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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속 서큐버스-18화 (1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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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디르나 선배님을 만나러 선배님의 던전 코어 부근으로 간다.

물론 텔레르나 씨의 곁에서 따라간다는 형태로 가는 것이지만, 이제는 자주 다니는 운디르나 선배님의 던전 자리는 외울 정도로 자주 다녀서 잘 안다.

그래도 코어에서 뭔가 이야기하자는 건, 심장을 내어놓고 이야기하자는 것과 같다.

마스터로서 교육을 받고 있으니 처음에 코어를 보여줬던 날에 얼마나 나를 좋게 여겼는지, 선배님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세이나 왔니?”

“네!”

일부러 밝게 웃으며 들어가니, 선배님께선 오늘도 코어 주변에서 서 계신다.

마지막이라고 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도록, 억지로 웃으면서 선배님을 바라본다.

그런데 괜히 나만 분위기를 잡은 걸까? 선배님도 밝은 표정으로 나를 맞이해 준다.

“후후, 세이나 무슨 그런 표정을 짓니, 소멜을 통해서 항상 볼 수 있다니까 그러네.”

“그래도…… 해어지는 거 아니에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2주 후에 다시 돌아올 거야. 네가 진짜 던전 마스터가 되는 걸 볼 거거든!”

“그럼…… 어딜 가는 거예요?”

이 세상에 오고는 나도 성격이 많이 밝아진 것 같다.

사람들, 물론 인간이 아니라 몬스터이긴 하다만, 다양한 네임드들과 이야기하는 나날이 지속될수록 점점 질문하기 쉬워진 것 같다.

외모가 아름답고 귀여운 서큐버스의 모습을 하게 되어서일지도 모른다.

“응, 마스터 회의라는 곳에 참가해야 하거든……”

“설마 저도 참여해야 하는 건가요? 가서 허락을 받아야 한다거나……”

“아니아니, 그런 거 아니야. 주기적으로 초기의 7대 던전 마스터들이 모여 하는 회의야.”

하지만 운디르나 선배님께선 회의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입술을 씹으신다.

입술이 아니라 입술 모양의 물 부분이긴 하지만, 상당히 가기 싫어하는 듯 보이신다.

“고유 스킬이 있는 마스터는 귀하니까, 세이나가 위험한 마스터가 아니라고 모두에게 알리기 위해 가는 거야.”

“그러면 무슨 의미가 있나요?”

“세이나가 가진, [시간]을 다루는 고유 스킬은 위험하거든. 다른 마스터들이 보면 네 코어를 가져가서 고유 스킬을 뽑아내려고 할 거야.”

“코어가 있으면 그런 일도 가능한가요?”

“그래, 그러니까 조심하라는 거야. 인간들에게 코어가 드러나는 것보다도 다른 몬스터들에게 코어가 드러나는 게 더 위험해. 몬스터들은 아니까. 여태까지 인간들에겐 코어를 뺏긴 일 자체가 드물거든.”

“알겠습니다.”

운디르나 선배님께선 또다시 다른 네임드가 감각 공유를 하는 듯 멈칫하신다.

이러는 와중에도 네임드들에게 명령을 보내는 듯, 손을 바삐 움직이신다.

“다른 마스터에 대해서 알려줄까? 마스터는 어떤 종족만 되는지 아니?”

“드래곤, 몽마, 정령 계열만 가능하지요.”

이건 게임 세상에서도 제한적으로 형성했었던 일이다.

운디르나 선배님은 약간의 미소를 머금고 웃으신다.

“그래, 일곱 명의 던전 마스터들도 드래곤 둘, 몽마 둘, 정령 셋이거든.”

“그럼 선배님이 그중 한 명인가요?”

운디르나 선배님이 살짝 바닥에서 미끄러지며 나에게 다가오며 고개를 끄덕이신다.

“그래, 그리고 마스터가 나타날 때, 인간 측에도 영웅이 나타나는 것도 알까? 너는 몽마니까 아마 인간이 태어나겠지.”

“네?”

그런 소리는 듣지 못했다. 당장 이 도시 위로 나왔을 때도 유명한 인간 같은 건 거의 없었다.

뭐 왕이나 그런 사람들이라면 모를 것 같다.

“인간들도 우리가 나타나는 순간, 영웅이 태어난단다. 아마 네가 태어난 날 영웅이 태어났겠지. 그 사람은 같은 고유 스킬을 가지고 던전들을 깨부수고 다니기에 위험하거든.”

“……”

그렇다면 최소 던전을 10년 정도 운영하면, 인간 측의 영웅이 나타나 내 던전이 위험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 영웅은 다른 던전을 깨부수기도, 같은 시기에 태어난 던전 마스터의 던전을 깨부수기도 하는데, 같은 시기에 태어난 마스터와 부딪히면 쌍소멸을 한단다.”

“……”

갑자기 무서운 소리를 들으니 소름이 끼친다.

나는 이제 2주 뒤면 독립을 할 텐데, 최소 10년 안에 제대로 된 던전을 만들어 영웅을 이겨야 한다는 소리다.

죽음 자체는 부활이라는 개념 때문에 가볍게 여겼지만, 소멸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물론 한쪽의 힘이 엄청나게 강하면 손해입지 않고 한쪽에서 끝내버리는 경우가 많아. 이 영웅이라는 인간 측 존재 때문에, 강한 마스터가 나타나면 알려줘야 하기도 하거든……”

“그럼 제 존재는 다른 마스터들에게 알려진다는 말인가요?”

“아니, 숨길 거야. 시간을 다루는 인간을 찾아낸다. 그리고 죽인다. 보통 이런 경우 후손으로 이어지지만, 후손들은 본체에 비해서는 약하니까 괜찮아.”

어느새 선배님이 옆으로 와서 내 머리카락을 만지신다.

갓 이 세상에 나타났을 때는 짧은 머리카락이 이제는 목덜미 근처까지 내려온다.

“다른 마스터들에게 절대로 세이나의 존재에 대해선 숨길 거야. 당분간은 시간 마법을 던전에 적용시키지는 말렴.”

“그러면……”

나는 함정 등에 시간 마법을 써서 사람들을 골려 줄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발 부분만 시간이 멈추게 해서 잘라낸다거나…… 하지만 당분간 금지당한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남는다.

“다른 마스터들에게 알리면 안 되나요?”

“음…… 알려주지 않는 이유는 또 있는데, 그건 알려주지 않을게. 그리고 지금 시간이 늦었으니 나는 먼저 가 볼게.”

“……잘 다녀오세요!”

최대한 밝게 웃으며 선배님을 반겨드렸다.

선배님과 코어가 있는 방에서 밖으로 나온다. 코어 부근에 있는 황량한 복도를 천천히 걸으며, 선배님이 입구 부근까지 가는 걸 반겨드렸다.

텔레르나 씨를 타고 가는 운디르나 선배님의 뒷모습을 지켜보고는, 다시 뒤돌아 던전에 돌아오려 하니 아리에타 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또 훈련인가요?”

“아니…… 뭐 하고 싶으시다면 하시지요. 당분간 텔레르나 씨 대신 제가 당신을 가르치니까요.”

아리에타 씨는 어딘지 모르게 부끄러운 듯 보인다.

마치 동네 무서운 언니 같은 분이었는데, 의외의 부분이 드러난다.

“빨리 꿈 마법을 배울까요?”

“네.”

그로부터 2주 동안, 선배님이 돌아올 때까지 열심히 훈련했다.

그다지 훈련 기간에 대해서는 쓰고 싶지 않다.

그저 내 심장을 단련하는 훈련이었다고, 짧게 남기고 싶다. 이가 갈리고 피가 나는 지옥 같은 훈련이었다.

그래서인지 아리에타 씨와도 꽤 많은 정이 들었다. 하지만 어떤 정인지는 모르겠고, 그저 힘들었다는 기억밖에 남지 않는다.

힘든 기억은 쉽게 잊혀진다고 했던가, 벌써부터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하…….

그래서 2주 만에 선배님을 보냈던 입구 근처의 똑같은 지역에서 선배님을 맞이하러 나갔다.

선배님은 언제나처럼 생글생글 웃으면서 달려와 나를 안아주었다.

“세이나! 보고 싶었어! 그리고 새로운 네임드를 소환할 시간이지?”

“……벌써 시엘을 소환한 지 한 달인가요?”

“주인님, 나도 동생이 생기는 거야?”

“미야아아아?”

갑자기 오시자마자 네임드 이야기를 꺼내시니, 조금은 당황스럽다.

“음, 심장을 꺼내는 데, 네임드를 소환하고 가면 마력이 없어서 위험하지 않을까요?”

“아냐, 괜찮아. 나도 그랬거든.”

“선배님이요……?”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선배님은 원래부터 던전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미지가 있다.

어린 시절의 운디르나 선배님을 생각하니, 이상한 기분이 든다.

나도 운디르나 선배님처럼 베테랑 던전 마스터가 되고 싶으니까.

“DMP와 마력은 다르지? 체력과 마력이 다르다고 보면 돼, 근본적인 힘이 다른 거니까. 그러니까 어서 세이나의 던전을 보고 싶은걸?”

“네……”

마음의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나는 운디르나 선배님께 팔목이 잡힌 채로 끌려갔다.

그대로 텔레르나 씨를 타고, 이전에 던전 터를 잡았던 곳으로 도착했다.

여전히 황량하지만, 한 달 사이에 휴전이 있었던지 시체는 많이 사라져있다.

“자! 어서! 내가 있으니까 네임드부터 소환하자.”

“그…… 땅과 교감하려면 액체를 내어야 하지 않나요?”

“그건 내가 달래주었으니까 괜찮아. 내 마력에도 반응할 거란다. 던전의 코어를 놓는 순간 기절해버리니까, 빨리 네임드를 소환하는 게 좋아.”

“알겠습니다.”

운디르나 선배님의 급한 재촉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궁금하지만 눈을 감고 시간의 정수를 내 앞에 내기 시작했다.

세피아 색의 액체가 손끝에서 흘러가 고인다. 점점 맥동하는 세피아 색의 액체가 모여들고, 이전의 페트병 2개 분량이 아니라 드럼통 한 개쯤 되는 시간의 정수가 모여든다.

“오오, 세이나의 훈련 성과가 대단한걸?”

“앗……”

무심코 꿈의 정수도 일부 내어버렸다.

그러자 시간의 정수인 세피아 색과 꿈의 정수의 보랏빛이 섞여들어 이상한 색으로 변형되기 시작한다.

액체는 계속해서 맥동하고, 결국 폭발이 일어나더니 문제가 생겼다.

“아……”

“세이나, 조금만 더 꿈의 정수를 낼까?”

“그래도 되는…… 건가요?”

정수를 너무 많이 뽑은 탓인지 머리가 아프지만, 선배님의 말을 듣고 꿈의 정수를 내었다.

그러자 보랏빛이 더 섞여들면서 정수가 검은색으로 변한다.

하지만 폭발은 점점 잦아들고, 안정화되면서 다시 꿈틀꿈틀 안정된 맥동을 한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그 액체는 모여들어 형체를 이룬다.

“……? 주인님?”

“어라, 이건 대체……”

“세이나, 너 또 어린애를 생각한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아이…… 그러니까 또 나와 비슷한 모습을 가진 아이가 나타났다.

송곳니가 뾰족하게 튀어나온 게 특징이며, 역시나 알몸이다.

일단 궁금하니 급한 대로 주변에서 나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무시하고, 새로 태어난 아이의 정보를 보았다.

이름: 없음

종족: 시간의 뱀파이어

레벨: 1

특수 스킬: 빛 내성, 시간 감속, 시간 가속, 시간 정지

“그, 제가 일부러 이런 네임드를 생각한 건 아니에요!”

“흐음-“

“마스터니이이임!”

운디르나 선배님의 눈초리를 받으며,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새로 태어난 뱀파이어는 시엘 때처럼 나를 향해 달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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