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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속 서큐버스-19화 (19/95)

00019 <-- 던전 코어 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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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아……”

행복하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가 없다.

마치 천사가 노래하는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천상의 멜로디가 나를 향해 쏟아지는 기분.

이름 없는 시간의 뱀파이어가 달려와 안기고, 시엘과 소멜도 질세라 달려와서 안겼다.

보송보송한 네임드들을 부둥켜안은 채로, 마치 꿈속에 있는 듯 둥둥 떠 있는 느낌을 느낀다.

“크흠, 세이나. 여기 뭘 하기 위해 왔는지는 알지?”

“시간의 뱀파이어한테 이름을 주는 거요?”

“하, 역시 이번에도 너는 어린아이들만 생각하고 있었구나. 네 던전을 만들기 위해 왔잖니.”

“아, 그렇죠.”

머리를 좌우로 마구 흔들고 정신을 차렸다.

네임드들이 잠시 멀어졌다가, 뱀파이어가 다시 달려들어 내 목덜미를 살짝 문다.

송곳니가 찍혀 아플 줄 알았는데 아프지는 않다.

“흐으……”

“마스터님…… 피…… 맛있어……”

아직 이름이 없는 뱀파이어가 내 피를 빠는 것 같다.

왠지 기분이 점점 나른해지는 듯하여 눈을 살짝 감았다. 다시 행복해졌다.

“어서 이름을 주는 게 좋을 거야. 꿈 정수가 포함된 경우에는 이름을 얻지 못하면 배고픔에 주인을 좀먹어버리니까.”

“흐으으…… 알겠어요.”

점점 몽롱해지는 가운데 뱀파이어의 이름을 생각해낸다.

어느 이름이 좋을까, 뱀파이어가 피를 빠는 가운데 생각해낸 이름을 입 밖으로 낸다.

“타피, 네 이름은 타피야.”

“와아! 마스터님, 감사해요!”

타피, 뱀파이어가 내 목덜미를 물던 송곳니를 물리고 일어났다.

나는 언제 누워있었던 건지, 타피가 나를 쓰러트린 것 같긴 한데 못 느낄 정도였다.

“타피! 주인님을 물면 안 돼.”

“마스터를 물면 안 돼?”

타피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이제는 조금 자란 것처럼 보이는 시엘에게 혼난다.

타피의 붉은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나고, 시엘의 황금빛 눈동자도 반짝반짝 빛난다.

두 아이들을 보니 나도 모르게 행복감이 다시 밀려온다. 이제 아무렇게나 되어도 상관없을 것 같다.

“세이나, 정신 차려.”

“우푸푸……”

다행히도 행복감에 죽어버리기 전에 운디르나 선배님께서 물대포를 얼굴에 쏴서 꺼내주셨다.

조금만 더 쏘셨다면 아마 다시 죽음을 경험하지 않았을까?

시엘은 옆에서 언니처럼 타피를 가르치고, 나는 운디르나 선배님에게 일으켜졌다.

“세이나, 오늘은 뭘 하러 왔지?”

“타피와 시엘과 소멜과 피크닉이요?”

“야!”

또다시 얼굴에 물대포를 맞았다.

고개를 도리도리 다시 휘저어 물을 털어내고 정신을 차린다.

“던전 코어를 심기 위해 왔어요……”

“그래, 지금 정수를 내느라 네 마력은 매우 적은 상태야. 정신상태가 왜곡되는 것도 당연한 현상이고. 당분간은 다른 던전 마스터들에게선 내가 지켜주겠지만, 인간으로부턴 네 네임드들이 널 지켜야 한단다.”

“네에…….”

다시 타피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행복회로가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억지로 마음을 다잡고, 운디르나 선배님을 바라본다. 그래, 운디르나 선배님도 아름다운 물의 정령이시니까.

운디르나 선배님께서 내가 땅에 정수를 내었던 것처럼, 물의 정수를 땅 아래쪽으로 흘리신다.

그러자 땅이 다시 울리며, 지진이 일어나고 입을 열기 시작한다.

“어라…… 원래 제 정수를 내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응? 내가 땅을 달랬으니까 괜찮아. 너를 먼저 보내고 나서 ‘다음에 같이 올 테니 제 정수를 받고 열어주세요.’라고 했었거든,”

“음……”

그렇다면 선배님의 정수를 받고 열어준 게 아닐까 싶다.

그래도 천천히 거대한 땅에 난 입구로 들어가 보니, 안쪽 벽면에는 보라색과 세피아 색이 짧게 줄무늬처럼 칠해져 라멜라 구조를 이루는 벽면이 보인다.

계속해서 계단을 내려가다가 저번에 왔을 때 보았던 코어의 홈이 보인다.

코어를 심는 방법은 몇 번이고 배웠다.

실제로 내 심장을 뽑아내어, 땅속에 심듯 저 코어 자리에 집어넣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나의 마력석, 그러니까 던전의 코어가 미숙하면 던전이 형성되지 않는다.

그리고 형성되더라도, 오랜 기간을 깊은 무의식 속에 잠겨 죽은 것처럼 보내게 된다.

“저 자리야.”

“그…… 선배님, 설마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죠?”

운디르나 선배님은 대답 대신 고개를 살짝 숙인다.

나만의 던전, 결심했지만 정말 앞에 와 보니 심장이 마구 떨리고 괴롭다.

타피와 시엘도 소멜을 안은 채 뒤에 와있었다. 텔레르나 씨도 인간형으로 변해 뒤에 계셨다.

“얘들아……. 나 심는다? 선배님, 혹시 제가 죽으면 아이들은 데려가시길 바래요.”

“아니, 세이나는 죽지 않으니까 괜찮아.”

선배님이 해 준 확신에 찬 말에, 나는 용기를 얻었다.

실제로 심장을 뜯어내는 거니까, 마스터 서큐버스라는 ‘개체’로서의 나는 여기서 죽음을 맞고, 내 자체가 던전이 되어 ‘분신’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나 자체가 던전이 된다는 소리다. 그래도 나의 네임드들을 살펴보면 나를 믿는 듯 확신을 준다.

나의 작은 가슴 위에 작은 손을 얹는다.

피 튀기는 장면이 나타나는 건 아니다. 피부 위에 어둠이 서리고, 내 손이 점점 몸속으로 들어온다.

나는 손을 몸속에서 움직인다. 내장을 뒤집는듯한 느낌이 든다.

그 사이에서 두근두근 뛰던 딱딱한 물건을 집는다.

이게 던전의 코어, 그리고 마스터 개체의 심장. 잡자마자 땀이 나고 괴롭다.

두근두근 짧게 맥동하는 딱딱한 물건이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 준다.

주변에는 분명히 여태까지 1달간 사귀었던 나의 네임드들과, 운디르나 선배님, 텔레르나 씨가 있을 텐데 아무런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눈을 꼭 감고, 심장을 순식간에 때어 낸다.

마음이 빠져나가는 듯, 순간적으로 몸에서 힘이 확 빠지고, 시야가 급격하게 어두워진다.

앞에 보이는 코어의 자리까지, 있는 힘을 다해 저벅저벅 걸어간다.

내 손에는 보랏빛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손바닥 크기의 보석이 들려있다.

한 걸음

한 걸음 더.

손을 저기에 얹기만 하면 된다.

힘들어.

버틸 수 없는데.

저쪽에 올리기만 하면 되는데.

악을 지르고,

단지 올리면 될 뿐인데.

그리고 나는 의식을 잃었다.

……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무언가 보려고 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감각을 느끼려고 해도,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는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우주 위에 떠 있는 느낌.

움직이고 싶은데, 움직일 수가 없다.

답답하지는 않고, 그저 허무한 느낌만이 맴돈다.

가슴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심장이 있다는 소리도 아니다.

어디선가 빛이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

느낌이 든다고 말했지만, 정말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운디르나 선배님께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말을 기억한다.

최초의 7대 던전 마스터들은 심장을 직접 땅에 심었던 최초의 마스터들이다.

그 뒤에도 수많은 마스터들이 시도했지만, 성공률은 10% 미만.

다만 훈련을 통해 그 성공률을 비약적으로 올릴 수 있다고는 들었다.

일단 호흡에 신경을 쓴다.

과연 내가 하는 게 호흡인지는 모르겠지만, 꿈의 마법을 연습하며 몇 번이고 명상하며 했던 일이다.

조용히 채네, 몸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력을 강제로 회전시킨다.

다행히도 죽거나 소멸하지는 않은 것 같다. 나에게서 에너지가 느껴진다.

곧바로 DMP 메뉴가 떠오른다.

신비할 정도로 검은 공간 속에 나타나는 푸른 홀로그램 메뉴.

이 기계 같은 메뉴가 살아있는 것처럼 어여쁘고 정겨움까지 느껴질 정도이다.

게다가 푸른 원 안에 93156 DMP라는 수치가 보인다.

DMP 메뉴를 누르면, 왼쪽으로는 던전 생성 관련 메뉴,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내 개인에 대한 메뉴가 나타난다.

정확히는 ‘누른다’라는 느낌보다는, ‘움직인다’는 느낌이다.

업데이트라도 있었는지 다양한 메뉴들을 눌러 본다.

던전 타일 생성, 던전 벽면 생성, 던전 꾸미기, 몬스터 생성.

던전 관리 메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개인 메뉴로 들어가 본다.

이름: 세이나

종족: 던전 마스터 서큐버스

레벨: 51

종족 스킬: 꿈

특수 스킬: 시간

세부 스탯 ▽

세부 스탯에 관련된 내용은 접혀있다. 굳이 보고 싶지는 않아 클릭하지 않는다.

하지만 메뉴 창을 눌러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여전히 눈앞은 어둡고, 어두운 공간 안에 푸른 홀로그램만이 빛처럼 존재한다.

운디르나 선배님께선 계속해서 호흡에 신경 쓰라고 말씀하셨다.

던전 마스터 중에, 던전 그 자체가 되어 분신을 만들지 못하는 것이, 호흡에 실패한 경우라고 한다.

시엘과 소멜, 그리고 새로 태어난 타피를 만질 수 없다면 나는 던전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만의 보금자리를 얻고 싶었을 뿐이니까.

후…… 하…… 계속해서 깊은 호흡을 쉬려고 노력한다.

다음 자극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운디르나 선배님의 말에 따르면, 처음으로 던전 코어를 심은 뒤 느꼈던 세상은 텔레르나 씨의 눈으로 보는 세상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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