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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적 분식생활-141화 (141/210)

141화 최선의 협박

“뭐라고요,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어차피 버려진 애들이야.”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충격적인 말이다.

“그게, 말입니까. 지금.”

여기서 이성을 잃으며 안 된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내가 이런 말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세상에는 종이라는 게 있어. 인간이라고 다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정신 차려, 정수찬! 지금은 목적을 생각해야 한다. 아무리 봐도 이 여자는 제정신이 아닐뿐더러 멘탈도 보통이 아니다. 몰아붙인다고 순순히 실토할 사람이 아니다.

“하하, 그렇군요. 사장님은 그런 신념을 통해서 노하우로 발전시켰군요.”

나는 역겹지만 웃는 낯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내가 해낼 수 있을진 모르겠으나, 이제부턴 다른 노선을 택하는 수밖에 없다.

“응? 갑자기 왜 이래?”

“에이, 왜 이러십니까. 여기 누가 더 있습니까. 우리 둘뿐인데 이제 좀 솔직해집시다.”

어떻게든 이 여자가 교회와 연관이 있다는 내용을 녹취해야 한다. 그게 목적이다. 우선은 그것만 생각하자.

“그니까! 정수찬 씨 갑자기 왜 이러냐고. 왜 웃어, 불길하게?”

“사장님이 교회를 만들었다는 소리가 있던데, 그거 사실이죠?”

“그런 일 없다고 내가 몇 번을 말해!”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염광순은 끝까지 부인할 거다. 오케이, 알았다. 정말 하기 싫은 방법인데… 목적을 위해선 해야지.

“에이 참, 승질 내지 마시고요. 따지려고 온 거 아닙니다. 도움을 받으려고 온 거예요.”

나는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왜 수작 부리는 것처럼 보이지? 본색을 숨기는 거 같은데.”

내 허접한 연기력이 이 여자의 눈치를 덮을 수 있을까.

“먼저 제 쪽에서 솔직해지겠습니다. 교회의 운영 노하우 좀 알려 주시죠.”

“뭐? 이 양반이 뭐라는 거야.”

“저도 교회 하나 만들어 보고 싶어서요.”

내 말에 놀랐는지, 눈을 번쩍 뜨는 것 같았다.

“교회라고?”

“네.”

순간, 염광순이 얼굴에 온갖 주름을 구기며 웃었다. 뒤로 나자빠질 정도로 화통한 웃음 소리가 가게 전체에 울려 퍼졌다.

“퐈하하하하!”

“뭐가 그리 재밌습니까.”

이미 눈치챈 건가.

“젊은 놈이 어디서 공갈을 배웠는지 제대로네! 나참, 배꼽 빠지겄네!”

역시, 보통이 아니다. 쉽게 간파하는구나.

“왜 거짓이라고 생각하세요?”

너무 웃었는지, 입가에 묻은 침을 닦고 염광순이 말했다.

“왜냐고? 그걸 꼭 말해야 아나. 지금도 대성했잖아. 돈도 많은 거 같고 유명하기까지 한데, 뭣하러 교회를 해? 젊고 잘생긴 총각이 말이야. 왜 교회를 하려는 거냐고. 애초에 거짓부렁이지!”

쉽게 통할 거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이제부터 제대로 픽션을 보여 주마.

“제가 직접 교회에 가 본 건 아세요?”

회유보다는 협박으로 나아가는 게 낫겠다.

“거길? 서산까지?”

모르나 보다. 경비원들이 내 말대로 처신했나 보네.

“서산이라는 게 바로 나오네요?”

그냥 떠본 거다. 이건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미 언론에서 연일 보도가 되고 있으니까. 하지만 염광순의 반응은 절대 남 일처럼 보이지 않았다.

“워낙에 유명하니까…….”

“그렇죠.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웠습니다. 놀랐어요. 화려한 입구부터 어마어마한 규모에 입이 떡 벌어지더군요. 건물도 화려하고 사람들이 모두 통제된 모습을 보면서 제가 뭘 느꼈는지 아십니까?”

“뭘 느꼈을까?”

교회와는 관련 없다는 사람이 내 소감에는 관심을 갖는다.

“감탄했습니다. 거대한 왕국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그 안에선 모든 게 가능할 거 같았어요. 사람들 눈치 볼 필요도 없고요. 사실 제가 요즘 유명해져서 좀 피곤하거든요. 어딜 가나 사람들이 알아보고 하니까 괜히 신경 쓰이고 내 행동이 인위적으로 느껴지고 뭐, 그래요. 근데 그 교회 안에서라면 자유로울 수 있을 거 같더라고요. 왕처럼 군림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배우고 싶었어요. 그런 완벽한 왕국을 만드는 노하우를요!”

염광순은 교회를 종교 단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사리사욕을 끝없이 채워 줄 하나의 세상이라고 여길 거다.

“특이한 사람이네…….”

내 연기에 어느 정도 속아 넘어간 거 같은데, 아직은 긴장을 늦출 순 없다.

“알다시피 제가 대국푸드에서는 임원인데, 그래 봐야 직장인 아닙니까. 재벌가 사람이 아니면 언제 짤릴지 모르는 파리 목숨입니다. 내 마음대로 하면서 돈도 굴릴 수 있는 시스템을 오랫동안 고민했는데, 그 교회를 보는 순간 모든 고민이 사라졌습니다. 제가 꿈꿔 온 최고의 해결책이었어요.”

나는 눈을 말똥말똥 뜨며 손을 활짝 펼쳤다. 마치, 사막 속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사람처럼 표현했다. 그 오아시스가 신기루라는 걸 숨긴 채.

“근데? 그걸 왜 나한테 묻지.”

끝까지 발뺌이네.

“왜 이러십니까. 이미 교회를 설계한 사람이 염 사장님이라고 들었습니다. 우리 둘뿐 아닙니까. 제가 마음을 열었으니 이제 좀 솔직해지시죠?”

“누가 그랬는데? 내가 교회를 만들었다고.”

“순대집 사장님이요.”

이건 사실이니까.

“그, 배교자 새끼…….”

염광순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늙은 여자의 눈에서 저런 살기가 나올 수 있구나, 신기했다.

“가게에서 계속 순대를 받고 싶어서 찾아간 겁니다. 평소에 종교는 관심도 없습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그… 교회 같은 사업체를 만들려면 이제부터 관심을 가져야겠죠?”

차라리 교회를 사업이라 부르는 편이 염광순의 의심을 거둘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어떻게든 이 여자에게 신뢰를 얻어야 한다.

“정말이야?”

“물론입니다. 처음엔 강압적으로 밀어붙여서 물어볼 생각이었습니다. 근데 그게 통할 분이 아닌 거 같아서요. 그냥 솔직히 제 패부터 깐 겁니다.”

염광순은 어느새 팔짱을 끼고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보기보다… 야심가네. 젊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칭찬인가. 나를 기특하게 여기는 눈빛이다.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어떻게 그런 대단한 교회를 만드신 겁니까.”

이런 인간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아등바등하는 것 같아서 속이 안 좋았다.

“잠깐. 난 뭘 얻을 수 있는 건가?”

“뭘 얻다니요?”

“그걸 다 말해 주고 나면 나는 뭘 얻냐고. 그렇게 쉽게 거저로 얻는 건 아니지. 다 오랜 숙성 과정을 거친 건데… 난 뭘 얻을 수 있나?”

나이스! 이제야 물었다.

이제 두 번째 단계다.

“아, 그거는요… 방금 전에 제가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자녀분들 관련해서요.”

“우리 애들?”

“네, 거절하시면 불행한 일들이 많이 생길 겁니다.”

사람은 무엇을 얻을지보다 무엇을 잃을지에 더욱 두려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불행한 일?”

“제 인맥을 활용하여 자녀분들의 앞길을 막겠다고 말씀드렸는데. 그걸론 모자라세요?”

이 여자 같은 고단수는 이익으로 유혹하여 회유하는 게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폭력적인 인간은 폭력으로 다스려야 말을 듣는 경향이 있다.

“지금, 우리 애들을 인질로 잡겠다는 말인가?”

이자들이 마을 애들을 인질 삼아 부모들을 조종했던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바로 학습하여 응용했을 뿐이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

“하하, 그렇게 들으셨다면 아주 정확합니다. 상세히 알려 주시면 그런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을 겁니다.”

내 말에 염광순의 얼굴이 또 굳어졌다.

“아시다시피 저는 사회적인 지휘가 좀 있는 편입니다. 아는 정치인도 꽤 있고요, 자랑 같지만 청와대 직속라인까지 탈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가 왜 교회 문제를 사장님에게 직접 물어볼까요?”

어느덧 내가 만든 테이블 위에서 염광순이 불안에 떨고 있다. 그 말은 얼마든지 허언증 환자처럼 허세를 떨어도 내 말을 믿게 돼 있단 의미다.

“그야… 알고 싶으니까 그랬겠지.”

“빙고! 맞습니다. 역시 체계를 만든 분이라 그런지 현명하시군요. 제가 마음만 먹으면 당장 교회를 조져 버릴 수도 있거든요. 우리 염 사장님과 교회와의 연관성? 그딴 거 관심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제 모든 라인을 동원하면, 사장님을 뭘로든 엮을 수 있어요. 수감 생활까지 컨트롤할 수 있단 소립니다. 근데 수감된 경험은 있으십니까, 그게 처음이면 힘들다 그러던데요.”

일부로 거친 어휘를 사용하여 말을 했다. 이자는 지역 관청과 스폰 관계를 맺고 있다. 권력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자이기에 내 말을 받아들일 수 있을 거다.

“아니, 잠깐… 그러니까 난 거절을 할 수 없는 거네? 내가 거절하면 나는 감방 가고 우리 애들은 불행해진다, 이거야?”

몹시 불안한 듯 안절부절못하는 그녀의 모습이 볼만했다.

“에이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저를 어떻게 보시고… 그걸론 안 끝나죠.”

“그,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건데?”

확 바뀐 온도차에 염광순은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았다.

이제 굳히기 들어간다.

“뭘 어떻게 됩니까. 우선, 교회는 지금 압수수색 들어간 상태죠? 이대로 완전히 문 닫게 될 거고 건물도 다 허물 겁니다. 그 부지는 절차를 거쳐 국가에 귀속될 거고요. 거기 운영했던 가족분들은 싸그리 구속될 겁니다. 거기다 사장님 자녀분들은 저의 후배니까 특별대우로… 인생 막장을 좀 경험하게 해 줄 생각입니다. 또 뭐 있나요? 아아! 우리 염 사장님 계시네! 본인께서는 감방에서 몇 년이나 썩고 싶으세요?”

나는 눈을 부릅뜨면서도 웃는 낯을 유지했다. 태연한 척하는 게 쉽지 않았다. 밖에서도 들릴 만큼 내 심장이 요동쳤다.

“아깐 뭐 직장인 파리목숨이라고 하더니만.”

내 두근거림을 감지한 건 아니겠지.

“좋게 말한 거죠. 일종의 겸손. 젊은데 잘난 척까지 하긴 좀 그렇잖아요?”

“아무래도 청와대 라인은 좀… 공갈 같은데.”

끝까지 의심이구나. 좀 더 깊이 쐐기를 박았어야 했나.

“거짓말이길 바라죠? 일례로, 저번 청문회 때 저랑 붙은 정치인 3명 다 어떻게 된 줄 아시죠? 파면됐습니다. 2선, 3선, 4선 의원인데 모두 정치계에서 발을 뗐어요. 제가 아무런 힘이 없었다면 그게 가능했을까요?”

국민적 여론이 거세게 일어나서 자연스레 발생된 결과다.

하지만 지금은 팩트보단 나의 기세로 밀어붙일 때다. 모든 정황의 근거는 나의 자신감이다.

“그건 아는데…….”

제발 좀 믿어라, 이 할망구야!

이대로 일을 그르칠까 봐 속이 타들어 갔다.

“믿든 말든 그건 알아서 하시고요. 대신 본인의 선택에 책임은 지셔야 할 겁니다. 지금 결정하시죠.”

“지금?”

“그럼 내일 다시 올까요?”

시간을 많이 줘 봐야 잡생각만 많아진다. 그 잡생각은 합리적인 판단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선택할 시간을 드리는 게 최선의 배려라 생각합니다. 나중에 이 시간을 두고두고 후회하지 말고 현명한 판단 하시길.”

“자, 잠깐만. 나한테 시간을 좀 줘.”

염광순의 얼굴에 복잡한 심경이 훤히 드러났다. 이 정도면 됐다.

“드리죠. 1분.”

시간이 촉박할수록 이성적인 사고가 마비된다.

“너무하잖아!”

“제가 참을성이 별로 없어요. 오케이, 2분. 더는 없습니다.”

염광순은 테이블에 팔꿈치를 기대고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그녀가 생각에 잠긴 사이, 나는 다음 플랜을 머릿속으로 되새겼다. 하나의 스텝만 어긋나도, 모든 게 무너져내릴 수도 있다.

“째깍, 째깍, 째깍. 시간 된 거 같은데요.”

내가 뻔뻔하면서 여유로운 위치에 있다는 걸 강조해야 한다.

“그러면 알려 주면 어떻게 되는 건데?”

마이너스를 실컷 들려줬으니 이제는 플러스에 관한 이야기를 할 차례다.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사용해야 효율적이다.

“자녀분들 이끌어 드릴게요. 두 분 다. 취직할 생각이면 원하는 관공서나 기업을 고르세요, 그럼 특채로 취직될 겁니다. 그게 아니라도 사는 데 여러 가지 도움이 되겠죠? 그리고… 현재 교회 수사를 중단하겠습니다. 검찰 조사도 멈출 거고요. 다시 교회는 예전처럼 운영하시면 됩니다.”

이 정도면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 될 것이다.

“나한테 믿음을 줘.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어?”

내가 이렇게까지 몰아붙였는데, 어떻게 상식적인 사고를 할 수 있을까. 대단한 현실 감각이다.

“믿음은요, 사장님이 아까 얘기했던 더 높은 종인 사람이 요구할 수 있는 겁니다. 지금 저보다 아래에 계세요. 잊으셨어요? 저는 대국푸드 부사장입니다. 더구나 유명하기까지 해요. 정치계는 물론이고 방송계 사람들까지 힘깨나 있는 사람들은 다 이 핸드폰 안에 있거든요.”

나는 핸드폰을 꺼내 흔들며 말했다.

“그래도…….”

이때가 한 번 터뜨릴 타이밍이다. 염광순에게 남아 있을 상식적 판단을 몰상식으로 덮어 버려야겠다.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이봐, 사장님이라고 존대해 주니까 당신이 뭐라도 된 거 같아? 내가 좋게 말할 때 들었으면 서로 좋잖아. 꼭 이렇게 얼굴 붉혀야 알아 처먹지? 거, 왜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드나!”

소리를 치면서도 내 가슴이 콩닥콩닥거렸다.

“문서라도, 각서 같은 거…….”

“주제 파악 못 해!”

나는 아랫배에 힘을 빡 주고 호통을 쳤다.

“아, 알았어. 알았다고…….”

드디어 염광순이 깨갱하며 움츠러든다.

‘약간 불쌍해 보이기도 하는 이유는 뭘까.’

강한 권력에 주눅 든 인간을 바로 눈앞에서 목도하고 있다. 게다가 그 인간은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고, 권력에 너무나 잘 순응하는 타입이라 더 측은하게 보이는 모양이다.

“까먹지 않으려면 종이에 적어야 할 텐데, 지금은 기록할 만한 게 마땅치 않네요.”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염광순이 몸을 움직여 종이와 펜을 가져왔다.

“행동이 재빠르시네요.”

“아직은 건강한 편이지…….”

아까처럼 격앙된 어조는 전혀 없다. 목소리 크기도 작아졌다.

“좋습니다. 그럼 이제 저한테 설명해 주면서 거기에 적어 주세요.”

“나보고 적으라고? 뭘, 어떻게 적으라는 거야. 그냥 말로 할게.”

“포인트만 적으라고요. 구체적인 건 말로 설명하더라도.”

염광순의 자필로 쓴 내용도 증거물이 될 것이다.

“알았어. 내가 처음에 어떻게 했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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