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8 <-- 던전 구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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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구조를 보는 방법은 말이지, 코어에 직접 이야기하는 것과 같아. 뭐, 자기 심장에다가 이야기하는 게 이상하기는 하지만, DMP 메뉴랑 비슷한 느낌이지.”
“음…… 코어가 생각도 하나요?”
“글쎄, 코어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몰라. 우리 심장에 있던 물건인데, 마치 데이터 따위는 따로 저장되는 것 같거든. 너도 네 던전의 구조는 확실하게는 모르지?”
아니, 선배님이 아무리 무시한다 그래도 겨우 1층만 제대로 된 던전의 구조는 아직까지는 머릿속에 잘 남아있다.
그런데 생글생글 웃는 선배님의 모습을 보니 잠깐 화났던 걸 잊어버렸다. 너무 아름다우시다.
“그래, 뭐 말을 건다고 했지만, 사실은 감각 공유를 코어에게 건다는 느낌에 가깝지. 그러면 코어가 튕겨내면서 빛으로 던전 구조를 보여줄 거란다.”
나는 선배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감각 공유를 코어에 걸었다.
그러자 신호가 코어의 표면에 도달하고, 곧바로 툭 퉁겨져 나와 나의 감각으로 돌아온다.
코어의 한쪽에서 빛이 나더니, 내가 서 있는 곳으로 홀로그램 구조를 그려 보여준다.
“그래, 잘 했단다. 세이나. 여기서 천천히 구조를 만지작거리면 확대를 해서 보여주고, 직접 던전의 구조를 바꿀 수도 있어.”
“음……”
DMP 메뉴를 열어 정말 던전 구조를 변형시킬 수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정말로 가능했다. 게임처럼 3인칭 뷰, 그것도 입체로 보면서 녹색 부분을 확인하고 클릭하듯 누르자 던전의 구조가 변형되었다.
[300 DMP로 흙 타일, 흙 벽 1칸씩을 형성합니다.]
“저기 가보면 실제로 만들어졌을 거야. 세이나가 알고 싶었던 건 이거겠지?”
“고맙습니다! 선배님!”
“그런데 이미 만들었던 걸 보면, 다른 방법을 이용했을 것 같은데…… 그게 뭘까?”
절대 초음파와 감각 공유로 억지로 만들었다고는 말 못 합니다.
이렇게 편한 방법을 알고 나니, 마치 불을 처음 발견한 원시인의 기분이 이런 게 아니냐는 느낌이 든다.
“참, 그리고 네임드들에게 말하는 건 어떻게 하나요, 그러니까 먼 곳에서 이야기하는……”
“세이나는 감각 공유를 그렇게 하기 싫어했으면서 왠지 적극적인걸? 역시 편하지?”
운디르나 선배님의 웃음에 가시가 박힌 것 같다.
나는 ‘에헤헤’ 하고 어색하게 웃으며 흘려 넘겼다. 이전에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었지……
운디르나 선배님이 자꾸 멈칫멈칫한 게 싫었을 뿐이지만, 이렇게 편한 걸지는 몰랐을 뿐이다.
“응응? 그렇지?”
“네……”
운디르나 선배님, 무섭다.
그렇게 다가오면서 무서운 물 표정으로 저에게 몰아붙이시면…… 하하……
“그, 그러면 몬스터를 세는 방법은 어떻게 하는 건가요? 선배님의 던전엔 5만 마리 이상의……”
“직접 세.”
“……네?”
선배님의 말씀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무리 봐도 5만 마리 이상의 몬스터를 세는 건 무리다.
“그래, 각각의 네임드들에게 명령을 내려서 직접 세게 한 다음 합산! 보통 한 번에 나는 100마리 이상의 몬스터들을 소환하니까 그렇게 하는 게 편해.”
“그럼…… 일반 몬스터들은 선배님을 못 보는 경우도 있는 건가요?”
“이야기 한번 못 해보고 죽은 몬스터들도 있겠지. 세이나도 나중엔 그렇게 될지도 몰라. 기생충들이 던전 위에 도시를 만들 시점이 되면 말이지.”
“아……”
하긴, 선배님의 던전은 내가 있던 시점에서도 수많은 인간과 수많은 몬스터들이 죽어갔다.
그만큼 DMP의 소비와 생산량도 어마어마했겠지, 아마 지금도 오르내리고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보니 이 작은 던전을 키운 선배님이 존경스럽게 보인다.
“자, 일단 네 던전을 조금만 나에게 맞게 변경해 볼까? 일단, 내 병력을 주둔시켜야 하니까 말이지. 물론 병력에 대한 권한은 아리에타에게 있을 거고, 아리에타는 당분간 네 휘하로 둘 거니까.”
“네……?”
나는 텔레르나 씨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리에타 씨라니.
내 미래가 두렵다. 아니, 그 무서운 언니한테 죽을지도 모른다.
처음엔 ‘누나’라고 불렀었지만, 너무 자연스럽게 언니라고 부르게 되었다. 안 그랬으면 꿈 마법으로 수십 번도 넘게 당했었으니까.
아리에타 언니를 생각하는 것만 해도 이렇게 식은땀이 나는데, 내 휘하라니……
“텔레르나를 바랬던 걸까? 음…… 세이나는 장년 취향이니?”
“아, 아아, 아니에요!”
남자 취향이 애초에 아닙니다만.
“하, 그래, 세이나는 귀여운 아이들이 취향이지. 미안, 내가 몰랐네-“
“그것도 아니에요!”
뭐 이상형이라고 치면…… 없다, 아니 있다.
게임 폐인에게 이상형이란 그저 다른 차원의 존재일 뿐, 굳이 말하자면 자주 봤던 내 게임의 아바타가 이상형이었으니……
아바타랑 비슷한 내 모습이 이상형이라는 소리다.
생각하지 말자.
“흠흠, 그래. 일단 나는 물 필드를 사용할 거야. 물론 정말 물이 있는 건 아니고 바닥에 물이 흐르는 필드야. 다른 마스터들도 독립시켜줄 때 이 정도의 지원은 한다고 하더라고.”
“아아……?”
“다시 한번 더 말하지만, 네가 고유스킬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다른 마스터들이 너를 공격할 거야. 알겠지? 절대로 키우기 전까지 밖으로 나서지 않도록, 약속?”
“네! 약속!”
선배님과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방긋방긋 웃는 선배님은 언제 봐도 밝고 아름답다.
정말 선배님이 아니었다면, 평생 옆에 두고 지냈을지도 모를 정도……
“그래, 그리고 다른 것도 배워왔거든. 주로 쓰이는 정수에 다른 마스터의 정수를 부어 소환하는 방식이지. 다른 마스터뿐만이 아니라 네임드들의 것도 가능하고 말이지. 하지만 제대로 하지 않으면 네임드 소환에 실패하니까 이것도 알아두고…… 음, 또 물어볼 거 있니?”
너무 갑자기 많은 양의 정보가 들어와서 천천히 정리한다.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수많은 정보를 주시니 어디에 적고라도 싶다.
“맞아, 네임드들에게 명령하는 건 어떻게 하나요? 선배님은 감각 공유를 하며 명령을 내리셨잖아요.”
“아! 그래, 그거. 그냥 감각 공유를 한 상태에서 말을 걸면 되는데?”
“……?”
선배님은 의문에 찬 나의 표정을 멍하니 바라본다.
“의식을 잃은 동안에는 아무리 말하려고 해도 닿지 않았는데요?”
“응응, 그건 네가 깨어있는 상태여야 하거든. 네임드들은 강한 사념을 담아 이야기해야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말해버리면 네임드들의 뇌가 타버리니까, 소근소근- 말해야 한단다?”
“아…… 네.”
“그래, 이제 아리에타에게 가볼까? 던전 구성은 끝났으니 구경해 볼래?”
“언제 하신 거예요?”
선배님은 어느새 나와 이야기하시면서 던전을 만지작거리며 완성하셨다.
일단 1층 필드는 그대로이지만, 스켈레톤 킹이 있는 지역에서 바로 2층으로 내려오지 않고, 외길로 연결된 물 필드가 존재한다.
거대한 방 하나와 일곱 개의 방. 그리고 물과 꿈이 섞인 필드는 아무리 봐도 아리에타 씨를 위한 필드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꿈 필드는 세이나가 가서 쉬어도 될 정도로 만들어 두었어. 아마 네 종족은 서큐버스니까 그쪽에 가도 편안할 거야.”
“그래도…… 아리에타 씨가 있잖아요.”
“응응, 아리에타도 착한 애야!”
아니요, 아리에타 씨는 무서운 교관 언니입니다.
단호하게 대답하고 싶지만, 정말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이 세계에 오자마자 한달 동안 선배님께 항의하는 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일부러 대답하지 않았다.
“자, 이 던전 구조는 네가 변경해도 괜찮아. 전체적으로 베이스는 잡았으니까 천천히 고쳐나가면 된단다.”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아리에타한테 가자!”
“……”
결국, 나는 선배님의 힘에 이끌려 손목을 잡힌 채로 코어가 있는 방 밖으로 걸어 나왔다.
선배님은 강력하다. 무지무지 쌔다. 어찌 물이 이렇게 강할 수 있는지 놀라울 정도이다.
밖으로 나오자 선배님은 살짝살짝 코어를 덮치려고 동요하던 모습이 사라지고 다시 매우 차분한 모습이 되셨다.
그리고 나는 다시금 코어가 있는 방을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코어를 처음 보았을 때 선배님의 표정은 정말 포식자의 그 눈빛이었다.
나의 아이들도 내 코어를 삼키지 않기 위해 참았던 건지, 다시금 아이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밖으로, 그러니까 나의 스위트룸으로 나오자 텔레르나 씨와 아리에타 씨가 서서 대기 중이고, 씩씩거리는 타피가 반쯤 맞은 채로 있었다.
“타피이이이!”
“씩, 씨…… 나빠, 우리 마스터님의 코어는 내가 지킨다!”
“타피, 저분들은 운디르나 마스터님의 네임드라니까!”
시엘도 왠지 타피를 말렸던 것 같지만, 흔적을 보아하니 아리에타 씨에게 일방적으로 맞았던 것처럼 보인다.
“그런 식으로 지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무서운 언니, 아리에타 씨가 나를 훈련시킬 때와 같은 표정으로 타피를 노려본다.
타피는 이를 악물고 일어나 다시 아리에타 씨에게 달려들지만, 운디르나 선배님이 물 감옥으로 그 두 명의 사이를 가른다,
“호호, 그만그만. 마스터끼리 회의가 끝났답니다. 아픈 아이가 있는데 여기서 싸우면 안 되지요?”
“마스터님! 저 여자가 여기 남는다는 게 사실인가요?”
타피가 선배님의 말을 끊고는 나를 보고 소리친다.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선배님이 나를 위해 남겨준 네임드니까……
운디르나 선배님은 호호 웃으며 물 감옥을 천천히 해제시켰다.
========== 작품 후기 ==========
일주일 만에 책 한 권 썼습니다. 헤헤
비축분 그게 뭔가요?