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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속 서큐버스-7화 (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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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빨리 다음 내용을 알려주세요.”

“허허, 그래요. 늙은이는 마스터의 말을 따릅니다. 세이나 마스터님에게 가르침을 드리는 건 저희 마스터님이 내리신 명령이니까요.”

텔레르나 씨는 그렇게까지 늙어 보이지는 않지만, 다른 종족이어서 나이를 알 수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그러면 대체 운디르나 선배는 얼마나 늙었다는 소리일지, 생각은 일부러 하지 않기로 한다.

“주인님! 배고파요.”

“아, 그러고 보니 DMP로 밥도 먹을 수 있는 건가요?”

시엘의 말을 듣고 보니, 배가 고파온다.

곧바로 궁금증이 떠오르는 걸 텔레르나 씨에게 물었다.

서큐버스인 나의 식사는 배가 고파도 그다지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텔레르나 씨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메뉴에서 DMP를 사용하여 음식도 불러낼 수 있답니다. 물론 맛있을수록 비싸지요.”

“그럼 우리 네임드들은 제가 밥을 줘야 하는 건가요?”

텔레르나 씨는 커다란 고래 입을 뻐끔거린다.

“물론이죠, 권한 이행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아아……”

푸른 인어 같은 메로우 소멜과 나와 키가 비슷한 금발의 엘프 시엘이 자꾸만 나를 부담스러운 표정으로 살펴본다.

게다가 스켈레톤 5기, 아니 이제는 스켈레톤 상급 병사 1기와 스켈레톤 4기도 나를 바라보는 느낌이다.

“그…… 알았으니까.”

“참고로 DMP로 구매한 아이들은 DMP를 흡수하는 순간 식사가 자동 처리되므로 괜찮습니다.”

“그럼 저들은 왜 저렇게 부담스럽게 저를 쳐다보는 건가요?”

“호호, 그건 명령을 내리지 않아서입니다. 대기 명령을 내리시지요.”

“…… 스켈레톤들아 대기.”

내 말에 스켈레톤 상급 병사 외 4기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다.

깜짝 놀랐지만, 텔레르나 씨는 허허 웃으며 저 모습이 원래 스켈레톤이 쉬는 모습이라고 알려주셨다.

그리고, 대망의 밥.

내 음식은 생각보다 DMP로 바꿀 수 있는 음식 메뉴에서 정상적인 게 많았다.

서큐버스라고 해도 정말로 상상만 해도 야한 음식이나, 꿈 따위를 먹는 건 아니다. 이 세상에서는 평범한 음식을 먹어도 괜찮은 것 같았다. 이 세상의 사양에 다시금 안도의 마음을 놓았다.

DMP 자체를 먹을 수 있기까지 했다. 이건 조금 놀라웠지만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면 피자 한 판.”

소멜 같은 인어가 과연 이걸 먹어도 괜찮은지 모르겠지만, 내 앞에 피자 한 판이 나타났다.

[10 DMP로 피자 한 판을 주문합니다.]

왜 주문한다는 메시지가 떴는지는 모르겠지만, 따끈따끈하게 김이 날 정도의 피자에 저절로 군침이 돌았다.

“이게 뭐야 주인님?”

“미야아아?”

“저도 처음 보는 물건입니다만.”

분명 메뉴에 있었는데, 정말 처음 보는 걸까?

어쩌면 나는 내 과거의 기억들이 메뉴에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닐까 가설을 세워 본다.

그래도 일단 먹는 거니, 열어젖혀 피자 하나를 꺼낸다.

쭉쭉 늘어나는 피자에, 소멜은 기겁하고 놀라 자빠지고, 시엘은 궁금한 듯 내가 먹는 장면을 지켜본다.

“잘 먹겠습니다!”

피자를 한 입 베어 무니 이는 송곳니가 약간 튀어나온 것 같다.

시엘도 나를 따라 “잘 먹겠습니다!”라고 외친 뒤 한 조각을 베어 물었고, 입안에 퍼지는 치즈의 진한 맛에 맛있는 듯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소멜도 시엘이 먹는 걸 보고 뒤늦게 달려와 웅얼거리고는 피자를 한 조각 가져가 먹는다.

“맛있다! 주인님 최고!”

아쉽게도 내가 아는 한 호감도라는 개념은 없다.

시엘은 갓 태어난 개체인데도 생각보다 상식이라던가, 그런 면이 어린아이 같지 않게 있는 것 같다.

저 나잇대라면 입 주변에 마구 토마토를 묻히며 먹을 텐데, 시엘은 매우 깔끔하게 먹고 입가심까지 완벽하게 해낸다.

“그럼 계속해서 전략 훈련을 해 볼까요? 이제는 10:10 전투입니다. 던전 내에서는 많은 수의 사람이 찾아와도 일부만 끊어 대결할 수 있도록 짧은 통로를 만드는 게 팁이라는 걸 남겨달라고 하시는군요.”

“네”

그렇게 나는 계속해서 스켈레톤을 10기로 맞춰 소환하며 텔레르나 씨와 대결을 펼쳤다.

그러는 동안 우리 쪽의 스켈레톤은 점점 자라난다. 훈련을 마친 시각엔 우리 편에는 스켈레톤 메이지 둘과 상급 병사 하나, 스켈레톤 장수 하나가 남게 되었다.

전투 중에 소멜과 시엘을 다루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이 아이들은 스켈레톤 따위는 한 방에 3~4기씩 보내버리는 마법을 쓰기에, 나는 전략 훈련을 위해 중간부터는 쉬게 내버려 두었다.

처음의 전략 훈련 이후에도 지칠 정도로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하늘은 여전히 해가 떠 있는 것처럼 맑다.

“여기 하루는 대체 몇 시간인가요?”

“음, 이 필드는 낮 필드이지요. 아무래도 마스터는 어린 듯하니, 잠이 오는 것 같습니다. 밤 필드에 가서 잠이라도 청하겠습니까?”

“…… 조금 졸리긴 해요.”

계속해서 스켈레톤을 소환하려 메뉴를 들락날락하며, 내 스탯에 대해서도 보게 된다.

거기 떠 있는 서큐버스라는 종족 구분은 계속해서 눈에 밟힌다.

서큐버스가 어떻게 낮에 활동할 수 있는 것인지부터가 궁금하지만, 밤의 필드라는 곳도 궁금해졌다.

“텔레르나 씨는 잠을 안 자는 건가요?”

“허허허, 베히모스는 뇌가 세 개. 한 개의 뇌가 깨어있을 땐 다른 두 개의 뇌가 잠을 자는 상태이지요. 그런 식으로 하루 24시간 동안 깨어있을 수 있답니다. 물론 마스터님들은 다른 방식으로 24시간동안 깨어 있지요. 던전에선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니까요.”

“그렇군요……”

쏟아져 오는 잠을 억지로 참는다. 뒤에서는 내가 훈련하는 동안 낮잠을 한참 동안 잔 시엘과 소멜이 깔깔거리며 내 뒤를 따라온다.

그런데 마스터는 잠이 없는 걸까? 운디르나 선배님은 철야를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다시금 마스터의 책임감 따위가 무겁다는 게 느껴진다.

“주인님, 눈 밑에 그건 뭐야? 피곤해?”

“응……”

“그럼 내가 무릎 배게 해 줄 테니까 잘래?”

“일단 다음 필드로 가 보고 말이지.”

텔레르나 씨를 따라 가보니, 이젠 완전히 어둠이 서린 밤의 필드에 도착했다.

하지만 내 눈은 낮처럼 밝게 보였고, 오히려 편안한 마음까지도 든다.

“여기 인간형 몬스터들을 위한 휴식처가 있으니 오실까요?”

“네……”

한참을 쏟아지는 잠을 꾹 참는다.

종족 구분 따위는 어디 버린 건지, 이 세상의 서큐버스들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인간형 몬스터들의 숙소인지 휴식처에 도착하고 보니, 텔레르나 씨는 인간형으로 변신한다.

정말 신사 같은 모습이다.

“저는 남자이니까, 마스터님과는 다른 방에서 쉬겠습니다.”

“네……?”

졸려서 잘 모르고 있었지만, 내 옆에 달려드는 소멜과 시엘을 바라보니, 아무래도 나는 텔레르나 씨와 다른 방에서 자게 된 것 같다.

나에게 준 열쇠를 받아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말 RPG 계열의 게임 속에서 여관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은, 나무로 지어진 중세풍의 여관에 다니는 날개나 꼬리가 달린 인간형 종족들의 모습.

밤의 종족인 걸 대놓고 드러내는, 검은 계열의 몸을 드러내는 옷을 입은 이들이 많기는 했지만, 마법이 강하다거나 해서 본능적인 위협은 느끼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마스터 개체라서 위협을 느끼지 못하는 걸지도 모른다.

방에 들어가 열쇠를 열고, 침대에 눕는다.

편안한 침대이지만, 등과 엉덩이 뒤쪽이 걸려서 자연스레 비스듬히 눕게 된다.

그제야 꼬리라는 게 있었는지, 허탈한 웃음이 나오고 멍하니 앞을 바라보게 된다.

“주인님, 다음엔 저도 전투를 하고 싶어요!”

“응, 우리의 던전을 만들면 지겹도록 할 거니까.”

어쩌면 인간들이 우리 던전으로 찾아오도록 호객행위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이 세상에도 던전 광고판 같은 게 있을지, [이 던전은 무료로 해 줍니다.] 따위의 간판을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주인님 왜 웃어?”

“아아, 아냐.”

“벌써 졸리다. 주인님도 잘 자.”

“응……”

시엘은 소멜을 안은 채 옆에서 새근새근 잠을 청한다.

그 따뜻한 체온이 전해지는 것 같아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나는 언제쯤 이 심장을 때어내 던전을 만들 수 있는 걸까?

아직도 튜토리얼을 벗어나지 못했고, 게다가 배울 점도 무지막지하게 많았다. 현실, 혹은 전 세상에서도 이렇게 공부했으면 아마 좋은 곳에 취직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시엘이 자는 모습을 보니, 그런 생각은 싹 날아간다.

나는 이제부터 이 세상에 산다. 단 하루 전까지만 해도 다양한 현실 걱정이라는 걸 했는데, 지금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내일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런 생각을 품으며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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