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 가오픈
강수연이 회원들 틈바구니에서 나타났다. 수연이를 잡아 끌어 골목 구석으로 데려갔다.
“지금 뭐하자는 거야?”
“네?”
“저 사람들, 네가 다 데려온 거야?”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 같아, 수연이가 조금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됐어요… 죄송해요.”
“팬미팅 한 번으로 끝난 걸로 아는데, 아냐?”
“맞는데요, 근데… 회원들이 너무 아쉬워해서요… 제 선에서 정리하기가 너무 벅차요. 저도 이럴 줄은 몰랐어요.”
강수연이 살짝 울먹이려고 한다.
극성맞은 사람들까지 수연이가 컨트롤할 순 없을 거다. 얼핏 봐도 드센 여자들이 많아서, 나이 어린 수연이를 깔보는 경우도 제법 있었을 거다.
“내가 이제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카페 운영자로서 말해 봐.”
“그래도 사람들 마음이 있으니까… 축하해 주고 싶은 게 전부예요. 기념으로 선물을 준비한 거고요. 다른 뜻은 없어요.”
아무리 그래도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축하받는 사람이 불편하면 적당선에서 그만둬야 하는 게 상식이다.
“오케이. 알았다. 다그치지 말라는 거네. 또?”
수연이 입장에선 매우 난처할 거다.
“차는 그냥 받아주세요.”
“그건 안 돼. 너 저 차가 얼만지나 알아?”
한두 푼도 아니고 억대가 넘어가는 차다. 분명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럼 어떡해요! 저 두 분이 카페에서 가장 높은 등급인 회원분이에요.”
“그게 뭐? 높은 등급의 회원이 주는 선물은 무조건 받아야 된다는 거야?”
절대 권력이라도 되는 줄 아나… 인터넷 세계라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건가.
“제가 확실히 받으실 거라고 얼떨결에 말해 놔서…….”
“그렇게 함부로 말하면 어떡해? 말은 책임이고 신뢰이자 약속이라고.”
“그러니까 부탁 좀 드릴게요! 저분들 엄청 열심히라서 사장님이 원하는 대로 활동해 줄 거예요.”
수연이가 나이도 어리고, 그녀들의 기에 눌려 맥없이 허용한 게 틀림없다.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냐.”
언론사 기자의 귀에 들어간다며 골치 아파질 만한 사건이다.
‘인기를 빌어 고액의 수입차를 선물받다니.’
나만 잘 처신하면 괜찮을 거 같기도 한데.
“외부에 새어 나가는 일은 없을 거예요. 우리 카페는 회원들끼리 단합이 정말 잘돼 있거든요. 진짜 믿으셔도 돼요!”
내가 걱정하는 부분을 간파하고 있는 강수연. 왜 이렇게까지 카페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알았다. 좋은 수가 생각났어.”
어차피 저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괜히 악감정 불러일으켜선 좋을 게 없다.
“뭔데요?”
“차의 가격만큼 카페 이름으로 기부를 할게. 그걸로 퉁 치자.”
“허어… 괜찮으세요, 그래도?”
안 괜찮다면 어쩔 건데, 어쩔 수 없는 일이 돼 버렸다.
“괜찮아. 좋은 일 하는 건데, 뭐…….”
가뜩이나 돈 들어갈 데도 많은데 예상치 못한 지출을 하게 생겼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그래.”
성의를 보이는데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아니지, 먼저 예의를 차리지 않은 건 저들 아닌가? 모르겠다, 복잡하다.
“죄송해요. 계획대로 잘돼 가고 있었는데, 이렇게 막판에…….”
잘못한 게 없는데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잘했어. 세상에 완벽한 기획은 없으니까.”
나만 해도, 매번 일을 할 때마다 변수에 부딪힌다.
나는 강수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오늘 하루 고생했고.”
“사장님…….”
글썽이며 나를 보는 눈빛이 뭔가 좀, 그랬다.
“머, 먼저 나가 있을 테니까 천천히 나와.”
내가 골목을 나와 사람들 앞에 나섰다.
“뭐하셨어요? 다들 기다렸단 말이에요.”
최민서가 기다렸다는 듯이 뛰어왔다.
“잠깐 얘기 좀 하느라… 그나저나 이사 간 거 아니었어?”
“갔죠. 하도 관심을 안 주시길래.”
몇 달간 보이질 않아서 이사 간 줄 알고 있었다.
“근데 왜 카페 활동을 하는 거지?”
그 정도의 반응을 보였으면 이제 포기할 단계 아닌가. 사람 불편하게시리.
“제 취미 활동이거든요? 이것도 허락 받고 해야 돼요?”
굉장히 날카로운 반응이다. 더 이상 말하기 싫어진다.
“뭐, 그건 너 좋을 대로 하고.”
“오셨네요? 주인공이시니까 선물부터 받으시고!”
류세영이 다가와 차 키를 건네려고 했다.
“어떻게 차가 금방 나온 겁니까.”
그게 제일 궁금했다.
팬미팅 공지를 띄우고 채 10일도 되지 않아서 만났다. 그사이에 회원들끼리 모금을 하고 차를 계약했을 텐데, 도저히 차가 출고될 수 있는 스케줄이 아니다.
“다 방법이 있죠.”
류세영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보통은 몇 주 걸리지 않습니까.”
수입차는 바로 받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마세라티 같은 럭셔리 브랜드의 경우 몇 달은 족히 기다려서 차를 인도받는 게 보통이다.
“아는 수입사가 있어서 구해 줬어요. 뭐 그런 건 신경 쓰실 거 없고, 몰아 보세요.”
류세영이 키를 찰랑거리며 내게 건넸다.
“아니, 저기… 죄송한데요. 이건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내 체면이 있으니 한 번은 발을 빼줘야 한다.
“성의라고 생각하세요. 애정이 담긴 성의.”
“너무 과한 선물입니다. 아까 케이크만으로도 큰 선물 받았다 생각합니다.”
“받아요. 정가 다 주고 산 거란 말이에요. 급하게 빼느라 프로모션 한 푼도 못 받았어요.”
최민서가 망설이는 나에게 키를 떠밀었다. 그 틈에 류세영도 키를 건넸다. 하나씩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거 류승주 사장님이 아시면 제가 곤란해집니다.”
수연이와 대화를 끝냈다고 너무 쉽게 받아선 안 된다. 어디까지나 상식선을 넘어서는 선물이니까.
“오빠가 관여할 사항은 아니라고 보는데요? 제 돈으로 산 거예요. 쇼핑도 마음대로 못 합니까?”
류세영의 당당한 태도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쇼핑이라, 마세라티를 기분 전환용 쇼핑으로 할 수도 있지… 재벌이라면. 어차피 전액 낸 것도 아니고.
“어쨌든 알겠습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사실, 차까지 직접 끌고 왔으니 거절할 도리가 없다. 오히려 내가 거부한다면 류승주 사장에게 일러바칠 가능성이 크다. 류씨 집안 사람들은 유치한 유전형질을 타고났으니.
“이렇게 흔쾌히 받으니 얼마나 보기 좋아요? 서로 해피엔딩이잖아요?”
류세영은 어느새 우아함을 몸에 장착한 여인으로 변모했다.
“칫, 어차피 받을 거면서…….”
최민서가 뾰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나에게 쌓인 게 꽤나 많을 거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가운데로 오세요.”
류세영이 은근슬쩍 내 팔짱을 꼈다.
“제가 가겠습니다.”
팔짱을 풀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었다.
팬미팅만 하면 여론전은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았는데, 자꾸 일이 커지는 느낌이다.
‘그래도 고맙긴 하네.’
내가 뭐라고. 많은 이들의 시간과 정성에 보답하고 싶다.
“여기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차를 선물해 주신 것도 감사하고요.
주변에 모인 카페 회원들에게 말했다. 내가 둘러보며 말하는 동안 주변은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간헐적으로 환호성이 들렸다.
”딱 두 가지만 묻겠습니다.”
최민서와 류세영이 가장 많은 돈을 냈다지만 다른 회원들도 조금씩 거들었을 거다. 금액보다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
“지금 시간 좀 있으십니까.”
“네!”
“당연하죵!”
“저 한가한 여자예요!”
여기저기서 폭죽처럼 답변이 터져나왔다.
“좋습니다. 그럼 혹시… 분식 좋아하십니까.”
짧은 찰나였지만 멈칫, 조용해졌다.
“조, 좋… 아요.”
누군가 나지막히 말을 꺼냈고 여기저기서 “좋아요.”, “좋아합니다!”, “엄청 좋아해요.” 등의 긍정 답변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급기야 합창이라도 하듯이, 아니다. 일제히 큰 함성을 지르는 군가처럼 들렸다. 그 에너지가 막강했다.
“좋아요!”, “정성분식 좋아요!”, “정수찬 사랑해!”
군중이 열성적으로 떼창하는 모습이 조금은 두려워 뒷걸음질칠 뻔했다.
“자, 잘됐네요. 그럼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정성분식의 음식으로 대접해 드릴게요!”
곳곳에서 터지는 기쁨의 환호가 함성이 되어,
“최고!”
“배려심 쩔어!”
“미쳤자, 진짜!!”
이 동네를 스포츠 경기장으로 만들었다.
정성분식 직원들이 유리창에 바짝 붙어 바깥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마자 화들짝 놀란다.
“뭘 보고들 있어?”
“아, 아니 그냥요… 왜들 저러는 거예요?”
“그러게 말이다. 오늘 가오픈 하자.”
“네?”
다른 직원들도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갑작스러운 일이라 미안하다. 그런데 좋은 기회야.”
“무슨 기회라는 거예요?”
송용진이 대표로 물었다.
“정성분식의 컴백을 홍보할 기회.”
* * *
“뭐야, 더 맛있어졌어!”
“이게 말이 돼? 진짜 분식이 뭐 이래.”
“튀김이 미쳤다!”
다들 감탄을 멈추지 않았다. 오랜만에 손님이 가득 찬 홀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형님, 오늘 팬미팅 하셨다면서요? 아까 수연이한테 들었어요.”
“그래, 어쩔 수 없었다.”
“축하드려요! 팬미팅도 하시고…….”
하루 종일 축하한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
“이게 축하받을 일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무사히 지나간 거 같다.”
“사람들 반응이 좋은데요?”
송용진이 홀을 보며 말했다.
“원래 맛있잖아. 거기다 떡볶이도 조금 업그레이드했고. 영향이 있지 않겠냐.”
가게를 쉬고 있는 동안, 아주 미묘하게 양념의 배합 비율을 바꿨다. 기존의 떡볶이보다 약간 더 매콤한 맛을 가미했다.
“바뀐 맛을 알아채기는 어려울걸요?”
“그러려나? 어떠세요, 오늘이 첫 데뷔 날이 되었네요.”
옆에 있던 장택수에게 물었다.
“뭐… 별게 있수? 평소와 똑같이 했소.”
저 말투는 쉽게 고쳐지는 게 아니구나.
“아무튼 축하드립니다. 고객들의 얼굴을 보니, 데뷔전이 아주 성공적입니다.”
“후훗, 그렇게 말해 주니 마음이 놓이는구려. 고맙소.”
그래도 약간은 긴장을 했던 모양이다. 내 칭찬에 장택수의 얼굴이 환해진다.
“어떻게, 음식은 입에 맞으십니까!”
홀 전체가 울리도록 큰 목소리로 말했다.
“완전히요!”
“맛있어요.”
“더 먹어도 돼요? 헤헷.”
굳이 묻질 않아도 만족도는 알고 있었다. 사람들 얼굴 표정만 봐도 답은 바로 나오니까.
“음식은 더 있습니다. 말만 하시면 얼마든지 더 드리겠습니다. 정성분식은 내일부터 정식 오픈합니다.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이 정도면 다 알아들었을 거다. 굳이 홍보 부탁드린다고 말할 필요까지 없다.
“자자, 우리 회원분들 맛있게 드시고! 모자라면 더 드시고! 인터넷 카페나 각종 포털 사이트에 홍보 부탁드려요. 아시겠죠?”
강수연의 등판에 어수선한 분위기가 착 달라붙으며 정리되는 느낌이다.
“네!”
“그건 걱정 마세요.”
“수찬 님이 하시는 데면 당연히 대박 나야죠!”
내가 하는 곳으로 알면 안 되는데.
“감사합니다. 회원분들만 믿을게요!”
의외로 강수연의 리더십을 보는 순간이었다. 하긴, 그런 기질이 있으니 카페도 운영하는 거겠지.
“사장님, 뭐 하세요? 안 나오세요?”
“왜 나와야 돼? 우리 다 셀프잖아.”
맛있게 먹고 있는 사람들 보는 게 더 좋다. 홀에 나가 봐야 할 일도 없고.
“얼굴 비춰야죠. 이분들에게 정성을 보이는 만큼 정성분식의 매출이 달라지니까요.”
“수연아 근데 나는 표면상 여기 대표가 아니잖아.”
이미 매스컴에 다 보도된 상태라 내가 더 나서면 그림이 이상해질 수 있다.
“아, 그러네? 그럼 용진이 오빠랑 같이 가면 되겠네요. 오늘 너무 사장님처럼 구셨어요. 아시죠?”
강수연 얘는 볼수록 영악하다.
“압박을 받는 기분이다?”
“에이, 설마요. 투자자님한테 제가 감히 그럴 수 있나요? 아, 투자자인 것도 사람들이 알면 안 되잖아요. 그쵸? 그럼 가서 해명해야겠네요. 용진이 오빠가 사장이라는 걸 소개하면서.”
“그래, 알았다…….”
오늘 내가 좀 오바한 면이 없지 않다.
“자, 그럼 두 분은 나가세요!”
강수연이 송용진과 나를 동시에 떠밀었다. 사명감 때문일까, 수연이 힘이 장사다.
“왜 이래요? 얘.”
“몰라, 그냥 시키는 대로 해.”
“한 바퀴만 돌고 오세요. 두 분!”
“알았다.”
카페 운영자의 권위에 떠밀려 우리는 테이블을 하나씩 돌았다.
“맛있게 드십시오. 이 친구가 여기 대표입니다. 제가 아끼는 동생 녀석이라… 잘 부탁드립니다.”
이런 식으로 로봇처럼 말하면서 돌아다녔다.
“형님, 좀 더 자연스러울 순 없어요?”
“없어. 지금 집에 안 가는 것만 해도 고마운 줄 알아.”
최민서와 류세영이 있는 테이블에 도착했다.
“맛은 괜찮으십니까.”
둘이 화해했나. 왜 같이 앉아 있지.
“맛이 나쁘진 않네요.”
류세영이 불편한 기색을 여실히 드러냈다.
“맛있어요! 간만에 먹으니 또 새롭네요.”
최민서가 류세영을 의식해 더욱 명랑하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여기 이 친구가 정성분식의 대표입니다. 제가 아끼는 동생입니다.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같은 말 반복하기도 힘들다.
“대국푸드는 일 안 해요?”
대뜸 류세영이 나를 올려다보며 묻는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오빠는 뭐하는 건지. 이렇게 맛있는 가게를 인수해서 벤치마킹해야지! 답답하네, 진짜.”
혼잣말처럼 말하지만 목소리 톤이 높은 걸 보면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다.
“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윽!.”
송용진이 운을 띄우려는 걸 옆구리를 찔러 제지했다.
“네? 뭐라고요?”
“아뇨, 얼마 전보다 더 맛있어졌다고요. 드실 만하시죠?”
눈치껏 기지를 발휘하는 용진이를 보며 안도했다. 굳이 들쑤실 필요가 없는 벌집을 건드릴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