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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속 서큐버스-22화 (2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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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갓 만들어진 던전의 네임드인 타피의 행동은 인간들을 불러내는 행동이다.

아직 제대로 구조조차 만들지 않은 던전에 인간들을 불러오는 행동이고, 네임드들이 아무리 능력이 강하다고 해도 숫자 앞에는 장사 없는 법이다.

당장 일어나서 혼내고 싶지만, 아 목소리는 닿지 않고 감각만 공유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적다.

게다가 내 코어는 인간 기준으로 봐도 상당히 크고 아름답다.

보자마자 꿈에 빠져들 듯한 그 커다란 보석에 유혹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래도 타피는 언니에게 혼나지 않으려고 기특하게도 몸을 완전히 깨끗이 한다.

피가 잔뜩 묻은 어린 소녀의 나체를 직접 본다는 게 조금 무섭기는 하다.

감각 공유를 끊고 싶지만, 아쉽게도 그런 방법도 모른다. 운디르나 선배님은 감각 공유를 끊을 수 없다고 하셨다.

타피는 열심히, 내가 보는 것도 모른 채 인간들의 피가 묻은 구석구석까지, 흐르는 물에서 섬뜩한 감각을 느끼면서도 다 닦아낸다.

정말로 타피는 뱀파이어다 보니 흐르는 물에 약한 것 같다. 그런데 언니를 위해 피를 전부 닦아낸다.

분명히 내가 완전히 어둠에 잠긴 동안 혼난 게 틀림없다.

다 씻고 나서는 부르르 떨고 몸을 말린다. 언제 가져온 건지 수건으로 몸을 닦는다.

부른 배를 퉁퉁 두들기자, 빨간 액체가 잔뜩 든 배가 출렁인다.

타피는 잠이 없는 줄 알았는데, 포만감에 잠이 솔솔 오기 시작한다.

먼 산에서 동이 뜨고 있고, 타피는 그대로 그림자 날개를 쫙 펼쳐 던전까지 돌아온다.

역시나 빠르게 움직여 소닉붐을 일으키는데, 너무 흔적을 대놓고 남기는 게 아닐는지 무섭기는 하다.

돌아온 타피는 나긋나긋이 던전 안을 걸어간다.

타피는 민감한 청력을 이용해 눈을 감고 초음파를 이용해 벽을 구분해 나아간다.

초음파에 반응한 벽들, 그리고 던전 내부 구조가 완전히 머릿속에 그려지니 신기하다.

나는 그 구조를 살펴보고 다시 한번 머리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대체 이런 구조는 누가 만든 걸까?

당장 내가 누워있는 코어가 있는 방, 그리고 옆에 세 네임드가 자는 방을 제외하고는 복도밖에 만들어지다 만 구조이다.

너무 단순하다. 일자형에 양옆으로 갈래길이 있는 교차로가 3개. 그리고 일직선으로 쭉 가면 코어가 있는 방이 있고, 세 네임드가 자는 옆방이 오히려 가장 구석에 있는 방이다.

입구가 아직 던전처럼 생기지 않은 게 다행이다.

던전에 들어오면 음침한 냄새가 나고, 천장은 한 칸으로 만들어진 건지 높아 보인다.

그 사이를 타피는 휘파람을 불며 들어온다. 다소 답답한 느낌을 받는 걸 보니 타피는 답답해 보이는 것 같다.

하품하고 코어가 있는 방에 들어와서, 은발의 소녀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거기 누워있는 건 내 모습이지만, 다른 눈으로 보면 정말 아름답다.

조각같이 아름다운 얼굴에 새하얀 피부. 그리고 얼마나 클지 상상이 안 가는 큰 눈꺼풀.

앙증맞은 꼬리와 뿔이 달린 모습에 다시금 반한다. 이건 내가 나르시즘이라서가 아니다.

그리고 타피는 다가가 입술을 맞춘다.

피를 빨았던 타피의 입술이지만, 내 입술에 피가 묻지는 않았다.

타피는 깊은 키스 같은 건 아니고, 간단한 뽀뽀를 하고 다시 나를 내려다 주었다.

마지막으로 머리카락 냄새를 맡는 건, 조금 피해줬으면 한다.

타피는 내 얼굴을 보더니 잠이 다 깬 것 같다.

조금 전까지 식곤증에 나른하던 기분은 날아가고, 상쾌한 기분이 되었다.

그 상태로 누워서 자는 시엘에게 다가가 옆에서 잠이 든 척을 한다.

시엘은 잠꼬대를 하는지, ‘어, 어어……’같은 소리를 하며 아름다운 황금빛 눈동자를 연다.

거기에 비친 붉은 눈동자. 내 모습이 아니라 타피의 모습이다.

소멜도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일어난 건지, 다음 순간 내 시선은 완전히 바뀌었다.

마찬가지로 어둠 속에 있지만, 주변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으아아……”

온몸이 저린 느낌이 든다.

정확히는 꼬리 부분이 저리다. 그리고 목덜미 부근도 따끔거린다.

숨을 오랫동안 쉬지 않았던지, 목이 너무 마르고 눈이 잘 뜨이지 않는다.

“아……”

일어났다. 그래, 내 몸이다.

눈을 뜨니 바로 앞에 거대한 보석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는 느낌이 없고, 온몸에 흐르던 충만한 마력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텅 빈 느낌이지만, 피부와 같은 겉 부분에서는 감각이 느껴진다. 그것도 오랫동안 쓰지 않아서인지 곳곳이 딱딱하고 근육이 뭉친 것 같다.

“어어!”

“주인니이이임!”

“먀아아아!”

내 목소리를 들은 건지 네임드들이 달려온다.

아직까지 눈앞의 시야가 확실하게 보이지는 않고, 검은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하지만 아이들의 얼굴이 보인다.

푸른색 하나와 흰색 두 개. 왼쪽부터 시엘과 소멜, 타피.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겨우 일어나려고 허리에 힘을 주나 움직이지 않는다.

“아아……”

대신 엄청난 고통이 올라온다. 허리가 완전히 굳어버려 움직이지 않고 뿌드득 소리가 나는 것 같다.

“주인님! 무리하시지 마세요!”

“주인님, 영양을 줄게.”

“아아, 아니이잇……”

타피가 내 몸을 일으키자, 나는 뭉친 근육들이 우드득 소리를 내며 터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픈 감각에 어떻게든 움직이려 하지만, 타피의 송곳니가 내 목덜미에 들어온다.

동시에 마력이 담긴 영양분이 억지로 밀려나듯 몸속에 들어온다. 엄청난 갈증이 해소되고, 목이 축여지는 기분이다. 인간의 피를 먹고 만든 영양분이라 두렵기는 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사막 속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느낌이 들었다.

“하아…… 타피, 그만, 그만해……”

영양분이 급격히 들어온 탓인지 얼굴에 열이 확 오른다.

타피는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나를 천천히 바닥에 다시 뉘어준다.

머리 뒤쪽이 아픈 느낌이 들지만,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날개 근육을 탈탈 털면서 앉을 수 있었다.

“미안해…… 내가 늦었지?”

“벌써 세 달이에요, 주인님!”

“…… 태어난 것보다 자고 있던 게 더 길었네.”

어둠 속에서 조금 길게 있었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세 달이나 흘렀을 줄은 몰랐다.

운디르나 선배님은 일년간 인사불성이었다고 하니 나는 조금 빠른 편이다.

어쩌면 타피 때문일지도 모른다. 타피가 눈물을 흘리려고 하기에 안아주었다.

“흐흡…… 마스터…… 흐아앙”

“타피가 주인님을 기다렸어요.”

“미야아앙…….”

소멜도 질세라 달려와 부드러운 푸른 얼굴을 나의 품에 묻는다.

내 몸은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찬 몸에 점점 따뜻한 것이 흘러나가는 기분이 든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몸이 너무 차다. 아이들을 안기에는 무리일지도 모른다.

한참 동안 우리는 재회의 기쁨을 누렸다. 하지만 나는 할 일이 있기에 천천히 일어난다.

타피가 인간들을 학살하고, 우리 던전으로 초대한 탓에 당장 급한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타피, 지켜보고 있었는데 왜 인간들을 학살했니? 던전 정비도 되기 전에 들어오면 어떡할려고 그랬어?”

“네? 저, 저는 그러지 않았어요……”

“뭐, 타피, 설마 또 그랬던 거야?”

“……”

타피는 울상을 지으며 입술 위에 손가락을 얹고 모른척한다.

하지만 타피를 나무라는 시엘도 잘못한 건 있다. 이번엔 시엘을 노려보았다.

“시엘, 내 꼬리 만지지 말랬지?”

“어, 어어 언제 만졌다고 그래요? 저는 안 그랬어요!”

“너희들, 정말로 내가 감각 공유하는 거 모르고 있었던 거야?”

내가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죄를 지었다는 걸 깨달은 두 네임드는 고개를 숙이고 침묵을 지켰다.

잘못한 거 없는 소멜만 내 허벅지 위에 올라타서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주인님 나빠요. 보고 있었으면서 말도 안 했던 거에요?”

“흑흑, 마스터님 잘못했어요오오.”

울면서 달려들면 일부러 강하게 마음먹었던 마음도 약해진다.

하지만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너무 혼내지는 않았다. 당분간 인간들이 이 던전으로 몰려올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일단 우리 던전부터 어떻게 하자. 타피가 학살하고 난 뒤에 우리 던전으로 향하는 길을 만들어놔서 인간들이 곧 다량으로 찾아올 거야.”

“그, 그러면…… 잘못했어요! 마스터님…….”

“타피, 괜찮아. 뚝. 울지 말고. 일단 나한테 있는 DMP를 이용해 옮겨야지.”

나는 억지로 일어나서 코어에 기댄 채로 메뉴를 눌렀다.

하지만 몸이 약해진 탓인지 탈진한 것처럼 움직이기가 너무 힘들다.

시엘은 옆에 와서 나를 부축해주고, 타피는 억울한 듯 다른 팔을 안고 부축한다.

얼떨결에 두 아이에게 어깨동무를 한 것처럼 되어버렸다.

“그, 얘들아. 잠깐만……? 나는 당장 코어부터 지킬 예정이니까 천천히.”

“주인님, 제가 도와드릴게요!”

“마스터, 저도 도울 수 있어요!”

하하, 나는 나를 독점하려는 네임드 셋 사이에 둘러싸여 당장 던전을 제대로 만드는 일을 하지 못했다.

뭐 괜찮아. 아직까지는 인간들이 들어와도 세 네임드가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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