로 며칠 끊어 놨으니 당분간 여기서 푹 쉬시고요. 맛있는 것도 많이 드십시오. 룸서비스 마음껏 시키시고요. 그럼 전 이만.”
그렇게 말하곤 호텔을 나왔다.
뭔가, 내가 가질 수 없는 걸 가진 사람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다. 너무나 부러웠다.
‘나는 끝까지 가질 수 없겠지.’
나에게 가족이란 그런 존재다.
호텔 바깥으로 나오니 이태백 기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 끝냈어요?”
“뭐, 대충은요.”
“나 놀랐잖아? 우리 부사장님 진짜 멋있더라. 어쩜 그렇게 카리스마 있게 말을 잘하셔?”
베테랑 기자의 말이다. 기자들은 본디, 믿을 만한 족속이 아니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과찬이십니다.”
“무슨 스피치 학원 다니시는 줄. 근데 이제 어쩔 거요?”
“뭘 어쩝니까. 그냥 상황 흘러가는 대로 가는 거죠. 저 가족은 당분간 여기서 지내게 할 생각입니다. 그 동네는 위험해서 다시는 못 가죠. 교회 신도들이 동네를 들쑤시고 있을 겁니다.”
어쩌면 소방벨의 혼란을 야기한 존재가 이들 가족이라고 넘겨짚었을 수도 있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지만.
“그래요, 나도 그럼 오늘은 퇴근해야겠네. 아우, 죽겄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기사는 잘 부탁드리고요. 종로 분식 취재도 성심껏 해주시고요.”
“염려 마요. 내 전공이 있으니까. 그나저나, 인터뷰는 다음주쯤?”
“스케줄은 비워 두겠습니다. 적당한 때 불러주세요.”
“콜!”
이태백은 드높이 손을 뻗어 인사하곤 사라졌다.
나는 미래전략 3팀 박상식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새벽에 또 연락하는 게 미안했지만 한시라도 빨리 따님을 찾아주고 싶었다.
“접니다. 찾을 사람이 하나 있어서요.”
이동훈 사장에게 들은 큰딸의 신상에 대해 말해 주었다.
“사진이 몇 장 있긴 한데, 핸드폰으로 찍으면 흐릿하니까, 오전 중에 퀵으로 보내겠습니다.”
미래전략 3팀은 사람 찾는 데는 도사다. 재벌가 자재들이 잠수를 타도 하루면 찾아낸다.
-알겠습니다. 바로 시행하겠습니다.
“오늘 피곤하게 해서 미안합니다. 박상식 부장님 저 때문에 고생이 많으십니다.”
-아닙니다. 제 일인 걸요. 저희는 24시 대기가 원칙입니다.
참, 쉽지 않은 직책이라는 생각이다.
“그럼 이만 끊습니다.”
전활 끊자마자 잊고 있었던 피로감이 몰려왔다.
‘진짜 피곤하네.’
현재 시각 새벽 5시다.
쉬지도 못하고 바로 씻고 출근해야겠다. 몸에 기운이 없어서 대리기사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