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1 <-- 던전 코어 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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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임드 셋은 개울가에서 한참을 놀며 먹다가 다시 던전으로 돌아왔다.
시엘의 눈으로 보는 바깥은 운디르나 선배님의 낌새는 보이지 않지만, 미미하게 시엘에게서 편안한 마음이 느껴지는 걸 봐선 지켜주고는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시엘이 들어오며 너무 쉽게 간파당하는 던전의 구조가 너무 마음에 걸린다.
시엘의 작은 발자국에도 몇 걸음 걷지 않아도 코어가 보일 정도로 너무 쉽게 돌파당한다.
물론 시엘은 몇 번이고 이 던전을 드나들어서일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환각도 없고 밋밋한 미궁은 불안할 정도로 얕고 공략되기 쉽다.
“으으음- 난 먼저 잘게~”
“응!”
그런데 타피는 잠을 안 자는 걸까?
뱀파이어니까 밤에 움직이는 게 좋을 거라고는 생각한다.
햇볕이 들던 낮에 개울가에 가고, 흐르는 물을 봐도 끄떡없는 걸 봐선 이상하기는 하다. 그렇다고 감각 공유 중에는 정보를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답답하다.
시엘은 타피에게 인사하고 눈을 감자마자 잠이 든 것 같다.
그다음 순간, 나에게 타피의 감각이 밀려들어 왔다.
“누구……?”
타피가 감각 공유가 되는 나를 알아챈 걸까?
눈치챈 타피에게 내가 여기 있다고 열심히 외쳐보지만, 타피에게는 닿지 않는다.
하긴 마음속에서 외쳐봤자, 코어 옆의 작은 방까지 닿을 리가 없다. 포기하자……
타피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누운 시엘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향기를 맡는다.
꽃향기가 나는 시엘의 금빛 머리카락. 타피는 이런 냄새를 좋아하는지 깊게 들이마신다.
대체 뭘 하는 거냐고 묻고 싶긴 하지만, 곧바로 훌훌 털고 일어난다. 소멜도 시엘의 곁에서 잠이 들었다.
타피는 그대로 일어나 코어가 있는 방으로 움직인다.
코어가 있는 방에는 내가 편안한 자세로 뉘어져 있다. 타피는 오자마자 누워있는 은발의 나를 바라본다.
너무나도 차가운 피부를 만지고, 손을 들어 올려 손가락을 요염하게 교차시킨다.
그리고 그 손으로 미끄러지듯 올라와 뺨을 만진다.
위험한데…… 매혹적인 나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기대해버렸다.
타피의 심장이 두근두근 떨리고, 금단의 사랑을 느끼는 건지 애절한 감각이 느껴진다.
타피는 다음 순간 확 달려들어 내 목덜미를 물어버린다.
곧바로 마치 내장에서 뭔가 올라오는 기분을 느낀다. 마치 에너지를 일부러 송곳니를 통해 주입하는 느낌. 나 자신의, 내 몸체에의 감각을 느낄 수는 없지만, 타피는 항상 이렇게 힘든 일을 하며 나에게 영양을 주입하고 있었다.
눈을 사르르 감고, 열심히 숨을 쉬려고 호흡하는 차가운 은발의 서큐버스는 위험할 정도로 헐떡인다. 숨을 억지로 토해내며, 영양을 다 받지 못하고 다시 타피의 몸으로 밀려들어 온다.
“마스터님……”
타피는 눈앞에 있는 은발 서큐버스 소녀의 머리카락을 들어 올려 또 냄새를 맡는다.
그러지 말라고, 외치고 싶지만 아쉽게도 내 말은 타피에게 닿지 않는다.
시엘은 멀쩡해서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타피는 머리카락 냄새 맡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어쩌면 몬스터들은 다들 이런 특이한 버릇 하나씩은 있을 것 같다.
아니, 시엘도 내 민감한 꼬리를 만지작거리니 싫다. 아무리 귀여워도 싫은 건 싫은 거야.
타피가 킁킁거리며 맡은 내 머리카락에선 은은한 달의 향기가 났다.
대체 달의 향기가 무엇이냐고 묻고 싶지만, 마치 아스팔트 맛을 모르고도 카카오 99%를 아스팔트 맛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킁킁 소리가 날 정도로 내 머리카락을 듬뿍 말아 향을 맡더니, 다시 원상태로 놓아둔다.
마치 도취된 듯, 나의 향기를 맡고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타피는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그런데 곧바로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타피는 나에게 영양을 주입한 탓인지 배가 주린 것 같다. 아무래도 뱀파이어다 보니 음식을 먹기는 하지만, 인간의 피를 먹어야 할 것이다.
혹은 굳이 인간의 피가 아니어도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인간의 머리카락 향기를 맡는 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타피는 다시 미궁을 걸어 나간다. 하늘엔 달빛이 내리쬐고 있고, 바닥엔 짙은 그림자가 져 있다.
타피의 감각을 공유받아서 느낀 거지만, 타피는 향에 상당히 민감한 것 같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흙내음, 그리고 오래전에 있었던 전쟁터의 비린 피 냄새 등.
수많은 후각적 정보가 느껴지고, 시각적으로도 시엘보다 더 뛰어난 눈을 가진 것같이 많은 정보가 들어온다.
마치 내 눈이 좋아진 것처럼, 지상에 나오자 들어오는 엄청난 시각적인 정보에 머리가 아플 정도이다.
실제로 타피도 두통을 느끼는 건지, 인상을 찌푸린다.
먼 곳에서 나는 비릿한, 그리고 향긋한 피 향기.
나는 서큐버스이기에 그저 비릿하다고 생각했던 그 인간의 비릿한 피 향기가, 마치 너무나도 달콤한 사탕처럼 느껴진다.
타피는 곧바로 날개를 펼쳤다. 실제로 날개가 달린 나와는 달리, 타피는 그림자를 이용해 날개로 만들어 내어 펼친다.
타피는 눈을 감고, 주변으로는 타피의 몸에서 느껴지는 공기를 가르는 느낌이 느껴진다.
나는 고소공포증이 약간 있어서, 텔레르나 씨의 등에 탔을 때도 어지러웠는데, 타피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먼 높이를 날아도 어지럽다는 느낌이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말끔하다.
그런데 타피 뒤쪽에서 갈라졌던 공기가 다시 닫히며 엄청난 굉음을 낸다.
소리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날아 나타나는 소닉붐, 날카롭고 강렬한 소리에 귀가 찢어질 듯 아프지만 타피는 아무렇지 않은 듯 먹잇감을 시야에서 발견한다.
마치 먹잇감 주변 시야가 확대되는 듯, 배율 좋은 타피의 눈이 먹잇감에 초점을 맞추고 날아간다.
먹잇감은 작은 동물이었던 것 같지만, 자세히 보니 인간인 것 같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밤중에 일어난 인간을 향해 강습하여 목을 간단히 꺾어낸다.
“끅……”
뭔가 소리를 내려고 했지만, 아주 옅은 목소리와 함께 인간은 쓰러졌다.
옷을 보아선, 아까 그 도굴꾼과 같은 모습이다. 타피는 피를 튀기는 인간의 혈액에 입술을 가져가 쭉쭉 빨아낸다.
비릿한 인간의 피가 이렇게 맛있었던 걸까 싶을 정도로, 달콤한 향이 올라온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달달하다고 이미 몸이 알고 있다. 나이 있는 인간 남자는 담배고 피우고 술도 마시는지라, 그렇게까지 단맛은 아니고, 끝 맛이 쓰긴 하다.
“습격이다!”
주변에 인간 막사가 있었던 건지, 어린 타피는 이제야 알아챈 것 같다.
하지만 새하얀 피부에 피를 쩝쩝거리며 흘리고 먹는다. 그 모습이 아래쪽에 비가 왔었는지 고인 물 위에 보인다. 뒤로는 달빛이 비쳐 화려하고도 잔혹한, 그리고 병적으로 새하얗고 어린 타피의 모습이 드러난다.
곧바로 타피 쪽으로 매직 미사일들이 윙윙거리며 날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인간들이 쉽게 배울 수 있는 마법으로, 느릿느릿하지만 유도 기능이 있는 게 특징이다.
타피는 매직 미사일들을 손톱으로 쫙 긁어내어 제거한다. 막사에 있었던 도굴꾼들은 점점 더 모여들고, 매직 미사일에 이어 짧은 쇠뇌 화살까지도 날아온다.
“귀찮은 것들.”
타피는 그들을 먹잇감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DMP 흡수도 하고 있지만, 이미 나는 던전을 이룬 탓인지 DMP 자체는 적다.
타피는 붉은 기운의 마법을 주위로 휘날리며, 동시에 시간을 멈추어 세피아 빛으로 물들인다.
“죽어라, 벌레들아.”
타피는 멈춘 시간의 속에서 일방적인 학살을 즐긴다.
인간들의 레벨 자체도 높은 편이 아니지만, 타피와의 수준 차이는 엄청나다.
나도 타피의 눈을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타피는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맛있는 피를 가진 인간을 찾아 피부를 물어뜯고, 송곳니를 들이대고, 손톱으로 찢어버린다.
희열이 차오르는 타피의 마음, 마력이 곧바로 다해 세피아 빛이 사라졌지만, 막사에 있던 사람들은 고함을 지르며 엄청난 혼란에 빠진다. 안에서 벌벌 떠는 사람들도 있고, 나와서 적극적으로 타피를 죽이려는 자들도 있다.
“으아아아악 내 목이!”
“죽여라! 저놈이야!”
고함만 잔뜩 지르는 인간들은 타피에 비해서 너무 느리다.
타피는 그 인간들의 목을 하나하나 꺾으면서, 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학살을 즐긴다.
흥분이 서서히 꺼지기 시작할 때쯤엔, 타피의 감각으로는 어떤 생명체도 막사 주변에 남지 않았다. 그저 피가 흐를 뿐이다.
“더러워졌잖아, 언니한테 혼나면 안 되는데.”
타피는 붉게 물든 손톱을 요염하게 핥으며, 주변에 흐르던 개울가에 닦아낸다.
뱀파이어는 흐르는 물에 약한데도, 타피는 손을 깨끗이 닦아내고, 피에 젖은 옷도 벅벅 문질러 빨래한다.
========== 작품 후기 ==========
분신술 쓸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이거저거 쓰고싶은거 다 쓰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