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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속 서큐버스-20화 (2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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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화면을 보는 듯한, 완전히 컴컴한 공간 속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메뉴 에는 시간과 관련된 건 나오지 않고, 나에게 마력이 과연 흐르는지조차 미지수이다.

운디르나 선배님께선 인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다.

하지만 얼마나 인내해야 하는 건지,

호흡에 신경을 쓴다고 해도,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서서히 인내심이 바닥이 되어가는 시점이다.

게임 속이라면 어땠을까?

마치 온몸에 렉이라도 걸린 것처럼, 계속해서 대기하는 상황이라면 컴퓨터를 껐다가 켰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던전 따위 만들지 않는 게 좋았을지도 모른다.

“으응……”

갑자기 가녀린 신음이 들린다.

어디인지 모를 감각, 그리고 눈이 뜨인다.

하지만 내 감각은 아닌 듯하다. 다시금 운디르나 선배님이 처음 느꼈던 감각은 텔레르나 씨의 것이었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흐이야아아~”

“미야아?”

마치 머릿속에서 울리는 듯한 목소리.

처음에는 누구의 목소리였는지 몰랐지만, 듣다 보니 익숙한 목소리인 것 같기도 하다.

“주인님은 일어났을까?”

“미야아아?”

“마스터…… 영양은 드리고 있는데.”

소멜과 타피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면 정말 시엘과의 감각 공유였던 건지, 시엘이 손을 움직이자 작고 아기자기한 손이 보인다.

그리고 타피와 소멜의 모습도 보인다. 타피는 내가 입던 옷과 비슷한 원피스를 입고 있다. 마치 체험형 영화나 VR을 보는 듯한 느낌인데 움직일 수는 없다.

운디르나 선배님은 이 상황에서도 명령 따위를 보내지만, 나는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할 수 없다.

“주인님 보러 가자.”

“먀아!”

주변 공간은 약간 어두운, 마치 운디르나 선배님의 코어 주변의 복도 같은 느낌이다.

흙으로 다져진 작은 방에서 달려가자 시엘의 발소리가 쿵쿵 울리며 들린다.

소멜은 공중에 난 채로 옆에서 날고, 타피도 인상적인 송곳니를 드러내며 따라온다.

그리고, 시엘의 눈앞에 거대한 보랏빛 보석이 보인다.

화려하고, 각양각색의 빛깔이 면면히 드러나는, 다각뿔 두 개를 맞붙인 형상의 크리스탈형 보석.

크기는 시엘의 눈으로 보기엔 시엘의 키와 같고, 그 아래쪽에는 누워있는 보송보송한 은발을 허리춤까지 늘어트린 소녀가 보인다.

“주인님……”

시엘이 누워 있는 은발의 소녀에게 다가간다.

은발의 소녀는 머리 위에 검은 뿔이 나 고, 억지로 숨을 내쉬며 아파하고 있다.

시엘이 손으로 가슴을 만지자 차가운 기운이 전해져 온다.

“주인님……”

설마 이게 나였다니,

거울 앞에서만 한 번 봤었던 내 몸은 생각보다 더 작아 보인다.

시엘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귀가 뾰족하거나 서큐버스의 특징이 드러나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똑같다.

타피는 조금 더 심술궂게 생기긴 했지만, 타피도 다가온다.

“마스터에게 영양을 보급할 시간이야.”

타피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시엘이 일어나자 내 목덜미를 문다.

물론 나는 쓰러진 채 어떤 기운도 느낄 수 없었지만, 시엘의 눈에서 몸 속에 들어온 송곳니에 베인 투명한 액이 몸속으로 들어오는 게 보인다.

소멜도 내 다리 부분에서 비비적거리며 체온을 나눈다.

싸늘한 시체 같은 나에게 이런 일을 해 주고 있었다니……

감정이 마구 벅차올라 눈물이 흐른다. 정말로 은발의 소녀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응? 주인님……?”

“미야아아?”

시엘이 던전 꾸미기 견장으로 만든 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아준다.

바닥에 떨어진 흙 따위도 털어내고, 내 몸을 깨끗하게 닦고는 다시 일어난다.

하지만 이 녀석들, 내가 자는 동안 정말 싫어하던 짓을 하고 있었다. 내 꼬리를 들어 볼기 부분을 만질만질 만진다.

“후후, 여기 만지면 부드러워.”

“흐히히, 시엘 언니 이러면 마스터에게 혼나지 않아?”

“아냐, 기절하고 계시니까 괜찮아.”

그러니까, 내 꼬리는 내가 가장 민감해서 만지는 걸 싫어하는 부위다.

겨드랑이 안쪽을 만지는 것보다 더 간지럽다. 정신이 있었으면 소름이 끼치고 제멋대로 신음이 나왔을 것 같다.

경악하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고, 오히려 시엘이 부들부들 만지는 촉감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들키지 않겠지?”

“나도 만질래!”

“미야아아아!”

이 네임드들을 지금 빨리 어떻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타피에 소멜까지 달려들어 내 꼬리를 마구잡이로 만진다.

하지만 계속해서 만질만질 만지다가 지쳤는지 곧바로 그만둔다.

“주인님은 언제 깨어날까?”

“마스터 목소리도 얼마 못 들었는데…… 흑”

“타피, 울지마.”

생각보다 시엘이 어른스러워진 모습이다. 잘 컸지만, 내 꼬리를 만진 죄는 물을 것이다.

그리고 섬뜩한 느낌이 든다. 시엘이 느끼는 건지, 내가 느끼는 건지는 모르지만, 누군가의 다른 발소리가 들린다.

“타피, 침입자다.”

시엘이 나직하게 말하자, 타피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시엘의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시엘도 긴장하는 것 같다.

흙 바닥 아래쪽으로 긴 그림자가 드리우고, 인간의 더러운 냄새와 함께 소리가 들린다.

“거기, 누구 있나?”

더럽다. 내가 느꼈던 것보다도 더 더러운 탐욕의 냄새가 인간에게서 난다.

도굴꾼인지, 욕심에 가득 찬 모습의 인간은 다양한 도구를 온몸에 칭칭 감고 있지만, 다행히도 손에는 횃불밖에 들고 있지 않다.

시엘은 어둠 속에서도 눈이 꽤 밝은 편인지, 주변을 쉽게 분간할 수 있다. 이건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사실 시엘은 다크 엘프가 아니었을까?

시엘은 멀리서 지켜보는데, 도굴꾼 주변의 어둠이 세피아 색으로 바래진다.

타피는 그 사이에서도 빠르게 움직여 달려든다.

마법 자체는 누가 썼는지 알아챌 수 없지만, 아마 시엘의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걸 봐선 시엘이 쓴 마법 같다.

타피는 도굴꾼을 덮쳐서 피를 빨아내지 않고 곧바로 허리를 끊어 두 동강 낸다.

“후후, 언니, 잡았어!”

“잘했어. 이제 천천히 DMP를 뽑아내렴.”

“흐흐, 알겠어.”

타피는 어떤 사악한 짓을 하려는지, 경악에 물든 인간의 얼굴을 바라본다.

붉은 눈동자로 그 인간의 더러운 눈을 바라보는데, 인간의 눈이 점점 쪼그라든다.

강렬한 DMP의 흐름이 나오지만, 인간 자체는 레벨이 낮았는지 양 자체는 많지 않았다.

“언니, 이 녀석의 생명력을 모두 빨아들였어.”

“잘했어!”

시엘의 표정은 알 수 없지만, 항상 웃던 푸근한 미소였을 것 같다.

내 던전으로 침입하는 인간을 잡아먹는 장면을 지켜보니, 인간이 불쌍하기보다는 그저 응당한 대가를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심장을 도굴하려고 했던 녀석. 내 던전의 모습이 정확히 어떤 모습이 되어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튜토리얼 형태의 기본형 던전일 것이라고는 예상된다.

운동장 하나 크기의 적당한 미궁에, 중심에 코어가 있는 형태. 그리고 입구는 굉장히 허름한 던전.

예상은 가긴 하지만, 그 던전은 고칠 부분도 수없이 많고 빠르게 일어나서 개조도 해야 한다.

일단 코어까지의 거리가 너무 짧고, 미궁과 같은 층에 있기에 드러나기도 쉽다.

코어 옆 방에서 네임드들이 쉬고 있는 걸 보면, 아마도 주변엔 아무 몬스터들도 나타나지 않은 정말 새 던전인 것 같다.

물론 게임상에서는 이런 던전에 사람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간단한 보물상자 따위도 없고, 보상이 없기 때문이다.

코어 하나 먹기 위해 오는 인간들이 있기는 하지만, 게임 내에서는 코어 자체의 값이 얼마 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는? 선배님의 몬스터가 얼마나, 그리고 어디에서 지키는지는 모르지만, 당장 다른 몬스터 군단이 들어오면 상당히 위험한 상태라는 건 확실하다.

“주인님이 해 주신 음식 먹고 싶어……”

“시엘 언니, 그건 맛있어?”

“미야아아아!”

“맛있다고? 징그럽게 쭉쭉 늘어지지만 맛은 있다니, 대체 그건 뭘까? 인육이야?”

“음…… 붉은 부분이 들어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시엘과 타피는 어떤 말을 주고받는지, 설마 피자 이야기를 하는 건가?

피자라면 분명히 쭉쭉 늘어나고…… 붉은 토마토 토핑도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타피가 입맛을 다시는 걸 보니 엄청난 착각을 저지르는 것 같다.

움직이고 싶다, 말하고 싶다.

시엘과 아이들은 던전 밖으로 나가 과일 따위를 뜯어먹는다.

코어를 심을 때까지만 해도 황량한 전쟁터였는데 휴전인지 모르겠지만, 전쟁의 기운이 완전히 가셨다.

시엘은 엘프이기 때문에 자연에 대한 정보를 잘 알고 있어서 끔하게 독이 든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하여 뱃속에 집어넣는다.

타피도 피만 먹는 건 아닌 듯, 시엘이 나눠 주는 음식을 먹는다. 소멜은 개울가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소멜은 동족 사냥이 아닐까……?

세 명의 네임드는 그런 식으로 개울가에서 깔깔거리며 생존하고 있다.

나도 이 아이들 사이에 껴서 놀고 싶다. 아니, 던전을 빨리 보강하고 위험한 밖이 아닌 던전 안에서 살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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