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국적 분식생활-140화 (140/210)

140화 죄

“집행? 네가 뭔데.”

“가게 잠깐 닫으시죠?”

“가게를 닫아?”

염광순이 오만상을 쓰며 말했다.

“직원들도 나가 있으라 하시고요.”

중요한 순간에, 손님들이 들락날락거리면 집중이 깨질 수도 있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심상치 않다는 걸 감지한 눈치다. 어쨌든 내 뜻대로 할 거다.

“일종의 배려입니다. 지금부터 창피한 경험을 하게 될 테니까요.”

나만 편하려고 이러는 게 아니다. 상대를 배려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다. 연로한 염광순에게 최소한의 예의라도 갖춰야 내 마음이 편할 거 같다.

“창피한 일이라… 뭐든간에, 금방 끝냈으면 좋겠네.”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내 예상보다 멘탈이 강인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용건만 하고 바로 일어서죠.”

잠시 생각하던 염광순이 문에 붙은 팻말을 돌려 ‘closed’로 바꾸고 주방을 향해 말했다.

“얘들아, 잠깐 뒷문으로 다 나가 있어. 주방 애들도.”

남은 손님이 몇 없다. 금방 식사를 마치고 나갈 것이다.

나는 안주머니 속 녹음기의 전원 상태를 체크했다. 잘 작동되고 있었다.

“허풍이 아니길 바래요. 그게 아니라면 영업방해로 신고할 거니까.”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보다, 앉으시죠? 연세도 있으신데 저만 앉아 있기 좀 그러네요.”

내 말에 염광순은 콧방귀를 뀌었다.

“하! 이제야 나이 대우를 해 주나? 진작 그러지 그랬어?”

심술궂은 표정 탓에 염광순의 광대뼈가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반말 찍거리 하게 해 줬으니 연로자 대우는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는데요. 물론, 나잇값을 하는지 여부는 본인한테 달렸겠지만.”

“어린 놈의 새끼가 싹수가 누렇네…….”

앞으로 본인에게 불리할 거란 낌새를 알아챘다는 건가. 싹수를 운운하는 것 보면.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그때 손님 한 팀이 눈치를 보며 일어났다.

“수, 수고하세요.”

남은 손님들이 하나둘 빠져나가더니, 어느덧 가게에는 염광순과 나만 남았다.

“바깥은 시끄러운데 여기는 죽은 듯이 조용하네요.”

뉴스의 메인을 장식하고 있는 서산교회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정작 태풍의 눈인 이곳은 평소보다 더 고요하다니. 이런 아이러니가 어딨나.

나는 리모컨을 들어 뉴스를 틀었다.

“뉴스는 세상의 창이라고 하죠?”

정말 벽걸이 텔레비전이라 큰 창문처럼 보였다.

“어디서 수작질이야! 어서 용건 말 안 해?”

“크게 말 안 해도 다 들립니다.”

“어디, 뭘 가져왔길래 이리 야단이야? 뭐야, 고거야?”

염광순은 내가 든 파일철을 노려보며 말했다.

“정신 사납게 계속 서 있을 겁니까. 앉으시죠.”

내가 이토록 앉는 것에 집착하는 이유는 내가 깔아 둔 판에 염광순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동등한 위치에 앉아 있어야, 제대로 의사전달이 가능하다.

거기다 자리를 제안하고 수락하는 것은 꽤나 주효한 힘이 있다. 누가 호스트가 되고, 누가 게스트가 되냐로 인해 기세가 달라지기도 하니까.

“후딱 하고 나가지?”

“나이 들면 고관절부터 나간다는 게 진짜입니까. 그럼 이제 앉으셔야겠네.”

빈정거리고 싶진 않지만 상대에 따라선 가끔 내뱉어 줘야 할 필요는 있다.

“깝죽대긴… 어디 한번 펴 봐. 무슨 요술 보따리처럼 다루네.”

염광순이 자리에 앉았다. 어쨌든 자리에 앉았다는 건, 본인이 켕기는 게 있다는 것이다. 내 수를 읽어야 본인도 대처할 수 있을 테니.

“궁금해하시니까 보여 드리죠. 사실 이게 용건입니다.”

기싸움은 이쯤하고 본론으로 넘어가자.

“일찍도 말하네. 해 떨어지는 줄 알았어.”

비아냥을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

“제가 온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죄할 기회를 드리려고 온 겁니다.”

* * *

전날, 대국푸드 부사장실.

“사죄요?”

“네, 받아야겠습니다. 적어도 피해자들에겐 사죄를 해야죠.”

“왜 그걸 부사장님이 신경 쓰시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미래전략3팀 박상식 부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인 피해를 좀 입긴 했는데, 그건 충분히 만회할 만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화가 가라앉질 않네요.”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를 만큼 집착하고 있었다.

“너무 깊게 들어가시는 건 아닌지 염려됩니다.”

“알아요,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박상식 부장이 고개를 저었다.

“적당히 하실 생각은 없으신 거고요?”

“뭐… 신경 쓰게 하여 미안합니다만… 끝까지 가 보려 합니다.”

박상식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뭐든 꽂히면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드는 스타일이라는 걸 아는지, 그의 표정이 더욱 어둡다.

“이건, 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근데 필요하실 거 같네요.”

“이게 뭡니까?”

그가 내민 건 검은색 파일철이었다.

“기존에 조사했던 자료에 새로운 내용을 첨부한 겁니다.”

열어서 내용을 훑어봤다.

“…이, 이것들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저희도 사실 놀랐습니다. 어떻게 사용하실지는 모르겠으나 알고 계셔야 할 거 같아서요.”

“사죄해야 할 사람들이 많겠어요…….”

왜 내가 교회 일에 집착하는지 알 것 같다. 이것도 일종의 직감이라고 봐야 하나. 도선순대 이동훈 사장에게 확인해 봐야 할 사항이 많다.

“부사장님의 의지를 확인했으니 저희도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겠습니다. 언론사와 검찰 쪽에 제보할 생각입니다.”

미래전략 3팀의 정보력을 총동원하는 것 같았다. 이처럼 이들이 혼신을 다할 수 있는 이유는, 류승주 사장의 지원이 있기에 가능했을 거란 추측이다.

“그러셔야죠. 그러면… 오늘내일 중으로 터지겠네요?”

“아마도 그럴 겁니다. 워낙 이목이 집중된 사건이라서요.”

“좋습니다. 이 정도면 종점까지 갈 수 있겠네요.”

“네?”

“끝까지 갈 수 있는 티켓이라고요.”

나는 파일철을 흔들며 말했다.

* * *

“뭔 사죄?”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친다면 모든 걸 용서해 드리죠.”

사실은 그럴 생각 없다.

“네가 뭔데 용서를 해 준다 만다야? 신이라도 돼? 하다못해 판사 나부랭이라도 되냐고.”

입 주변을 씰룩거리며 비웃음을 참고 있는 것 같다. 느낌상 판사도 매수해 봤던 전력이 있을 거 같은데.

“그래서 그 무능한 나부랭이 전에 제가 먼저 온 거 아닙니까.”

어느 정도의 힘이 있어야 판사가 나부랭이가 될 수 있을까.

“저녁 손님 오기 전에 끝내. 아니면 손해배상 청구할 거니까.”

“워낙에 많아서요,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 근데 그 교회 있잖습니까…….”

나는 파일철을 들춰보며 말했다.

“왜 그걸 자꾸 나한테 묻는 거야!”

“자꾸? 오늘 한 번밖에 언급 안 했는데요. 방금은 처음 물은 거였습니다.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세요?”

도둑이 제 발 저리고 있다.

“난 모르는 일이라고.”

나는 무시하고 파일철을 훑어봤다.

“가족들은 다 서산에 있네요? 혼자만 올라와 계시고… 자녀분들이랑. 맞죠?”

“지금 호구 조사하니?”

가볍게 무시했다.

“이미 교단에서 제명된 상태네요. 제명 사유는 사이비교리 전파. 지역 기독교연합회에서도 출교가 됐다고 하고… 이 출교는 제가 궁금해서 알아보니까, 목사 자격 박탈과 함께 ‘교회’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다고 하는데… 그러면요, 거기는 뭐하는 뎁니까. 왜 아직도 교회입니까.”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왜 나한테 교회 얘기를 하냐고.”

계속 발뺌을 하겠다는 건데.

“당신 가족이 운영하는 거잖아. 그런데도 몰라요?”

“몰라!”

“그럼 염광순 사장께선 종교가 어떻게 되십니까. 기독교 대신 불교라도 믿는다는 겁니까.”

“이 나라에서 종교는 자유 아냐? 뭘 믿든.”

“자유죠, 정당하다면요. 그런데요… 일가친척들까지 모두 달려들어서, 가족이 운영하는 거 같은데 어떻게 모를 수 있습니까.”

“난 전혀 관여된 바가 없으니까. 생사람 잡지 마.”

끝까지 발뺌하겠다, 이거지?

“알겠어요. 여기 보니까 자녀분이 있네요. 와… 공부 잘하셨네. 두 명 다 서울대에 진학했으니.”

애들 얘기를 하니 염광순의 태도가 달라졌다. 몹시 긴장한 듯 보였다.

“이거 불법 아니야? 왜 남의 신상을 조사하는 건데!”

불합리하다는 걸 알면서도 얌전히 앉아 있는 염광순. 이 여자급이면 판이 불리할 땐 엎어도 된다는 것쯤은 체득하고 있을 것이다.

“당신들이 저지른 불법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지. 억울하면 고소하세요. 서울대는 어떻게 들어간 겁니까?”

“뭘 어떻게 해? 공부를 잘했으니까 들어갔지.”

“아아, 여기 보면 고액 과외를 하셨다 돼 있네. 어이쿠, 스타 강사에게 과외를 받을 정도면 과목당 몇천은 할 텐데요. 이만한 돈이 어디서 나셨을까?”

염광순의 얼굴 낯빛이 변했다.

“말씀해 보세요. 왜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되셨을까. 두 자녀에게 들어간 사교육비만 해도 수십억 원은 될 거 같은데요… 맞죠?”

“뭔 상관인데 나한테 이러는 거야? 내가 왜 그딴 걸 말해야 되냐고.”

“왜 말해야 하냐고요? 아니라곤 말 안 하시네. 그럼 이건 팩트라는 거네요.”

함정수사처럼 조금 비열한 방법이다. 역시 자식들 얘기를 하니까 사람이 확 변했다. 자식을 끔찍이 애지중지한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이거 인권 유린 아냐?”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뭐요.”

[긴급속보입니다.]

때마침 뉴스에서 교회 관련 속보가 나왔다.

“굳이 내 입으로 말할 필요 없겠네요?”

[…교회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이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1994년, 사회복지시설로 인가받아 보육원을 시작하여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습니다. 문제는 아이들을 방임했다는 것인데요. 보육원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지 않았고 그 어떤 교육도 받질 못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아이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 의무교육에서 철저히 배제되었으며, 이로 인해 정신적 불안 증세와 지적 미성숙 상태인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게다가 영양 불균형으로 인한 소아장애와 질병에 시달려 온 아이가 한둘이 아니라는 게 큰 충격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아유 시끄러!”

염광순은 불쾌하다는 듯이 리모컨을 집으려 했다. 내가 리모컨을 먼저 손에 쥐고 말했다.

“이미 다 알고 있겠지만 잘 들으세요.”

[아동에게 노동을 착취했다는 정황까지 포착되었습니다. 이는 교회 내부 자료를 통해서 밝혀진 것으로, 아이들은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사내수공업에 투입되었습니다. 건강한 남자 아이들 같은 경우는 주로 고된 노동을 하였는데요, 논밭에서 농사를 지었고 과수원에서 과일 수확에 동원되었습니다. 혹독한 노동으로 아이들은 골격이 심하게 뒤틀렸고 고관절에 무리가 온 경우도 있었습니다. 부실한 영양 상태 탓에 또래에 비해 체구가 작은 아이들이었습니다…….]

애들을 동원했을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에게 고액의 헌금을 요구하고 불법 고리대금까지 벌였다. 순식간에 막대한 돈이 생겼을 것이다.

‘진정하자.’

침착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여긴 대체 뭡니까. 이제 교회라는 이름도 못 쓰고 유일한 목사는 교단에서 퇴출된 인간이던데. 그러면 종교를 빙자한 범죄 단체라고 봐도 됩니까.”

“나랑 상관없는 일이야. 대한민국에 연좌제라도 있나. 가족이 지은 죄를 왜 나한테 물어?”

“그럼 이 건물은 어떻게 매입한 겁니까. 토지대장 띄어 보니, 가게 인수하고 곧바로 매입했더라고요, 얼핏 봐도 서울 중심가에 있는 건물이라서 한두 푼이 아닐 텐데. 그 돈은 어떻게 마련하셨어요?”

“원래 돈이 좀 있었어…….”

“없던데요. 다 조사했습니다. 교회가 막 부흥하자마자 서울로 이사했더라고요. 때마침 가게 인수와 함께 건물도 인수. 타이밍 기가 막힙니다.”

“증거 있어? 내가 교회 돈을 썼다는 증거 있냐고!”

자금 세탁에 얼마나 공을 들였으면 저런 자신감이 나올 수 있을까.

“있죠. 있으니까 입 아프게 말하는 거 아닙니까.”

사실은 아직 자금의 흐름까지 상세히 알아내진 못했다.

“내 놔. 증거를 보여 보라고!”

염광순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대단한 자신감이다.

“그걸 미리 보일 수 있나요.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데.”

“어디서 거짓부렁이야.”

텔레비전에선 교회 관련한 뉴스 속보가 끝났다.

“자식 사랑이 대단하다고 들었습니다. 자녀 두 분 다 서울대고 두 분 다 재학 중이네요. 근데 이거 어쩌죠? 공교롭게 저도 서울대 출신인데.”

그제야 염광순이 눈이 번쩍 뜨여 나를 노려봤다.

“그, 그 말을 왜 하는 거야?”

“아시잖아요. 대한민국은 인맥 사회입니다. 학연, 지연, 혈연. 사실 명문대 가려는 이유가 학연 만들려는 게 크잖아요? 다행히 제가 그 학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거 같아서요.”

“뭘 하겠다는 거냐고!”

“심지어 아드님은 제 직계 후배네요. 경영학과.”

쿵!

일어서며 의자를 자빠뜨린 염광순이 내 멱살을 잡았다.

“내 새끼 털끝만큼이라도 건드리면 가만 안 둘 거야!”

씩씩거리며 나를 몰아붙이는 모습이 볼썽사납다.

“내 새끼… 그렇군요. 당신 새끼만 귀하고 남의 새끼는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 이겁니까?”

“상관없어. 그니까 내 새끼는 건들지 말라고!”

나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대체… 어떻게 하면 그런 천박한 이기주의가 나올 수 있는 겁니까.”

잠시 심각한 표정을 짓던 염광순이 이내 고개를 숙였다.

“그니까, 미안해. 정수찬 씨 내 이렇게 사과할게. 미안하게 됐수.”

자식은 그녀에게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염광순이 급하게 마무리 지으려 한다.

“뭐가 미안한지는 아세요? 왜 저한테 사과하십니까. 죄책감이나 양심보다 내 자식이 먼저라 이겁니까! 대답해 보세요. 그 아이들이 무슨 죄입니까.”

“그냥 나는…….”

머뭇거리는 염광순을 보자, 내 속에서 부아가 치밀어오른다.

“왜 애들이 학교도 못 가고 돈을 벌어야 합니까. 왜 애들이 밥도 제대로 못 먹으며 농사를 지어야 하냐고요! 당신 자식은 수천 만 원의 고액 과외까지 받는데, 왜 그 과외비를 만드는 고사리 손에는 피멍이 들어야 하냔 말입니다!”

대답이 없다.

“그 애들이 무슨 잘못이라도 했습니까! 죄라도 지었냐고요. 대답해 보세요… 당장 대답해!”

“있지.”

염광순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잘못이 있어요?”

“부모에게서 버려진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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