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4 <-- 던전 구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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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피, 뭐 바라는 거라도 있니?”
“마스터님…….”
타피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나를 위로 치켜보면서 뭔가 바라는 듯한 눈치를 보낸다.
하지만 타피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시엘도 은근슬쩍 비슷한 눈빛을 나에게 보낸다.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걸까 싶다. 심장이 옥죄어야 할 느낌이 드는 곳엔 허공만 남아있을 뿐이다.
“시엘은 또 뭘 원하는 거야?”
“주인님…….”
“알려주렴, 그런 식으로 눈치만 주면 나는 모르니까.”
“미야아아!”
소멜까지 두 네임드의 곁에 날아가 나에게 부담스러운 눈빛을 보낸다.
대체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의 배에서 나는 배꼽시계의 꼬르륵 소리에 이해할 수 있었다.
“……너희들 설마 DMP 요리가 먹고 싶은 거니?”
사엘과 타피, 소멜까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리 산에서 나는 과일들을 따 먹었다고 해도, 생각해보면 마족이나 몬스터로 불리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맛은 없었을 것 같다.
아니, 감각 공유로 느끼긴 했지만, 허전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DMP 메뉴를 열었다.
푸른 동그라미 안에 있는 4519 DMP 라는 수치.
DMP 메뉴 중 음식 칸을 눌러 피자 두 판을 시킨다.
‘시킨다’라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주문한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나오니 맞을 것이다.
[20 DMP를 이용하여 피자 두 판을 주문합니다.]
그러자 곧바로 앞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따끈한 피자 두 판이 나타난다.
대체 어떤 원리로 DMP를 소비해 피자가 나타나는지는 모르겠지만, 맛만 좋으면 그만이다.
“미야아아아!”
“주인님! 잘 먹겠습니다!”
“으, 이게 뭐예요? 마스터님.”
시엘과 소멜은 피자 판의 뚜껑을 열자마자 쭉 치즈를 뜯어 입에 꾸역꾸역 집어넣는다.
외모는 어린 엘프와 어린 메로우가 마구잡이로 집어넣는 모습을 보니 상당히 푸근한 느낌이 든다.
타피는 쭉쭉 늘어나는 피자 조각을 집어 들더니 혐오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인육은 그렇게 잘 먹으면서 대체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나도 배고픔은 느껴지지 않지만 한 조각 집어 입에 넣었다. 다행히도 맛 자체는 변하지 않고 달콤하고 기름기 있는 치즈, 그리고 그 속에 든 토마토 토핑이 입안으로 퍼진다.
향긋하고도 맛있는 고기, 과연 이런 세상에서는 어떤 고기로 만들어졌을지 궁금하지만, 입안에서 피자 조각이 사르르 녹는다.
타피를 계속해서 바라보니 타피도 입을 오물거리며 살짝 뜯어먹더니, 곧바로 방긋 웃는다.
“맛있따……!”
그 표정은 마치 신세계를 본 표정, 하긴 타피는 처음으로 DMP 메뉴를 이용한 음식을 먹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잠시 게임 생각이 나니, 혹시 이 메뉴는 운영에서 만들려고 했다는 호감도 메뉴가 아니겠냐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은 이상 이렇게까지 아이들이 좋아할 리가 없다.
“우와우구우걱”
“헷? 벌써 다 먹었어. 타피 돼지!”
“미야아아…….”
타피는 먹는 모습만 봐도 즐거운, 상당한 대식가인 듯하다.
그에 반해 먹을 게 없어서 침울해지는 소멜과 시엘, 두 아이를 위해 DMP 자체는 소모가 없는 편이니 나는 재빨리 메뉴를 눌러 세 판을 더 시켰다.
참, 피자 자체는 고구마도, 파인애플도 없는 순수한 콤비네이션 피자다.
“주인님 고마워요!”
“미야아!”
나는 그만 내려두고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지켜본다.
항상 이런 시간이 계속되었으면…… 정말 기쁠 것 같다.
그리고 왜 햇볕이 던전 안에 들어온다는 지 알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던전의 체력이라고 할지, 가장 바닥에 있는 코어가 빛을 받으면 몸이 쭉쭉 늘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코어가 심장 자리에 있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지만, 운디르나 선배님의 말을 따라 일조량이 그나마 적은 곳을 고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몬스터 뿐만 아니라 나조차도 이렇게 늘어질 줄은 몰랐다. 물론 나의 네임드들은 그 정도는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강하긴 하지만 말이다.
“어라, 누가 침입이라도 했나?”
나는 이제 항상 DMP 메뉴를 확인하고 있다.
수치가 천천히 1의 자리에서 오른다. 아마 1층에서 전투가 벌어지기라도 하는 모양이다.
몸이 쭉쭉 늘어지는 걸 보니 낮이고, 그렇다면 인간들이 침입해도 무리는 아니다. 벌써 올 줄은 몰랐지만, 이제 곧 해가 지는 시각이 아닐까?
“얘들아 나 위에 올라갔다 올게.”
“주인님! 우리 버리고 가지 마, 주인님 아프잖아.”
“마스터, 배가 불러도 마스터를 지킬 수 있다고요!”
타피가 볼에 빵빵하게 피자를 채우고 오물거리면서 말한다.
“타피, 입안에 있는 건 다 먹고 이야기하렴, 입에서 나올 수도 있잖니?”
그러자 타피는 꿀꺽 다 삼켜버린다.
“아니, 꼭꼭 씹어서 넘겨야지!”
“마스터가 일어났잖아요. 던전에 무슨 일이 있으면 안 돼요…… 박쥐라도 보내볼게요.”
“응?”
생각해보니 타피는 박쥐까지 부릴 수 있었다.
영화나 만화에서 보는 것처럼 수십 마리의 박쥐로 변신한다거나 하는 화려한 능력은 아니지만, 그림자에서 세 마리의 박쥐가 나와 바깥으로 향한다.
시엘은 자신이 할 수 있는걸 나에게 못 보여준다고 생각하는지, 억울하게 나를 바라본다.
그런 시무룩한 시엘을 쓰다듬고, 나는 타피에게 감각 공유를 걸었다.
마치 검은 도화지 위에 하얀 실로 그린 그림처럼 희미하긴 하지만, 타피가 부리는 박쥐들이 보내는 정보를 알 수 있었다.
인간 다섯으로 추정되는, 허름한 복장이라고 생각되는 무리가 찾아왔다.
타피에게 학살당한 잔당인 듯하다.
나는 스켈레톤 킹에게 [죽이지 말고 생포하라, 둔기를 이용해 기절시켜라] 라는 명령을 내렸다.
“시엘, 우리 던전에 인간들이 침입했는데, 생포하고 싶거든, 스켈레톤들은 약하니까 말이야.”
“응응, 지금 갈게?”
“저한테 맡기세요! 마스터님!”
“타피는 안 돼. 조금만 있다가 가렴. DMP를 얻기 위한 방법이니까 말이야.”
실제로 ‘죽일 수 없는 존재’임을 보여주고, 더 많은 네임드가 있는 것처럼 나서면 더 많은 절망을 뽑아낼 수 있다.
큰 던전이야 수많은 네임드와 몬스터들에게 맡기고 편안히 DMP를 벌어들이면 된다지만, 당장 위쪽에서 전쟁도 일어나지 않고, 급하게 DMP를 벌어들여야 하는 나에겐 DMP를 효율적으로 버는 게 더 중요하다.
타피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역시 시무룩해 보이는 모습은 지울 수가 없다.
시엘은 곧바로 인간들을 잡아 온다. 스켈레톤 킹이 직접 나섰던 건지, 스켈레톤 킹도 함께 왔다.
침입자 다섯, 모두 찢어진 옷에 얼굴이 멍투성이가 되어 딱 보기에도 약해 보이는 잔당이다. 어디서 난 건지 밧줄로 손발이 묶인 채 나에게 끌려왔다.
정말로 타피의 학살극에서 보았던 비슷한 옷을 입고 있는 걸 보아 그 잔당임을 알 수 있다.
“주인님, 전부 잡아 왔어.”
“잘했어, 시엘.”
나는 그들에게 보란 듯이, 약한 몸을 이끌고 걸어가 시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러자 그들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DMP가 마구 뿜어져 나오는 게 느껴진다.
또한, 타피도 다른 손으로 쓰다듬어준다.
“인간들아, 어딜 감히 나의 던전에 침입하느냐?”
“”히으으읏?””
인간 중 하나가 오줌을 지릴 정도로 겁먹은 것 같다.
아니, 그거 치워야 하니까 더러운 짓은 그만두었으면 좋겠지만, 여긴 우리 스위트룸인데……
하여튼 DMP 자체는 많이 나오니 상관은 없다만, 더러운 꼴은 보기 싫어.
코어는 보이지 않게끔, 유리 필드에 꿈 마법을 올려 돌바닥처럼 보이는 환각이 보이게 만들었다.
“더러운 짓은 그만둬라! 이 녀석들아. 너희들의 본진이 있는 건 이미 알고 있다. 가서 전해라, 여기에 던전이 생겼다고.”
“아, 알겠습니다……!”
“도굴하지 않겠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여기저기서 목숨만은 살려달라는 말이 오간다.
아이들의 교육에는 좋지 않지만, 절망을 극한으로 뽑아내는 방법도 알고 있다.
게임상에서는 포로의 고문실이라고 쓰였던 곳이지만, 아무래도 네임드들이 너무 보송보송한 아이들이다 보니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시끄러워!”
내 목에서 새된 소리가 나온다. 시엘과 타피는 지금이라도 죽일 것처럼 노려본다.
소멜은 행동이 먼저 나와 그 녀석들에게 물대포를 쏜다. 덕분에 바닥청소도 되었다.
원치 않게 물고문이 되어서인지 또다시 DMP 포인트가 올라간다.
나는 일부러 그들을 더 도발한다. 더 분하게 만든다.
“가라, 쓰레기들아. 고향에 가서 전해라, 이 던전을 공략해 보라고.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히으읏……!”
눈물과 물, 그리고 핏덩이와 멍으로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잔당 다섯은 마구 흐느끼며 꼴사납게 울부짖는다.
“타피, 스켈레톤 킹, 밧줄을 잘라줘. 그리고 바깥에 집어 던져라.”
“네, 마스터님!”
타피와 스켈레톤들은 그 녀석들을 집어 올려 던전 밖으로 나아간다.
일단 내 던전의 손해가 얼마인지, 얼마나 많은 DMP를 벌어들였는지 알기 위해 1층에 가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