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5 <-- 튜토리얼: 던전 운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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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정령 운디르나 선배가 손으로 보이는 부분을 앞으로 내민다.
그 물이 흐르는 듯한 모습에 집중하며, 네임드를 만들기 위해 무슨 소리를 하는지 귀를 기울인다.
“네임드를 소환하는 방법은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야. 다만 고유 스킬이 없으면 불가능하거든. 그런데 넌 있는 것 같으니까 알려 줄게.”
“고유 스킬이 없으면 네임드를 소환 못 하는 건가요?”
바로 떠 오르는 궁금증을 물어보자, 운디르나 선배님이 방긋 웃으신다.
하지만 뭔가 집중하는 듯하여 일단은 지켜보았다.
“그렇지, 고유 스킬이 없으면 DMP로 던전을 꾸밀 수밖에 없거든. 하지만 고유 스킬이 있으면 자신의 고유 스킬을 뿜어내 한 점에 모아 네임드가 태어날 환경을 조성할 수 있어. 그래서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이란다.”
선배님에게서 작은 호수를 만들 정도로 거대하고 힘이 담긴 액체가 뿜어져 나온다.
곧바로 앞에 작은 호수가 형성되고, 거대한 물기둥이 솟아오른다.
베히모스가 나올 때와 비슷한 물기둥의 크기이지만, 거기엔 그렇게 무섭게 생기거나, 몸집이 큰 녀석은 나오지 않았다.
인어인지, 바다표범인지, 푸른 피부의 물고기 모양의 아름다운 정령이 나와 우리가 서 있는 쪽으로 다가온다. 게임상에서는 스탯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 다른 사람의 네임드여서 안 되는 걸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이름을 지어주는 행위란다. 이 아이는 내가 너에게 주는 선물이야.”
“네……? 그래도 되는 건가요?”
푸른 물고기인지, 사람인지 아름다운 정령이 나에게 다가와 뺨을 비빈다.
무심코 귀여운 모습에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 아이는 우리 귀여운 후배에게 주는 선물이니까, 네가 이름을 지어 주렴.”
나는 처음으로 외모가 귀여워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세상에 와서도 내가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로, 처음의 후회 말고는 이상할 정도로 당황하고 있지 않지만 말이다.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앞의 정령을 쓰다듬자, 그 아이의 스탯이 홀로그램처럼 눈앞에 나타난다.
이름: 없음
종족: 메로우
레벨: 1
특수 스킬: 화염 내성, 정화, 반응 가속
푸른 화면에, 메뉴 같은 느낌의 홀로그램.
게임상에서도 몬스터를 클릭하면 그 몹의 스탯이 하단에 나타났었는데, 그런 느낌으로 공중에 뜨는 것 같다.
세부적인 스탯이 나타나지 않는 게 그 게임에서의 답답함이었는데, 아마도 게임 사양과 비슷한 세계라고 생각하니 이런 사양도 이해가 간다.
그렇다고 게임이라고 단정 짓기엔 너무 현실적인 느낌이 강하다. 당장 지금 밟고 있는 흙이나 바람 따위가 말이다.
“그래도 네가 네임드를 만들지 못하면 이 아이는 안 줄 거니까?”
“알았어요……”
나에게 다가와 안긴 귀여운 메로우를 안아 데려가신다.
일부러 조금 더 당겨보았는데, 너무 시원스럽게도 메로우는 운디르나 선배에게 빼앗겼다.
그래도 나만의 네임드를 만들면 된다. 왠지 1+1 행사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어떻게?
“네 앞에 한 곳을 생각하고, 고유 스킬을 발동시키는 거야. 온 힘을 다해서 쓰는 거지.”
“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어요.”
“또 스켈레톤을 불러 줄까?”
갑자기 서늘한 느낌으로 말씀하시기에 나는 등골에 땀이 절로 흘렀다.
그때 그 공격받은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다시금 시간 정지 능력을 써 보았다.
차라리 어떤 주문이라도 있으면 쉬웠을 텐데, 느낌이라고 두리뭉술하게 설명하니 고유 스킬이 발동되지 않는 것 같다.
“어?”
내 손에서 세피아 색의 액체가 뻗어 나간다.
주변에는 째깍째깍 소리가 들리는 듯하며, 세피아 색의 액체가 내 앞 공간에 모인다.
운디르나 선배님이 형성한 고인 물만큼은 아니지만, 점점 세피아 색 액체가 웅덩이를 형성한다.
겨우 페트병 하나쯤 되는 양의 액체를 내었을 뿐인데, 땀이 나고 체력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든다.
“조금만 더 집중하렴, 네임드를 만드는 건 한 달에 한 번 정도밖에 할 수 없어. 그래서 그 때마다 가장 강렬한 힘을 집어넣어 만드는 거지.”
“으으……”
젖 먹던 힘까지 몸에서 흐르는 마력인지, 세피아색 액체를 유출시킨다.
그러자 제멋대로 날개가 부르르 떨리고, 으슬으슬 점점 추워진다.
선배님께서 내 몸을 따스하게 감싸주지 않으셨다면 그대로 얼어 죽었을지도 모른다.
“아아아!”
기합을 주고 남은 한 방울까지 짜낸다.
액체로 된 운디르나 선배님께서 점점 내 몸을 깊숙이 감싸주시고, 온몸이 물속에 젖은 상태에서 고유 스킬을 짜내는 행동이 계속되었다.
“하아, 하아…….”
나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마지막 한 방울이 손에서 유출되는 순간을 바라보았다.
아직까지 몸에 연결된 것처럼, 바깥으로 빠져나간 세피아 색 액체가 몸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힘이 모인 곳에선 생명이 탄생하거든. 우리는 그런 상황을 임의적으로 발생시키는 거야. 힘들지? 잠시만 앉아 있으면 곧 저기서 생명이 나올 거란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바닥에 쓰러지듯 앉았다.
엉덩이 뒤쪽이 살짝 걸려서 돌아보니 꼬리가 축 늘어져 있다.
세피아 색 웅덩이를 계속해서 보고 있으니 그 안에서 뭔가가 맥동하듯 움직이며 점점 인간의 형체를 이룬다.
“어머, 처음부터 강렬한 힘이 느껴지는걸? 너는 좋은 마스터가 될 수 있을 거야.”
웅덩이의 크기는 선배님에 비해선 엄청나게 작았다.
선배님은 하나의 거대한 호수를 만들었다면, 나는 겨우 페트병 두 개쯤 쏟아 부은 정도……
선배님이 내 몸에서 점점 떨어지니 젖은 옷이 피부에 자꾸만 들러붙는다.
세피아색 웅덩이는 나와는 상관 없이, 완전히 한 인간의 모습을 이루었다.
아니 인간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아름답다.
아름다운 금발의 머리카락과 금빛 눈동자. 그리고 말랑말랑한 피부와 뾰족한 귀.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마도 내 외모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은 엘프가 만들어졌다.
“으음, 설마 친구를 원했던 거니?”
“아, 아니거든요.”
저런 어린 여자애가 친구라면 솔직히 거부한다. 너무 어리다.
그 아이는 나를 바라보더니, 흥분이 가득 찬 눈빛으로 나에게 달려온다.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말을 잃었지만, 그 작은 입술이 열리며 신비로운 목소리가 나온다.
“주인님!”
“어, 어어…… 제가 이 아이의 주인이 되는 건가요?”
“음, 그래. 네임드는 보통 마스터를 따르게 되어 있거든. 메로우는 네게 선물해 주는 아이니까 특별히 만들어 주었지만 말이지. 흠, 그런데 그 아이의 종족은 뭐니? 대충 엘프 근처의 종족이라고는 생각되지만.”
선배님은 흥미로운 모습을 감추지 않는다.
나도 궁금해서 아이의 스탯창을 열어보니, 이번에는 메로우 때와는 달리 바로 스탯창이 열렸다.
이름: 없음
종족: 시간의 엘프
레벨: 1
특수 스킬: 시간 감속, 시간 정지, 시간 가속
“시간의 엘프라고 하는데요?”
“주인님!”
나에게 완전히 달려오고 나니, 나와 키가 거의 비슷한 것 같다.
겉으로 보기엔 또래의 나이라고 생각되겠지만, 미안하지만 내 속은 20대 남자야.
시간의 엘프는 갓 태어난 상태에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듯하여, 나는 재빠르게 남은 나의 50 DMP를 이용해 옷을 만들어 입혔다.
“자 세이나, 메로우도 같이 데려가렴.”
“네……!”
“둘 다 이름을 붙여줘야지? 두 명 다 너의 네임드란다.”
“아아……”
솔직히 말에 메로우라는 생명체는 너무 특정한 아이스크림 이름이 생각나서 짓기 힘들었다.
하지만 녹색은 아니니, 일단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이름을 지어 보았다.
“메로우는 소멜, 시간의 엘프는 시엘.”
나에게 이름을 받은 아이들의 표정이 좋아 보인다.
둘 다 주변이 반짝반짝 빛나는 듯했지만, 눈에 띄는 변화는 거의 없었다.
“주인님! 제 이름은 시엘이에요?”
10살 남짓한 엘프가 나를 주인님이라고 말하며 다시 나를 껴안는다.
소멜이라고 이름 지어진 메로우도 질세라 나에게 달려들어 나는 넘어졌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귀엽지만 조금 부담스럽긴 하다.
“그럼 이제 기본적인 건 다 알려준 듯하네. 다른 기능들은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될 듯하니, 우리 네임드 텔레르나에게 너의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줄게.”
“네……”
나는 게임상의 튜토리얼을 기억해 낸다.
네임드 같은 아이들은 게임상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튜토리얼이 끝난 다음엔 선배로부터 멀어지는 시스템이었다.
게임상에선 그렇게 크게 느끼지 못했지만, 하루 남짓한 시간 동안 선배님과 정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멀어진다니 마음속 어딘가가 텅 비는 느낌이다.
“아니, 아니, 우리는 언제든 만날 수 있단다?”
“아아……”
나도 모르게 표정으로 그런 마음이 드러난 것 같다. 선배님이 물 몸으로 내 등을 두들겨 주신다.
그리고는 베히모스 텔레르나에게 뭔가를 말하니, 갑자기 거대한 베히모스가 작은 돌고래 크기로 줄어든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세이나님. 전투 훈련은 하신 것 같으니, 전략 훈련을 할 것입니다.”
“아…… 네.”
텔레르나의 뒤를 따르며 뒤쪽을 다시 돌아보니 운디르나 선배님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긴, 이렇게 거대한 미궁을 돌보면서 후배를 돌보는 행위는 매우 피곤하고도 힘든 일일 것이다.
나도 언젠가 나만의 던전을 만들어서, 운디르나 선배님을 초대할 것이라는 생각을 품고, 나의 네임드들에 비해 뒤처진 발걸음을 재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