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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속 서큐버스-23화 (2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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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내가 지치고 힘들다고 해도, 아이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던전은 만들어야만 한다.

나의 네임드들을 아이들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내 정수에서 나왔으니 아이들은 맞다.

지금은 내 체력과 마력이 바닥을 기고 있고, 이 부분은 세부 스탯에서도 수치상으로는 나오지 않지만 아마 0에 가까울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던전을 만들려면 직접 가서 만들어야 한다.

게임상에서라면 3인칭 뷰로 보면서 녹색 구간에 구역을 쑤셔 박는다는 느낌이었다면, 이 세상의 던전은 1인칭 뷰로 녹색 구간에 던전을 형성한다는 느낌이다.

다른 방법이 없을까 하고 운디르나 선배님께 여쭤보고 싶지만 어떻게 연락할지……

“미야아앗?”

소멜이 갑자기 내 눈초리를 받더니 뒷걸음질 친다.

아니, 지느러미밖에 없으니 뒷걸음질이 아니라, 뒷 지느러미질? 아무튼 소멜이 부들부들 떨고 있길래 흐흐 웃으며 다가갔다.

“주인님 뭐 해요? 소멜이 무서워하잖아요.”

“마스터, 위험한 일은 하지 말라고 하셨잖습니까?”

“아니야 이것들아! 운디르나 선배님을 부를 방법을 찾는 거였다고!”

내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설마 내 인식이 거기까지 안 좋은 걸까?

하긴 서큐버스니까 이렇고 저런 야한 행동을 할 거라고 착각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애초에 인간이었고 그런 행동보다는 지금 생명의 위협을 더 많이 받고 있기 때문에 던전 꾸미기가 먼저다. 그리고 나는 어린 애들과 인어인지 물고기인지 헷갈리게 생긴 메로우에게 그런 감정을 품지 않는다.

“운디르나 선배님이 너에게 연락 수단은 주지 않았니?”

소멜을 지켜보았으나 고개를 휘젓는다.

운디르나 선배님은 바쁜지 연락은 잘 안 되는 것 같다.

“하아……”

한숨을 내뱉고 나니 생명이 사라진 듯 너무나도 적적하다.

심장의 고동이 느껴지지 않아 언데드같이 내 몸이 쉽게 차가워진다.

다행히도 양옆에 시엘과 타피가 지키고 있어서 그나마 얼어붙지는 않는다.

또다시 일어나 걸으려고 하다가 넘어질 뻔했다. 근육이 굳은 채로 움직이지 않아서 다시 두 네임드의 부축을 받았다.

“으…… 저려.”

“주인님, 주물러 드릴까요?”

“마스터, 내가 있잖아. 영양이 부족한 거야?”

“모르겠다.”

이 상황에 대해 운디르나 선배님께 빨리 여쭤보고 싶다.

뭐 물 정령이라 육체적인 성격을 지닌 나와는 조금 다르겠지만, 그래도 방법을 알지 않을까 궁금하다.

날개로 나는 건 원래도 힘든 일이어서 포기고, 휠체어 같은 걸 생각해도 그런 물건을 당장 만들 수는 없을 것 같다.

“얘들아, 둘 다 오는 건 그만. 시엘, 나를 부축해주고, 타피는 너무 나한테 영양을 주려고 하지 않아도 돼. 아니, 그렇게 침울한 표정은 짓지 말고, 응? 널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타피는 내 말에 침울한 듯 고개를 떨어트린다.

이러다간 끝도 없을 듯해서 시엘에게 눈치를 준다. 타피는 타피가 할 일이 있다.

“타피, 너는 나한테 감각 공유를 할 거야. 알겠니?”

“네에에? 그건 어떻게 하는 거예요?”

감각 공유 자체는 양쪽에서 권한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맘대로 주거나, 맘대로 받을 수 있다.

뭐 정확히 말하자면 감각을 신호로 해서 받는 건 오로지 나뿐이지만 말이다.

눈을 감고 타피에게 [감각 공유]를 거니 타피의 눈이 내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자, 이렇게 하는 거야?”

“으응? 마스터가 내 눈으로 보고 있다고?”

“지금 내게 필요한 건 타피의 초음파 기능이야. 초음파에 집중해주고 시엘은 천천히 밖으로 나가자꾸나.”

“네!”

그렇게 나는 타피의 초음파 기능에 의존해 던전 구조를 살핀다.

코어를 긁어서 던전 구조를 홀로그램 형식으로 나타내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건 운디르나 선배님께 따로 배워야 할 것 같다.

지금 나는 내 코어를 만질 만한 깡이 없다.

시험 삼아, 아이들을 떨어트리기 전에 살짝 기대었을 때도 심장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나는 눈을 감은 채, 타피의 초음파 기능에 의존해 던전 구조를 머릿속에 그린다.

마치 타피의 초음파는 2차원 지도 위에서 그리는 등불처럼 느껴진다.

타피는 입을 벌리고 초음파를 쏘며, 천천히 나는 타피의 기능에 의존해 던전 구조를 변형시킨다. 처음에는 타피의 초음파로 던전 구조를 전부 이해할 수 있었지만, 골목 같은 게 많아지자 타피의 기능만으로는 전체 구조를 파악하기는 힘들었다.

그래도 타피의 초음파를 이용하니 보이지 않는 먼 곳이나, 코너를 한두 개쯤 돌아서 있던 지역까지 변형시킬 수 있었다.

일단 나는 처음엔 3층 구조로 변형시키기 위해, 칸을 아래쪽으로 넓혔다.

천천히 코어가 있는 방을 나와서 미로를 만들며, 전반적으로는 땅속 흙 필드를 이용한다.

지하 1층은 미로와 방 5개가 있는 형태로 구성한다.

손아귀에 있던 스켈레톤을 부르고, 모의전에서 진화한 스켈레톤들을 부른다.

물론 인간들을 유치하기도 해야 하지만, 일단은 최대한 내 병력 중, 네임드를 제외하고 정예라고 할 수 있는 스켈레톤 킹 한기, 스켈레톤 메이지 3기, 그리고 스켈레톤 상급 병사 8기, 적당히 소환한 스켈레톤 15기가 적당히 나눠져 1층의 미궁 곳곳을 지킨다.

그리고 스켈레톤 킹이 있던 부분에서는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계단 필드를 만들어낸다.

한 칸에 벽을 포함하면 실질적으로 300 DMP인데, 벌써 5만 DMP를 소모했다.

크기로는 1333 m³, 높이는 2m로 동일하니 면적은 666m².

대략 한 방에 몰아넣으면 가로세로 25m 크기의 미로가 던전 내에 지어졌다. 물론 복도와 작은방 5개로 이루어져 있기에 전반적으로는 가로세로 80m쯤 되는 1층이 만들어졌다.

“후…… 이 정도면 괜찮겠지?”

“마스터, 목이 아픈데 쉬어도 될까요?”

“응, 괜찮아. 조금 쉬렴.”

소멜이 물을 내어주고, 초음파를 계속해서 내느라 목이 아픈 타피가 물로 목을 축인다.

평범한 말을 하는데도 목이 쉰 것처럼 느껴질 정도니, 사실 타피는 굉장히 힘들었던 것 같다.

나는 여린 손을 움직여 타피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타피의 머리카락은 붉다. 붉은 머리카락에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내 손을 받아들인다.

찰랑거리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손아귀로 빠져나가면서 부드러운 뺨이 느껴진다.

타피의 피부도 심장이 없는 나만큼은 아니지만 차다. 그리고 나는 시엘에게 부탁해 부축을 받으며 2층으로 내려왔다.

“또 초음파를 낼까요? 마스터?”

“아니, 타피는 조금 쉬렴. 시엘, 천천히 가자. 2층은 우리가 쓸 방이란다.”

“와아아!”

시엘이 옆에서 소리를 질러서 귀가 살짝 아팠다.

타피는 힘든 듯, 자꾸만 내 손을 받고는 뺨을 비빈다.

마치 붉은 털을 가진 아기 고양이처럼 느껴져 귀엽다. 게다가 송곳니가 살짝 튀어나온 모습도 귀엽다. 나도 모르게 내 꼬리가 흔들렸는지, 뒤에서 소멜이 또 내 꼬리를 물려고 하기에 툭 쳤다.

“먀아아? (아파야?)”

“소멜, 내 꼬리 무는 거 금지라고 그랬지?”

“미아아……”

어깨를 축 늘어트린 소멜이 앞서서 날아간다.

나는 2층은 돌 필드를 이용하려고 한다. 일부러 돌 필드를 이용하는 이유는, 우리가 흙바닥이 아니라 그래도 그나마 경제적으로 깨끗한 바닥에서 자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돌 필드는 한 칸에 500DMP, 지금 남아있는 DMP는 49000 수준이고, 위층에서 만들었던 것 같은 작은방을 하나 만든다.

“주인님, 2층이 저희 방이면, 코어는 어디에 있어요?”

“응? 이렇게 할 거란다.”

코어가 있는 방 자체는 변형할 수 없지만, 위치는 쉽게 변형할 수 있었다.

나는 코어의 위치를 2층 방 바로 아래에 두고, 그 위에 유리 필드(바닥재)로 막아두었다.

“이렇게 하면 내 코어가 잘 보이겠지?”

“유리는 잘 깨지잖아요!”

“그래요, 이 유리는 내 손으로 툭 건드려도 깨질 거예요.”

“과연 그럴까?”

두 네임드가 바닥을 땅땅 치나, 유리 필드는 절대 깨지지 않는다.

나는 일부러 유리 필드에 코어에서 흐르는 마력을 이어 붙였다.

내 고유 스킬은 시간 마법, 즉 저 유리는 ‘고정된 상태’로 시간이 정지되어있기 때문에 같은 시간 마법이 아닌 한 절대로 깨지지 않는다.

물론 인간 측의 시간 스킬을 가진 영웅이라면, 이 유리는 깨지겠지만 말이다.

“아야……”

“아파요! 주인님 나빠요.”

“밟은 건 너희들이잖니……”

2층의 방까지 다 만들고 나니, DMP는 1만 이하까지 떨어졌다.

음식 자체는 10 DMP 수준으로 만들 수 있으니, 이제는 DMP를 벌지 않으면 안 된다.

괜찮다면 몬스터까지 소환하려고 했고 함정까지 만들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불가능한 것 같다.

“자 이 정도면 다들 만족하지? 2층 방바닥이 돌이라 딱딱하긴 하니까, 꾸미기 기능으로 휘장만 살게.”

그리고 바닥이 너무 딱딱하니 휘장까지 잔뜩 사서 걸지는 않고 깔아둔다.

전체적으로 아늑한 우리의 석굴이 완성되었다.

시엘과 타피는 기쁜 듯 나를 바라보며 방긋방긋 웃었고, 나도 아이들이 기쁜 모습을 보니 기분이 덩달아 좋아졌다. 하지만 DMP는 5천 이하까지 떨어졌고, 타피는 뭔가 나에게 바라는 눈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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