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7 <-- 던전 터 잡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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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던전 터를 발견하고 난 뒤로, 2주째 되는 날.
나는 운디르나 선배님께서 짜 주신 훈련 계획대로 몸을 단련하고 있다.
심장을 빼내면, 정말 몸속에서 때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초반부에는 몸이 상당히 허하고 약해진다고 한다.
움직이기조차 힘들 정도라고 하니, 심장을 떼어내고 숨이라도 고르게 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던전에 코어를 박지 않으면 되는 게 아니냐고 묻고 싶지만, 그럴 경우 내가 돌아다니며 DMP를 흡수해야 한다는 단점이 생긴다.
괜히 던전을 만드는 게 아니다. 정착 생활과 유목 생활의 차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일단은 나를 지킬만한, 믿음직한 세 번째 네임드를 태어나게 한 후에 가는 게 좋다는 판단하에 마력을 기르고 있다.
DMP 자체는 넘치는 편이고, 모의전을 쉬는 시간마다 진행해 10만 DMP 이상 쌓아두고 있다. 텔레르나 씨와는 모의전 대신 최근에는 개인적인 수련을 하고 있다.
“주인님! 받아요!”
“응!”
지금은 시엘과 함께 시간의 정수를 주고받으며 호흡을 위주로 훈련 중이다.
세피아 색의 진한 액체를 마력만으로 주고받는 놀이로, 배드민턴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런 간단한 조기 체육 같은 운동으로 어떻게 레벨이 오르냐 싶겠지만, 마력의 세부적인 흐름에 대해 조정할 수 있게 된다.
참, 시엘도 상당히 많이 성장했다. 물론 몸이 성장했다는 게 아니라, 레벨적인 의미로 성장했다.
힘이나 민첩성 같은 시엘의 세부 정보를 알고 싶지만, 그런 고급 정보는 나오지 않는다.
이 정보 창이라는 것은 마스터에게만 보이는 세계의 법칙 같은 것 같다.
이름: 시엘
종족: 시간의 엘프
레벨: 35
특수 스킬: 시간 저하, 시간 정지, 시간 가속, 바람 다스리기
그래도 레벨만큼은 착실히 성장하고 있고, 특수 스킬란에는 바람을 잘 다루는 덕에 칭호처럼 바람 다스리기라는 스킬이 붙었다.
“에잇, 이것도 받아요!”
시엘이 쏘는 바람 마법이 섞인 시간의 정수에, 나는 시간을 정지시킨다.
그러면 시간의 정지된 가운데도 시간의 정수만 나의 법칙을 무시하고 방울인 채로 날아온다.
시간이 정지되어 바람 마법은 무용지물이 되고, 나는 솎아낸 시간의 정수만을 받아친다.
“이얍.”
“우우, 나빠요 주인님. 이러기 있기에요?”
“네가 먼저 마법을 섞었잖아?”
시간의 정수를 정면으로 받은 시엘은 세피아 색 액체에 황금빛 금발이 젖어버렸다.
물론 마력의 정수이기 때문에 몸에는 좋다. 게다가 세피아 색이어서 겉으로 보기엔 젖어도 나쁜 모습으로 보이지는…… 당근 주스를 맞은 것 같은 느낌이다.
뭐, 그래도 속성이 맞는 마력의 정수는 몸에 바르면 피부가 좋아지고 수명이 상승하는 무안단물 같은 존재이다.
과연 시엘에게 수명이 있느냐는 둘째 문제지만 말이다.
“미야아아아~”
하품을 쉬듯 입을 쫙 벌리고 갸르릉거리는 소멜의 턱을 간질여준다.
소멜도 최근에는 나의 네임드답게 시간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얻어가고 있다.
이름: 소멜
종족: 시간의 메로우
레벨: 32
특수 스킬: 화염 내성, 정화, 반응 가속, 시간 가속
종족적인 면, 그러니까 꿈 마법은 닮지 않아서 다행이다.
시간 가속에 대한 능력뿐이지만, 시엘과 함께 지내며 다른 시간마법도 배워가고 있다.
게다가 종족까지 달라질 정도라니, 시엘은 소멜을 착실하게 기르고 있는 것 같다.
“주인님 나빠요!”
“뭐가 나빠, 시엘이 먼저 했는걸?”
“히잉……”
그리고 나의 특수 스킬인 시간 마법 계열도 연습 중이지만, 종족 스킬인 꿈 마법 계열도 무시할 수는 없다.
특수 스킬은 말 그대로 특수 스킬일 뿐, 종족 스킬을 무시하면 균형 잡힌 성장이 안 된다고 하여 꿈 마법도 홀로 연습해야 한다.
그래서, 물의 서큐버스라는 선배님의 네임드, 아리에타에게 도움을 받고 있다.
“마스터 세이나, 이제 훈련할 시간이죠?”
“그…… 조금 있다가 하면 안 될까요?”
“안됩니다. 운디르나 마스터님께선 당신에게 거는 기대가 많다는 점. 알고 계시지 않나요?”
“그래……! 훈련하자.”
아리에타 씨는 정말 무섭게 생기신 분이다.
물의 서큐버스라고 하지만, 날개와 꼬리 색이 약간 푸른빛이 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나보다 훨씬 레벨이 높은 사람이다.
아무리 내가 마스터라지만, 살아온 나이 때문인지, 경험 때문인지 굉장한 차이가 있다.
“오늘은 명상부터 시작하죠, 꿈의 세계로 빠져드는 법은 기억하시고 있겠죠?”
“넵.”
“자, 천천히, 몸에 힘 빼고 말이죠.”
그렇게 말하며 아리에타 씨는 내 몸을 두들긴다.
지금은 서큐버스의 복장을 입고 있지는 않지만, 초창기에는 명상에 들어가는 것도 힘들어서, 말 못할 옷을 입었을 정도이다.
그때 생각은 하고 싶지 않다. 야한 옷을 입고 누워서 몸을 보여주며 잔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부끄럽고 싫은 일이다.
아무튼, 누운 채로 명상을 한다.
심호흡을 내쉬고, 그대로 꿈의 세계로 빠져든다.
서큐버스의 종족 때문인지, 명상을 통해 꿈의 세계로 빠져들면 외부 세계의 감각도 느낄 수 있다.
시엘과 소멜이 신기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귀여워서 볼살을 말랑말랑 문지르고 싶다.
“잡념은 금지. 오늘은 잔잔한 꿈 마법을 배울 차례랍니다.”
“넵……”
어째서 깨어있는 아리에타 씨가 내 꿈속에서 쉬는 모습을 아는 건지 모르겠다.
내 표정으로 드러나기라도 하는 걸까? 다시 긴장한 채로 차렷 자세를 한다.
“일단 편안한 마음을 먹고, 그걸 퍼트린다는 느낌으로 진행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서큐버스는 악몽을 꾸게 하는 게 주 마법의 목적 아닌가요?”
“그렇기에 우리에겐 어려운 마법이지요. 반대되는 성질의 마법도 알아야만 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서큐버스같지 않은 나에겐 쉬운 느낌이다.
본래 서큐버스의 종족 스킬, 꿈 마법은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마법들이 대부분이지만, 이렇게 좋은 꿈을 주는 방식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DMP 획득에는 부정적인 감각이 도움 되지만, 이건 훈련일 뿐이니까.
“후……하……”
푹신푹신한 세상을 상상하며 꿈 마법 속에 담는다.
아리에타님은 만족한 듯 보이고, 시엘과 소멜은 나를 지켜보다가 꿈 마법에 휩쓸린 듯 보송보송한 미소를 지으며 잠이 든다.
“제 네임드들도 이번 훈련은 봐도 되는 건가요? 오늘은 교육에 나쁜 훈련 안 하지요?”
“네, 오늘은 이 마법만 훈련할 예정입니다.”
계속해서 푹신푹신한 길몽 마법을 유지하자, 갑자기 심장이 빨라지는 느낌이 든다.
서큐버스는 인큐버스와 더불어 부정적인 꿈을 꾸게 하는 종족이고, 던전에서도 꿈 필드를 직접 만들어낼 만큼 강력한 종족이다.
그만큼 이 푹신푹신한 길몽 마법은 몸에 무리가 간다.
“으…… 심장이 너무 많이 뛰는 것 같아요.
“명상 후의 꿈 마법, 악몽 쪽으로 흘러가지 않게끔 주의하세요. 당신의 네임드들이 지켜본다면 어떨 것 같나요?”
“아……”
너무 심장이 두근거리고, 열이 오른다.
숨이 점점 벅차오르고, 거칠게 쉬어지자 결국 나는 명상을 그만두었다.
일어나자 원피스가 땀으로 범벅되어있고, 숨은 거의 쉬어지지 않을 정도다.
“잘 참으셨어요, 이거라도 드시고 오늘 훈련은 그만둘게요.”
“고마워요……”
아리에타 씨가 주는 물은 꿈 마법의 정수가 서려 있다.
물의 서큐버스이니만큼, 물 마법 정수에 꿈 마법 정수를 섞은 반투명한 보랏빛 액체를 마시면 조금이나마 몸이 안정되는 느낌이 든다.
시엘과 소멜은 꿈 마법에 휘말린 채로 완전히 꿈나라에 간 것 같다.
아리에타 씨는 어깨를 들썩이고는, 내 몸을 체크해준 뒤에 문제 없다는 표시를 하고 물 마법 포탈을 통해 사라진다.
숨이 안정될 때쯤, 인간형의 텔레르나 씨가 내 앞에 나타난다.
멋진 장년의 신사 모습은, 서 있는걸 보기만 해도 안정되는 느낌이 든다.
“오늘 훈련은 어땠습니까? 모습을 보니 씻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만.”
“……괜찮아요. 나쁘지는 않았어요.”
잊고 싶은 기억들에 비해선 나쁜 훈련은 아니었다.
하지만 체력적인 부담은 점점 심해진다. 앞으로 2주 후에 던전을 만들려면 이런 지옥 훈련 속에서도 버텨야만 한다.
“마스터께서 세이나 마스터님을 코어쪽에서 보고 싶어하십니다. 마지막으로 당부해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고 하네요.”
“네……”
코어에서 본다는 말은 다른 이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다는 소리이다.
아직 2주나 남았지만 벌써 마지막이라니, 운디르나 선배님은 매우 바쁜 마스터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 작품 후기 ==========
장르투베라니
곰아저씨때 실패해서 좌절했었는데 감사합니다. 독자님들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